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ylor Swift와 딸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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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0~20대 여자애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Taylor Swift. 특히 (그녀의 노래가 컨트리가 베이스라서 인지) 남부에서의 인기는 엄청나다. 특이하다고 생각이 든건, k-pop은 10~20대 여자 가수들은 30~40대 아저씨 팬덤을 공략하고 남자 가수들은 여심을 흔드는게 전략 포인트인데, 이동네는 오히려 반대로 10~20대 여자 가수들이 또래 여자아이들의 감성을 노래한다. 어찌보면 이게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30대 거무죽죽한 동양 남자가 뭐 Taylor Swift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겠나. 이건 아무래도 딸아이 때문이다. 어제 딸내미가 초등학교 가서 또래 친구 (Hailey라는 전형적인 남부 백인 여자아이) 한테 Taylor Swift 노래를 들었다며 유튜브로 틀어달라고 해서 같이 듣고 딸내미의 막춤을 감상해야 했다.

딸내미에 의하면 Hailey는 Taylor Swift의 노래를 다 외우고 있고, 특히 ‘Shake it off’를 좋아하는데, 자기는 ‘Out of the Woods’가 더 좋단다. 아직 7살 밖에 안된 유치원생 아이들이 틴팝을 좋아한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게 왜 더 나를 당황스럽게 했냐하면, 취향의 영역 (이를테면 음악/미술 등등…)이 지금까지는 부모의 영향을 더 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나나 부인의 일부분을 닮아가고 커가는게 뿌듯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그러한 영향을 외부에서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특히나 취향의 부분까지) 앞으로는 점점 더 커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기에 그 외부의 영향력이라는게 좀더 이질적이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은 덤.

이런 부질없는 생각 해서 뭐하겠나. 결국 자녀라고 해도 내것도 아닌데… 딸내미랑 좀더 이야기 나누고 대화라도 따라가려면 결국 딸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도 들으면서 같이 막춤도 쳐주는 수 밖에.

미국과 한국의 가계부채

회사에 부하직원이 있다. Denzel 이라는 20대 초반의 신입사원이다. (미국남자는 군대를 안가니까…^^) 그친구가 며칠전 퇴근할 때 차가 막혀서 고생한 적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랬다고 하니 바로 자기차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차가 퍼져서 길거리에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폐차직전인 차를 몰고 다닌다. 그친구는 돈을 모아서 좋은 차를 사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 처음 와서 놀란 건, 길거리에 폐차직전인 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뒷 유리창이 깨진 상태에서 비닐로 대충 가려서 다니는 차, 부러진 백미러를 청테이프로 칭칭감아서 다니는차 등등 정말 우리기준으로는 어떻게 저러고 다닐까 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차없이 버스/지하철을 이용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뉴욕/LA 같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미국에서 차가 없이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달만 살아봐도 가족 수만큼 차를 굴려야하는 미국 삶을 이해하게 된다.

차뿐만 아니라 대학을 갈 때는 대학 학자금이 필요하고,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집을 사게 되었을 때 모기지까지 빚을 지게 된다. 딱히 낭비를 해서라기 보다는 젊은 시절에는 가진 게 몸뚱이 밖에 없고 수입이 작은데 생활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빚을 지게 되고 결국 이 빚을 갚다가 끝나게 되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미시경제학에서도 연구되어진 토픽인데, 1950년대 모딜리아니 교수는 Life cycle income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관련 도표는 아래와 같다. 쉽게 말하면 지출은 어느정도 일정한데 수입이 못따라 주기 때문에 30대까지는 빚을 지고 산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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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연구는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막연하게 다르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우리나라 사례에 대한 통계자료를 KDI에서 발표하였기에 공유해 본다. 다른 각도에서 본 데이타들이 더 있는데 흥미 있는 분들은 원문을 보시기 바란다.

재인용: 채훈아빠 블로그 (가계 부채의 연령별 구성변화)

원출처: KDI 현안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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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데이타를 보면 미국의 경우 life cycle hypothesis가 상당수 맞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 차트에서 미국은 20/30대는 소득대비 부채가 높다가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부채비율이 작아진다. 한국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나이가 들수록 부채의 비율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딱히 통계자료나 연구자료를 본적은 없다. 그래서 미국/한국에서 다 살아본 내 경험을 토대로 몇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딱히 연구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머리속에서 나온 생각이기에 누가 반론들어오면 할 말은 없다. 근거자료나 인사이트가 더 있으신 분 있으면 알려주시라.

