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정신이란?: 딸깍발이와 ‘잘살아보세’ 정신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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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의 수필중에 ‘딸깍발이’라는 게 있다. ‘딸깍발이’는 1956년 발표된 ‘벙어리 냉가슴’이라는 수필집에 포함되어 있는데, 교과서에 실려있기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있다. ‘딸깍발이’에서 이희승 선생은 해학적인 한문체를 사용하여 선비정신을 묘사하고 있다. 생각보다 길지 않으니 그가 말한 선비정신이 무엇인지 궁굼하면, 고등학교 국어시간의 추억을 되살릴 겸, 한번 읽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원문: 딸깍발이)

선비정신은 해방이전 까지 우리 민족의 중심이 되는 사상이었다. 우리 민족은 성리학에 바탕하여 고상한 세계 즉 이상향을 추구하였고 양반들은 매일 경서를 읽고 붓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서로 보여주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성리학은 본래 중국에서 시작한 학문이지만 실제로 그 정신에 입각해서 나라를 세운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 불교 정신으로 대표되는 고려가 망하고 당시 지식인이었던 신진 사대부 계층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다. 성리학과 선비정신은 우리 민족이 500년간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었다.

선비정신이 도전을 받게 된 것은 구한말이다. 이때 우리에게 당면한 시대 과제는 외세에 의한 개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였다. 선비 정신을 바탕으로 점잖게 공자와 주자, 그리고 이상향을 논했던 우리 민족은 물질문명으로 밀어닥친 세상 앞에 무방비 상태였다. 19세기와 20세기 초는 전세계 적으로도 사상의 혼란이 가득했던 시기 였다. 누군가는 선비정신을, 누군가는 동학을, 누군가는 일본을, 누군가는 자본주의를, 또 누군가는 공산주의를 따르자고 말했고 우리는 혼란에 빠져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일제 통치와 6.25로 대표되는 우리의 근현대사는 한민족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기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던 것은 ‘잘살아보세’ 정신이었다. (주: 새마을정신은 오염된 말이기에 ‘잘살아보세’ 정신이라는 말을 내가 만들어봤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정부의 선전구호로서의 ‘새마을 운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잘살아보세’ 정신은 군사정권 이전부터 국민 모두가 열망하는 하나의 가치였다. 70/80년대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이밥에 고기국 한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했고, 소를 팔아서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우수한 노동력이 배출되었고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탄생한다. 우리 부모세대에게 그 흥분은 아직 가시지 않은 젊은 시절의 체험이다.

모든 큰 성공이 그러하듯이 ‘잘살아보세’ 정신의 성공에도 그늘이 있었다. 그 비극의 시작은 새마을 운동이 기존의 우리것에 대한 부정인 데에 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던 우리는 옛것을 고리타분하고 냄새나는 노인네 취급했다. 먹고사는데 도움이 된다면 한옥이던, 문화재던, 자연이건 일단 부수고 스레트 지붕으로 덮어버렸다. 청계천과 중랑변의 판자집들은 모두 부숴버리고 빈민들은 용산으로 신림동으로 성남으로 쫓겨 갔다.

한국교회가 세를 얻었던 것은 이쯤이 아닌가 한다. 성장의 고통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던 것은 교회의 목사님들이었다. 교회에서 주일날 위로를 얻은 기독교인들은 힘을 얻어서 다시 산업의 역군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회/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잘살아보세’ 정신이 있다.

