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유치원 잡담 (한국식과 미국식??)

아이가 한국에 세달 가량 들어가 있다. 세달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한국말도 가르킬 겸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세달 등록을 받는 데가 거의 없었는데, 찾아보니 집앞에 한 곳 있었다. 한영 병용 유치원이라 좀 비쌌지만 아이를 집에 두기만 하면 심심해 할테다.

한국식과 미국식??

한달 가량 유치원에 다녔다. 아이가 몹시 즐거워 한다. 자리가 있는 반이 한살 어린 6세 반이었다. 한살 어린 동생들 사이에서 왕언니 노릇하는 게 좋은가 보다.

언제나처럼 수다스러운 아이는 매일 유치원 소식을 전해준다. 어제도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치원이 재미있어? 미국하고 뭐가 달라?” “뭐~ 재미있지. 근데 가끔 선생님이 무서울 때가 있어.” “어떻게 무서운데?” “선생님이 화나면 진짜 무서워~ 엄마보다 무섭다니까. 무서운 표정을 짓고서 말을 지~인~짜 빨리해.” “그럼 (빠른 톤을 흉내내면서) 이리 앉으세요. 그렇게 하면 안돼요. 뭐 이런식으로?” “그것 보다 더더 빨리.” “(눈을 부릅뜨고서 좀더 빠르게) 빨리 앉아요. 뭐 이렇게?” “조금 비슷하네.”

“너두 가끔 혼나?” “아니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 말을 잘 안듣더라구.” “그치만, 미국도 선생님들이 혼낼 때는 무섭잖아. Ms. Libby도 ‘Don’t do that. Sit down here.’ 뭐… 이렇게 말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선생님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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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r)

아이가 잠이 들고, 아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까 아이랑 얘기 하는 것 들었지?” “응” “내가 보기엔 한국 애들이 좀더 버릇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 어버이날 학부모 참관수업 갔을때 보니까 좋게 말해서는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더라구.” “그것도 애들 나름이지. 미국도 다루기 힘든 애들은 힘들잖아.” “그렇긴 하지만… 한국 6세반이랑 동급인 pre-K* 다니는 애들은 순진했던 것 같은데. ” “그렇긴 하네.” “미국 교육이 좀더 자립심을 키우는 방식이고, 미국 부모들이 더 엄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그건 case by case지. 으이구, 우리 자식이나 잘 키우지 별 걱정이야.”

그렇긴 하네. 별 걱정이다.

(*미국은 만 5세는 kindergarten, 만 4세는 pre-K을 다닌다. kindergarten 부터 의무교육 과정이다.)

된장 발음 영어

딸아이는 발음에 좀 민감한 편이다. 가끔 나오는 내 된장 발음이 거슬리는 지 교정해주기도 한다. 좀더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 영어 발음에 참견을 할 때도 있었다. 발음 교정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가족 말고는 하지 말라고 아이에게 가르쳤다. 다행히 지금은 남의 발음을 교정 하려 들지 않는다.

아이 유치원이 한영 병용 유치원이라, 한국 선생님도 영어를 쓴다. (원어민 선생님도 따로 있긴 하다.) 그런데 아이가 한국 선생님의 영어 발음이 거슬렸나보다. 슬쩍 선생님에게 가서 자기한테는 영어를 안써도 된다고 했단다. 선생님 입장에서, 영어권에서 온 딸아이가 호응을 잘 해주어야 영어수업하기가 수월할 텐데, 오히려 딸아이는 한국어 쓰기를 더 좋아하니 그것도 문제이긴 하다.

+ 덧: 지난 주에 써둔 글을 정리해서 오늘 포스팅했음.

치킨이 힐링푸드?

몇 년만이라서인가. 한국이 낯설었다. 비슷한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군대 제대 하고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가 그러했다. I don’t belong here. 익숙한 곳인데, 조금은 달라졌고, 내가 속한 곳은 아니라는 느낌.

열흘 간, 가족/친구들을 만나고 다녔다.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괜찮은(?) 식사를 했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어르신을 만날 때는 주로 깔끔한 웰빙류. 나물/비빔밥/옛날 우동/한우/부페 등등. 친구들을 만날 때는 트렌디하거나 가벼운 음식. 파스타/브런치 등등. 나쁘지는 않았다.

