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리스트 감상을 올렸는데, 쓰다보니 책수다가 갑자기 떨고 싶어서 몇개 더 올린다. 책수다를 떨다보면 사그라들어가는 책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고… 어쨌든. NYT 올해의 책은 10권이 올라오는데 이 리스트는 열흘 전쯤 올리는 주목할만한 올해의 책 100 개 중에서 추린다. 100개 리스트에서 관심있게 봤던 책들을 꼽아봤다. 100권 리스트는 아래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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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Notable Books of 2018 (NYT, 11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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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AL DISCORD – Erasmus, Luther and the Fight for the Western Mind By Michael Massing
예전에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는데,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애증 관계이다. 그리고 이책은 딱 그 이야기를 다룬다. 어찌 관심이 안갈 수 있겠는가. 다만 이 책의 가장 큰 난관은 분량이다. 1000 페이지. 벽돌책 중에 갑류이다. Chapter 1 만 읽고서 책장을 직행한 다음 장식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두 인물의 드라마는 나의 지름신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고고한 학자 에라스무스는 혁명가 루터의 사상적인 토대를 마련해주었으나, 루터의 혁명을 거부한다. 역사는 종교개혁가 루터를 기억하지만 에라스무스의 사상은 살아남아서 르네상스/인문주의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영향을 남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는 계몽주의와 리버럴리즘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현대로 끌고 오자면 이 둘의 대립은 cosmopolitanism과 유럽식 리버럴 분파 (에라스무스의 후예들?), 미국식 근본주의와 복음주의(현대판 루터의 후예들?) 경쟁관계로 볼 수도 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성향상 에라스무스를 더 좋아한다. 그리고 루터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의 선이 굵은 명확한 논리, 지적인 용기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말년에 있었던 정치적인 횡보와 반유대주의의 씨앗을 뿌린 일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예전에 올렸던 에라스무스 관련 포스팅은 아래 링크
회색분자와 에라스무스 (2015년 3월 5일자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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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INGTON BLACK By Esi Edugyan
이 소설은 올해의 책 10권 목록에도 있다. 맨부커상 short list에도 올라간 책이라 나름 주목받은 책이기도 하다. 책의 배경은 1830년대 영국령 바베이도스. 참고로 1834년은 영국이 노예 해방을 한 해이고 책의 주인공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이다. 배경만 따져보자면, 흑인 노예의 고통스러운 삶이 펼쳐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모험소설이다. 주인공 워싱턴 블랙은 그의 백인과 열기구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한다. 열기구로 대서양을 건너기도하고, 북극을 도보로 건너기도 한다. 조난을 당하고 구조선을 타며, 결국에는 캐나다로 돌아온다. 나는 plot을 읽으면서 생뚱맞게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가 떠올랐다. 어찌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지는 않다. 나디아 자체가 해저 2만리를 바탕으로 그려진 이야기이며, 시대적인 배경도 유사하고, 흑인이 주인공인 이야기인지라. 단지 소설은 그러한 스팀펑크 느낌은 없는데, 그냥 내가 그 이야기를 떠올린거다. 어쨌든 내가 이책을 읽게 된다면 왠지 나디아 이야기 추억에 다시 젖지 않을까 싶긴하다. 내가 그렇게 좀 생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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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이책 역시 10권 리스트 중에 하나이다. 내가 이책을 만약 읽게 된다면 책이 서점에 많이 깔려서가 아닐까 싶다. 자주 보다보면 왠지 손에 가니까. 그만큼 베스트셀러이긴하다. 책 내용은 몰몬교 집안에서 홈스쿨링으로 자란 분의 자서전. 말이 좋아 홈스쿨링이지, 그녀의 홈스쿨링은 세상과의 접촉을 단절로 읽힌다. 그의 부모는 세상 지식을 독소로 보았고, 지하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쉽게말해 세상과 단절된 여성의 성장기이자 (이여자는 나중에 독학으로 옥스퍼드대에 진학한다.), 끊임없는 지식을 향한 욕구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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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RAGING SEA – Thirty-Three Mariners, One Megastorm, and the Sinking of the El Faro By Rachel Slade
이 책은 2015년 있었던 화물선 El Faro 침몰을 묘사한 논픽션이다. 이책이 인상적인 점은 대부분의 대화나 사건 묘사가 화물선의 블랙박스 기록과 침몰 순간을 찍은 승무원들의 기록, 가족과 친구를 향한 마지막 작별의 문자들에 기초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퍼팩트 스톰’ 같이 이전에 해상 재난을 다룬 대부분 기록들이 상상에 기초를 한다면 이제는 실제의 생생한 기록들로 내러티브를 재구성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재난 영화/기록에 그닥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래도 세월호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역시 이런 기록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쯤이면 누군가는 그런 기록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4년이 지난 지금 돌아볼 때, 그게 그렇게 정치적인 사건이 되어야 했을까 싶고, 그저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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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PRISON – A Reporter’s Undercover Journey Into the Business of Punishment By Shane Bauer
이 책 역시 10권 리스트에 들어간 책. 미국의 영리 교도소에 위장 취업으로 들어간 한 저널리스트의 르뽀. 미국의 교정제도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산타님의 관련 포스트들을 보고서 생겼다. 미국은 (규모면으로) 넘사벽급의 세계 최대의 죄수를 가지고 있다. 정부 재정으로 감당이 안되기에 영리 교도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게 전체의 10% 정도이다. 저자는 루이지에나에 형무소 직원으로 취업하는데, 위장취업이 들키기 까지 4개월을 일했다고 한다. 비참한 현대판 노예의 실상을 고발한다. 저자는 미국 영리 교도소가 예전 노예 농장을 모델로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목화 농장의 최대 생산지 중의 하나가 영리 교도소 이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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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10권짜리 올해의 책 리스트 감상은 링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