몇달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윤치호 언급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윤치호는 YMCA를 이끌며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계몽운동을 펼친 인물이였다. 그의 사상은 한국인은 무지하기 때문에 기독교 정신으로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년에 이르러 그의 지향점은 이토 히로부미의 대동아 공영론에 대한 지적인 동의로 향한다. 온누리 교회에서의 문창극의 강의는 이 윤치호의 사상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의 강의에서 발견하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부정과 친일의 기운은 윤치호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세상은 바뀌었고 우리도 변했다. 이제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살아보세’ 정신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매년 10% 이상 성장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 같다. 우리는 97년 IMF로 이름지어진 외환파동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도 높은 경제 개혁으로 위기를 넘길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고달퍼 졌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말이다. 이 말은 너무 오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짧게 설명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닥친 시대적 과제 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 밝혀야 겠다. 정치나 근현대사는 워낙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고, 내 생각이 다른 사람과 다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지나서 답답하게 만들고 불쾌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지난번에 간디 관련 포스팅을 하고서 (관련글: 단식의 의미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 민감한 주제를 별 설명도 없이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설명을 해야하겠는데 짧게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글마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내가 던진 질문에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잘살아보세’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 새로운 가치가 말하는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현 정권의 대통령은 ‘잘살아보세’ 정신의 상징이다. 젊은 세대는 왜 이분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6.25를 겪지 않았고 잘살기 위해서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해야 했던 우리 부모의 가난을 알지 못한다. 전쟁과 가난의 상처는 논리적인 설득으로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부모님들의 선택은 ‘잘살아보세’ 정신으로 돌아가자 였고 젊은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못하고 세대 갈등의 길을 선택했다.

간디를 언급한 이전 글에서 진보세력이 ‘정권심판의 메세지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런 맥락이었다. 배웠다는 분들은 하나 같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있지만 아직도 그 대답이 그렇게 속시원하지 않다. 미국을 따르는 것을 대안으로 할 수도 있고 독일이나 북유럽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대답이 아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답변이 선비정신이었고 우리 부모세대의 답변이 ‘잘살아보세’ 정신이었듯이 우리는 우리의 답변이 필요하다. 진보가 우리에게 제시해야 할 것은 시대정신(時代精神, 독일어: zeitgeist)이다. 나는 그러한 의미에서 아직 진보라고 이름지워진 사람들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진보라는 말자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진보(progress)라는 것은 어떠한 지향점이 있고 그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어 간다는 것인데 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글을 마치기 전에 기독교인인 나의 생각을 하나만 덧붙이려고 한다. ‘잘살아보세’ 정신을 완전히 부정한다면 이것은 선비정신을 부정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교회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마찮가지이다. 한국교회의 신학은 고단했던 우리의 삶에 위안을 주었고 그것은 그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다만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아는 한가지 모습으로 제한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존재이다. 한국교회가 알고 있는 신학에 그 모습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교회에 새로운 신학과 사상이 필요한 이유이다.

덕후예찬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덕후들이라고 주장한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의 기본 토대를 세웠던 것은 스위스 베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따분해서 소일거리로 논문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빛나는 저작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관직에서 쫓겨나 유배 생활을 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과 미술을 선도해 왔던 대가들은 대세를 따르지 않고, 순수하게 자기 열정을 따라, 혼신을 다해, 돈안되는 덕질을 해왔던 사람들이다.

이정도 되면 우리 정부는 미래를 대비한다고 쓸데 없는데 몇십조씩 퍼부을께 아니라 덕후들이 마음껏 활보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데 힘써야 하는게 아닐까?

단식의 의미 그리고 함께 살아 간다는 것

최근 뉴스에 유민 아버지의 단식 소식이 자꾸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 관련해서는 워낙 많은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려 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있고 아직도 여파가 남아있는 사건이기에 말한마디 꺼내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다만, 단식이라는 행위는 누군가가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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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소식을 접했을 때, 내게 떠오른 인물은 간디였다. 유민 아버지가 간디 같은 성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간디는 진심을 보여주려고 했을 때 단식이라는 행위를 했고 누가 어떻게 말하던 지금 그분은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이다.

간디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책중에 하나가 ‘간디 자서전’이다. 함석헌 선생이 번역했는데, 642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고 어려운 인도 지명과 추상명사들이 나와서 손대기가 쉽지는 않은 책이다. 나도 실은 아직 읽지 못했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잘 요약한 글을 올려주어서 조금 맛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참고한 블로그 글은 다음의 두 링크이다. (해를그리며 님의 블로그: 간디자서전을 읽고, 격암님의 블로그: 간디로본 우리의 모습) 두 글 다 찬찬히 읽어볼 만큼 좋은 글이다.

