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페북이 뜸하기도 했고, 요즘 지내는 얘기를 잊기전에 메모도 해둘 겸 해서 몇자 남긴다.
이번주 월요일 부터 샌프란시스코에 와있다. 우리회사는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가 피크 시즌이라 일손이 딸리는데 사무직 직원들도 일부를 뽑아서 일을 시킨다.
사실 사무직 직원들을 일시키려면 항공료도 지원해줘야 하고 호텔비까지 부담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 일것 같긴 하지만 현장을 경험 시킨다는 명목도 있고 해서 매년 몇백명씩을 ‘Ready Team’으로 뽑아서 보낸다. 올해는 내 차례.
평소에 육체 노동을 안하는 사무직이라고 해서 그다지 봐주는 건 없다. (오히려 더 힘들게 굴린다) 주 6일에 12시간씩 트레일러에 택배 상자를 싣고 내리는 일을 한다. (여기 알바는 한 4~5시간 하다가 간다.)
울회사가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회사라서 그렇기도 하다. 순익이 7조원이 넘는 대기업이지만 CEO부터가 택배 배달원으로 시작하는 회사라 한번쯤은 상하차 경험을 해야한다는 유무형의 압력이 있다.
올해는 샌프란쪽에 인력이 부족해서 당일(!) 연락을 받고 밤비행기를 타고 날라왔다. (미안해요 마눌님.) 이 상하차 작업이란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막노동에 가까운 일이고 12시간을 일하다 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게다가 나는 야간 쉬프트라 수면 패턴도 엉망…)
한 이삼일은 죽을 것 같아서 도망칠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더라. 어쨌든 버티다 보니 몸이 적응 되면서 요령도 생기고 근육도 붙어서 그럭저럭 할만해 졌다. 그래도 아직까지 가구나 타이어를 짐으로 부치는 사람들은 원망스럽다. (아~ 카페트나 덤벨 부치는 사람도…)
(image source: http://www1.pictures.zimbio.com/gi/UPS+Bustles+During+Busiest+Package+Delivery+rVf5NUB1SDEl.jpg)
하나 좋은 소식은 살이 쭉쭉 빠져서 가져온 바지가 헐렁해서 못입을 지경이라는 거. 역시 내가 미국와서 살찐 건 나이나 음식 때문이 아니라 운동 부족이었던 듯.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이제는 같이 일하는 짐꾼들과도 그럭저럭 말을 트고, 문신한 흑인들과도 서로 bro라고 부르며 지내고 있다. 사실 여기서 며칠 구르면 옷차림이나 행색도 비슷해져서 그다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육체노동을 계속 하다보면 생각이 단순해 지는데, 우선은 먹는 거에 민감해진다. 그날 메뉴가 뭔지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될지 몰랐는데, 트레일러 한차를 박스로 가득 채우면 뿌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이렇게 길들여 지는 것일까??) 휴식과 일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맺고 끊음이 없는 사무직 일과는 확실히 다르다.
택배 상하차가 힘든 일이지만 여자도 근근히 보이고 (미국은 여자라고 살살 일하고 그런 것도 없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흑인 틴에이져 부터, 틈만 나면 댄스를 하는 히스패닉 청년, 트럭 운전을 하다가 은퇴한 오십대 백인 아저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대학나왔다거나 아틀란타 본사에서 왔다거나 사무직이라고 말해봐야 별의미가 없어 그냥 초짜입니다 라면서 섟여서 지내는 중이다. 나는 여기서 그냥 미스터 아틀란타다.
그렇게 열두시간을 일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잠이들기에 이런저런 글을 올리는 것도 사치스런 일이 되었다.
와중에도 감사할 일이 참으로 많다. 그중 하나는 앞에서 말한데로 살빠지고 근육이 붙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 감사에는 딸래미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가끔 딸램과 이야기 하다보면 내가 아들이고 따님께서 부모인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통화할 때마다 아픈데는 없냐, 일은 안힘드냐, 눈치봐서 살살해라고 이런저런 (잔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 아이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다. 내가 샌프란으로 가고서 딸래미가 그렇게 아쉬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빠한테 내가 가진 용돈이라도 좀 손에 지워 줄 껄 하더랜다. 아무래도 샌프란 가면 돈이 좀 필요할 텐데라면서…
일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사가야겠다.
따님이 너무 귀엽네요.^^
감사합니다 ^^
현대판 심청이인건가요…
그럼 현대판 심봉사는 누군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