오늘 점심 마침 일정이 없길래, 드러누워 치킨 배달을 시켰다. 반반치킨. 정오에 시켜 먹는 치킨은 바삭하다. 그날 올린 기름으로 처음 튀긴 닭이라 더 깔끔하다. 미국에서 가끔 한국드라마를 볼 때, ‘치맥’을 사들고 퇴근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면, 한국 생각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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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jjdak.co.kr)

양념반, 후라이드 반을 먹으니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음식을 먹으니 이제야 서울에 와 있구나 싶더라. 아무래도 내 입맛 시계는 사년전 서울을 떠나던 그 때의 배달음식 기준으로 고정 되어 있나부다.

[재공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어린이날이다. 작년에 아이들에 대해 써둔 글이 있어 재공유 한다.

isaacinseoul's avatarIsaac의 생각저장 창고

캡처

이번주 목요일에 회사에서 ‘Take your child to work day’ 행사가 있었다. 행사는 오전과 오후 순서로 되어있었는데, 오전에는 아이들에게 회사소개를 하고 회사 투어를 했고 오후는 카니발이 있었다. 카니발에서는 각 부서별로 부스를 마련해서 솜사탕을 팔거나 물풍선 던지기, 링던지기 같은 가벼운 게임을 했는데 수익금은 donation한다. 딸아이는 어려서 오전순서는 참여하지 않고 오후의 카니발만 참석했다. 카니발이 끝나고 내 책상도 잠깐 들렸는데 딸애는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동료들에게 인사도 시켰다. 아이도 즐거워 했고 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식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아이가 위험할까봐 뾰죽한 물건을 치우기도 하고, 몸에 좋거나 맛있는 음식을 아이를 위해 따로 챙겨두기도 한다. 아이가 교양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태교도 하고, 커서는 책도 읽히며 음악회나 미술관도 데려가고 박물관에 따라가기도 한다. 아이가 사는 세상이 좀더 좋았으면 하는 마음에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환경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도덕이니 규범이니 하는 것도 아이가 없는 사람의 마음과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천양지차이다.

한 블로거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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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 정책의 방향 – KDI

근래에 본 보고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보고서이다. 이런 걸 직접 조사하는 분들이 계시구나… 딱히 말이 필요 없다. 채훈아빠님의 포스트를 참조하시길…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 정책의 방향 – K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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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90년대 말만해도 서울대에는 6대 광역시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주위의 친구들도 그랬고… 연대에 다니는 친구들이 몇 있어서 더 비교가 되었는데, 서울대는 지방수재들도 꽤 많이 모이는 학교 느낌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옛날 이야기 인가부다.

볼티모어 폭동에 대해 동료와 수다를 떨다가

지난주 월요일 (2015/4/27) 페북에 끄적인 글 저장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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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볼티모어에 폭동이 일어났다. 오늘부로 통금이 발효되었는데, 저녁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이 금지된다.

폭동은 경찰의 과잉폭력 때문에 발생하였다. 별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경찰과 눈을 마주치자 도망친 흑인 청년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폭력을 사용했고, 청년은 1주일만에 사망했다. 청년의 장례식은 폭동으로 금새 변했다.

마침 뉴스가 나오던 시간, 회사의 흑인 동료와 펍에 있었다. 화제는 자연스레 흑인과 경찰의 과잉 공권력으로 번졌다. 그 친구는 경찰이 모두 나쁘지는 않지만, 걔중에 좀더 폭력적인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항상 polite하게 대응하는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이 주제는 워낙 결이 많은 주제인지라 짧게 말하기 어려운데 (이를테면 미국 경찰의 과잉 공권력,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문제. 인종간 갈등 등등…) 그래서 그냥 짧게 이야기 하련다. ㅎㅎ

그 중에 미국 경찰의 공권력. 미국은 생각 외로 경찰의 힘이 강하다. 범죄자들에게 총이 있는 만큼 그들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언제든 총을 뽑아든다. 경찰과도 쉽게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랬다가는 이동네에서는 벌집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강력한 공권력은 역사적/사상적 배경을 다 집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간단하게 내가 느낀 점으로는 자유와 책임에 대한 이나라 사람들의 생각때문이 아닐까 싶다. 개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은 정말 가!차! 없다.

