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트럼프 공격의 포문을 열다

목요일 샌디에고에서 힐러리가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그리고 저녁 미국뉴스는 힐러리 연설을 복기하느라 바빴다.

계산되고 정돈된 연설만을 하던 힐러리가 어제는 street fighter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그게 제대로 먹혔던 듯. 심지어 폴 라이언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뉴스가 있었는 데도 묻힐 정도 였다. (폴라이언의 지지 선언은 중도보수의 트럼프에 대한 항복을 의미한다.)

NYT 기사에 따르면, 힐러리 측에서 미디어 전략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스피치는 즉흥적인 것으로 보이나, 실은 힐러리 캠프에서 몇주간 고심한 결과이다. 언론사에서 인용하기 좋은 떡밥(catnip)을 반복하고, 중간중간 적당한 sarcasm을 섟어 준다.

그런 점에서 목요일 스피치는 힐러리 캠프의 작품이다. 작성과정에도 여러명의 전문가가 합류했다. (스피치 라이터: Dan Schwerin과 Megan Rooney, 정책자문: Jake Sullivan, 외부 컨설팅: John Favreau) Ms. Rooney가 열흘에 걸쳐 초안을 작성하고, 수요일밤 힐러리가 샌디에고로 비행하는 옆에서 John Favreau가 동행하여, 유머를 추가해주고, 교정을 해주었다고. (Favreau는 오바마의 연설문 작성 전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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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설 내용 자체도 흥미로운 커맨트들이 많다. 주된 논지는 힐러리 본인의 외교 경험 강점을 부각하면서, 트럼프의 위험한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도 짧게 언급한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기사에 동영상으로 제공되니 생략한다. 몇가지만 인용하자면,

“Imagine Donald Trump sitting in the Situation Room, making life-or-death devisions on behalf of the United States.”

“He believes we can treat the US economy like one of his casinos.”

“He says he has foreign policy experience because he ran the Miss Universe pegeant in Russia.”

“I’ll leave it to psychiatrists to explain his affection for tyrants. I just wonder how anyone could be so wrong about who America’s real friends are.”

“He also said, ‘I know more about ISIS than the generals do, believe me.’ You know what? I don’t believe him.”

사실 미국 대통령은 핵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제 스피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잘 짚어준 효과적인 스피치였다.

힐러리 vs. 트럼프 지지율, 이메일 스캔들

존경하는 블로거 산타크로체님 (산타크로체님 네이버 블로그 링크)과 페북에서 댓글로 나눈 대화를 저장해 둔다. (이후 산타님으로 표기)

나: 대통령 후보 확정 직후 지지도가 오르는 현상은 일반적이라 지켜봐야 하긴 합니다.

2008년에도 맥케인이 지지 수락 연설 후, 오바마를 잠시 앞선 적이 있죠. 오바마는 후보로 확정되고 다시 우위를 회복 했습니다. 다만, 놀라운 것은 트럼프가 폴 라이언(온건보수)이나 테드 크루즈 (강경보수)의 지지 없이 공화당의 표심을 다 모으는 일을 했다는 점입니다.

클린턴 측에서는 후보 확정 이후 지지율을 끌어올릴 여력도 있고 아직 선거 초반이라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치만 공화당 경선 때도 설마 설마 하다가 여기까지 온지라…

산타님: 유동적 요인이 있긴 하지만 FBI가 기소를 하거나 갑자기 뇌졸증이 재발하지 않는 한 물론 샌더스 후보의 돌발적 선택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본선에서 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번에 한번 정리했지만 트럼프를 혐오하는 여성표가 워낙 절대적으로 높은 것이 히스패닉/흑인 표 보다도 큰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나:


산타님: 설명이 덧 붙여지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될 듯 합니다.

나: 2008년 미국 대선 때, 맥케인과 오바마의 지지율 차이 그래프 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후보자 선정을 빨리해서 한명에게 힘을 몰아주는데, 초반 그래프를 보시면, 맥케인 확정 이후 지지율이 잠깐 오바마를 앞선 시점이 있었습니다. 이후 오바마가 후보를 확정짓고 나서 다시 지지율을 회복합니다.

산타님: 감사합니다. 그런 효과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당시는 금융위기 발발로 인해 나중에 갈수록 오바마 후보에게 표가 쏠릴 상황이긴 했습니다.

나: 물론 결정타는 2008년 금융위기 였는데, 맥케인이 “미국 경제는 fundamental이 튼튼해서 문제가 없다” 라는 발언을 했죠. 결과는 알다시피…

지금은 워낙 초반이라, 2008년 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미국에 대형 테러 공격이 있다던가, 경제 위기가 온다던가, 막판이라면 작은 hiccup도 변수가 될 수 있긴 합니다.

산타님: 사실 그렇긴 합니다. 다만 트럼프 후보에 대한 혐오도가 쉽게 누그러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유세장에서 이렇게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는 반전/민권 운동이 드세던 60년대나 가봐야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솔직히 외부인이 보는 시각은 트럼프가 대통령 되는 것 못지 않게 현 상황도 미국내 분열이 커지는 것 같아서 걱정은 됩니다.

나: 이메일 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물론 예측은 신의 영역이라,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만약 문제가 정말로 커져서 힐러리 중도 하차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민주당 측에서는 바이든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쪽에서는 바이든 구원 등판보다는 현재 상황을 더 선호할 것 같습니다. 근거가 약한 음모론이나, 의심을 제기하면서 지지율을 살금살금 갉아먹는 네가티브가 효과적이기도 하고요.