첫번째 가설 – 노년층은 부동산은 사두면 득이된다는 전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분들은 10%씩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를 지내온 세대이고 부동산 불패 신화를 여전히 믿는 분들이시기에 그러하다. 그분들에게는 빚을 지고 무리를 해서라도 자산을 늘리는 것이 체득된 재테크 지혜이다.

두번째 가설 – 20/30대의 빚을 50/60대가 감당하고 있다. 지금의 50/60대는 부모님이 소팔아서 공부를 시키신 은혜를 경험한 세대이다. 당연히 자식의 학자금/전세자금/혼수는 부모의 부담이다. 그러나 이분들이라고 몇억씩하는 전세금/학자금을 땅을 파서 만들어 내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주택담보 대출로 대학등록금/결혼자금을 마련해 주셨을 것이다.

세번째 가설 –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가 젊은 층의 주택 구입 부담을 줄여주었다.

사실 전세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 미국에서 피같은 렌트비를 몇년정도 날리면서 살다보니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린 게 전세라는게 상당히 세입자에게 유리한 특이한 제도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을 사거나 월세를 사는 선택을 해야한다. 그러다보니 안정된 중산층에 들어갔는가 하는 기준이 자기 명의의 집이 있는가? 월세를 사는가가 기준이 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자기 이름으로 집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빚이다. 모기지라는 상품이 20~30년의 장기 대출이기 때문에 복리로 집값을 갚다보면 이자가 원금보다 커지게 된다. 요즘은 이율이 4% 조금 못되는데, 계산해 봤더니 30년 복리면 원금의 90% 가까이 이자를 지불한다. 3억짜리 집을 샀다면 5~6억을 지불하는 셈이다. 저금리 시대인 요즘도 그러한데 예전에는 돈벌어서 은행에 다 갖다 바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을 듯.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세가 있어서 다르다. 어디선가 전세는 본질적으로 사금융이다라고 말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데, 쉽게 말하면 세입자는 집주인한테 돈을 빌려주고 그 대신 그만큼의 렌트비를 안내는 구조이다. 작은 자본으로 사금융의 채권자가 되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노력하면 집장만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외국에 비해서 쉽게??) 전세금에 대한 은행이자는 월세보다 훨씬 싸고, 전세금을 전액 상환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전세가 세입자에게 유리하다. 이걸 왜 사금융이라고 하냐하면, 전세금 규모의 돈을 생전 처음 보는 집주인에게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행위가 전세제도가 아니고서는 도대체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세입자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다르다. 적은돈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누려서 집을 사는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세제도가 없다면 외국이라면, 은행에서 대출을 해서 집을 구입해야하는데, 은행이 아닌 개인간의 거래(전세금)로 돈을 조달하기 때문에 렌트비라는 기회비용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금융이기 때문에 은행보다 높은 이자비용이 든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세입자 입장만 경험했다. 집주인은 투자 수단으로 전세를 놓지만, 마치 시세에 비해 싸게 해주면 선심을 쓰는 양. 비싸게 올리면 시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양 행동한다. 누가 누구한테 선심을 쓰는 건 아닌 금융거래(?)인데, 마치 채무자가 갑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구조이다. 누군가는 전세제도로 이득도 얻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으니 (부작용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이정도로 마무리…)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제도 인 것이다.

이 특이한 구조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옛날에는 부동산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말하는 사람있을 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00년대 만해도 주택청약으로 집사고, 전세끼고 집사고 해서 꾸준히 모으라는 재테크 조언을 여러 어른들한테 들었었다.