작년에 퍼거슨시 사태에 이어 올해 또 한 건이 터졌다. 우리 동네야 별 영향은 없지만, 어쨌든 뉴스보니 마음이 심난해진다.

Amid Riots, Maryland Governor Will Deploy National Guard To Baltimore (NPR, 2015년 4월 27일자)

한국에서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구?

이번 주말에 한국을 방문한다.

이 이야기를 회사 동료에게 했더니, “좋겠다. 그럼 코끼리도 타고 그러는거야?”라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더라. 좋은 의도로 말했는데, 민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한국에는 코끼리가 없어.”정도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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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무늬만 아시아 사람인데, 할머니가 태국 출신이라 어릴 적에 태국에 한번 가봤단다. 그때 코끼리를 타본게 그 친구가 아는 아시아의 전부이다.

딱히 뭐라할께 못되는게, 당장 누가 아르헨티나에서 왔다고 하면 거기서 커피 마시면 맛나겠다. 내지는 거기 여인들은 정열적이라며? 또는 거기도 독재자가 대통령이야? 말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친구가 만약 흥분해서 자기네 나라가, 브라질보다 1.5배 정도 부유하고 (인당 GDP 기준으로) 남미의 경제를 이끄는 파워호스이며, 농산물 수출 강국이면서, 동시에 하이테크가 엄청나게 성장하는 곳이야. 라고 말하면… 그래…라고 웃음정도 짓고, 속으로는 ‘그래도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잖아… 치안도 안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도 생각하지 않을까?

아… 아르헨티나 얘기는 경험담 아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출신 친구가 있는데, 두나라가 서로간에 미묘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신기했던 적이 있다. 이를테면 브라질 사람은 아르헨티나 사람이 잘산다고 뻐긴다며 질투(?)하고, 아르헨티나 사람은 브라질 사람이 별것도 없이 자존심이 세다고 말한다. 브라질만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이기도 하다.

[재공유] 장자가 말한 심재(心齋) 그리고 바울이 말한 자기 비움과 자족

오늘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몇몇 분들이 많이 속상해 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그 몇몇 분들은 삶과 사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들이기에 안스럽기도 하다.

그 분들을 보면서 장자의 4편 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공자와 안회의 대화가 생각났다. 이와 관련해, 작년에 써둔 글이 있어서 재공유한다.

이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사실 그분들은 나의 글을 읽고 화가 나거나 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아량을 가지고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읽는다는 전제하에서..^^)

isaacinseoul's avatarIsaac의 생각저장 창고

오늘은 좀 길고 심오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 이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회 참여/소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론은 기쁨/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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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장자 초상화)

장자의 4편 인간세(人間世)는 공자와 그의 제자 안회의 대화로 시작을 한다. (주: 안회는 공자의 수제자이고 공자의 자는 중니임) 원문: 장자 인간세편

안회가 중니를 만나 여행을 떠나겠다고 청했다. 이에 중니가 물었다.
” 어디로 가려는가?”
” 위나라로 떠나려 합니다.”
” 어째서 위나라로 가려 하는가?”
” 제가 듣기에 위나라 왕은 나이가 젊은데다가 행실이 사나워 나라일을 가벼이 경영하고 자기 허물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백성을 죽도록 함부로 내버려 두어 시체가 흡사 연못에 무성한 파초와도 같이 많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저는 일찍이 선생님께서,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들어가라, 어진 의사에게는 환자가 많이 모이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대로 다스리는 방법을 강구하면 위나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니가 말했다.
” 어허! 자네가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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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 Y축 물결무늬 차트 그리기

셀 차트 그리기 팁을 하나 공유한다.

들어가며

오늘 회사에서 자료를 하나 작성하는 데 차트를 그릴 일이 있었다. 대강 아래와 같은 차트이다. (데이타를 그대로 공개하기 뭐시기 해서 항목은 A/B로 바꿨다.)

이런 차트를 속칭 물결 무늬 차트라고 한다. 영어로는 broken y axis char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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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를 그릴 때 비교대상의 scale이 다르면 곤란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위의 차트를 원래의 scale로 그리면 아래와 같이 된다. 이렇게 그리면, A가 감소하는 것과 B가 증가하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차트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는 것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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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 사용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는데, 물결 무늬 차트가 그 중에 하나이다. 사실은 물결무늬는 그 중에서 가장 안좋은 방법이다.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크기 때문에. (역으로 말하면 숫자로 눈속임하기 딱 좋은 방법이다.)

