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늦여름 아틀란타에서…

덥다.
서울도 덥다고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더위는
후덥지근하고 땀이 흥건해지는 끈적끈적한 더위다.
아틀란타의 더위는 문밖을 나설 때 들이닥치는 갑작스러운 더위다.
햇볕이 살을 에면서 파고 들고, 머리를 송곳 같이 찌르는 그런 더위다.

마거릿 미첼이 묘사한 아틀란타의 더위는
내가 느끼는 더위와 같은 공간의 다른 시간대에 존재한다.
덥다는 말은
서울과 아틀란타에서,
21세기와 남북전쟁 시대에,
미첼과 나라는 다른 존재에게
모두 다르게 체험된다.

딸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아이가 가진 순수함, 해맑음이 나까지 웃게 만든다.
굳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딸아이와 같이 웃고 행복하면 되는게 아닐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내가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만큼 멀어져 간다.

그래도 무언가를 해보는 것은 즐겁다.
느끼는 만큼 보게 되고 풍부해진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빛과 그림자에 그만큼 민감해진다.
햇볕이 쨍쨍한 어느날
푸르른 나뭇잎에 드리운 그림자와
미세한 초록빛의 아우성이 갑자기 크게 느껴져
흠짓 놀란 적이 있다.

짧은 인생. 모든 것을 체험할 수는 없을 테지만,
유한한 존재로 태어나서 하나라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캡처

 (Image :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중)

 

책읽는 中: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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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로버트 피어시그의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이다. 1974년 출간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철학책으로 알려진 이책은 한국에는 몇년전에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11살 아들과 17일간 모터사이클 횡단 여행을 한 이야기인 이책은 기본적으로 여행기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문학/종교를 아우르는 방대한 철학적 탐험기이다. 이 책을 잡고서 읽다가 문득 문득 드는 생각들을 포스팅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Chapter 2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주인공은 모터사이클에 문제가 생겨 정비를 받는다. 정비공은 무심한 태도로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해머와 정(cold chisel)으로 냉각기를 두둘겨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주인공은 무언가 잘못된 느낌을 받고서 정비를 중단하고 모터사이클을 가지고 정비소를 나온다. 나중에 본인이 천천히 정비를 하면서 결국 문제를 찾아 낸다.

여기서부터는 몇자를 그대로 옮기고 싶은데, 내게 한글 번역본이 없는 관계로 직접 번역하여 옮긴다. 심각한 정도로 의역을 했고 내가 이해한대로의 재구성이다. ㅎㅎ

우리는 모두 구경꾼들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에 대해 별 고민이 없거나,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20세기가 왜 이렇게 잘못가고 있는가?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이 질문을 품고서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단절(separation)’에 대해 조금씩 살펴보려고 한다. 서두르지 않겠다. 서두르는 것은 20세기의 독이다. 우리는 서두르는 동시에 사려깊을 수 없다. 나는 느리지만 사려깊게 그리고 꼼꼼히 살펴볼 것이다. 내가 시어핀(sheared pin: 위에서 말한 모터사이클 고장의 원인)을 찾았던 그 태도(attitude)로 말이다. 내가 시어핀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태도 때문이었다.

We were all spectators. Caring about what you are doing is considered either unimportant or taken for granted. On this trip I think we should notice it, explore it a little, to see if in that strange separation of what man is from what man does we may have some clues as to what the hell has gone wrong in this twentieth century. I don’t want to hurry it. That itself is a poisonous twentieth-century attitude. When you want to hurry something, that means you no longer care about it and want to get on to other things. I just want to get at it slowly, but carefully and thoroughly, with the same attitude I remember was present just before I found that sheared pin. It was that attitude that found it, nothing else.

모터사이클은 현대의 물질 문명과 기술을 상징한다. 사실 내가 슬쩍 건너 띤 chapter 1에서 저자는 기술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삶에 대해 말을 했다. 이제 chapter 2에 와서는 생각하지 않고 기술(현대 문명)을 받아 들일 때 그것은 우리를 망친다고 말을 하고 있다. 주체와 객체를 띄어내고 구경꾼이 된다면 우리는 폭력적이 되어 질 수 밖에 없다.