우리나라 상황도 많이 바뀌고 있다. 집값은 예전처럼 오르지 않는 것 같고, 한국 계신 분들하고 이야기 해보니 전세비를 2년만에 몇천을 올려줘야 해서 이사를 갔다는 분들도 많다. 전세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아주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는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20대는 학자금 대출때문에 아우성이니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빚갚다가 끝나는 사회가 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아울러서 하나 우려스러운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개인금융은 대부분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갚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게 집값이 무작정 올랐던 시절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수입이 없는 노년 세대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기본적으로 이자와 원금을 같이 갚는 구조이다. (명세서를 보면 principal and interest라고 나온다.) 또 다른 차이는 우리나라는 대부분 대출이 주택담보 대출로 퉁쳐서 빌려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집을 살 때 발생하는 mortgage loan과 집을 담보로 창업을 하거나 결혼자금을 사용하는 경우는 home equity loan으로 구분하여 빌려주고 home equity loan의 경우는 더 리스키 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자가 높다. 우리나라는 일회적인 소비에 대해서 대출이 쉽다보니 더 위험해 보인다.

이런 이야기는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고 할 이야기도 많긴 한데, 그냥 이정도로 마무리 지어야 겠다. 나야 평범하게 그냥 미국 살면서 어떻게 하면 렌트비를 줄일까 궁리하는 1인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자료도 찾아보고 관심은 많지만 딱히 답은 없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빚도 안지고 내 미래도 저당잡히지 않나 고민은 많지만, 처자식 먹여살리는데에 도망갈 구멍이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별 욕심없이 최대한 빚 적게 지고 아끼면서 사는게 답인 것 같기도 하구…

딸내미한테 한수 배우다

서비스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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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동네 한인 마트에 갔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딸아이는 화장실이 급했고, 아내와 같이 화장실에 다녀왔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아내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하는 말이 “여긴 참 화장실 관리가 엉망이야.” 맞장구를 치느라 나도 보탰다. “남자 화장실도 그렇던데. 이 마트 수준도 알만하네. 여기 식료품을 어떻게 믿고 사겠어. 담엔 웬만하면 다른 마트 가야겠다.”

장을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딸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아빠, 그런 이야기는 사람들 있는데서 하지마. 혹시라도 마트 사람이 들었으면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어?” “그래, 맞다. 다음부턴 조심 할께.”

일곱살 딸아이에게 한수 배웠다.

기사도와 여인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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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Medieval Times라는 디너쇼를 보았다. 중세시대 기사들의 마상시합 토너먼트를 재현하는 쇼이다. 음식도 기대보다 괜찮았고, 서커스를 방불케하는 마상묘기와 칼싸움 재현이 볼만했다. 아이들도 좋아했고 나도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토너먼트에는 여섯명의 기사가 등장한다. 극장에 입장할 때 각기 응원할 기사를 알려주고 자리를 정해준다. 우리 일행은 Black & White Knight 을 응원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토너먼트가 시작하기 전, 식사와 잠깐의 여흥이 제공되었다. 식사가 마무리 되고 분위기가 정돈될 무렵, 드디어 우리의 기사님이 등장한다.

이탈리아계인 우리의 기사. 투구를 벗자 갈색 곱슬머리가 턱까지 흘러 내린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과 건장한 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기가 보는이를 흥겹게 한다. 그는 관객을 향해 윙크를 살짝 날려주신다. 말을 타고 달리다가 우리 진영을 지날 때면 창을 높이 올려 호응을 유도한다.

무릇 기사라면 아리따운 공주와 그녀의 응원을 빼놓을 수 없는 법. 우리의 Black and White Knight은 카네이션을 자기의 여인내들에게 던져준다. 그의 승리를 응원하던 여섯살 우리 딸. 기사가 던진 꽃이 날라와 이마에 맞자 진심으로 감격한다. 그 순간부터 꽃은 아이의 소중한 보물이 된다. 꽃을 작은 두손으로 꼭 쥐고 승리를 응원한다.

고등학교 시절 운동회가 생각 났다. 나는 남녀공학을 다녔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하는 10대 후반. 운동회는 남자들에게 수컷다움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장이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계주. 달리기 좀 한다 싶은 친구들은 계주에서 육체적인 능력을 한껏 과시한다. 여자반을 지나칠 때 시크한 표정을 지어주며 호응을 유도하는 몇몇 수컷들. 여자아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수컷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며 축제를 만끽한다.

