오늘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
올초에 독일과 루터에 관한 이야기를 끄적인 적이 있어 재공유한다.
재공유 하면서 당시 역사적 배경을 되새겨 보았다.
한 페친분이 언급하셨는데, 돌이켜보면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여러가지 우연의 요소가 있었다. 관점에 따라 그 우연을 신의 섭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역사의 필연성이라고 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보름스 회의 (Diet of Worms) 직후에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루터를 납치해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기지 않았다면, 그는 얀후스나 틴들 같은 순교자가 되었을 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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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t of Worms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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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그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지내며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지 않았다면. 또는 활자술의 발명이 없어서 그의 번역과 이후 팜플랫들이 널리 퍼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종교 개혁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지 모른다.
지난 번 루터와 독일에 관한 글은 아래 참조.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신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독일에서 합창단원을 하다가 지금은 스위스 시립 합창단원으로 직장을 얻어 정착하셨다. 그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독일은 동네마다 합창단이 잘 조직 되어있고 안정적으로 운영이 된다고 한다. 특히 여자 알토 파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구직이 비교적 수월하다고 했다.
합창단 일자리가 많아서 원한다면 (그리고 심심하고 단조로운 유럽 생활에 만족한다면) 성악 전공자가 독일에 정착하기 쉽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성악 유학을 가는 분들 중에 이탈리아로 가시는 분들은 귀국하시는 분들이 많고 독일 쪽은 남는 분들이 꽤 된다고 들었다.
신학도 아울러 전공하신 그분께서는 독일에는 기독교의 유산이 사회 전반에 여전히 남아있다고 몇차례 언급 했다. 지금은 독일도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속국가라고 봐야하지만 문화/사회적으로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기틀을 잡은 나라이고 그 중에서 루터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이왕 음악이야기로 수다를 시작했으니,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자. 독일에는 130여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독일에는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가 80개쯤 되니까 (위키피디아 기준) 왠만한 도시는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규모이다. 그렇게 많은 오케스트라 운영이 가능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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