이야기가 너무 철학적이고 사변적이 되어간다. 원래 책의 화두가 그렇긴 하다. 이왕 이야기를 이렇게 끌고 간 김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Eichmann in Jerusalem)’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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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http://www.real-debt-elimination.com/real_freedom/Propaganda/holocaust/eichmann_trial.htm)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 계획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도피 생활 끝에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된다. 사람들이 충격을 받었던 것은 생각과 달리 아이히만은 악마적인 인물이라기 보다는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학살을 할 수 있었을까? 재판 과정을 지켜본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아이히만에 대해 이렇게 평을 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아이히만의 죄는 ‘생각하지 않은 것(thoughtlessness)’이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때, 그저 메뉴얼 대로 따르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문명의 모습을 한 괴물이 되고 만다.
최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만 덧붙이려고 한다. 내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이다. (주: 다만 지금 뉴스에 나오고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이것은 사건 이후의 장례식에 대한 논의이다. 이 사건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장례식을 반년 정도 끌고 가고 있다. 장례식은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리일 터인데 누구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아무도 이 장례식을 끝내려고 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간접적 가해자 모두는 이러한 평범한 일반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보통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메뉴얼 대로 따랐을 뿐이다. 심지어 몇몇은 그 메뉴얼마저도 무시하고 생각을 하기를 멈추고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얼굴을 선장에게서, 소유주에게서, 관료들에게서 보았다. 어쩌면 이미 세계가 너무나 커질 대로 커져서 그 속에 부품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잊고서… 그리고 공감하는 능력을 잃고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얼굴과 무심함을 바로 내 자신에게서 발견할 때 그때가 가장 섬뜩하고 무섭다. 그 핑계는 다양하다. 효율적이 되려고, 바쁘니까, 모두들 그렇게 하니까… 등등. 표정없이 살지 말자, 생각하며 살자, 괴물이 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최근 스케치들 (아침 식사와 인물화 몇장)

캡처

매일 회사식당에서 먹는 아침 식사와 트레이를 스케치해봤다. UPS 로고를 넣은 것은 의도된 것이지만 너무 진하게 들어간 듯해서 아쉽다. 재료는 목탄화에다가 콘테크래용으로 컬러 액센트를 넣어주었다. 사진을 살짝 삐뚤게 찍어서 사진으로 본 그림도 삐뚤게 보인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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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는 흑연 연필을 사용했다. 인물화는 재미있긴 한데, 비슷하지 않다고 실망하는 목소리가 많아서 들어간 노력대비 성취감이 적은편…ㅎㅎ 만만하게 보고 별 연습없이 도전 했는데, 눈 그리는 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고 (똑같이 그리기가 힘들 뿐더러, 비슷하게 그려도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다른 skill이 필요한 것 같다. 인물화 클래스에 등록을 해서 본격적으로 배우면 나아지려나?

딱히 사실주의 그림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기에 더 많이 연습할 지는 모르겠다. 그럴거면 사진을 찍지 싶기도 하고… 어쨌든 인물화가 재미있는 것만은 사실.

아나키스트: 천황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중에는 일본인이 몇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 훈장을 받았던 후세 다쓰지라는 인권변호사이다. 이 사람은 일본인 쉰들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조선 독립운동에 열정적이었고 삼일운동 당시 지지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 검사로 일본 법조계에 입문했으나 법률의 사회적 적용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변호사가 된다. 후에 일본 내의 노동운동/사회주의 운동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로 활약하고,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맡는다. 그가 변호했던 사건 중에 하나가 당시 일본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일본 천황 암살 미수 사건이다.

박열은 본디 아나키스트 였다. 그는 천황 암살미수 사건으로 22년 복역하게 된다. 해방후 그는 이승만 지지로 우익 노선으로 전향하고, 또 몇년 후에 6.25 때 납북된 인물로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다. 그의 고향 문경에 가면 박열 열사 추모관이 있다. 박열에 대한 이야기도 많겠지만 오늘은 그의 연인이었던 가네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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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에 대한 글 중에서 쉽게 읽어볼 만한 글은 산하님의 1926.7.23 조선을 사랑한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이다. 산하님은 맛깔나게 글을 쓰시기 때문에 심각한 스타일에 길기까지 한 내 글보다는 읽는 재미가 있을 듯 하다. ㅎㅎ