산타님: 그런데 경선을 거친 2위 후보를 그냥 무시하고 바이든 부통령을 후보로 정하기는 흠… 기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샌더스 측에서 독자 후보 선언하기 딱 좋은 명분이긴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양측 모두 매우 높은 혐오층이 있기에 정말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 들여야 겠지만 그런 난장판을 겪고 리더십을 확보하기도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클린턴을 싫어하는 중산층 고학력 자들의 심리 중 끝없는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 뻔하다는 게 있는데 걱정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나: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이든은 경선 출마 자체를 안했고, (막판까지 고심은 했습니다만,) 당시 명분은 힐러리를 밀어준다 였습니다. 힐러리 지지자들은 바이든 쪽에 좀더 가깝다고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정말 난장판이 되겠지요. 결과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될 것 같구요.

산타님: 당연히 바이든 부통령이 내용상 민주당 후보가 되는게 맞긴 할겁니다. 제가 걱정되는 것은 EU 또는 유로체제가 올해 브렉시트 등 고비를 어떻게 넘겨도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는 이상 내년이든 후년이든 체제 불안이 급격히 고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르펜이 대통령이 되지는 않겠지만 결국 르펜이 주장하는 국경 통제 등 반EU 정책은 더 힘을 받을 것이고 그래프로 보여 주셨듯이 인종주의 정당들의 힘은 더 커져갈 것입니다. 여기서 미국마저 무력함에 빠지면 이래저래 세계적으로 참 걱정되는 상황이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오늘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글을 정리해 봤지만 장기적 세계 인류의 미래는 포기해도 당장 눈 앞의 실리를 챙기자는 주장은 의외로 힘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걱정되는 것은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는 것보다 국제적 합의체제가 점점 무력해지며 각자 도생의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주제를 이야기 하셔서, 다 이야기하자면 밤을 꼴닥 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말씀하신 주제 하나하나가 워낙 무게감이 있는 주제라. (글적글적.) 한번 뵙고 밤을 세워야 하는 건 아닐지요. ^^

Why Is Clinton Disliked? (NYT)

어제 뉴욕타임스 데이비드 브룩스 칼럼. 그가 말하는 힐러리 비호감 요인은 타당한 점이 있다.

미국 사람들에게 힐러리는 인간미 없는 기성정치인으로 비춰진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오바마는 골프와 농구를 즐겼다. 트럼프야 말할 것도 없이 인간적(?!)인 사람이다. 남편 클린턴도 색스폰을 멋들어지게 부를 줄 아는 위트있는 멋쟁이로 기억된다.

힐러리는 일중독자 이미지 말고는 딱히 인간미랄께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손녀 샬롯이 있는 할머니다 라는 정도. 심지어 딸이나 남편도 모두 정치계 커리어로만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힐러리에게 붙인 별명 heartless Hillary는 그런점에서 아주 절묘하다. 힐러리는 때로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진 로보트 처럼 보인다.

어떤분이 페북 페이지에서 힐러리의 선거운동을 회식자리에 비기어 설명했었다. 평소 놀 줄도 모르고 일이 전부인 만년 부장이 임원 한번 달아보려고 회식자리에서 신입사원들에게 아재개그를 늘어 놓는데, 분위기는 오히려 싸해 졌다고. 아주 공감하는 바이다.

칼럼은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일 밖의 것도 잘 챙겨야 한다며 마무리 짓는다. 글쎄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힘들다. 나는 정치인을 이미지와 인간미로 판단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나도 잘 놀 줄 모르는 부류에 속할 텐데, 안된다. 커리어는 커리어로 봐야한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인을 평가할 때 인간미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국 뉴스 정리 및 간단한 커맨트 (2016/05/23)

드론 어택, 2016 미국 대선 업데이트, 박스오피스, political correctness, 바이엘의 몬산토 합병 제안

드론 어택

탈레반 리더 만수르를 드론으로 공격하여, 암살하는데에 성공했다고 오바마가 오늘 발표했다. (관련기사) 오바마 정권 이후 미군은 군용 드론 사용을 전면적으로 확대해 왔다. 아무래도 유인 폭격기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정치적인 부담이 덜한지라…

우리 회사에도 아프간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제대 군인이 있는데, 그 동네 미군 막사에서 드론을 보는 것은 신기한 일도 아니라고 한다.

살상무기가 어찌 인간적일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드론은 특히 상상만 해도 비인간적인 무기이다. 소리없이 하늘에서 내려와 소형 폭탄을 떨어뜨리고 사라진다. 트라우마를 겪는 이에게는 맑게 개인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공포가 따라 오리라.

미국 내에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드론 사용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

관련해서 예전 포스트 (군용 드론에 대한 잡담)

2016 대선 업데이트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모멘텀을 확보하는 반면, 클린턴은 샌더스 측과 감정 싸움이 계속되어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클린턴 지지자들 측에서는 안팎으로 공격을 받는 상황에 대해 불평하는 목소리가 크다. 샌더스 의원은 최소 6월 초에 있을 캘리포니아 경선까지는 최선을 다해 경선에 참여할 것 같고, 본인이 지지자들에게 약속했던대로 경선 완주를 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참고로 지난주에 거의 8%p 까지 차이가 났던 지지율 차이가 현재는 1%p로 좁혀진 상황이다. 생각보다 박빙 모드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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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elections.huffingtonpost.com/pollster/2016-general-election-trump-vs-clinton/

트럼프 측에서는 이미 힐러리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는 트럼프가 힐러리를 crooked Hillary, heartless Hillar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절묘한 별명을 붙여 경쟁자를 조롱해 재미를 많이 봤다. 예를 들자면, Lyin’ Ted, Little Marco, Low Energy Jeb 같은 별명이 있었다. 요즘 미국 정치는 예능 프로그램 같이 서로 별명을 붙여 낄낄대는 수준이다.