이분들의 글에 따르면, 간디 자서전은 간디가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본인이 깨달은 진리를 설파하지도 않는다.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본인이 살면서 구도해왔던 실험 과정을 차근차근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은 그가 믿었던 힌두교를 바탕으로 해서 금욕적인 삶과 채식으로 몸을 단련해 왔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본인의 도를 추구하면서 분쟁과 다툼이 있는 곳을 쫓아다닌다. 섬유노동자 파업, 세금 파업 등등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는 일방적인 폭력을 배제하였고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였다.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 단식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폭력을 통한 문제 해결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았고 대화를 통해서 하나되고 화해하는 것을 추구했다.

간디의 이러한 방식은 현대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의 방법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마음으로 깊이 동의한다. 의견의 차이가 생겼을 때 명확하게 승패를 가르는 방법은 일시적으로 통하더라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양당정치에서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그러하다. 누군가는 선거공학적으로 승리를 거둘 테지만 이것은 패자에게 위기의식을 가져오고 오히려 패자는 다음번 승리를 위해 결집하게 된다.

내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태도를 발견할 때는 이러한 말을 들을 때이다. ‘이 모든 것은 놈현 때문이다.’, ‘MB가 나라를 망쳐놨다.’, ‘공주님 때문에 나라를 떠나고 싶다.’ 이 말들은 사실 그저 푸념이다. 푸념을 내가 너무 진지하게 여기는 걸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네편과 내편을 갈라 놓고서 이제 내편이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으니 너는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에게 나라의 모든 것을 맡겨두고 이제 책임은 모두 그쪽이다.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긴하지만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토론을 하고, 글을 쓰고, 자녀를 키우는 모든 일이 크게 보면 정치의 연장선이고 우리의 목소리이다.

정치 이야기를 이왕 꺼낸 김에 몇가지만 더 써보려 한다. 정치 이야기는 워낙 첨예하게 갈리고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에 내가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다. 나는 불필요한 오해로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의 프레임으로 씌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정치와 떨어져 살 수도 없는 일이고 나도 이시점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해두고자 몇자 적어본다.

진보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나는 진보의 정체성이 대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거에서 우리가 야당에게서 듣는 목소리는 정권심판과 반새누리당이었다. 그들에게 대안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듣는 것이 그렇고 최소한 내가 듣는 것이 그렇다. 대안 없이 진보세력이 여당의 도덕성을 문제 삼거나 정권심판만을 이야기 한다면 설사 단기적인 승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길게 봐서는 패배이다. 싸움을 통한 승리는 상대를 완전히 짓밟는 것이 아니라면 무의미하다. 선거를 통해 60:40으로 이기면 무엇하나? 그렇다면 이제 남은 40은 적인가? 이제 그들을 억지로라도 교육시키던가 아니면 늙어서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그렇다라고 말한다면, 더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어떤 생산적인 논의의 가능성 조차 닫은 분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가능하단 말인가.)

보수층은 진보세력을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악으로 인식하고 진보는 현정권을 적으로 인식하여 그들과 싸워 이기려 한다. 적당히 중간을 지키자는 애매한 자세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현정권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정권심판은 대안이 아니고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 대다수는 정치에 관심 없으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가치를 주지 못하면서 기존의 정권에 반대하는 모습은 그저 싸우는 것으로 비추고 정치에 대한 염증만을 불러 일으킨다.

너무 곁길로 샜다. 다시 간디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짓자.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하지만 인도제국은 힌두와 무슬림 세력으로 나누어진다. 게다가 종교분쟁으로 인도인들은 서로를 죽인다. 이에 간디는 죽을때까지 단식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기적같이 전쟁이 멈춘다. 그러나 얼마후 간디는 암살당한다. 결국 인도제국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 독립을 하게된다. 지금도 인도는 파키스탄과 크고 작은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로 28일째라고 들었다. 광화문에 계시는 그분도 큰일 생기지 않고 누구의 가슴도 찢어지지 않은 채로 진정한 의미의 화해가 있었으면 좋겠다.