가네코는 일본인이지만 불우한 가정사로 인해 어린시절을 조선에 사는 할머니 밑에서 큰다. 어린 시절 목격한 3.1운동은 그녀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녀의 이야기는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 몇번 역사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일제시대 일본인/한국인 간의 신분을 넘는 사랑 이야기로 단순화되곤 한다. 이는 가네코가 아나키스트 였다라는 것과 박열이 납북되었다는 것이 여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데올로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나키즘과 공산주의를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고 또 한국적인 상황에서 아나키즘을 언급하는 것 조차 불온한 느낌을 주는 것과 관련이 적지 않아 보인다.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잘못된 번역의 대표적인 예로, 정확히는 탈권위주의 정도로 번역되는게 맞을 듯 하다. 아나키스트는 어떠한 이유로도 개인의 자유가 사회/국가라고 이름지워진 권위로 부터 억압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의 모습과 그 이상향을 실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국가를 해체하고 작은 단위의 신뢰사회인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완전한 비폭력을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극단적으로 폭력과 테러를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또 그들 사상의 스펙트럼은 극우로 부터 극좌까지 걸쳐있기 때문에 딱히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아나키즘은 극단으로 흐르면 허무주의로 흐르기 쉽다. 다원주의/허무주의/아나키즘은 어찌보면 형제 같은 존재이다. 그렇지만 허무주의에 다다른 아나키즘은 기존의 모든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폭력과 테러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나키스트 아니면 무정부주의자의 이미지 일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아나키즘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에서 잘 묘사되어진다.

아나키즘은 기본적으로 제도화된 조직에 대한 반대를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에 조직화가 쉽지 않다. 굳이 살펴보자면 우크라이나의 네스트로 마흐노, 스페인 내전 초기의 전국노동연맹 정도이고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한 세력은 스키마스크로 유명한 마르코스의 멕시코의 사파피스타 민족해방 전선 정도 이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어나니머스도 아나키즘의 한 모습으로 들어갈 듯 싶다. 그리고 현대적인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조금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생태주의, 반전운동, 대안학교, 공동체 운동 등으로 조금 변형된 형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공산주의도 어떤 면에서 궁극적으로는 아나키즘을 지향한다. 막스도 공산주의가 완성되면 정부는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공산 독재가 결국 영구화할 것이고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괴물로 변해버릴 뿐이라 말한다. 결국 역사는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일제시대에 우리나라를 풍미했던 아나키즘의 조류는 이러한 흐름에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독립 운동가였던 김원봉, 이회영과 이들이 세운 의열단은 아나키스트 집단이었고 말년의 신채호도 아나키즘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아나키즘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 생긴 집단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자와의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조금 헤깔리기도 한다.

아나키즘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큰 주제이므로 조지오웰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정도로 마무리 짓도록 하자.

아나키스트들은 원칙이 다소 모호하기는 했지만 특권과 불의에 대한 증오는 정말로 순수했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이른바 혁명가들과 대립되었다. 철학적으로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은 양극단이다. 실제적으로, 즉 목표로 하는 사회의 형태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주로 강조점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절대로 화해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아나키스트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중에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가네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가네코는 당시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 들과 교류를 하다가 조선인 출신 아나키스트 박열과 동거를 시작한다. 이때 그녀와 박열의 동거 계약서가 재미있다.

1. 동지로서 동거할것.

2.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3.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둔다

그녀는 뼈속까지 사상에 충실한 여자였고,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육체적으로 일치되는 완벽한 연애를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박열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도 박열의 아나키즘에 근거한 시를 보고서 이다. 그녀는 그의 시를 보고 그를 찾아갔고 연애를 시작한다.

평등 사상에 기반한 동거를 했던 둘은 1923년 비밀결사 ‘불령사’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반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일본에서는 관동 대지진이 발생한다.그들은 체포되었고, 취조 도중 폭탄 구입 계획이 알려지게 된다. 민심이 흉흉했던 당시 일본 정부는 천황암살 기도를 큰 이슈로 만들었고 ‘대역사건’이라고 한다. 이 혐의로 1926년 이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사형언도시 가네코는 만세를 불렀고, 박열은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긴다. 며칠후 이들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앞에 언급한 후세 다쓰지의 도움으로 옥중 결혼을 한다. 그리고 몇달 뒤 가네코는 의문의 자살(?)을 하면서 스물셋의 짧고 힘겨운 삶을 마친다.