박스오피스

지난 주말은 “The Angry Birds Movie”가 1위를 했다고 한다. 예고편을 봤는데, 나쁘지 않아보인다. 잘만하면 연속으로 속편 찍어내는 브랜드가 될 기세. 캡틴 아메리카는 앵그리버드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아~ 아이 키우는 처지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보며 팝콘 집어먹는 일은 이제 사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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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correctness

지난주에 “Oriental”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Asian-American”을 쓰기로 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관련기사: https://meng.house.gov/media-center/press-releases/meng-bill-to-remove-the-term-oriental-from-us-law-signed-by-president)

나는 미국와서야 politically correct한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걸로 목숨거는게 아닌가 싶었고, 오히려 그런 모습이 위선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단어라고 해서 옳은 언어 사용은 아니라는 점. 언어 사용으로 발생하는 위계와 타자화 같은 미묘한 차이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미국 사람들이 차별이라는 이슈에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연륜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어 사용에 대한 논쟁은 미국에서 언제나 뜨거운 주제이다. 최근에는 미식축구팀 ‘워싱턴 레드스킨’을 둘러싼 논쟁이 한참이기도 하다.

바이엘의 몬산토 합병 제안

바이엘사가 몬산토에 $62B의 인수 제안을 했다는 소식이다. 예전에 농산물 대기업의 인수합병 움직임에 대해 포스팅 한적이 있었는데, (링크: 유가가 곡물가격에 미치는 영향) 이후에 신젠타의 듀폰 인수는 무산되었고, 듀폰과 다우가 합병했고, 최근은 몬산토까지 매물로 나왔나 보다.

몬산토는 GMO의 대명사로 알려졌고 탐욕스런 미국 자본의 상징 처럼 되어버린 기업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GMO의 안정성은 계속 검증되어야 하지만, 몬산토의 demonized는 조금 과도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몬산토가 독일 기업이 된다면, 필요 이상의 반감이 누그러들런지 궁금하다.

민주주의와 중우정치

최근 미국 정치 덕후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었던 칼럼을 하나 소개한다.

칼럼은, 트럼프의 등장을 이야기 하면서, 너무 많은 민주적인 절차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칼럼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주류 보수가 트럼프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잘 보여주는 칼럼이고, 민주주의에 대해, 미국 정치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도 볼 수 있기에 한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Democracies end when they are too democratic (New York Magazine, 5월 1일자)

캡처

필자는 정치 블로거로 유명해진 Andrew Sullivan이다. 여담이지만, 이 아저씨는 게이인데, 성소수자 이슈를 제외하고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졌다. 게이이면서 보수주의자인 기묘한 조합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미국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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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을 번역해볼까 하다가, 워낙 장문이고 굳이 100% 동의하지 않는 글에 잉여력을 소진할 마음까지는 동하지 않은지라, 몇가지 논점만 살펴보려고 한다.

칼럼은 이번 미국 대선이 플라톤의 ‘국가’의 한 부분을 연상시킨다고 말하면서 시작한다.

As this dystopian election campaign has unfolded, my mind keeps being tugged by a passage in Plato’s Republic.

그리고선 플라톤이 말했던, 민주정에서 참주정으로의 이행을 언급한다.

And it is when a democracy has ripened as fully as this, Plato argues, that a would-be tyrant will often seize his moment.

간단하게 플라톤이 말한 민주정(democracy)과 참주정(tyrant)을 정리해보자. 내가 철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내가 이해하는 수준에서의 정리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민주정은 자유를 최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체제이다. 그리고 민주정은 다수의 하층민과 소수의 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민주정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숫적인 우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자유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부를 부자에게서 뺏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때 선동가 (demagogue)가 등장하여, 소수 부자들에게서 부를 빼앗아 나눠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선동가는 다수의 힘을 조직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어낸다. 선동가는 자신의 권력의 기반이 약한 초기에는 대중의 약속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는 듯 보이다가, 곧 늑대로 돌변하여 숙청을 한다. 참주가 된 선동가는 대중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외부인에 대한 증오를 키운다.

Andrew Sullivan은 트럼프의 모습에서 플라톤이 말한 선동가를 보았던 것 같다. 아주 역겹다고 말한다. 물론 그도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과 현대 민주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소크라스 시대와 달리 미국은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유지 될 수 있게 고안되어 있다고 말한다.

Part of American democracy’s stability is owed to the fact that the Founding Fathers had read their Plato. To guard our democracy from the tyranny of the majority and the passions of the mob, they constructed large, hefty barriers between the popular will and the exercise of power. Voting rights were tightly circumscribed. The president and vice-president were not to be popularly elected but selected by an Electoral College, whose representatives were selected by the various states, often through state legislatures. The Senate’s structure (with two members from every state) was designed to temper the power of the more populous states, and its term of office (six years, compared with two for the House) was designed to cool and restrain temporary populist passions. The Supreme Court, picked by the president and confirmed by the Senate, was the final bulwark against any democratic furies that might percolate up from the House and threaten the Constitution. This separation of powers was designed precisely to create sturdy firewalls against democratic wildfires.