나는 운동에 별 소질이 없는 nerd과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종류의 축제는 항상 어색하다. 축제의 현장에서 조금은 쿨한척 한발짝 떨어져 있는게 주로 나의 전략이다. 우수한 수컷들 사이에서 들러리로 서는 것은 100%로 지는 게임이다.

그날 나는 딸아이와 함께 그녀의 기사님을 응원했다. 쇼가 시작할 때, 연회를 주관하는 왕과 공주는 기사도(chivalry)를 외쳤다. 쇼를 마치고서 깨달았다. 마상시합토너먼트의 처음이자 끝은 chivalry라는 것을… 나는 다른 관객들과 함께 chivalry를 반복해서 외쳤다. 고등학교 운동회에서도,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서도, 축구경기를 관람하면서도 못 느껴본 그것을 그날 느꼈다. 딸아이와 함께 있기에 감정이입이 가능했던 것일까?

공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돈키호테의 기사도는 밖에서 지켜볼 때는 웃음의 소재일 뿐이지다. 그러나 그 세계를 안에서 체험하면 피와 땀이 흐르는 진지한 가치가 있는 세계이다. 그것은 굳이 밖에 서서 쿨한척 코웃음을 치고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숭고함이다.

허무하게도 그날 우리의 Black & White Knight은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바로 탈락했다. 크게 낙담한 우리 딸아이를 달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이제 집에 가서 나를 달래기 위해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꺼내야 겠다. 지금은 그 책에 도전해 볼 준비가 된 듯싶다.

기름값이 갤런당 $2.99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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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r)

기름값이 내가 미국에 온지 4년만에 처음으로 갤런당 2.99불까지 떨어졌다. 대충 한국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리터당 830원 정도이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요새 한국도 1600대로 내려갔다고 한다. 미국 기름값이 한국의 대략 60~80%가격이니 얼추 맞는 듯.

미국 셰일오일로 인한 공급증가, 중국 성장세 완화로 인한 수요 감소, 미국경제 활황으로 인한 달러강세가 원인이란다. 경제학시간에 배우기로 공급이 비탄력적인 시장의 대표적인 예가 원유시장이었는데, 이제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듯.

원유값이 치솟을 때는 석유의존병 때문에 세계가 망할 것 같더니, 요새는 원유값 급락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너무 세상일에 호들갑일 필요는 없겠구나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자들의 전망은 (물리학의 법칙과 달리) 사람들이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세상은 되먹임(feedback)효과가 아주 크게 작용하는 세상이다.

또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인류가 생존력이 강하구나 싶고, 그래서 최소한 내 자식때까지는 인류가 멸망할 일이 없겠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의 잡담 (회사 gym에서 / 영어 프리젠테이션)

첫번째 잡담

회사에서 운영하는 gym이 있는데, 한달에 25불이다. 거의 거저인 샘이다. 게다가 매일아침 커피와 과일이 공짜로 제공되어 커피만 가져다 마셔도 본전은 한다.

공짜 커피가 아주 인기가 있지만, 매일 운동은 안하고 커피만 가져가는 사람들을 양산한다는 것은 함정. 나두 실은 그 무리들 중에 하나다. 그래두 양심은 있어서 살금살금 가져가는데… 문제는 여기 관리하는 흑형아저씨가 내 얼굴을 안다는 것. 저 멀리서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What’s up!’ 하는데 심히 쪽팔리다. 그래도 내놓은 돈 때문에 꿋꿋하게 가져간다는…

나는야 딸아이한테 잔소리 들으면서 꿋꿋이 운동 안하는 배나온 미국아자씨.

두번째 잡담

누가 그런 말을 했다. 하고 싶은 일 한가지를 하려면 하기 싫은 일 아홉가지를 해야한다구.

나는 먹고 살려고 하기 싫은 거 몇가지를 하고 살아야한다. 하나는 영어고 하나는 프리젠테이션. 최악의 콤비는 영어 프리젠테이션.

학교 다닐 때, 미국애들 앞에서 발표하는게 싫어서 발표있는 수업은 피해다녔는데 지금은 마케팅부서에서 말로 먹고 산다. 이번주 프리젠테이션이 있는데, 보스한테서 constructive feedback 작렬. 미국인 답지않은 솔직한 피드백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아주 쓰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게으른 종자라는 것을 아시고 항상 발가벗겨서 정신 바짝 차리게 하시는 듯.