이 사건은 일본 안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 중 하나가 옥중에서 찍혔다는 아래의 묘한 포즈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우연히(?) 유출되었고 일본의 신문들은 대서 특필한다. 이후에도 이 사진은 음란한 조선의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사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모든 일이 관동대지진 직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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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녀의 재판 기록을 통해 그녀의 육성을 몇자만 옮겨 보자.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먼저 박열의 동료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이 사건이 우습게 보인다면 뭐든 우리 두 사람을 비웃어달라고. 이것은 두 사람의 일이다. 다음으로 재판관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부디 우리 둘을 함께 단두대에 세워달라고.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혼자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재심준비회 편, 《박열ㆍ가네코 후미코 재판기록》, 748쪽, 이하 《재판기록》)

나는 박열에게 부화뇌동하여 천황이나 황태자를 타도하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천황은 필요 없는 것,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이 박열과 같았기 때문에 부부가 되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조건 가운데는 그런 생각을 공동으로 실행하려는 동지적 결합이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가네코의 진술서 중)

나는 아나키즘에 동의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나는 평화주의를 선호하고 기존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아나키즘은 대부분 이상주의에 머무를 때가 많아서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을 뿐더러 우스운 망상에 지날 때가 많다.

하지만 정말 불쌍한 삶(주: 그녀의 삶은 옥중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 잘 묘사되어 있다.)을 살았던 스물 세살의 젊은 여인의 처절하고 독한 이상주의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내가 믿는 신념대로 사는가? 세상의 조류에 흔들리지 않고 진정으로 고민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가? 다수의 생각에 잡아 먹혀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살지 않는가?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측은지심(惻隱之心)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맹자

無惻隱之心 非人也 (무측은지심 비인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無羞惡之心 非人也 (무수오지심 비인야)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無辭讓之心 非人也 (무사양지심 비인야)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無是非之心 非人也 (무시비지심 비인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측은지심 인지단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羞惡之心 義之端也 (수오지심 의지단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辭讓之心 禮之端也 (사양지심 예지단야)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是非之心 智之端也 (시비지심 지지단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 중.

맹자는 성선설과 사단을 설파하면서 아이가 물에 빠진 예를 들어 이를 구하려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도리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맹자의 사상(성선설과 사단)에 마음이 동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동의하는 도덕적 감수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부정할 수 만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맹자는 전국시대를 지나 한동안 잊혀졌던 인물이다. 이를 남송때에 주희가 재평가하면서 부각되었다.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은 조선이 국시로 삼았었고 한국 사람의 정서적/도덕적 기반이 되는 사상이었다. 그래서 인지 우리나라 사람에게 맹자의 사상은 큰 공감을 준다.

반면 서양사람들에게 이러한 정서가 별로 먹힐 것 같지 않다. 맹자는 노자/장자와 달리 서양에서 주목받은 적이 그다지 없다.

요즈음의 뉴스를 보면서 한국인이 국가에 바라는 것,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필라델피아 여행중에 그린 스케치들

이번 여행이 즐거웠던 이유 중에 하나는 느끼고 본 것을 실물로 스케치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림 외에 ‘처남 가족들과의 식사’ / ‘9개월 된 처조카와 즐거운 시간’ / ‘반스 재단의 미술 작품 관람’ / ‘딸과의 수영’ / ‘우버 첫 이용’도 즐거운 기억이었다.)

딱히 스케치를 해보려고 재료를 준비한게 아니었기에 호텔에 놓여있는 연필/메모지와 딸아이 색연필로 스케치를 했는데도 나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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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에서 St. Peter and Paul 성당이 보였기에 그 모양을 여러 번 스케치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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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여행 중에

Initially posted on facebook on Aug/18/2014

필라델피아에 있으면서 예전에 봤던 기사 생각이 났다. (기사제목: 빗자루 하나로 절망을 쓸어내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 IVF간사 출신이신 이태후 목사님의 이야기다. 이 기사가 3년 전인데 아직도 North Philly에 사시는 지 모르겠다.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이웃과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는 항상 감동이 있다.