미국의 정치 체계는 의외로 보수적이다. Andrew Sullivan이 정리한 위의 문단은 미국 정치가 처음부터 얼마나 보수적으로 설계 되었는가를 잘 요약하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가 대중의 인기와 일시적인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랬다. 이를 테면, 대통령은 선거인단에 의해 간접 선거로 선출한다. 그리고 상원은 주별로 2명씩 상원 의원을 선출하는데, 이는 인구수가 많은 주에 힘이 집중되지 않게 만드는 장치이다. 또한 6년 임기의 상원 의원은 2년 마다 1/3씩 나누어서 선출하는데, 이를 통해 일시적인 정치 돌풍이 상원을 한번에 바꾸지 못하도록 막아 준다. 또 대법원 판사는 대통령에 의해 선출되고, 상원의 승인을 받게 되어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안한 이러한 제도들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Principle of Checks and Balances)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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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장치에 포함된 비민주적인 요소들은 몇 세기에 걸쳐 변하게 된다. 점차 direct democracy가 된 것이다. 우선 선거권이 여자와 흑인에게도 주어졌고, 선거인단 제도도 변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식 경선도 1968년도의 Democratic convention 이후에 정착되었다. 그리고, 기성 정치인이 아닌 outsider의 대권 도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최초는 1940년 공화당 후보인 Wendell Willkie이다. 그는 정치 경력이 없는 사업가였다. 결과는 선거에서 루즈벨트에게 참패. 이후에도 Ross Perot, Jesse Jackson, Steve Forbes, Herman Cain 같은 outsider들이 도전을 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올해는 알다시피 Ben Carson, Carly Fiorina, Donald Trump가 있다.

여기까지 읽다보니 한국의 정치 시스템이 생각났다. 바로 1987년 민주화 열풍, 그리고 혼돈기를 거쳐 정립된 대통령 직선제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고안한 대통령 간선제가 미국 대통령제의 틀이 되었듯이, 대통령 직선제 전환은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중요한 기점이었다. 당시 한국은 세계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독재국가였고, 불안한 정치 상황으로 대표되는 나라 였다. (요즘에 우리가 브라질/그리스를 바라보는 것 처럼 말이다.) 그 혼돈을 일순간에 잠재웠던 사회적인 합의가 대통령 직선제의 약속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우리에게 상식처럼 받아들여진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독재 국가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체택하고 있고, 선거의 공정성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재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 이다. (마르코스 라던가 우고 차베스 라던가…) 그러나 한국은 1980년대를 지나며 대통령 직선제가 공정한 게임과 동의어가 되었고, 어떤 의미에서 한국 정치의 정체성이되었다.

각 나라의 선거 제도와 장단점에 관해서는 아래 자료를 참조하면, 유용할 듯 하다. 특히 정치학도라면 필독 자료가 아닐까 싶다. 자료를 보면서 어떤 제도도 옳고 그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점과 단점이 있을 뿐이다. 역사적인 배경과 국민의 합의에 의해서 절차가 세워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Electoral System Design: the New International IDEA Handbook

다시 Andrew Sullivan 칼럼으로 돌아와서, 이 아저씨는 미국 정치 시스템이 direct democracy로 변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21세기 민주주의는 media democracy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트위터, 페이스북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대중은 눈이 먼채 욕망만을 쫓고 있다. 이것이 미국 건국 아버지들이 가장 우려했던 그 상황이다. 사유와 실증에 기반한 논의는 사라지고,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감각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대중만이 남은 것이다.

And what mainly fuels this is precisely what the Founders feared about democratic culture: feeling, emotion, and narcissism, rather than reason, empiricism, and public-spiritedness. Online debates become personal, emotional, and irresolvable almost as soon as they begin. Godwin’s Law — it’s only a matter of time before a comments section brings up Hitler — is a reflection of the collapse of the reasoned deliberation the Founders saw as indispensable to a functioning republic.

참고로, 예전에 나도 미디어와 트럼프라는 주제로 포스팅을 한적이 있는데, 관심있는 분은 여기를 보면 된다.

여기까지가 칼럼의 반정도 내용이고, 나머지는 왜 미국 민주주의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트럼프는 어떻게 이 기회를 잡았나에 대한 Sullivan 아저씨의 분석이다. 이 아저씨는 책을 많이 읽었는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용한다. 거리의 철학자 Eric Hoffer, 소설가 Sinclair Lewis같은 사람도 언급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도록 하겠다. 나의 잉여력 발산도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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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Hoffer

그래도 아쉬우니까, 이 아저씨의 주장을 러프하게 요약하자면, 타락한 21세기 미디어 민주주의는 플라톤의 참주정을 연상시키고, 트럼프 같은 선동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 elite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트럼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정도 일 것 같다.

트럼프와 모순의 힘

지난 주말 NYT에 재미있는 기사가 두개 실려서 소개한다.

첫째는 지금까지 트럼프의 정치적인 입장의 변화를 그래프로 정리한 기사이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2000년에는 총기규제를 찬성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 3월 공화당 후보 토론회에서는 총기 규제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예전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올해 들어서는 의료산업을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정치인 이전의 트럼프는 진보적인 입장을 지지했으나, 공화당 유력주자가 되고서는 보수적인 발언을 자주 한다.

