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판기에서 공짜로 생긴 바로 그 스니커즈.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가장 힘겨운 순간에 꺼내 먹어야지.
어제 포스트: 자판기와 스티커즈 두개
자판기에서 스니커즈를 뽑았다. 하나를 뽑았는데 두개가 나왔다. 별거 아닌데 기분이 좋다. 사람의 마음이란…

본 사람은 없었겠지?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신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독일에서 합창단원을 하다가 지금은 스위스 시립 합창단원으로 직장을 얻어 정착하셨다. 그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독일은 동네마다 합창단이 잘 조직 되어있고 안정적으로 운영이 된다고 한다. 특히 여자 알토 파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구직이 비교적 수월하다고 했다.
합창단 일자리가 많아서 원한다면 (그리고 심심하고 단조로운 유럽 생활에 만족한다면) 성악 전공자가 독일에 정착하기 쉽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성악 유학을 가는 분들 중에 이탈리아로 가시는 분들은 귀국하시는 분들이 많고 독일 쪽은 남는 분들이 꽤 된다고 들었다.
신학도 아울러 전공하신 그분께서는 독일에는 기독교의 유산이 사회 전반에 여전히 남아있다고 몇차례 언급 했다. 지금은 독일도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속국가라고 봐야하지만 문화/사회적으로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기틀을 잡은 나라이고 그 중에서 루터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이왕 음악이야기로 수다를 시작했으니,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자. 독일에는 130여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독일에는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가 80개쯤 되니까 (위키피디아 기준) 왠만한 도시는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규모이다. 그렇게 많은 오케스트라 운영이 가능하려면 그만큼의 관객이 있어야 한다. 독일인에게 철마다 클래식 공연장에 가는 일은 자연스럽다. 앞서 언급한 그분은 독일인이 이렇게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이 된 것을 루터의 영향이라고 보았다. 루터는 음악이 그리스도인에게 종교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았고 이를 통해 사탄과 싸우는 무기가 된다고 했다. 반면에 루터는 미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마침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이번주에 관련한 기사가 나서 공유한다. 해당 기사는 루터가 독일에 끼친 영향에 대해 적고 있다. 그 예중에 하나가 음악에 대한 애정이다. 독일인이 클래식 콘서트를 즐기는 건 일종의 정례화된 종교 행위 같은 느낌까지 준다. 루터가 독일에 끼친 영향은 음악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디자인, 출판, 경제관 등 사회 전반에 걸쳐있다.
물론 나는 어떤 하나의 요인이 (이경우에는 루터라는 사람이)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독일만 봐도 루터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자니 섭하다. 독일에는 칸트 같은 사상가, 바하/헨델/베토벤 같은 음악가, 하이젠 베르크 같은 과학자 처럼 독일 뿐 아니라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쨌든 기사 자체는 재미나게 읽었다. 내용 정리/저장 해둘 겸 해서 공유한다.
해당기사: The Economist | Charlemagne: Nailed it (1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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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1483-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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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루터는 독일의 어떤 분야에 영향을 끼쳤을까. 첫째 독일인의 미적인 감각이 그러하다. 루터는 기독교인은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실용적이고 소박한 바우하우스 스타일은 루터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 후에 스웨덴에도 영향을 미쳐 IKEA 스타일이 되었다고. (루터교는 북유럽에도 전파되었다.) 생각해보면 루터교 목사의 딸인 메르켈 총리나 본인이 루터교 목사인 요하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소박한 이미지의 사람들이다. 옆나라 프랑스의 화려함과 비교하면 이는 더욱 도드라진다.
또 독일은 출판 시장이 크다.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시장이라고. 루터와 연관지어 생각해보자. 루터는 성경을 독어로 번역 배포 하면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그는 빈부/남녀/노소에 관련없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는 독일의 문맹률을 낮추는데에 공헌한다.