나는 이태후 목사님은 알지는 못하고 기사 하나 읽은게 전부이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 기사로 볼 때 그는 본인이 믿는 선교철학을 삶으로 보여주려고 뛰어든 분으로 보인다.

미국에 와서 딸가진 아빠로서 치안/안전은 항상 중요한 관심사다. 미국이 무법천지에 항상 총소리를 듣는 나라는 아니다. 단, 우범지대는 사전에 알고 있는 것이 좋고 그런 동네는 얼씬도 하지 않는 정도, 밤거리를 쏘다니지 않는 정도 (지역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는 필요하다.

2004년인가? 그때 처음와보고 필리는 10년만에 다시 왔다. 대학생이던 당시 사촌형 집에 머물면서, 자유의 종과 프랭클린 저택을 둘러봤던 생각이 난다.

잠깐 미국의 수도였던 역사의 도시 필리에서 가족들과 한때를 보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일본의 의리, 한국의 정, 그리고 미국인의 인간관계

‘미국인은 문서로, 일본인은 의리로, 한국인은 정으로 계약을 맺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을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화와칼

원래 의리라는 말은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자로는 義理라고 쓰고 일본사람들은 /Giri/라고 발음한다. 미국인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이 의리를 일본 특유의 민족성으로 보았다. 그는 <국화와 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이나 유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닐뿐더러 동양의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범주로서, 의리를 고려하지 않으면 일본인의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리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그래서 인지 일본인들은 은혜를 갚는(報恩) 이야기에 항상 깊은 감동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떤면에서 이 의리라는 것은 상당히 폭력적인 행동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지만 그 사람의 적인 상대에게는 무자비하다. 일본인들은 개개인으로는 참 좋은 사람들이지만 집단으로는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일본 회사와 비즈니스를 할 때도 의리라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한국 회사를 다닐 때 일이었다. 회사가 추진하는 사업중에 하나가 일본 한 회사의 특허권과 연결되어 분쟁이 될 뻔한 적이 있었다. 연구 단계부터 회사는 특허 관련 법을 사전에 검토를 했었고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사업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해당 일본회사가 그 일을 알게되었고, 그 일본 회사는 사전에 자기 회사에 양해를 구하지 않은 우리 회사의 태도에 분노했다. 그들은 한국 회사가 신의를 저버린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대부분의 사업 결정은 이해득실이나 계약관계보다도 신의를 지키느냐가 우선된다. 당시 나는 원가 담당자였기 때문에 해당 일본 회사에서 만드는 재료를 계속 사용할 경우와 아닌 경우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었다. 그래서 비교적 생생히 기억하는 편이다. 당시 회사는 국제법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향후 비즈니스를 생각해서 상당한 금액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선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었다.

서양에는 의리라는 개념이 없다. 일본의 무협영화나 만화들은 사나이들끼리의 의리가 주제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소재는 서양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형제애(brotherhood)나 동료애(companionship) 같은 소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의리와는 다르다. 위키피디아에서 Giri를 검색해보면 duty / obligation / burden of obligation으로 번역되어 있다. 딱히 와닿지는 않는다. 번역할 만한 적당한 단어가 없는 것 이다. 일본적인 개념의 의리는 조직사회의 관계보다는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를 나타낸다. 사무라이와 주군(다이묘)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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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의리라는 말이 큰 유행을 했다. 김보성의 의리 광고와 홍명보의 의리 축구는 올해 최고로 화끈한 topic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말하는 의리는 일본의 의리와 많이 다르다. 우리가 말하는 의리는 어찌보면 ‘정(情)’에 가깝다. 의리를 말할 때 우리는 친구 간에 끈끈함을 떠올린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도 소주 한잔 마시거나 (남자들의 경우), 시어머니 흉을 보고 나면 (여자들의 경우) 다음날 부터는 바로 절친이 되어 속마음까지 다 보여준다. 이런 풍경은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cold-shoulder

일본 사람도 우리 기준으로 차갑지만 미국 사람은 더하다. 예를 들어 미국 회사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오늘 무슨일을 잘해주었다고 하자. 그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하겠지만 그게 전부다. 다음날 만났을 때 그 사람은 나에게 더 친하게 굴지 않는다. 같이 운동하거나 술을 마신 이후에도 이것은 마찮가지 이다.