트럼프가 대권에 도전하면서, 정치적인 견해를 바꾼 것일까. 트럼프의 말을 듣다보면 그의 말바꾸기가 정치관의 변화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정도가 심하다. 그는 모순된 말을 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다. 예를 들자면, NYT 기사에서도 정리했듯이, 그의 낙태에 대한 발언은 모순 그 자체이다. 정치인이 되기 이전인 1999년에 그는 낙태를 찬성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 2월 22일 Fox news와의 인터뷰에서 낙태 반대론자로 견해를 바꾸었다고 했다. 이어서 3월 30일 그는 MSNBC에서 낙태하는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강경한 발언을 한다. 그리고 같은 날 그는 캠페인 웹사이트에 여성은 피해자이고, 의사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진짜 트럼프의 입장인가.

또, 그는 히스패닉은 잠재적인 범죄자들이기에 국경에다가 벽을 세워야 한다고 꾸준히 말해 왔다. 그러나, 며칠전에 그는 타코를 먹으면서 ‘I love hispanic!’ 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는 히스패닉을 어떻게 생각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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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모순된 행동이 유권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지금 미국 대선 상황을 보면 크게 두부류로 나뉜다. 첫째 부류는 트럼프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부류는 그의 말의 진위 여부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를 더 확고히(!) 지지한다. 나는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의 반응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음 기사는 모순의 힘을 이야기하며 두번째 그룹의 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모순의 힘을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며칠전에 나는 미디어가 과학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포스팅한 적 있다. 요약하자면, 미디어가 과학 연구를 가십거리로 전락시켰고, 또한 상호 모순적인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예를 들자면, 한 뉴스는 커피가 암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보도하고, 다른 뉴스는 커피가 암의 원인이 된다고 보도.) 대중의 인식 속에서 과학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대중은 그저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다가 쓰면 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커피가 암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커피가 암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칼럼에 따르면, 유사한 일이 트럼프 지지자에게도 일어난다. 첫번째 부류가 아닌, 그러니까 그의 언행이 거슬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트럼프의 모순된 행동이 오히려 그를 신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모순된 언행을 반복하게 되면 대중은 결국 그 중에서 본인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여 믿게 되는 확증편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디어를 통해 명성을 얻은 celebrity이다. 그는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행이 모순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있게 주장을 펼치는가, 그것을 어떻게 이슈로 만드는가 이다. 미디어 세상에서는 대중이 듣기 좋은 이야기를 선정적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해서 이슈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진실인가 아닌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모순은 일관성이라는 가치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일단 모순의 힘을 사용해서 일관성의 가치를 흔들어 버리면 정책이나 방향성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대중에게 일관된 가치가 없어지게 되면 그자리에 남는 것은 ‘인물’이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의 발언을 따르게 된다. 나는 한 인물이 카리스마로 대중을 장악하는 상황보다는 다양한 견해들이 충돌하여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선호한다.

 

공화당 경선 정리: 트럼프와 크루즈

Disclaimer: 페북에 지인들과 댓글로 수다 떤 내용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수정없이 이곳에 저장합니다. 저는 미국 정치에 조예가 없습니다. 자료도 근거도 빈약합니다. 그저 어디서 줏어들은 이야기를 옮겼을 뿐이니 과도한 신뢰나 비난은 삼가주세요. 다 그냥 감으로 하는 이야기고 정밀하게는 학자나 전문가들이 퀀트/퀄 분석을 하겠죠.

Q: 최근 트럼프가 힐러리를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던데.

A: 최근에 Rasmussen이라는 곳에서한 여론 조사가 그렇게 나오긴 했는데, outlier로 보시는게 맞을 것 같아요. 그 outlier를 말하는게 좀더 선정적이고 기사감이 되는지라, 한국 언론은 그 결과만 언급하더군요. 저는 huffpost pollster를 참고합니다. 거기 차트는 여러 여론 조사를 취합해서 이동평균으로 추세선을 그리거든요. 링크는 아래를 참조하세요.

2016 General Election: Trump vs. Clinton (실시간)

20160506133535553

(5월 6일 기준)

그리고 하나만 덧붙이면, 미국 선거는 전체 지지율도 중요하지만, 승자독식 선거제 때문에 스윙 스테이트 결과가 더 중요합니다. 전체 지지율은 물론이고, NYT 분석대로 주별로 자세히 보면, 스윙스테이트서도 대부분 힐러리가 확실히 우세한지라, 이리봐도 저리봐도 아직은 트럼프가 큰차로 뒤지는 것이 맞습니다.

Q: 힐러리 이메일 수사나 향후 다른 스캔들이 생길 변수는?

A: 트럼프가 넌지시 이메일 스캔들을 언급하면서 벌써부터 힐러리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긴 하더군요.

사실 작년에 있었던 벵가지 청문회도 공화당에서 힐러리를 잡기위해 준비한 회심의 카드였다고 들었습니다만, 당시는 케빈 맥카시가 뻘짓을 하고 공화당 조사위원회도 어설프게 준비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힐러리만 득을 봤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눙치면서 받아치는데 능숙한 힐러리의 강점이나 풍지박산난 요새 공화당 상황으로 보면 대단한 내용이 아닌 이상 큰 흠집이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힐러리는 르완스키 스캔들 때부터 청문회와 언론 다루기를 경험해온 사람입니다.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는 건 몰라도 터프하게 방어하는 데에는 충분한 단련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결과야 그 때 가봐야 아는 거 겠죠. 정말 대박 껀이 있다면야 아무리 힐러리라도…

아래 기사는 벵가지 청문회가 끝나고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Blow가 올린 기고문입니다.