마지막으로 독일인의 경제 관념이다. 막스 베버가 1904년 ‘프로테스타티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을 통해 논증한 바에 따르면,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베버가 말한 신교는 주로 칼빈주의와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를 말한다. 칼빈은 세상의 모든 직업은 숭고하다고 보았다. 베버에 따르면 칼빈의 사상은 개인이 부를 추구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독일식 자본주의는 영미권 자본주의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부채를 최소한으로 가져가고 인플레이션 억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독일 경제의 방향성은 (물론 전후 극악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바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루터의 사상에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루터는 구원 이후에 기독교인이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독일어로 work는 beruf이고 직업은 (영어 calling) berufung 이다. 어원이 같다. Gerhard Wegner라는 한 신학자 역시 북유럽과 독일 복지의 뿌리를 루터식 사회주의 Lutheran socialism에서 찾았다.
루터의 유산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루터는 유대인을 배척했다. 유대인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이유에서다. 어떤면에서 루터의 생각은 전후 독일인의 유대인 혐오에 사상적인 배경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해당 기사는 세상의 권위에 순종하라고 설교하고 농민반란을 진압하는 군주를 지지했던 그의 보수적인 성향이 현재 독일인의 국민성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올해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정확하게 5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니까 1517년 10월 31일 그는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독일이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카톨릭을 포함해도 기독교인은 삼분의 일이 채 되지 않는다. 특히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비텐베르크는 지금에 와서 유럽에서도 가장 비종교적인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독일 관련 이야기에서 종종 루터의 유산을 발견하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역사에 실재했던 한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클 수 있는가를 실감하고서는 깜짝 놀라곤 한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영역본 Human Acts NYT 리뷰. 확실히 한강이 영미권에서 주목 받는 작가이긴 하다. 서점 매대에서도 그의 책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책소식이 반갑기도 했지만, 리뷰 내용도 좋아서 옮겨둔다.
‘채식주의자’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어서 읽기가 꺼려졌는데 ‘소년이 온다’는 왠지 사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코맥 맥카시의 로드 이후에 다시 나를 우울하게 하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이가 번역본의 일부를 발췌했길래 읽어봤다. 그 중에서 다음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다.
Where shall I go? I asked myself.
Go to your sister.
But where is she?
Go to those who killed you, then.
But where are they?
어제 후배와 페북에서 잠깐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일까.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image source: http://on.forbes.com/60138BMqU)
작년 포브스지 통계. 재미로 퍼왔다. 1,2위가 압도적이고 나머지는 비슷하다.
가봤던 곳을 떠올려 보는 일도 나름 즐거웠다. 숫자를 보면서 관련한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그냥 버릇. 쇼핑을 즐기진 않지만 한번 둘러보는 정도는 경험삼아 나쁘지 않았던 듯. 뉴욕, 파리, 런던, 쮜리히, 홍콩을 가봤으니 나머지도 한번은 가볼 이유가 생겼다.
갑자기 명동이 가보고 싶네. 가게 된다면 그게 언제가 될런지…
뉴욕타임스 기사를 하나 공유한다.
정치를 떠나서 문화적으로도 미국이 얼마나 양극화 되어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 도시화 비율 높은 동부와 서부, 흑인 비율이 높은 남부, 시골이 많은 나머지 지역에서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다르다.
동부와 서부에서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모던패밀리, 빅뱅이론, 왕좌의 게임 같은 쇼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미드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프로그램들. 한국인들에게 미국 사람들의 이미지는 동부와 서부의 모습이 전부일 때가 많다.

반면에 시골이 많은 나머지 지역은 ‘덕 다이너스티’ 나 ‘댄싱 위드 더 스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다. 예전 보스가 전형적인 오하이오 러스트 벨트 출신 50대 백인 아저씨 였는데, 덕 다이너스티의 팬이였다.
궁금해서 몇번 봤었다. 무슨 재미로 보나 싶더라. 루이지애나의 시골 백인 남성들이 주인공인 리얼리티 쇼인데, 사냥을 가거나 아니면 하루 종일 총기 이야기나 수꼴 스런 잡담을 한다.