영어랑 프리젠테이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ㅠㅠ

미국의 중산층 그리고 맞벌이 부부의 삶

같은 부서에 일하는 분들 중에 세사람이 최근에 집을 샀다. 미국에서 집을 사면 대부분 모기지 론을 하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모기지는 집값의 20%를 본인 돈으로 지불하고 남은 금액을 20 – 30년에 걸쳐 갚아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한때 모기지 이자가 3% 이하로 떨어진 적이 있지만 지금은 테이퍼링으로 4%를 넘어가는 상황이다. 애틀란타가 미국의 다른 대도시에 비교해서 집값이 싼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형편이 되는 만큼 지출은 늘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역시나 대부분은 평생을 빚을 갚아가며 살게 된다.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기본적인 지출은 항상 그 규모에 맞춰 정해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기지, 자동차 할부, 보험료, 보육비, 식비 등 기본적인 지출을 하고 나면 그다지 남는게 없는 삶을 산다. 대부분 사람들은 저축을 하지 못한다.

미국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낭비하고 절약할 줄 모른다는 것으로 악명높다. 일정부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주위의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렇게 많이 낭비하거나 흥청망청 쓰고 산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주로 만나는 미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학사나 석사를 마친 회사에 다니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중산층 정도의 사람들이다. 아마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나 전문직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른 상황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내가 경험한 기준으로 미국 사람이라고 사는게 그다지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중산층 미국인의 주된 지출은 아무래도 모기지다. 그들이 집을 살 때 고려하는 것은 학군과 안전이다. 학군은 미국에서도 몹시 중요한데, 좋은 학교가 있는 지역은 집값이 비싸다. 또 지역에 따라 범죄율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총기 소유가 합법적인 미국에서 안전한 지역에 사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학군을 생각해서, 안전을 따져서 집을 사다보면 결국 비싼 집을 무리해서 빚을 지고 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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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 눈에 들어온 책 중에 하나는 “the Two-Income Trap”이라는 책이다. 한국에는 ‘맞벌이의 함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미국의 중산층의 현실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엘리자베스 워렌이라는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출신이다. 파산법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관계로 이 책에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파산의 실례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이렇다. 오늘날 맞벌이 가정은 과거 미국의 single income 가정보다 더 많이 번다. 그러나 그들은 늘어난 신용을 바탕으로 좋은 학군과 안전한 지역의 집을 사게 되었고 이는 집갑의 상승을 가져오고 미국 공교육의 실패와 맞물려서 결과적으로 중산층을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맞벌이의 소득에 맞추어 고정지출을 늘였던 많은 중산층들은 실직을 맞게되면 그 규모를 감당할 수 없어서 파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해고가 자유롭고 의료보험의 부담이 큰 미국에서 이러한 위협은 아주 실제적이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경제학이나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시야가 개인의 사례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위협이 실제적이라는 점에서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는 최근 뜨는 민주당 정치인 중에 하나이다. 최근 힐러리가 주춤하는 사이 그를 대신할 여성 대권주자 중에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정치 신인이었던 그녀는 2008년 미국 신용위기 때 소비자 금융보호 단체(U.S. 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를 창설했고, 월가에 실날한 비판을 해서 저격수로 이름을 얻었다. 2012년 공화당 지역이었던 펜실베니아 주에 상원의원으로 출마해서 승리해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말을 직설적으로 논리적으로 잘하는데, 여자라는 점, 그리고 중산층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그 인기가 플러스가 되는 것 같다.

필라델피아 여행 중에

Initially posted on facebook on Aug/18/2014

필라델피아에 있으면서 예전에 봤던 기사 생각이 났다. (기사제목: 빗자루 하나로 절망을 쓸어내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 IVF간사 출신이신 이태후 목사님의 이야기다. 이 기사가 3년 전인데 아직도 North Philly에 사시는 지 모르겠다.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이웃과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는 항상 감동이 있다.

나는 이태후 목사님은 알지는 못하고 기사 하나 읽은게 전부이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 기사로 볼 때 그는 본인이 믿는 선교철학을 삶으로 보여주려고 뛰어든 분으로 보인다.

