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토론 2

제가 요새 엄청난 양의 글로 페북을 도배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정치적인 이슈가 담겨 있는 글을 포스팅할 때는 조금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후배가 저의 글에 반박하는 긴 글을 올려주었는데, 댓글로 남겨두기 아까워서 담벼락에 다시 올립니다. 후배의 글을 통해서도 제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도 되었고 배운 점도 있기에 이런 류의 포스팅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포스팅은 수정없이 원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후배의 글)

제가 아는 박노자씨의 평가는 조금 다릅니다. 링크는 ‘영화화 한다면 적당한 인물’ 추천이라 단편적 발췌로 박노자씨의 호의를 추측하기는 힘듭니다. 저는 사실 박노자씨를 통해 윤치호라는 인물을 더 알게 된 사람인데요, 아시다시피 박노자씨의 여러 저작에 윤치호가 계속 등장합니다. 박노자씨의 의견은 ‘윤치호는 이런식(물지 못할거면 짖지도 마라)으로 식민당국에 대한 자신의 무비판, 협력을 스스로 합리화했다’ 입니다. 이건 찾아보시면 금방 나오는것이기도 하고 박노자교수님께 직접 물어보셔도 됩니다.(vladimir.tikhonov@ikos.uio.no 엄청 바쁘실텐데 대답을 무쟈게 잘해주신다는..)

– 그당시에는 어쩔수 없었다거나, 그 상황에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말은 정당화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시대적 상황인식도 해석이 가미되지 않은 현실인식은 없고, 그 인식범위의 넓고 좁음은 있겠지만 어떤 인식이 정답인가도 있을수 없지요. 자신의 그릇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은 그래서 의미없는 말입니다. 그것이 행위의 정당성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도 최선을 다해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범죄인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식민지시대에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윤치호가 해야 할 선택은, 그 합리성이 아니라 그 정당성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적어도 재평가가 시도되는 지금 이시점 대한민국은 표면적으로나마 독립국이니까요. 물론 실제로 독립을 이루었느냐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합니다.(내적 독립까지 이루어졌다면 이런 재평가가 이슈화될리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 조봉암선생의 배경 언급하신 부분은 조봉암 선생이 남긴 글들로도 반박이 가능할것 같기는 한데, 아예 다른 예로도 쉽게 반박이 될 것 같습니다. 윤치호와 동시대의 인물로 우당 이회영선생 및 그 형제들이 있습니다. 희대의 천재 입장에서는 비이성적인 선택을 한 ‘우매한 민중’일 뿐이겠습니다만,(실제로 윤치호가 대중을 보는 시선은 이랬습니다. 사회진화론자인데다 racist였죠.) 흔한 친일파들의 변명인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는 사실 좀 옹색합니다.

– 윤치호라는 인물이 변절만 하지 않았어도 아마 A급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남겼으리라는 사실은 아마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겁니다. 그런데 이 변절이라는게, 주로 지식인들이 자행하는 – 그리고 자신들의 지식으로 열심히 합리화하기 바쁜 이 변절이라는게, 종합적 평가를 뒤집을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변절을 할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윤치호가 했던건 독립운동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正義에 입각한 최선의 합리적 선택이 아니었나 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특성이죠.

무의미한 논쟁같아서 최대한 짧게 지엽적인것만 적으려고 했는데 써놓고 보니 길고 모호하게 적혀있네요 여튼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는 집권층의 구성이나, 건국인지 독립인지 모를 그시점에 나라를 조직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史觀등이 대한민국을 지금까지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걸 과연 수정할 수 있으려나 회의를 가지고 있고) 그 바탕에는 역사적인 불확실성에 의해 여지없이 짓밟히곤 했던 합리성이라는 허상이 있으며, 그 합리성을 평가하는 방법은 논리가 아니고 정의와 불의의 구분이라고 믿고 있고요. 쓰다보니 제가 생각하는 정치의 본질을 적어놨네요.

(제 답글)
성의 있는 답변 감사합니다. 박노자씨의 윤치호에 대한 제가 아는 평은 위의 두 링크가 다입니다. 후배님께서 더 관심있께 찾아보신 것 같아 제가 잘못생각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제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존댓말로 댓글을 시작했습니다. 언어의 정치성 때문에 반말이 되면 형으로서 하는 훈계가 될 것 같은 부분을 염려에서였죠.