Q: 트럼프와 개신교/천주교 표심의 연관성은? 트럼프의 인기가 개신교의 반발작용인지?

A: 천주교는 잘 모르겠고요. 트럼프 지지자들 중에서 보수 복음주의자 기독교인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트럼프에 대해서는 예전에 제가 한번 정리글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한 NYT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의 인기가 높은 지역은 인구 구성으로 봤을 때, 보수 복음주의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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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트럼프가 보수 복음주의자를 대변했다고 보기에는 좀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원래 아주 세속적인 사람이고, 옛날부터 낙태를 찬성해왔던 사람이기도 하고요. 물론 선거가 본격적으로 돌입한 이후에는 기독교계의 표를 의식하여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기는 합니다.

오히려 보수 복음주의자의 표심을 대표하는 인물은 테드 크루즈 입니다. 그는 남침례교 목사의 아들이라 교회 문화에 익숙하고, 유세도 잘 들어보면 부흥회 스타일로 진행합니다. 크루즈는 교회 집회를 돌아다니면서 연설을 했고, 연설 할 때 교회에서 좋아하는 부흥 단어 대신 미국의 부활을,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 회복 대신에 레이건 시대의 회복이란 단어를 사용했죠. 이에 대한 포스팅은 링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링크

크루즈의 전략은 가능한한 모든 원리주의자의 표를 끌어드린다 였고, 종교계는 물론이고, 작은 정부 주의자, 극단적인 리버테리안 까지 지지자로 만드는데 어느정도는 성공했습니다. 그의 타협을 모르는 원리주의자 이미지는 2013년 미국 정부 셧다운 사태를 주도한 모습으로 대표됩니다. 결국 나중에는 보수 복음주의자의 표를 마이크 허커비, 벤카슨, 릭 샌트럼 같은 사람에게서 가져오는데 성공하고, 랜 폴에게서 리버테리안의 표를 가져오는데도 성공하죠.

테드 크루즈는 야망도 크고 오랫동안 선거를 준비해온 사람인데, 어떻게 보면 거슬러 올라가서 미국 보수의 대부인 배리 골드워터 라인에 충실하고, 레이건 정부에서도 급진주의로 떨어져 나온 아웃사이더에 속합니다. 오히려 부시는 온건보수에 가깝죠. 크루즈가 온건 보수의 선택을 받은 마르코 루비오를 앞서고 나중에는 온건 보수 주류인 젭부시, 밋롬니, 린지 그램 같은 사람의 지지까지 이끌어 낸걸 보면 그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하긴 했습니다.

다만 갑자기 트럼프라는 예상 못한 변수가 생기면서 선거판이 완전히 바뀐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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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제가 이해하기로는 보수 복음주의계 표심은 크루즈가 대표했지만, 복음주의자들이 동시에 저학력 백인 블루칼라 이기도 했기 때문에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태가 벌어진 거고요.

크루즈는 워낙 야심이 크고 젊은지라 다음 선거에서 또 보게될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

미국 백인 중년 남성 사망률 통계

얼마전에 포스팅 했듯이, (이전 포스트1, 이전 포스트2) 트럼프 현상을 보면서 하나 알게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21세기 들어서 미국 저학력 백인 중년 남성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왔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미국 백인 중년 사망률 통계자료를 블로그에 저장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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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여기. Unseen killer (economist, 2015년 11월 7일자). 관련 페이퍼는 Rising morbidity and mortality in midlife among white non-Hispanic Americans in the 21st century 이고, 페이퍼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디턴 교수이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중년 백인 남성의 사망률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주된 원인은 알콜, 마약 중독, 자살, 간질환의 급증이다. 위의 그래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같은 백인 남성 안에서도 고졸자와 대졸자의 사망률은 현저하게 다르다.

굳이 트럼프 현상과 이 통계를 연결짓자면, 지금까지 술과 마약에 빠져 좌절하고 있던 백인 저학력/저소득층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언어를 사용해서 (인종차별적인 언어 포함) 그들의 편이 되어준 트럼프에 열광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들은 지금까지 투표에 열심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표를 계산할 때 고려하지 않았던 잊혀진 사람들이기도 하다.

예전에 내 직장 보스들 중에 하나는 은퇴를 앞둔 오하이오 출신 백인 할아버지였다. 오하이오는 지금은 쇠락한 rust belt 지역이다. 그분이 한번은 휴가기간에 고향에 다녀오고서, 옛날 친구들을 만나보니 반갑긴 했지만 동네가 너무 우울해졌다고 했다. 한때 미국의 공장으로 활기가 넘쳤던 곳이 지금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대부분 술에 빠져산다며 안타까워 했다. 통계와 기사들을 보면서 예전 보스의 푸념이 생각 났다.

미국의 정체성과 도널드 트럼프

이민자의 나라 미국

몇주 전 있었던 사내 교육 시간. Ice break를 하게 되었다. 자기 소개와 함께 독특한 경험담을 하나 곁들이는 것. 대부분 가벼운 이야기를 한다. 성패트릭 데이에 술집에서 쫒겨난 이야기라던지, 어릴 때 집에서 곰을 키워봤다던지 등등. 그런데 남미 지역 PR을 담당하는 한 매니져가 일어나서 본인은 술집에서 죽은 고양이를 걸어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들 무슨 재미있는 뒷 이야기가 있겠거니 웃었는데, 그 친구는 그것이 갱단의 소행이었다고 하면서 자신은 콜롬비아 난민 출신이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잠시 심각해졌다가 다음 사람 순서로 넘어갔다.