미국에 와서 딸가진 아빠로서 치안/안전은 항상 중요한 관심사다. 미국이 무법천지에 항상 총소리를 듣는 나라는 아니다. 단, 우범지대는 사전에 알고 있는 것이 좋고 그런 동네는 얼씬도 하지 않는 정도, 밤거리를 쏘다니지 않는 정도 (지역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는 필요하다.

2004년인가? 그때 처음와보고 필리는 10년만에 다시 왔다. 대학생이던 당시 사촌형 집에 머물면서, 자유의 종과 프랭클린 저택을 둘러봤던 생각이 난다.

잠깐 미국의 수도였던 역사의 도시 필리에서 가족들과 한때를 보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일본의 의리, 한국의 정, 그리고 미국인의 인간관계

‘미국인은 문서로, 일본인은 의리로, 한국인은 정으로 계약을 맺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을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화와칼

원래 의리라는 말은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자로는 義理라고 쓰고 일본사람들은 /Giri/라고 발음한다. 미국인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이 의리를 일본 특유의 민족성으로 보았다. 그는 <국화와 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이나 유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닐뿐더러 동양의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범주로서, 의리를 고려하지 않으면 일본인의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리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그래서 인지 일본인들은 은혜를 갚는(報恩) 이야기에 항상 깊은 감동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떤면에서 이 의리라는 것은 상당히 폭력적인 행동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지만 그 사람의 적인 상대에게는 무자비하다. 일본인들은 개개인으로는 참 좋은 사람들이지만 집단으로는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일본 회사와 비즈니스를 할 때도 의리라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한국 회사를 다닐 때 일이었다. 회사가 추진하는 사업중에 하나가 일본 한 회사의 특허권과 연결되어 분쟁이 될 뻔한 적이 있었다. 연구 단계부터 회사는 특허 관련 법을 사전에 검토를 했었고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사업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해당 일본회사가 그 일을 알게되었고, 그 일본 회사는 사전에 자기 회사에 양해를 구하지 않은 우리 회사의 태도에 분노했다. 그들은 한국 회사가 신의를 저버린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대부분의 사업 결정은 이해득실이나 계약관계보다도 신의를 지키느냐가 우선된다. 당시 나는 원가 담당자였기 때문에 해당 일본 회사에서 만드는 재료를 계속 사용할 경우와 아닌 경우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었다. 그래서 비교적 생생히 기억하는 편이다. 당시 회사는 국제법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향후 비즈니스를 생각해서 상당한 금액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선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었다.

서양에는 의리라는 개념이 없다. 일본의 무협영화나 만화들은 사나이들끼리의 의리가 주제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소재는 서양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형제애(brotherhood)나 동료애(companionship) 같은 소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의리와는 다르다. 위키피디아에서 Giri를 검색해보면 duty / obligation / burden of obligation으로 번역되어 있다. 딱히 와닿지는 않는다. 번역할 만한 적당한 단어가 없는 것 이다. 일본적인 개념의 의리는 조직사회의 관계보다는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를 나타낸다. 사무라이와 주군(다이묘)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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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의리라는 말이 큰 유행을 했다. 김보성의 의리 광고와 홍명보의 의리 축구는 올해 최고로 화끈한 topic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말하는 의리는 일본의 의리와 많이 다르다. 우리가 말하는 의리는 어찌보면 ‘정(情)’에 가깝다. 의리를 말할 때 우리는 친구 간에 끈끈함을 떠올린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도 소주 한잔 마시거나 (남자들의 경우), 시어머니 흉을 보고 나면 (여자들의 경우) 다음날 부터는 바로 절친이 되어 속마음까지 다 보여준다. 이런 풍경은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cold-shoulder

일본 사람도 우리 기준으로 차갑지만 미국 사람은 더하다. 예를 들어 미국 회사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오늘 무슨일을 잘해주었다고 하자. 그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하겠지만 그게 전부다. 다음날 만났을 때 그 사람은 나에게 더 친하게 굴지 않는다. 같이 운동하거나 술을 마신 이후에도 이것은 마찮가지 이다.