인물을 평가하는 시각 차이는 아마도 후배님과 저의 관점이 달라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상당히도 그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편인 사람이고 진리라는 것이 여러 사람에 관점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믿는 편이거든요. 나쁜짓 해놓고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논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껄끄럽게 하는 관점이긴 합니다만…

지금 회사에서 일하는 중인지라 찬찬히 생각해볼 시간은 없는데요. 집에가서 시간내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관련글 링크:

윤치호 토론

조선근대사 인물 – 윤치호와 서재필

윤치호 토론

Originally posted 06/16 @ facebook

일전에 윤치호에 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주신 분이 있어 댓글을 달다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졌네요. 담벼락에 다시 올립니다. 약간 수정했고, 언제나 그렇지만 비판이나 토론 환영합니다.

의견: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저는 ‘현실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죽산 조봉암선생의 어록중에 이런게 있습니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 하고서는 안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있을법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역사에 너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것 같아서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사람’을 판별할 마땅한 기준은 있을 수가 없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박노자씨가 윤치호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근거는 뭔가요. 박노자씨가 윤치호씨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건 대강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사상에 우호적이기도 한가요. 뭔가 안어울려서요.

답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박노자씨의 윤치호에 대한 평을 링크 걸어둡니다.

http://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0753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4174

첫번째 글은 프레시안에 연재된 글인데 영어천재 윤치호의 면모가 자세히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좀 길지만 읽어볼만 합니다. 두번째 글은 씨네 21에 실은 짧은 평인데 간단히 요약되어 있어서 보기 편합니다.

두 링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박노자는 윤치호를 최초의 ‘세계인’으로 평가하면서 그로 인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런 모습 때문에 비난할 수 만은 없다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저는 역사적인 인물을 볼때 그사람의 시대적인 배경과 상황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치호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전세계가 가장 미쳐돌아가던 시기의 인물입니다. 2번의 세계대전이 있었고 약육강식과 폭력이 극에 달했을 때 살았던 인물입니다. 폭력의 시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힘없는 나라중에 하나인 우리나라에 태어난 지식인이었죠. 우리는 그가 일기를 꾸준히 썼기에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데, 초반 20대 때의 청년스러움이 세상의 폭력앞에 고통받고 변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의 잘못까지 부정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가 대지주였던 자신의 계급적인 이익을 위해 친일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시대의 무거움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큰 것을 요구하는지… 또 개인은 그 짐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혼란스러워 하고 고통받는 그의 이러한 고뇌하는 모습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뿐입니다.

이건 개인적인 견해인데, 미국사람들과 살면서 느낀건 서양 사람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체면을 생각해서 못 그럴텐데 이 친구들은 필요가 있는 사람한테는 철저하게 잘하죠. 이해관계가 없으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이 공공연히 행해졌던 당시 미국의 상황을 보건데, 윤치호는 아시아의 이름없는 나라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겠지요. 당시 미국인들은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비하했습니다. 일본보다 더 힘이 없었던 한국인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을 겁니다.

외교세계는 냉철합니다. 겉으로는 명분과 논리를 내세우지만 국가적 이익이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금에야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이나 3.1운동으로 약자의 부르짖음이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당시 국제관계는 지금보다 더욱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상황이었죠. (참고로 간디는 윤치호 보다 4살 아래입니다.)

윤치호는 3.1운동 당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우리나라의 독립하고 연관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일본이 미국의 적국으로 돌아서지 않는한 미국은 우리나라 독립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족 자결주의에 고무되어 있던 지식인 계층과 반대되는 현실주의적인 판단이었죠. 윤치호는 3.1운동의 대표로 서명할 것을 요청받지만 3.1 운동이 우리나라에 독립을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참여를 거절합니다. 윤치호의 좌우명이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라는 것은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 윤치호도 일기에 3.1 운동이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을 변화시켰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언급하신 조봉암 선생은 윤치호보다 34살이 어립니다. 3.1운동과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힘을 보고 자란 세대이죠. 박세리의 성공이 여자골프계에 자신감을 가져왔듯이 그는 독립운동의 가치를 목격한 세대예요.

