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종류의 사이렌 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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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에 따르면, 사이렌은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경찰차의 경우는 짧고 다급하게. 삐삐삐 삐요. 삐삐삐 삐요를 반복한다. 소방차는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아주 길게 지른다. 삐~~~이 뚜뚜뚜 삐~~~이. 구급차는 애닯은 목소리를 끊임없이 반복한다고. 삐뽀삐뽀.

듣고 보니 그렇다. 사이렌 소리는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다.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호기심에 가득찬 얼굴로 달려가서 귀기울여 소리를 듣더니. 그 사연을 듣고 있었나보구나 너는.

딸아이와 유치원 잡담 (한국식과 미국식??)

아이가 한국에 세달 가량 들어가 있다. 세달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한국말도 가르킬 겸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세달 등록을 받는 데가 거의 없었는데, 찾아보니 집앞에 한 곳 있었다. 한영 병용 유치원이라 좀 비쌌지만 아이를 집에 두기만 하면 심심해 할테다.

한국식과 미국식??

한달 가량 유치원에 다녔다. 아이가 몹시 즐거워 한다. 자리가 있는 반이 한살 어린 6세 반이었다. 한살 어린 동생들 사이에서 왕언니 노릇하는 게 좋은가 보다.

언제나처럼 수다스러운 아이는 매일 유치원 소식을 전해준다. 어제도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치원이 재미있어? 미국하고 뭐가 달라?” “뭐~ 재미있지. 근데 가끔 선생님이 무서울 때가 있어.” “어떻게 무서운데?” “선생님이 화나면 진짜 무서워~ 엄마보다 무섭다니까. 무서운 표정을 짓고서 말을 지~인~짜 빨리해.” “그럼 (빠른 톤을 흉내내면서) 이리 앉으세요. 그렇게 하면 안돼요. 뭐 이런식으로?” “그것 보다 더더 빨리.” “(눈을 부릅뜨고서 좀더 빠르게) 빨리 앉아요. 뭐 이렇게?” “조금 비슷하네.”

“너두 가끔 혼나?” “아니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 말을 잘 안듣더라구.” “그치만, 미국도 선생님들이 혼낼 때는 무섭잖아. Ms. Libby도 ‘Don’t do that. Sit down here.’ 뭐… 이렇게 말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선생님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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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r)

아이가 잠이 들고, 아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까 아이랑 얘기 하는 것 들었지?” “응” “내가 보기엔 한국 애들이 좀더 버릇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 어버이날 학부모 참관수업 갔을때 보니까 좋게 말해서는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더라구.” “그것도 애들 나름이지. 미국도 다루기 힘든 애들은 힘들잖아.” “그렇긴 하지만… 한국 6세반이랑 동급인 pre-K* 다니는 애들은 순진했던 것 같은데. ” “그렇긴 하네.” “미국 교육이 좀더 자립심을 키우는 방식이고, 미국 부모들이 더 엄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그건 case by case지. 으이구, 우리 자식이나 잘 키우지 별 걱정이야.”

그렇긴 하네. 별 걱정이다.

(*미국은 만 5세는 kindergarten, 만 4세는 pre-K을 다닌다. kindergarten 부터 의무교육 과정이다.)

된장 발음 영어

딸아이는 발음에 좀 민감한 편이다. 가끔 나오는 내 된장 발음이 거슬리는 지 교정해주기도 한다. 좀더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 영어 발음에 참견을 할 때도 있었다. 발음 교정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가족 말고는 하지 말라고 아이에게 가르쳤다. 다행히 지금은 남의 발음을 교정 하려 들지 않는다.

아이 유치원이 한영 병용 유치원이라, 한국 선생님도 영어를 쓴다. (원어민 선생님도 따로 있긴 하다.) 그런데 아이가 한국 선생님의 영어 발음이 거슬렸나보다. 슬쩍 선생님에게 가서 자기한테는 영어를 안써도 된다고 했단다. 선생님 입장에서, 영어권에서 온 딸아이가 호응을 잘 해주어야 영어수업하기가 수월할 텐데, 오히려 딸아이는 한국어 쓰기를 더 좋아하니 그것도 문제이긴 하다.

+ 덧: 지난 주에 써둔 글을 정리해서 오늘 포스팅했음.

맥도날드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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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딸아이의 생일

아이의 생일 파티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다. 올해는 한국에서 생일을 치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주 못보는 손녀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좋은 장소에서 해보려고 한다. 어버이날 식사를 겸해서 아마 부페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한국은 부페가 워낙 비싸서 부담스럽긴 하다.