반대로 내가 잘못을 한 경우도 그렇다. 한번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다음날 그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실수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또 그 실수를 통해서 내가 무능하다거나 불성실하다는 판단이 들지 않는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별로 의미가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실수에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계산적으로 이루어 질 때가 많다. 미국 사람들은 필요가 없으면 굳이 관계를 맺지도 않고 친분도 생기지 않는다.

미국사람들은 낯선사람과 친구의 차이가 크지 않다. 전혀 처음보는 사람도 절친처럼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그 다음날 언제그랬냐는 듯이 차갑다. 물론 그들도 정말 친한 친구와 덜친한 친구들이 있지만, 친한 친구가 우리나라의 죽마고우 같은 정도로 가까운 느낌은 없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낯선사람에게는 한없이 차갑다. 그렇지만 일단 친구의 범주에 들어가면 한없이 가까워진다. 정말 끈끈한 민족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은 일종의 큰 규모의 가족 같은 관계이다. 그래서 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안면만 트게 되면 바로 ‘오빠’/’동생’/’삼촌’/’이모’ 이다. 그리고 조금만 친해지면 참견을 못해서 안달이다. ‘왜 결혼을 안하냐?’ ‘살은 언제 뺄꺼냐?’ ‘애기는 안가지냐?’ ‘둘째는 안났냐?’ 외국 사람이 들으면 불쾌할 것 같은 참견을 서슴없이 우리끼리는 하고 산다.

[1]우리가 남이가 로고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는 회사나 사회, 국가도 이렇게 일종의 가족같이 여기지 않나 싶다. 누군가 밤늦게 고생해서 야근하면 딱히 내가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같이 남아서 커피라도 한잔 타주는 게 우리 식의 ‘정’이다. 처음 미국 회사에서 일 시작했을 때, 보스가 야근을 해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아직 업무가 익숙치 않아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미안해서 남아 있었다. 보스는 어이없어 하면서 니가 왜 여기 남아있는가 묻는다. 우리나라도 예전 같지 않아서 점점 덜해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정’으로 묶여있다. 서로 엮여 사는게 지긋지긋 하다고 말로는 그러지만 그놈의 ‘정’ 때문에 매몰차게 뒤돌아 서지 못한다.

이렇게 보니 딱히 어떤게 좋다/나쁘다 말할 성질의 것은 없는 것 같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는 싫다. 좋은것만 골라서 가졌으면 좋겠으나 ‘좋고 나쁨’은 동전의 양면 같이 하나로 붙어있다. 미국에 살다보면 한없이 차가운 미국사람에 정떨어지다가도 이것저것 남의 신경 쓰지 않고 사는 세상이 편하기도 하다. 그래도 누구든 자신한테 익숙한게 좋은 법이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 사는 게 제일로 좋다.

에머슨의 에세이집을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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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alph Waldo Emerson, 1803 ~ 1882)

“To believe your own thought, to believe that what is true for you in your private heart is true for all men, – that is genius.”
“Society never advances. It recedes as fast on one side as it gains on the other. It undergoes continual changes; it is barbarous, it is civilized, it is Christianized, it is rich, it is scientific; but this change is not amelioration.”

from ‘Self-Reliance’ Ralph Waldo Emerson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곧,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진실이 된다. 이것이 재능이다.”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다른 한 편에서 하나를 얻으면 그만큼 빨리 무언가는 퇴보한다.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야만적이었다가, 문명화되었다가, 종교적이었다가, 과학적인 세상이 된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중, 랄프 왈도 에머슨

– 최근에 에머슨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에머슨의 사상이 왜 미국의 정신이라고 불리우는지 조금 알것 같다. 우리나라 대다수 학자들은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이기주의(egoism) 정도로 소개하고 있으나, 실제로 개인의 가치와 잠재력을 신뢰하는 개인주의가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 에머슨은 19세기에 개인주의(individualism)이라는 말이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 ‘self-reliance’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나는 진보라는 말(또는 진보세력이라는 이름)에 동의하지 않는데 진보(progress)라는 말은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지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에머슨과 초월주의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을 정리해서 한번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초창기 역사/사상/문학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돌아보는 것은 21세기에도 나름 의미가 있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있음은 그들의 가치가 보편적으로 인류에 공감대를 형성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