또하나 구분되는 지역은 흑인들이 많이 사는 남부 지역. 이쪽은 흑인 취향의 쇼들이 인기인데, 이를 테면 힙합 음악드라마 ‘엠파이어’나 아님 킴 카다시안의 리얼리티쇼가 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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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즐겨보는 티비 프로그램과 정치 선호도가 거의 일치한다. (예전 보스는 ‘덕 다이너스티’의 팬이기도 하고 트럼프 지지자 이기도 했다.)
샌프란 출장 중에 집어든 소설이다. 2007년 퓰리처 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시간이 넉넉할 것이라 생각해서 책을 몇권 들고 왔는데 피곤해서 많이 읽지는 못했다. 반 정도 읽은 시점에서 메모를 남긴다.

플롯은 단순하다. 큰 전쟁 이후 인류 문명은 완전히 무너진다. 모든게 불타버리고 재로 덮인다. 한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암석이 얼어 붙어 깨질 정도로 춥고 하늘은 항상 잿빛이며 모든 것이 젖어서 눅눅하다. 굶주린 무법자들이 언제 덮칠지 모른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아버지와 아들에게 먹을 것은 항상 부족하다.
여러 가지 결로 읽힐 수 있는 소설이지만 내게 이책은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부분만 옮긴다. 번역본이 없는 관계로 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Can I ask you something? he said.
Yes. Of course.
Are we going to die?
Sometime. Not now.
And we’re still going south.
Yes.
So we’ll be warm.
Yes.
Okay.
Okay what?
Nothing. Just okay.
Go to sleep.
Okay.
I’m going to blow out the lamp. Is that okay?
Yes. That’s okay.
And then later in the darkness: Can I ask you something?
Yes. Of course you can.
What would you do if I died?
If you died I would want to die too.
So you could be with me?
Yes. So I could be with you.
Okay.
인생의 한 챕터를 겪고 나서 그런 다음에야 이해가 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굳이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말 몇마디와 행동만 봐도 등장인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아버지가 되는 경험은 인생의 그런 한 챕터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세 사람이다. 삼주 정도 떨어져 있으니 그 무게를 더욱 느낀다.
내가 남자다운 사람인가? 남자다움을 내 영역을, 내 가족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자세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그다지 남자다운 편이 못된다. 모름지기 수컷이라면 쥣뿔도 몰라도, 자기는 속으로 곪아들어가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는 법이다. 때로는 그런 모습이 치기로도 나타나고, 때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도 나타난다. 나는 반대로 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다.
작년 여름 그런 무게를 느낀 적이 있다. 몇년 만에 한국에 돌아갔더니 양가 부모님들이 부쩍 늙으셨다.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이제 내가 누군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야 한다는 걸 알게되었다.
남자가 늙는 것은 물리적인 나이가 상관이 없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면 그때부터 훌쩍 늙기 시작한다. (그 시점은 은퇴를 전후 할 때가 많다.) 장남이지만 그다지 무게를 못느끼고 살았던 나는 태평양을 건너왔고 부모님들은 그새 나이가 드셨다.
삼주 동안 샌프란에 와있는 동안 십개월 된 작은 딸내미가 아팠단다. 중이염으로 열이 꽤 올랐다고. 큰애는 잔병치레를 한일이 없었는데 작은애는 종종 아프다.
큰애도 이번에는 유난히 아빠를 찾았다고 한다. 처음 며칠은 아빠를 생각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꼭 세수를 하기 전에만 울었다고. 울고나면 다시 세수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웃기는 녀석이다.
애들한테도 애들 엄마한테도 그다지 잘해준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내 빈자리를 느끼는 사람이 지구상에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뉴욕타임스 사진 및 동영상을 공유한다.
아낙들이 잡동사니를 끌어모아 요리를 한다. 한국에서 전쟁통에 꿀꿀이죽이 저런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끼나 두끼 분량 쯤 될까. 그래도 허기를 덜고자 오십여명이 모였다. 먹거리는 천진한 아이들을 웃게 만든다.
예멘이나 남수단 같은 나라가 시리아에 비해 국제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쪽 동네 사람들은 시리아에서 처럼 유럽으로 건너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image source: Reu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