글을 쓰다보니 제가 왜 이렇게 핏대 세우며 윤치호를 쉴드 처주는지 모르겠네요. 윤치호가 불운하다고 말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친일파 윤치호 후손은 지금도 잘살고 있습니다. 원래도 명문가이기도 했고요. 이를 테면 장남 윤영선은 50년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숙부 윤영렬의 손자가 바로 윤보선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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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근대사 인물 – 윤치호와 서재필

영어공부 또는 뭉뚱그려 공부에 대한 이야기…4 대화상대

우리 어머니는 경상도 출신이시다. 평소에 대화할 때 조금 사투리가 섟여 있지만, 그렇게 티가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고향분들하고 전화할 때는 완전히 경상도 분이 되신다. 어찌나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지 들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 와이프는 교포티가 별로 안나는 편이다. 한국말 능숙해서 스위스에 있을 때 거기 계신 분들이 마눌님이 토종이고 내가 교포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이건 내가 말을 좀 어눌하게 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다…ㅎㅎ 우리 아내가 처남하고 이야기 할 때는 영어로 이야기 하는데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처음에는 좀 적응이 안됐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자체이다. 사투리를 다른 언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큰 범주에서 보면 언어의 한 갈래이다. 라틴어에서 출발한 서양언어가 영어/불어/스페인어 등으로 갈라진 것도 처음에는 사투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도구적인 측면을 떠나서 문화를 배우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한 언어를 배울 때 그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친분을 가지는게 필요하다. 스위스에 있을 때 만난 한국분들중에 스위스 사람과 결혼해서 오래 외국생활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은 한국어가 모국어임에도 한국어가 어눌하더라. 다른 예로 우리 마눌님은 어릴때 배운 독일어를 아직까지 잊어버리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어릴적 독일 친구랑 아직도 독일어로 교제를 나누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영어를 배울 때도 native와 영어로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나 speaking은 더욱 그렇다. 문법과 문장만들기가 어느정도 되는 분들도 처음 미국인과 대화하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데 한국사람을 처음 접하는 미국인들은 콩글리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우리가 번역체가 심한 책을 보고 머리아파지는 거랑 비슷하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사고체계가 영어식이기 때문에 말할 때 논리를 구성하는 방식이나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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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pixabay.com)

2002년 캐나다에 처음 어학연수를 갔을 때였다. 캐나다 대학생들과 친분을 쌓으려고 정말 노력 했었다. 그런데 다른 문화권 사람과 친분을 쌓는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으면 외국인이 있으면 예의상으로라도 말도 걸어주고 얼굴색이 다르면 궁금해서 쳐다보기라도 할텐데, 이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철저한 개인주의기 때문에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으면 굳이 말을 걸지도 않는다. 아시아계를 접해본 일이 별로 없는 시골지역일 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한데, 어떤때는 아시아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거 자체를 불편해 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실제 미국 대학생들 안에서도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 끼리끼리 노는데, 서부출신은 서부출신끼리, 동부는 동부끼리, mid-west는 mid-west끼리, 흑인들은 흑인들끼리, 아시아계는 아시아계끼리, 유학생들은 유학생들 끼리 이런 식이다.

처음 몇달간 캐나다에 있는 동안 나의 선생님이자 친구이자 말동무는 TV 였다… ㅎㅎ 그런데 의외로 TV는 영어공부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미취학 아동들이 티비보면서 한국말 배우는 거랑 같은 이치이다. listening에는 특히 좋은 선생님이다. 몇달의 은둔기가 지나고서 학교의 IVF를 찾아가서 캐나다 대학생들과도 교제를 시작했고 네비게이토 수련회에 따라가기도 했었다. 당시 알게되었던 한친구는 나중에 한국에 원어민교사로 오게 되었는데, 아직도 가끔 연락하고 지낸다. 어쨌든 그때 그 경험이 바탕이 되서 지금 미국에서 이렇게 살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다.

다시 영어공부 얘기로 돌아와볼까? 그럼 어떻게 native를 만나고 교제할 것인가? 솔직히 한국에만 있으면 길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정말 없으면 회화학원이라도 가야 할 것이다. 그나마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전화영어인데 해본적은 없지만 효과는 좋다고 들었다. 단, 가격 부담이 크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길이 없는데 굳이 억지로 친구를 만들 필요까지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정말 꾸준히 관계를 맺지 않으면 speaking은 금방 녹슨다. 하물며 자기 출신 지역 사투리도 몇년만 지나면 어색해지는데 그건 당연한거다. 정말 의지가 대단한 분들은 필사적으로 영어 대화상대를 만드는 분들도 봤다. 그런분들이 존경스럽긴 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영어는 관계를 맺는 수단인데, 영어를 위해서 관계를 맺는건 왠지 순서가 바뀐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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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관사/전치사 이야기

두가지 언어 사용이 만드는 번역체 말투들 – 우리집 사례

강세와 발음 – Atlanta, fantastic, coyote

My daughter, Malala

Originally posted 06/15/2014 @ facebook

Celebrating Father’s day with a story of a farther. Very moving.