아이가 옆에서 듣고 있더니 뾰루퉁 하다. 못마땅한 표정을 모른 척 넘어가기 힘들어 이유를 물어보았다. ‘내 생일 파티인데 내가 장소를 골라야지!’ 그래서 대체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어보았더니, 가고 싶은 곳이 맥도날드란다. 딸아이 답다. 생일 때 말고 언제 한번 데려가기로 했다. 하긴 외식이 흔하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 나도 생일 파티를 버거집에서 하고 싶었다.

아이는 맥도날드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의 식습관을 생각해서 특별한 날만 가는 곳으로 정해놨다. 그래서인지, 외식을 할 때 어디갈까 물어보면 언제나 맥도날드다. 키즈밀에 따라나오는 장남감도 좋아하고, 프랜치 프라이도 좋아한다. 특히 케찹을 좋아하는데, 케찹을 먹기위해 프라이를 먹는 것인지 프라이를 먹기 위해 케찹을 먹는 것인지 헤깔릴 정도이다. 그렇게 보니 녀석이 생일파티 장소로 맥도날드를 생각한 건 당연하다.

아이 엄마의 입덧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였다. 세상의 모든 예비 아빠가 그렇듯, 나도 마눌님이 입덧을 하면 무엇이든 구해주리라 마음 먹었다. 경험자들에 의하면 족발/냉면/곱창/우유/레몬즙 등등… 뭔가 특이한 것이 먹고 싶을 때가 많다고 했다.

마눌님께서 원한 음식은 지극히 평범했다. 맥도날드 빅맥 세트. 당시 우리는 한국에 있었다. 마눌님께서는 미국에서 자란 지라 입덧 때 지극히 미국적인 음식이 먹고 싶었고, 가장 미국적인 음식으로 빅맥이 떠오르셨단다. 그래서 빅맥 세트를 전화로 주문했고 나의 입덧음식 조달은 싱겁게 끝났다. 너무 싱거운 것 같아서 다른게 없냐고 물었더니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신다. 그것도 역시 배달로 해결했다.

생각해보니 딸아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맥도날드를 찾았다.

첫번째 패스트 푸드

딸이 어렸을 때, 마눌님은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디에 가도 딸아이 먹을 것은 따로 만들어 챙겨 다녔다. 어쩔 수 없이 사먹어야 할 때도, 소금을 빼고 요리해달라고 주문했다. 노력의 효과였을까. 아이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저염식을 선호하며, 채소도 잘 먹는 편이다.

2013년 봄. 독일 친구 집에 머물렀다가 스위스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차를 타고 하는 장거리 여행이었는데, 독일과 스위스 국경지대를 지나쳐야 했다. 아침에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서 출발해서 점심 때는 국경지역의 작은 도시 콘스탄츠(Konstanz)를 지나쳤다. 로드 트립의 중간에 미리 음식을 챙기기는 쉽지 않다. 또 낯선 시골 도시에서 제대로 된 음식점을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나는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때울 것을 강하게 주장했고, 마눌님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딸아이가 처음으로 패스트푸드를 먹는 순간이다.

한적한 독일 시골에서 동양인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맥도날드에 들어서자 시선은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맥도날드의 알바생은 영어를 한번도 안해본 친구였다. 나는 손짓발짓을 동원했지만, 그는 당황했고 결국에는 매니저를 불렀다. 우여곡절 끝에 빅맥과 키즈밀을 주문했다. 그러나 식사를 하다가 냅킨과 플라스틱 포크를 가져와야 했을 때는 독일어가 되는 마눌님께서 나서야 했다.

드디어 첫 키즈밀. 아이는 세상의 맛을 처음 본 냥 행복해 했다. 그때부터 아이의 프랜치 프라이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키즈밀 장남감 수집도 그때 시작하였다. 독일/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 등등 새로운 나라에 갈 때마다 키즈밀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다. 재미도 쏠쏠 하다.

그럼 나는?

사실 나는 맥도날드에 별 애착이 없다. 어렸을 때는 롯데리아를 사랑했고, 커서는 버거킹을 선호했다. 캐나다에 1년 있을 때도 맥도날드 보다는 웬디스였다.

그래도 미국 밖을 나가면 한번은 맥도날드에 가게 된다. 맥도날드는 참 미국적이고, 이상하게 미국 밖을 나가면 미국적인게 가끔 생각난다.