Academic한 분야에서는 이럴 때, 로그스케일 차트를 사용한다. 그런데 숫자를 싫어하는 일반인들에게 로그를 언급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일은 아니다. 로그를 입밖으로 내는 순간 사람들은 학창시절 끔찍히 싫어했던 수학을 떠올리며 거부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패널 차트라는 게 있는데, 그건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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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을 같이 보여주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는 적어진다. 단점은 차트가 익숙치 않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진 않는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적당히 타협을 해야된다. 일반인(이라고 쓰고 데이타에 무지한 높으신 분들이라고 읽는다.)을 대상으로 작성하는 자료에 익숙하지 않은 차트를 던져주고서 공부 하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 마지막 선택지가 물결 무늬 차트이다.

말하자면, 이 글은 오해를 불러오는 차트를 어쩔 수 없이 그려야 하는, 먹고사니즘에 굴복한 누군가를 위해서 쓰는 글이다.

Y축 물결무늬 차트 그리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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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기본 차트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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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축 차트 단위를 보기좋게 (70,000,000을 $70M으로 나오게) 바꿔준다. M은 million의 줄임말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경우는 숫자 서식을 $#0,,”M”이라고 바꿔주고서 옆의 Add(추가) 버튼을 눌러준다. (참고로 나의 경우는 오피스 2013 영문판을 쓰는데, 버전에 따라 서식을 바꾸는 법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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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를 하나 복사해서 더 만들어 준다. 이제 차트 두개를 겹쳐서 눈속임을 할 껀데, 그를 위해서 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처음 차트를 차트1. 두번째를 차트2 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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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1의 Y축 범위 최대값을 바꿔주자. (이 경우에는 20 million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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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2의 legend (한국말로는 범례)와 X축을 지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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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2의 높이를 차트1의 반만큼으로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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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2의 Y축을 상단으로 쓸 정도의 Scale로 바꿔 준다. (이 경우는 최소값 50M, 최대값 7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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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1과 차트 2를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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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기본 도형중에 물결무늬를 찾아 삽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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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형의 선을 투명으로, 색채우기를 흰색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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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어보이지만, 이걸로 차트를 가려서 물결 무늬를 만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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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물결무늬로 차트를 가리면 위와 같이 된다. 여기서 그냥 끝내도 되지만, 두개의 차트가 겹쳐지는 부분의 이음새가 거슬리는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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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하나 만들어다가, 앞의 물결 무늬에서 처럼, 흰색으로 만들어서 이음새를 가려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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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차트는 위와 같다.

가능하면 쉽게 쓰려고 했는데, 사람에 따라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보기에는 복잡해 보여도, 몇번 연습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차트를 만드는 과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잡기술이 들어 있는데, 이정도만 익혀도 어디가서 엑셀차트 못한다는 소리는 안듣지 싶다.

혹시 참고로 waterfall chart 만드는 것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Excel Waterfall Charts (Bridge Charts)

Don’t Send Your Kid to the Ivy League을 읽고

페친의 페친이신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님께서 링크하신 칼럼을 읽었다. 생각할꺼리가 많은 글인지라 공유한다.

캡처

Don’t Send Your Kid to the Ivy League (New Republic 2014년 7월 21일자)

요약하자면,

– 능력주의 (meritocracy)로 입학 사정을 하는 Ivy League 학교들
–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 스펙쌓기에 집중하지만 (르네상스를 공부하기 위한 ‘하루짜리’ 이태리 투어, 과테말라 봉사활동 등등…) 깊이가 없는 아이들.
– 생각하기를 가르치기 보다는 기술(technocratic)을 가르쳐서 좀비를 양산하는 명문학교들. 그리고 역시나 생각없이 컨설팅과 투자은행을 커리어로 선택하는 졸업생들.
– 능력지상주의는 결국 불평등을 고착시킨다. (‘다양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민족과 배경의 아이들을 뽑는다고 내세우지만, 부모들을 결국 중산층 이상의 의사나 금융업계 종사자 들이다.)
– 대안은 주립대(좀더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을 접할 수 있는)나 리버럴 아트 칼리지 (liberal arts college) – 인문학 중심의 교육을 시키는 – 일 수도 있을 듯 하다.
– 우리는 신분제(aristocracy)와 능력주의 (meritocracy)를 시도해 보았다. 이제 민주주의 (democracy)를 시도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허… 글이 길어 요약도 길다. 요약은 요약이니, 영어가 되는 분은 원문을 읽기를 추천한다.

