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ly posted 06/04/2014 @ facebook
독일에 가면 길거리에서 금속으로 된 표식에 새겨진 이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독일어를 모르기에 그냥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케이블 매설’ 표지 같은 건 줄 알고 지나쳤다. 그 모습을 본 잉그릿이 이게 뭔지 설명해 준다. 이 표지는 표시가 된 곳 앞에 살던 사람들 중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2012년 당시 그 이야기를 듣고 찍은 사진이다. 그러고 보니 도로 곳곳에 이러한 표식들이 있었다. 한 골목에 많게는 수십 개의 이름들이 있다. 당시 유럽에 살던 900만 명의 유대인중의 2/3가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이러한 아픔의 흔적들이 유럽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2번의 세계대전이 있었던 20세기 초는 정말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시기였다. 모두가 자신의 정치적인 색깔을 가지고 서로를 증오했다. 사회주의자는 자본가 계급을 적으로 생각했고, 자본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멸시했으며, 혼란의 와중에 등장한 파시스트들은 무질서와 ‘나와 다름’을 죄악시하며 하나로 똘똘 뭉쳐서 다른 민족/국가에 폭력을 쏟아 부었다. 아시아에서는 뒤늦게 제국주의의 물결에 합류하고자 했던 일본이 서구의 왜곡된 모습을 황국신민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서 주변 국가들을 괴롭혔고, 미국인들은 흑인/native American에 대한 학대를 당연시 했다. 이러한 광기의 끝 무렵에 탄생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련은 그 내부에서의 사상갈등으로 서로 죽고 죽인다. 스탈린의 피의 대숙청 때 사상자는 2백만으로 까지 추산되고 있다.
폭력의 시대를 겪고서 유럽 사람들은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똘레랑스 (관용)’이다. 어원은 허세의 끝장을 보여주는 프랑스 사람들에게서 나온 말이지만 내게는 가장 울림이 큰 가치 중에 하나이다. (쓰고 보니 politically correct한 말은 아니군…ㅎㅎ)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들이대는 것의 폭력적 결말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가치인 것이다.
이제 20세기 초는 너무나도 먼 옛날이다. 그 시절을 체험한 이는 모두 무덤 속에 잠들어 있고, 이제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게 미국이나 한국이나 보수/진보의 갈등이 점점 커지는 것의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가끔 온라인에서 보이는 글들도 소위 어르신의 입장에서 보면 선동이라는 생각이 들겠다 싶은 내용도 있고, 그 어르신들이 대응하는 행태도 너무나도 20세기 스타일이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타자 입장에서 봤을 때, 단편적인 사실만 보고서 감정적으로 서로 헐 뜯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모론적인 이야기가 사실인냥 받아지는 경우도 많고…
이제 나도 세상의 때도 조금 묻고 좌절도 겪고 하다 보니, 지금 내가 그렇게도 열정적으로 죽고 못사는 것이 나중에 보면 별일 아닌 게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게 역사라는 관점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