맥도날드 현지화 전략을 살펴보는 건 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배달이 되서 좋고, 유럽의 맥도날드는 커피가 좋다. 맥카페 전략으로 맥도날드에서 가격 대비 괜찮은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잘 모르는 곳에 가서 어설프게 음식점 찾느라 고생하는 것 보다는 맥도날드가 안전한 선택이기도 하다.

딸아이의 눈물

+ 주의: 오늘 글은 제가 기억에 남기고자 썼지만, 100% 저의 입장에서 씌여진 글이기에 미화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실은 아이와 놀기 귀찮아하는 게으른 아버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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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아이 엄마가 모른척 넘어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왜?’라는 질문이 머리속을 맴돌지만, 지금 누가 답해줄리 없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면서 차근차근 달래는 것. 아내를 마트에 보내고 내가 아는 방법을 시도해본다. 첫번째 시도. ‘엄마 없는 데 뭐 맛난거 먹으러 갈까? 빵집 어때?’ 고개를 절래 흔든다. 실패. 배가 고프지 않거나 사먹으러 갈 기운이 없나 부다. 두번째 시도. ‘좋아하는 노래 틀어줄까?’ 아이는 고개를 흔들면서 소리낸다. ‘으~음’ 노래도 듣기 싫은가부다. 세번째 시도. ‘그럼 아빠가 옛날 얘기 해줄까?’ 그제야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옛날 이야기래봐야 별거 없는데 즉석에서 만들어 허접한 이야기 들려주니 귀를 기울인다. 마음이 풀어졌는지 조금 있다가는 원숭이 소리 들려준다면서 끽끽거리며 장난을 걸어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보니 아이 엄마가 오고 아이의 마음은 완전히 풀어져있다.

딸아이는 눈물이 많다. 처음에는 떼쓰는 아이로 키우기 싫었기에 아이의 울음에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온종일 에너지를 쏟아낸 날은 저녁 즈음이 되면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그럴 때 아이는 주저 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짐짓 모른척도 해보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울음의 원인을 묻는다. “너무 마음이 안좋아.” 양치가 하기 싫다고 말했다거나 자러 들어가기 싫다고 말했으면 훈계라도 했으렸만 마음이 안좋다고 한다. 그래 늦게까지 잠을 안재우고 지금에서야 잘 준비를 시키는 부모 탓이다. 아직 여섯살이니 그만한 버틸 힘이 없겠지. 일곱살이 되면 달라지리라. 번쩍 들쳐 앉고서 양치를 하러 간다.

딱히 떼를 쓰는 아이는 아니다.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도 몇번 말해보고 안된다 싶으면 거기서 그만이다. 좋아하는 초컬릿이나 캔디가 앞에 있어도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면 두번 묻지 않는다. 아이 답지 않게 절제 못하는 모습이 있으나 나이를 생각했을 때 딱 눈감아 줄 정도 이다. 오히려 절제하지 못하는 건 아비가 더 심하다. 딸은 절제 하지 못하는 아비의 모습을 볼 때 또다른 어미가 되어 한마디씩 던지곤 한다. “자세 바로하고 밥먹어.” “아이패드 그만해.” “운동 좀해.” 다 맞는 말이다.

그나저나 왜 울었을까? 배가 고팠던 걸까? 세상에는 두종류의 아이가 있다. 배가고프면 난리가 나는 아이, 밥을 하루 종일 굶겨도 떠서 입에 넣어 주어야 그제야 먹는 아이. 가은이는 전자에 속하고 나는 어렸을 때 후자에 속하는 아이였다.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지만, 아까 빵집을 제안했을 때 거절했다. 이건 답일 수 없다.

엄마와 다투었거나, 존심 상하는 일이 있었던 것 일까? 가능하다. 이 아이는 눈물이 많은 아이지만 동시에 자존심이 몹시 강한 아이이다. 말을 더듬더듬 하던 돌이 갓지났을 무렵에도 부모가 뭐라하면 입술을 꼭 깨물고 억지로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이 엄마는 딸에게 잘못을 시인하는 법을 가르키려고 노력했다. 이제 잘못을 시인할 줄 알지만, 그 안에 가득한 자존심은 여전하다.

아이가 잠들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아내에게 무심한 듯 물어본다. “아까 낮에는 왜 그랬던 거야?” “뭐?” “울었던거.” “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고 뭔데?” “거울을 봤는데, 갑자기 자기 볼하고 눈이 예전하고 다른 것 같다고… 자기가 변해가는 것 같아서 슬퍼졌데.”

