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지난번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포스트에 이어서, 프랑스의 세속주의 전통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자 한다.

지난번 포스트에 한 분께서 프랑스가 전신수영복 burkini 금지를 하면서 수녀복은 허용하는 모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셨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실제 이번 이슈 이후에 이를 비난하는 아래와 같은 트윗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https://t.co/MTlIuAbQ4E

다만 현대에 와서 프랑스의 세속주의 Laïcité 원칙 적용은 ‘성직자’에 한해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이슬람에만 차별을 한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대형)십자가를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도 금지되고, (이미 지어진 성당은 문화유산으로 간주하여 예외로 본다.) 동일한 원칙으로 유대교의 상징 다윗의 별을 전시하는 것도 금지되고 있다. 최근에는 관청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구유 장식도 불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작년에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샤를리 에브도 같은 경우도 어떤 면에서는 세속주의 Laïcité 정신에 기초한 단체로 볼 수 있다. 이 잡지는 이슬람은 물론이고 가톨릭과 모든 종교단체를 조롱하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반은 이슬람혐오가 아닌 무신론(또는 반종교)에 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프랑스의 반종교정책은 유럽에서도 강경한 편이라 (타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큰) 한국적인 정서에서도 심하다 싶을 정도이다. 2011년 사르코지 정권에서 laïcité는 더욱 강화되어 1946년 부터 65년간 방송된 기독교 라디오 설교도 금지된 바 있다.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기위해 내 입장부터 밝힌다. 지난번에 전신수영복 burkini 금지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도 프랑스의 조치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었다. 사실 나는 프랑스의 세속주의와 공화주의적 전통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미국적인 개인주의에 좀더 공감하는 편이다.

지난번 포스트에 언급했듯이 프랑스와 미국은 다문화를 수용하는 데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나는 공화주의 전통을 근간으로하는 프랑스식 모델이 지금에 와서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프랑스가 말하는 관용(똘레랑스)은 공화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공화주의 원칙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 평등, 박애, 세속주의, 애국주의가 이 공화주의의 근간이다.

프랑스 헌법 1조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프랑스는 분할될수 없고, 종교에 의해 통치되지 않으며 민주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La France est une République indivisible, laïque, démocratique et sociale.” 헌법 첫문장부터 프랑스는 세속주의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와 종교와의 대립은 프랑스 혁명 (1789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정부는 당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한다. 당연히 로마 교황청은 격렬하게 반대를 한다. 이에 프랑스는 두차례 로마를 침공한다. (1798년, 1809년) 혁명정부는 가톨릭을 앙시앵레짐의 한축으로 여겼고, 프랑스 헌법에 충성서약을 하지 않은 성직자들을 범법자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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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시엥 레짐을 풍자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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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나폴레옹은 왜 교황과 화해했을까? (nasica 블로그)

이후 나폴레옹은 교황청과 화해를 하게 되는데, 가톨릭을 프랑스의 주요 종교로 인정하는 대신 교회를 프랑스 정부의 관리 아래 두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정교(政敎) 협약 (Concordat)이다. (18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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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ord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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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프랑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분명히 했는데, 현대적 의미에서 세속주의 laïcité 는 1905년 제3공화국의 정교분리 법에 근거한다. 그리고 프랑스인은 모든 공적인 장소를 ‘종교 청정 지대’로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종교행위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학교에서 종교 복장이나 종교 행위를 금하는 법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종교 상징물을 금지하는 법은 1937년 제정되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이법들이 제정될 그 당시만 해도 프랑스는 비종교적인 국가이었기에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들어 프랑스의 인구 구성은 변하기 시작한다. 북아프리카 옛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대다수 무슬림들이었다. 다만 이들 이민 1세대들은 자발적으로 프랑스에 넘어온 이들이었기에 프랑스의 세속주의에 저항이 크지 않았다.

무슬림 2세/3세들이 오히려 종교적으로 근본주의화된다. 방리유라고 불리는 변두리에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히잡/니캅/부르카 등의 이슬람 전통복장 착용은 일종의 분노의 표시이며, 무슬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프랑스의 다문화 정책은 여러모로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약 10% 가량으로 추산된다. 세속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운 프랑스의 정신은 이들을 공화주의를 거부한 2등 시민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다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 이야기로 돌아오자. 아무리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사상을 고려하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복장 선택을 억압하는 프랑스의 정책은 여전히 비판 받을 만하다. 내가 느끼기에도 프랑스의 세속주의 정신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로 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듯 하다.

이상이 내가 burkini 이슈를 프랑스의 정체성 문제로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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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The deep roots of French secularism, BBC, 2004년 9월 1일자
1905 French law on the Separation of the Churches and the State (영문 위키피디아)
Laïcité (영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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