오늘은 아버지날이다.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축하는 중…ㅎㅎ

파키스탄 교육자의 이야기이다. 15분짜리 강연인데 매우 touching한다. 이분 딸은 2012년 감히 여자가 학교에 간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총격을 받아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었다. 세상의 어떤 곳에서는 교육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 16살인 이분 딸은 파키스탄 여성운동의 아이콘이다. 이 이야기에 좀더 관심있는 분은 아래 link를 확인해 보시길…
http://en.wikipedia.org/wiki/Malala_Yousafzai

우리나라도 불과 100여년전 교육이 이런 의미를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윤치호가 계몽운동을 벌이던 시절…) 그렇게 오래 갈 필요도 없이 우리들 할머니 시절만 올라가도 우리나라는 파키스탄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참고로 파키스탄 액센트 때문에 따라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글 자막이 없으니 힘든 분들은 영어 자막을 켜놓을 것을 추천한다. 인도/파키스탄 계열의 액센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난이도 상 이다.

영어공부 또는 뭉뚱그려 공부에 대한 이야기…3 성취감

처음에 별생각 없이 영어공부라는 이야기를 토픽으로 잡고 연재를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참 용감했다. 페친들 중에 정말 한영어 하시는 분들이 수두룩한데다가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냥 공부 이야기를 하자니 그거야 말로 한공부한 페친들이 수두룩 하지 않은가? 너무 대단한 걸 기대하지 마시고, 나처럼 언어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고 노력을 했구나 하고 편하게 읽어주길 바란다.

성취감:

전국민에게 만연한 영어 스트레스를 한귀로 흘려듯고 살다가 어느 순간 옆을 보면 한 친구가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다. 정말 요새는 어느 모임에 가도 영어 되는 사람 꼭 한 사람씩 있다. 우리들은 무너진 마음을 앉고 원대한 목표를 품어본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입이 트이는 그날까지 가는 거야…’ 영어학원도 등록해보고 EBS 영어 교재도 사보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며칠이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해진다. 우리는 정말 의지박약인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지가 약했다기 보다는 목표가 너무 컸다. 머리 속에 있는 걸 막히지 않고 영어로 표현하는 건 미국에서 몇년을 살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생업을 가진 사회인으로 하루에 한시간이나 삼십분 이상 시간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불굴의 의지로 시간을 내어 봐도 영어 실력이 짧은 시간에 눈에 띄게 좋아지는 건 불가능하다. 목표를 세울 때는 단시간에 성취가능한 쉬운 목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요새 관심있어 하는 월드컵 소식을 영어로 찾아서 읽어본다던지 아니면 podcast로 들어 본다던지… 아니면 내가 평소에 즐겨 읽던 책을 영어로 읽어 본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본인이 의지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는 영어 자료가 정말로 널려 있다.

요새는 영화나 미드로 영어를 공부하는 게 대세인 듯 하다. 본인이 영화나 미드를 좋아하면 이것도 추천할 만한 방법이다. 단 주의할 점은 본인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막없이 보는데 도저히 못따라 가겠으면 그건 이미 수준을 넘어서는 거다. 이 수준이라는게 개인의 관심사나 토픽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미국에 오래 살다보면 영어는 안늘었는데 대화가 되거나 시트콤을 보고 웃게 되는데 이건 대화의 상황이나 문화적인 코드에 익숙해 져서 그렇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유치원생과 우리들의 관심사는 다르다. 우리딸이 가끔 그림책 읽어달라고 조르는데 쓰여 있는 단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 다음에 나오는 단어를 맞춰보라. porridge, platypus, gosling, rip, dab, plunged, blustery, burrow, grub, quail, sneak, chaperone, joey, foal, walrus, minnow, swoosh, squelch, gobble, cottage, dig, reflection, cocoon, fin, crawl, bin, hive, den, cub, seal, mole, mule, rumble, sack, cot, tadpole, pit, crate, sip (주: 단어 목록은 뉴욕의사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음…) 유치원생 그림책 빈출단어다. 미국에서 유치원을 나오지 않았는데 위의 단어 중에 대부분 맞췄으면 정말 대단한 거다. 뜻이 궁금하면 사전 직접 찾아보시길. 유치원생 영어 가르키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ㅎㅎ 그렇다고 유치원생 영어수준이 정말 대단한 걸까? 뭐 꼭 그렇지는 않다. 그냥 관심있는 주제가 다를 뿐이다. 오히려 단어 수준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어른들이 더 높다. 대신 유치원생들에게 university, law, bill, society 같은 단어를 물어보면 대답을 못할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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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media)