그러고 보면 딸아이는 몇달전에 비해서 젖살이 빠져서 볼이 헬쭉해졌으며, 눈이 더 커졌다. 어른에게 나이가 먹음은 주름하나 더 생기고,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매일 매일이 다르다. 작년에 아빠의 허리띠가 눈높이였다. 지금은 아이의 눈은 내 배꼽과 같은 높이이다. 매년 달라지는 눈높이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대부분은 그러한 변화를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받아들일 텐데 이 녀석은 아쉬움으로 느낀다.

“여보도 어렸을 때 그랬데?” “뭘?” “감성적인거…” “아 나도 어린 시절생각하면서 운적이 있데.” “여보 닮았구나?” “그치만 저정도는 아니었지 싶어.”

역시나 생소하다. 아이가 감수성이 풍부한 것은 감사할 일이다. 세상이 쉽지 않은데 그러한 감수성을 가지고 사는게 쉽지 않을 것 같아 그게 걱정이다.

한국사람들은 왜 외국에서 서로 피할까?

미국 몇년 살면서 외국에 체류하는 한국 사람에 대한 특이한 점 하나를 알게 된게 있다.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을 일부러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한국 사람만큼 정이 넘치고 끈끈한 사람들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인사 나누고 고향이나 학교 등등의 호구조사를 하고서 공통분모를 찾는다. 하나라도 유사점이 있으면 바로 형/아우를 규정하고서 절친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다니는 건 어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는 그런게 이상하게만 여겨졌는데, 조금 지내다보니 나도 어떨때는 한국사람들하고 만나는게 불편할 때가 있다. 금새 친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엮이게 되는게 부담스러운 거다. 사람사이의 관계가 좋게 되기만 한다면야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 만큼 좋은 일이 없겠지만, 꼭 모든 사람이 나와 맞을 수는 없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특히나 이민사회는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한번 알게 된 사람은 계속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야한다.

한국인의 다른 특징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존댓말의 문화이다. 존댓말에 관련한 내 생각은 이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미국사람들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존댓말이다.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면 무의식중에 손위/손아래를 따지게 되고 손위사람에게는 존중을 손아래사람에게는 복종을 요구한다. 나는 한국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문화가 존댓말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경험과 연륜이 있는 사람에게 존경과 존중을 표시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단순히 숫자적으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사람이 옳다거나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복잡한 관계 속에 얽혀서 살고 있다. 우리는 나이, 학번, 입사동기, 사돈, 선배, 후배 이 모든게 얽혀서 서열을 정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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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임수정의 ‘내아내의 모든것’을 재미있게 본적이 있다. 거기서 임수정은 눈치안보고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지만 밉상은 아닌 캐릭터로 나온다. 그중에서 인상깊었던 한 장면이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와이프들끼리의 모임 장면이다. 이러한 모임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거기서 와이프들끼리의 관계는 남편의 직급으로 규정된다. 한 아주머니가 임수정에게 말을 한다. “와이프가, 눈치가 아주 많이 없네!” 이때 임수정은 그 사모님들에게 말을 한다. “눈치를 안 보고 살아서 그래요. 예의만 지키면 눈치는 안봐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영화의 큰 맥락과 관련이 없는 장면이었지만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미국와서 한국 아이들과 미국아이들의 차이점을 하나 발견한게 있다. 한국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형이고 언니인지 먼저 따진다. 그런데 아이들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한가지가 있다. 미국은 학기가 가을에 시작하기 때문에 보통 9월이나 10월 생들이 학교를 빨리 간다. 거기서 바로 복잡한 호칭 문제가 발생한다. 나이가 같은데 학교를 먼저 갔기 때문에 형이라 해야 할지 언니라 해야할지 애매해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빠른 xx년생이랑 비슷한 상황이다. 이게 미국아이들에게는 별로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학년이 높다고 해서 존댓말을 쓰는 것도 아니고 호칭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학교를 먼저 갔을 뿐이다.

미국 아이들도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보통 리더십이 더 있기는 하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논 이야기를 들어봐도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놀이를 주도할 때가 많다. 선생님/학생 역할 놀이를 할때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선생님 역할을 맡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건 또래에 비해 성숙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리더십이지 존댓말이나 호칭으로 인위적으로 생기는 리더십은 아니다.

한국인은 나이를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몇살에는 취직을 해야하고, 몇살에는 결혼을 해야하며 아이를 나아야하고 등등 모든것이 나이에 맞춰져서 되어질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문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문화라는 것은 각자 모두 이유가 있고 옳고 그르다기 보다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러한 부분은 정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