이 친구와 몇번 점심을 할 기회가 있었다. 외국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콜롬비아는 마약 카르텔이 국가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이고,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사회주의가 아닌 우파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동료직원은 이탈리아계 이민 3세 이다. 그 친구와 가끔 음식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주로 한국 음식 이야기를 그 친구는 주로 이탈리아 음식 이야기를 한다. 그 친구는 지금은 이탈리아어를 거의 못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할머니와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온지 5년 정도 되었다. 그동안 나는 미국 사람들 눈에는 한국 이민자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 있는 동안은 한국 출신 이민 1세대 비슷한 처지다. 아이는 한국말에 능숙하고 밥과 김치를 좋아하지만 초등학교에서 미국 역사를 배운다. 벤자민 프랭클린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이야기를 아이에게서 들으면 생경한 느낌이 든다.

다양한 문화 배경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 매일 만나고 그속에서 함께 살면서 이 나라의 독특한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heritage가 뚜렷하게 남아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이를테면 미국 이민자 중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독일계와 England 계 이민자들은 문화적인 정체성이 강하지 않다. 직장 동료 중에 독일계가 한명이 있다. 대화 소재로 독일 이야기를 꺼내봤으나 잘 알지도 못하고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독일계 미국인 이민자들은 1,2차 세계 대전의 기억 때문에 의도적으로 독일인의 정체성을 지운 역사가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The silent minority,economist, 2015년 2월 7일자)

트럼프 지지자들은 누구일까?

그런데 미국에서도 조금 다른 그룹이 있다. 조상을 물어보면 German, Irish, English라고 대답하는 사람들과 달리 American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의 주제인 도날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다. 내가 매일 만나는 미국인들은 대다수 대학교육을 받은(bachelor or master degree), 관리/사무직 직장인 (managerial career) 들이고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나는 트럼프 지지자를 만나본 일이 없다. 나는 도대체 트럼프 지지자 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래는 뉴욕타임즈에서 조사한 트럼프 지지 지역과 인구 센서스 데이터와의 상관관계이다. (The Geography of Trumpism, NYT, 3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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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저학력의 백인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American이라고 보고 있으며, 트레일러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고, 농업/건축인부/공장 근로자 같은 전통적인 업종에 종사하는 블루칼라이고, 미국 출생이면서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인이 대다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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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으로 보면 남부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인이 몰려 있는 Bible belt 지역과 산업기반이 약한 upstate New York, 그리고 과거 미국의 공장이었으나 쇠락한 미시건 일대의 rust belt 지역이다. (출처: Donald Trump’s Strongest Supporters: A Certain Kind of Democrat, NYT, 2015년 12월 31일자)

트럼프 지지자들의 현지 목소리는 링크한 뉴욕타임즈 기사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글 번역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This Is Trump Country (NYT, 3월 4일자) 한글 번역: 트럼프 지지자를 찾아서 (뉴스 페퍼민트)

트럼프가 막말 제조기에 지나지 않을까?

트럼프를 떠올리면 보통은 그의 인종차별적이고 무례한 언사가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종종 그것이 언론이 만들어낸 일종의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 본인도 자신의 이미지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에 대해서 말할 때, “he is crazy but…”이라고 말을 꺼낸다. 그 말인 즉슨 트럼프가 싸가지는 없지만 일리가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며칠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인종차별 주의적인 발언말고도 진지한 이야기가 많다. 이를 테면 트럼프는 군수사업이나 제약 산업과 결탁한 정치인들이 미국을 말아먹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이라크에 수조원을 쓰고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고, 실질적인 의료 독과점으로 미국인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또 자주 말하는 것은 자유무역에 대한 이야기이다. NAFTA나 TPP 같은 자유무역 정책이 미국 제조업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실직자를 양산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심각한 미국의 무역 적자를 말한다. 자신의 회사 경영 경력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적자 보는 회사를 운영하면 경영자가 쫓겨 나야 한다고 한다.  (관련 자료: Millions of ordinary Americans support Donald Trump. Here’s why, the guardian, 3월 7일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하나만 집고 넘어가보자. 경상수지 적자가 회사의 적자와 같은 개념인가? 트럼프가 이야기 하는 무역의 개념은 중상주의에 가깝다. 경제학에서는 200년 전에 내려놓은 접근법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 쉬운 관점이다. 수출을 많이 해서 돈을 벌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싸게 물건을 들여오는 외국은 도둑이라고 본다. 실제 트럼프는 대미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는 중국을 역사상 가장 큰 도둑이라고 표현했다. (출처: On Trade, Donald Trump Breaks With 200 Years of Economic Orthodoxy, NYT, 3월 10일자)

경상수지 적자가 국가 경제를 망하게 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맞는 이야기 처럼 들린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거시 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그 부분을 강조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관련해서 궁금한 분들은 다음 두 글을 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한글로 되어있다. 거시를 공부한 사람들은 상식적인 이야기, 경제학에 익숙치 않으면 조금 기술적인 이야기이다.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불황형 흑자가 문제가 아니라…)

자유무역 이슈는 정치적으로는 이견이 갈린다. 다만 경제학의 관점에서 무역은 상호간에 이익을 주는 행위라고 보며, 보호 무역에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트럼프의 정치적인 이해는 정확히 그 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지지층 중 상당수가 전통 산업에 종사했으나 지금은 일자리를 잃고 쇠락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와 샌더스