본인의 관심사가 신앙서적이라면 영어로 신앙서적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대학시절 신앙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나중에 헨리 나웬 책을 막히지 않고 재미있게 원서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게 일반적인 경우라고 생각을 했는데, 신앙서적을 별로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렵고 졸리기만 한 책이라고 하더라.

앞의 글에서 내가 절박함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절박함은 full-time student에게나 가능한 motivation이다. 학생은 공부가 job이기 때문에 공부를 잘할 강한 이유가 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서는 그렇지 않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헤쳐나가야 할 절박한 과제 들이 얼마나 많은데 영어공부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당장 내일까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아이가 아파서 열이 끓는데 맘편하게 공부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게 쌓이고 쌓이다보면 흐름이 끊기고 ‘내주제에 영어는 무슨…’ 이렇게 결론짓고 책장에 영어교재만 쌓이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기고 영어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성취감이다. 성취감은 우리에게 강한 동인이 되어준다. 내 마음 속에 작은 목표를 하나하나 설정해서 이뤄가는 기쁨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이때 중요한 건 앞에서도 말했지만 구체적이면서도 실천가능한 작은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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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앤 줄리아가 문득 생각나서 끄적

홀아비 먹방 포스팅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영화.

메릴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가 주연이다. 두 주인공이 여자 인데다가 여자 감독이 만들어서 그런지 섬세한 연출로 맘을 따뜻하게 했던 영화로 기억한다. 내용은 우울한 뉴요커인 줄리가 기분 전환 삼아 유명 셰프인 ‘줄리아’의 요리책에 있는 요리를 하는데, 이를 365일 동안 블로깅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 교차편집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다른 시대의 두 인물이 교감하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듣기로 프랑스 요리를 하는 셰프들에게는 ‘줄리아 차일드’는 전설적인 요리사라고 한다. 요리나 블로깅 또는 그냥 편안한 스타일의 따뜻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줄 만하다.

뻘소리: 나도 매일 요리를 해서 올려봐? ㅋㅋ 안될꺼야 아마…

공부잘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Originally posted 06/07/2014 @ facebook

이번에 제주도지사로 선출된 원희룡 관련글 링크 걸어 본다. 그냥 연예계 뒷얘기 듣는 기분으로 읽으면 재미있는 글이다. 원희룡씨가 확실히 시험공부 머리는 있는 분인 것 같다.

펌) 공부왕 원희룡 대 장하준

이번 선거때는 고변 관련 논란도 있었고 해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봤다. 내 결론은 간단하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그 성실성과 집중력으로 국민을 섬긴다면 정말 우리는 모두 공부 잘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겠지만, 그런 분들이 집중력을 일신영달에만 쓴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유독 우리나라는 공부 잘하는 사람을 우러러 보는 경향이 있다. 혹자는 그뿌리를 과거제도에서 찾기도 하지만, 그건 너무 먼 예전 얘기라 나는 잘 모르겠다. 그치만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선생님들도 공부 잘하는 사람은 노터치였고 심지어 노는 친구들도 공부 잘하는 애들은 잘 안건드렸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수석합격/ 하바드 출신 같은게 정말 잘 먹히는 사회다.

미국을 생각해보면 꼭 그런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 식으로 공부만 잘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nerd로 평가 받는 경향이 있고, 운동을 잘하거나 잘 노는 친구들이 인기가 좋다. 미국에서도 명문대와 name value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명문대는 network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것 같고, 명문대만 나왔다고 우러러 보지는 않다. 그리고 이건 정말 애매한 건데 명문대 나온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잘되는 건지 명문대 타이틀 때문에 잘되는 건지는 정말 알기 힘든 것 같다.

