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 핑 피르르’ 누군가의 집에서 풍경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창밖 참나무를 훑고 지난다. 쏴아 소리가 난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올 겨울에 5층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파트는 20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참나무로 둘러쌓여있다. 아내는 나무가 햇볕을 가리는게 아닐까 걱정을 했다. 나는 어차피 남향집이 아닌 다음에야 큰 상관이 없다고 했다.
봄이 되자 나무가지에 잎이 돋기 시작했다. 거실의 창은 동북쪽을 향하고 있는 데,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잠깐 볕이 든다. 해가 뜰 무렵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에는 듬성듬성 그늘이 우려있다.
여름 내내 더위가 지긋지긋해 창문을 닫고 지냈다. 남부의 여름 햇살은 환영할 만한 손님이 아니다. 햇볕을 가리는 일만 생각했다. 나뭇잎은 짙은 초록색으로 변했지만, 나에게 외향의 변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햇볕을 가려주는 기능이 반가울 뿐이였다.
며칠 비가 오더니 낮에도 창을 열만해졌다. 창문을 활짝 열자 밖에서 쏴아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빗소리인 줄 알았는데, 바람 소리다.
한참 잊고 있었는데, 2000년 5월 남도 여행이 생각났다. 땅끝 마을도 가고 청해진도 갔었는데,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기억도 없다. 오늘 기억을 하나 건져 내었다.
5월에 강진 산등성이에 올라가면 보리물결을 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보리밭에 초록 물결이 인다. 보리 물결은 소리도 내는데, 그 소리가 참나무에서도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