잠깐 민주당 이야기도 해보자. 민주당 경선 이야기는 공화당처럼 흥미진진하지는 않아서 한국에 그다지 보도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난주에 있었던 민주당 미시건 경선은 의외였고, 시사점을 남겼다.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정도 우세를 보이던 힐러리를 샌더스가 누른 것이다. Rust belt에 위치하는 미시간에 클린턴이 통과시킨 NAFTA에 대한 피해의식 남아 있다고 보는 분석이 많다. 그리고 샌더스는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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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민주당 여론조사. 출처: huffpost pollster)

최근 샌더스와 트럼프에서 공통점을 찾는 분석 기사들이 보인다. 몇몇은 샌더스와 트럼프가 자유무역에 반대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관련 기사: What Trump and Sanders Get Wrong About Free Trade, NYT, 3월 16일) 샌더스 지지자 들에게는 트럼프가 엮이는 것이 불쾌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무역 뿐 아니라, 의료개혁, 외교 방향 (고립주의) 등에서 생각보다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샌더스을 지지하는 사람들 모두가 rust belt 지역 사람은 아니다. 젊은 지지층이 있고, 그들은 샌더스의 한결같음, 대학/의료 개혁에 대한 지지, 월가에 대한 비판의식에 공감했다. 그러나 샌더스 인기에 일정 지분을 차지하는 중서부 백인 남성의 지지는 이러한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고서 이해하기 힘들다.

맺으며

이야기가 길었다. 올해 미국 대선은 힐러리 vs. 트럼프의 구도로 정리 되는 분위기 이다. 올해는 트럼프 이야기를 듣기 싫어도 계속 들어야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이 시점에서 나름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물론 전문성은 떨어지는 이야기이고, 그저 신문 기사들 요약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오와 코커스 감상

어제 아이오와 코커스를 보고서 느낀점을 간략하게 남긴다.

들어가기 전에, 나는 특정인을 지지하지 않고 동네 싸움 구경하듯이 관전만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게다가 미국 정치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예측 같은 것은 할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저 현재 돌아가는 이야기만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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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승자는 누가 뭐라해도 테드 크루즈이다. 7 포인트 정도 뒤지는 여론 조사 결과를 뒤집고 트럼프 대세론을 잠재웠다. 아이오와는 50개 주 중의 하나로 산술적으로는 경선에서 1% 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서프라이즈를 보여주면 분위기를 타게된다. 아무래도 여론조사와 실제 경선은 무게가 다르다. 크루즈는 아이오와에서 보수 기독교 층과 티파티의 지지를 바탕으로 승기를 잡았다. 그런 점에서 다음주에 있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중요하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와 크루즈의 지지율은 아이오와 보다 차이가 큰데, 여기서도 크루즈가 이기면 트럼프에게는 치명타이다.

<아이오와 공화당 지지도 여론조사 (source: HuffPoll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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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트럼프이다. 지금까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위너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던 그가 뉴햄프셔에서도 고전한다면 버티기가 힘들어진다. 그가 아이오와에서 부진했던 것은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자와의 차이, 저학력자 지지층이 경선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점, 아이오와의 보수 기독교층 등등…) 핑계를 대어봤자 이득될게 없다. 그의 지지가 일정부분 승리자로서의 이미지에 기대왔던 것을 생각하면 트럼프는 꾸준히 이겨야 한다. 그는 리얼리티 쇼에서 종종 ‘No one remembers second place’ 같은 말을 하지 않았던가.

마르코 루비오는 나름 선전했다. 공화당 주류의 지지를 받는 그는 아이오와에서 strong third를 했다. 이를 바탕으로 온건 보수층의 표를 결집한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는 경선 초반 신선한 정책을 바탕으로 젊은 층의 지지를 모았다. 그러나 치열한 공화당 경선판에서 흔들리며 같이 막말에 동참하여 지지율이 지지부진해 졌는데, 아직은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벤카슨과 젭부시는 아이오와 경선 이후 제대로 선거운동을 진행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특히 젭부시는 치명타를 입었다. 아이오와에만 $14 million 를 쓰고서 5,165 표를 얻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민주당은 셈이 좀 복잡해보인다. 특히 지지자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분들은 막판까지 추격한 모습을 보며 실질적인 동률(virtual tie)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힐러리를 지지하는 분들은 어쨌든 이겼으니 선방했다고 평가한다. 다음번 경선이 있을 뉴햄프셔는 샌더스 의원의 텃밭이므로 그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이어 치뤄지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에는 힐러리가 우세하다. 이쪽도 역시 좀더 지켜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샌더스 의원이 이렇게까지 지지를 받을지 상상하지도 못했다. 확실한 것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힐러리 지지자와 비교해 보았을 때) 상당히 열정적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지지를 표명할 때 자동차 트렁크에 스티커를 붙인다. 지금은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지 않았고 경선 시즌임에도 종종 샌더스 스티커를 붙인 차량을 본다. 반면 아직까지 나는 힐러리를 지지 스티커를 본 적이 없다. 페북과 트위터에서의 buzz도 샌더스 쪽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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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돌발 변수가 또 있다. 바로 전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이다. 그는 수차례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간 인물이다. 일종의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인인데, 경제 이슈에는 공화당 지지, 인권/총기 관련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포지션이다. 그는 힐러리 지지를 선언했으나 지지부진한 그녀의 성과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는 샌더스의 승리가 확실해지면 무소속으로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트럼프를 능가하는 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