조금 들어가서 교육과 계급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교육은 신분 상승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지난 세기 동안 한국은 가장 극심한 사회 변동이 있었다. 농부의 아들이 고위층이 되고 명문가의 아들이 극빈층이 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흔한 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변동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교육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전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교육열의 중요한 원인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학부모/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면 성공하고 공부 못하면 실패한다고 알게모르게 겁을 준다. 물론 초등학교 학력에 돈을 많이 벌어서 부유층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분들은 졸부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은 자식들은 어떻게든 좋은 교육을 시키거나 최소한 명문대 출신 며느리/사위를 본다. 신분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 (바로 우리…T.T)은 정말 극심한 스트레스를 앉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신분 상승의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은 신분 하락도 열려있다는 말이다. 기득권이나 나이든 분들이 보수를 지지 하는 건 이치적으로 당연하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도 어쩌면 몇십년전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안정화(?)되고 있고, 잘사는 집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공부/스펙은 전국민의 스트레스다. 반면에 요즘의 10대/20대들은 부모 세대들 보다 몇배 더 노력해도 얻을 수 있는 게 더 적다. 사회가 그만큼 안정화되었고 70/80년대의 고속 성장은 이제 다시 오기 힘들어 보인다.

서울대 나왔다고 신분상승이 보장되는 것만도 아니다. 그나마 조금더 보장되는 길이라면 고시나, 전문직, 유학(?) 같은게 아닐런지… 성공을 믿고 서울공대로 진학했던 나의 과동기들. (90년대는 기술입국을 권장하였다. 고3 때 나는 ‘과학원 이야기’, ‘포항공대 이야기’ 같은 책을 읽고 감명 받았었다.) 일부는 회사 연구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뭔가 더 해보고 싶은 친구들은 고시로/의치대 대학원으로 각기 뿔뿔히 흩어졌다. 공부 머리로 한번 더 승부를 보려는 것이었을까. 나쁜 뜻은 아니다. 나 또한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 중에 하나이고,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 편향성에 대해 말하는 거다.

뱀발로 인도 친구들하고 얘기 나눈 바에 따르면 인도도 우리나라 못지 않은 교육열을 가진 나라 중에 하나이다. 인도 역시 엄청난 사회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생겨난 부로 인해 사람들의 의식은 변하고 있고 카스트제도는 도전을 받고 있다. 최근 인도는 10년만에 투표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내 인도 페친들이 관련 포스팅을 쏟아 내는 걸 보면 젊은층들은 상당히 고무되어 있는 듯하다.

유럽은 이런 면에서 정반대인 것 같다. 사회는 안정되어 있고 대부분 사람들은 교육에 열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미국은 그 중간정도 인 것 같고… 나중에 스위스/독일 체류 경험 이나 미국 유학 이야기 같은 건 또 포스팅 해보려고 한다. 이미 글이 너무 길어졌고, 자꾸 옆길로 새는 느낌이다…ㅎㅎ

영어 공부 또는 뭉뚱그려 공부에 대한 이야기…2 절박함의 효용

Originally posted 06/14/2014 @ facebook

우리나라 분들 중에서도 non-native 이면서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잘하는 사람일 수록 본인이 영어를 잘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Native 나 영어 선생님은 예외다. Native는 영어가 더 편한 친구들이고, 영어선생님은 영어로 밥먹고 사는 분인데 본인 입으로 영어 잘하는 건 아니다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미국분하고 결혼해서 사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영어가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결혼한 경우는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기 때문에 보통의 부부보다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영어가 정체되는 이유는 1편에서도 말했지만 절박함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생활 몇달하다 보면 처음에 멀게만 느껴졌던 의사소통도 시간이 지나면 눈치로 대충 통하게 되고 외국인하고 부딪칠 일을 줄이는 노하우 마저 생기게 된다. 그나마 10대~20대는 자기 몸만 챙기며 자기개발에 매진하며 살면 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경우는 생각처럼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박함을 이끌어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계속 처해 있었기 때문에 끊임 없이 노력 해야 했을 뿐이다. 그제도 회사에서 잠깐 boss하고 head to head를 했는데, 나보고 우리회사 텔레마케터와 담당 supervisor들 대상으로 마케팅 강의를 하라고 한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망신 당하지 않으려면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에 머리속에 명확하게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영어 프리젠테이션 하는게 어렵다. 자연스럽게 회의 전에는 미리 agenda와 나의 입장을 영어로 몇번씩 머리속으로 정리한 후에야 참석하는 버릇이 생겼다.