비판적인 시각이 살아있는 글은 언제나 반갑다. 생각을 하게 해주니. 그런데 흥미롭게 읽고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미국의 명문대 시스템을 경험한 마눌님과 한국의 명문대 시스템을 경험한 나도 분명한 그림이 아직 없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일지도…) 각 시스템의 장단점을 잘 알고 느끼기에 더욱 그러하다.

자식에 대한 기대라는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있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자식을 아이비 리그에 보내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아마 현실적으로는 내가 느꼈듯이 ‘명문대에 입학하되, 속물이 되지 않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칼럼을 쓴 필자도 콜럼비아를 졸업한 사람이 아닌가.

언젠가 자식을 몰래 미국에 유학보내면 진보계열 인사고, 떳떳하게 유학보내면 보수계열 인사라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농담이 떠오르더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글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대학을 갔고, 무엇을 얻었는가. 그리고 아이가 교육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으면 좋겠는가 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 우리나라 교육과 부모에 대한 글을 보고 짧은 감상을 남긴 적이 있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이글이 좀더 와닿는다. (링크: 복상 ‘불안한 사회에서 부모의 욕망 비우기’를 읽고)

+ 덧(2015.6.1): 이 글을 쓰고서 찝찝한 느낌에 글을 하나 더 썼다. 아이 교육에 대해 올바로 질문하는 법

Muriel Spark의 소설 ‘The Finishing School’ 첫 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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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영국 작가 뮤리엘 스파크의 소설 ‘The Finishing School’. 이야기는 소설을 쓸 때 배경을 어떻게 잡는가를 말하며 시작한다.

“You begin,” he said, ” by setting your scene.” You have to set your scene, either in reality or in imagination. For instance, from here you can see across the lake. But on a day like this you can’t see across the lake, it’s too misty. You can’t see the other side.” Rowland took off his reading glasses to stare at his creative writing class whose parents’ money was being thus spent: two boys and three girls around sixteen to seventeen years of age, some more, some a little less. “So,” he said, “you must just write, when you set your scene, ‘ the other side of the lake was hidden in mist.’ Or if you want to exercise imagination, on a day like today, you can write, ‘ The other side of the lake was just visible.’ But as you are setting the scene, don’t make any emphasis as yet. It’s too soon, for instance, for you to write, ‘The other side of the lake was hidden in the fucking mist.’ That will come later. You are setting your scene. You don’t want to make a point as yet.”

(내맘대로 번역)

“장면(Scene)을 설정하면서 시작을 하지. 현실을 그리던 상상을 그리던, 장면을 설정해야되. 예를 들자면, 여기서 건너편 호수를 볼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 날인가, 오늘 같이 안개 때문에 호수를 볼 수 없는거야. 건너편이 보이지 않게 된 거지.” 롤랜드는 작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보려고 안경을 벗었다. 열여섯나 열일곱 살 쯤 되는 두 소년과 세 소녀가 있었다. “그래서, 너희는 장면을 설정할 때 반드시 이렇게 써야되, ‘반대편 호수가 안개에 가려졌다.’ 아니면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으면, 오늘 같은 날에는 이렇게 쓸 수 있겠지. ‘반대편 호수가 간신히 보였다.’ 그러나 장면을 설정할 적에는 강조를 아직 하면 안되. 예를 들자면, ‘반대편 호수는 X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라고 쓰는 것은 너무 일러. 강조는 나중에 하는거야. 지금은 장면을 설정하는 거야.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면 안돼.”

+덧: 뮤리엘 스파크는 20세기의 영미권 작가 중에 한사람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가 쓰는 소설 작법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도 본인의 소설의 도입 부분에서) 흥미로워서 번역해봤다.

뮤리엘 스파크에 관심있는 분들은 뉴요커에 실린 소개글을 참조하시길. (What Muriel Spark Saw, The New Yorker, 2014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