반대로 내가 잘못을 한 경우도 그렇다. 한번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다음날 그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실수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또 그 실수를 통해서 내가 무능하다거나 불성실하다는 판단이 들지 않는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별로 의미가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실수에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계산적으로 이루어 질 때가 많다. 미국 사람들은 필요가 없으면 굳이 관계를 맺지도 않고 친분도 생기지 않는다.

미국사람들은 낯선사람과 친구의 차이가 크지 않다. 전혀 처음보는 사람도 절친처럼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그 다음날 언제그랬냐는 듯이 차갑다. 물론 그들도 정말 친한 친구와 덜친한 친구들이 있지만, 친한 친구가 우리나라의 죽마고우 같은 정도로 가까운 느낌은 없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낯선사람에게는 한없이 차갑다. 그렇지만 일단 친구의 범주에 들어가면 한없이 가까워진다. 정말 끈끈한 민족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은 일종의 큰 규모의 가족 같은 관계이다. 그래서 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안면만 트게 되면 바로 ‘오빠’/’동생’/’삼촌’/’이모’ 이다. 그리고 조금만 친해지면 참견을 못해서 안달이다. ‘왜 결혼을 안하냐?’ ‘살은 언제 뺄꺼냐?’ ‘애기는 안가지냐?’ ‘둘째는 안났냐?’ 외국 사람이 들으면 불쾌할 것 같은 참견을 서슴없이 우리끼리는 하고 산다.

[1]우리가 남이가 로고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는 회사나 사회, 국가도 이렇게 일종의 가족같이 여기지 않나 싶다. 누군가 밤늦게 고생해서 야근하면 딱히 내가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같이 남아서 커피라도 한잔 타주는 게 우리 식의 ‘정’이다. 처음 미국 회사에서 일 시작했을 때, 보스가 야근을 해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아직 업무가 익숙치 않아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미안해서 남아 있었다. 보스는 어이없어 하면서 니가 왜 여기 남아있는가 묻는다. 우리나라도 예전 같지 않아서 점점 덜해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정’으로 묶여있다. 서로 엮여 사는게 지긋지긋 하다고 말로는 그러지만 그놈의 ‘정’ 때문에 매몰차게 뒤돌아 서지 못한다.

이렇게 보니 딱히 어떤게 좋다/나쁘다 말할 성질의 것은 없는 것 같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는 싫다. 좋은것만 골라서 가졌으면 좋겠으나 ‘좋고 나쁨’은 동전의 양면 같이 하나로 붙어있다. 미국에 살다보면 한없이 차가운 미국사람에 정떨어지다가도 이것저것 남의 신경 쓰지 않고 사는 세상이 편하기도 하다. 그래도 누구든 자신한테 익숙한게 좋은 법이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 사는 게 제일로 좋다.

에머슨의 에세이집을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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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alph Waldo Emerson, 1803 ~ 1882)

“To believe your own thought, to believe that what is true for you in your private heart is true for all men, – that is genius.”
“Society never advances. It recedes as fast on one side as it gains on the other. It undergoes continual changes; it is barbarous, it is civilized, it is Christianized, it is rich, it is scientific; but this change is not amelioration.”

from ‘Self-Reliance’ Ralph Waldo Emerson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곧,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진실이 된다. 이것이 재능이다.”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다른 한 편에서 하나를 얻으면 그만큼 빨리 무언가는 퇴보한다.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야만적이었다가, 문명화되었다가, 종교적이었다가, 과학적인 세상이 된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중, 랄프 왈도 에머슨

– 최근에 에머슨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에머슨의 사상이 왜 미국의 정신이라고 불리우는지 조금 알것 같다. 우리나라 대다수 학자들은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이기주의(egoism) 정도로 소개하고 있으나, 실제로 개인의 가치와 잠재력을 신뢰하는 개인주의가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 에머슨은 19세기에 개인주의(individualism)이라는 말이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 ‘self-reliance’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나는 진보라는 말(또는 진보세력이라는 이름)에 동의하지 않는데 진보(progress)라는 말은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지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에머슨과 초월주의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을 정리해서 한번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초창기 역사/사상/문학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돌아보는 것은 21세기에도 나름 의미가 있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있음은 그들의 가치가 보편적으로 인류에 공감대를 형성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