절박함을 다른 말로 바꾸면 채찍이다. 중고등학교 때 돌이켜 보면 채찍을 들어서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할 수 밖에 만드는 것도 어찌보면 선생님의 공부시키는 노하우였다. 주기적으로 쪽지시험을 본다던지, 성적표를 교실 뒤에 붙인다던지. 인격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지만 효과는 있다. 한국 사람들이 잘하는 영어공부 스타일이다. 커서도 토익이나 토플 준비용 영어를 하면 그 절박함에 그나마 공부를 하게 된다. 다른 동기부여가 없다면 이런 식으로 동기부여를 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 시험대비용 공부를 너무 박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reading이랑 listening 실력을 키우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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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 또는 뭉뚱그려 공부에 대한 이야기…3 성취감

영어공부 또는 뭉뚱그려 공부에 대한 이야기…4 대화상대

발음/관사/전치사 이야기

두가지 언어 사용이 만드는 번역체 말투들 – 우리집 사례

강세와 발음 – Atlanta, fantastic, coyote

영어 공부 또는 뭉뚱그려 공부에 대한 이야기 – 1. 절박함

Originally posted 06/13/2014

어찌하다 보니 이제 햇수로 미국에 사년째 살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마친 토종 된장남이다. 내입으로 이런 말하려니 손발이 오그러 들지만 미국회사에서 마케팅일을 하고 있고, 매일 미국 사람들과 회의/보고/프리젠테이션하고 살고 있다보니 내가 영어를 아주 못한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언어라는 게 끝이 없는 거라서 native가 아닌 이상 매번 힘들고 부족함을느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오늘의 주제는 영어 공부 또는 뭉뚱그려 크게 공부 이야기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문/이과를 선택했다. 그때 내가 이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영어는 너무 싫었고 수학은 영어보다는 만만해 보였다. 어린 생각에 이과를 가면 영어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 상황을 생각해 보면 정말 웃음밖에 안나온다. 그때 나는 영어 공부를 할 아무런 동기 부여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영어 공부 또는 뭉뚱그려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세가지가 있다. 절박함, 성취감, 그리고 몰입이다. 영어 공부는 하루이틀에 끝나는게 아닌데 꾸준함과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으면 몇달 넘게 지속하기 힘들다. Native가 아님에도 영어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앞의 세가지 요소가 공통적으로 발견 된다. 구체적인 공부 방법은 워낙 시중에 많은 책들이 있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

절박함: 공부는 원래 절박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다. 평소에 공부가 잘 안되다가 시험 직전이 되어야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경험은 누구나 다해봤을 꺼다. 글은 마감일 직전이 제일 잘써지고 레포트는 due date 전날 새벽에야 쓸 수 있다. 영어 공부도 마찮가지다. 누구나 영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그게 구체적인 위협이 아니고서야 힘든 공부를 굳이 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미국에 오면 영어는 다 잘 하게 될 꺼라는 생각이다. 물론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많지만 영어를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 언어지능이 폭발하는 시기인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미취학 아동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식으로 언어가 배워지는 건 불가능하다.

영어권 생활 경험 없이 처음 미국오면 몇달은 정말 아무것도 안들리기 때문에 앞이 깜깜해진다. 한국에서 듣는 영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는 영어지만, 미국사람들은 그렇게 안 말한다. 빨리 말하는데다가 문화적인 코드나 유머가 섟이기 때문에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은 처음에 기를 쓰고 배운다. 그것도 잠깐 몇달만 지나면 절박함이 사라진다. 정말 깡촌 아니고서야 한국말만해도 미국사는데 지장이 없다. 이민와서 30년을 미국에 살고, 유학와서 6년을 살아도 영어 안느는 사람은 정말 안는다. 반대로 절박함이 꾸준하면 motivation이 엄청나다.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학교 다니는 2년 동안 늘은 영어는 미국 회사에서 살아남고자 바둥거리면서 1년안에 늘은 거에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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