장자가 말한 심재(心齋) 그리고 바울이 말한 자기 비움과 자족

오늘은 좀 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 이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회 참여/소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론은 기쁨/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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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장자 초상화)

장자의 4편 인간세(人間世)는 공자와 그의 제자 안회의 대화로 시작을 한다. (주: 안회는 공자의 수제자이고 공자의 자는 중니임) 원문: 장자 인간세편

안회가 중니를 만나 여행을 떠나겠다고 청했다. 이에 중니가 물었다.
” 어디로 가려는가?”
” 위나라로 떠나려 합니다.”
” 어째서 위나라로 가려 하는가?”
” 제가 듣기에 위나라 왕은 나이가 젊은데다가 행실이 사나워 나라일을 가벼이 경영하고 자기 허물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백성을 죽도록 함부로 내버려 두어 시체가 흡사 연못에 무성한 파초와도 같이 많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저는 일찍이 선생님께서,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들어가라, 어진 의사에게는 환자가 많이 모이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대로 다스리는 방법을 강구하면 위나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니가 말했다.
” 어허! 자네가 가면 필시 형벌을 받을 걸세. 무릇 도란 번거로움을 멀리 해야 되는 법이네. 복잡해지면 마음이 요동하게 되지. 자기 마음이 흔들리면 근심 걱정에서 구해 낼 수도 없다네. 옛 지인(至人)은 먼저 자신이 도를 갖춘 연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갔다네. 자네 자신도 아직 본래 면목을 회복하지 못했으면서 난폭한 사람의 행동을 어느 겨를에 막겠는가?’

그러자 안회는 공자에게 열심히 한결같이 설득하면 안되냐고 묻는다. 공자는 이에 안된다고 한다. 또 안회는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옛성인들의 말에 인용하여 설득하겠다고 하니 공자는 그것도 안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잘 안와닿는 사람들을 위해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어떤 학생이 수업시간에 술담배의 해악에 대해 배우고서 선생님께 묻는다. “선생님, 제 친구는 술담배를 합니다. 제가 오늘 수업시간에 배운대로 술담배의 안좋은 점을 설명하고 진심을 보여주면 친구가 술담배를 끊을까요?” “아니다.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성은 누구나 다 안다. 심지어 담배곽에도 니코틴과 타르의 해악을 경고하고 있다. 진심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애연가/애주가가 술담배를 끊을 것 같으냐? 오히려 건방지다고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술의 해악에 대한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와 독일의 흡연 극복 사례를 기분상하지 않도록 보여주면 그 친구가 마음을 돌이키실까요?” “아니다. 그렇게 하면 친구에게 두들겨 맞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변하지는 않을꺼야.”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안회의 안타까운 마음에 있다. 술담배 같이 문제가 분명한 것은 덜 복잡하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이야기 하거나, 정치를 이야기 하거나, 종교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장자가 살았던 고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안회는 이제 모르겠다고 하고 공자에게 어쩌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이때 바로 공자가 말하는 것이 심재(心齋)라는 것이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비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는 오로지 빈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심재이니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동양 사상에 조예가 없는 내가 심재에 대해 어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렴풋이 내가 이해하기로는 심재의 핵심은 자기를 비운다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장자>의 전체 문맥으로 보았을 때 물흐르는 듯이 사는 삶을 말하지 않나 싶다. <장자>는 물흐르는 듯이 사는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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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렘브란트, 감옥 안의 바울>

이제 바울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바울의 편지 중에 하나가 빌립보서이다. 바울은 평생 열렬한 기독교 전파자의 삶을 살았는데, 처형당하기 몇년 전에 감옥에 갇혀서 쓴 편지가 바로 성경의 빌립보서이다.

바울은 빌립보 편지에서 계속해서 기쁨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자기 속에 있는 기쁨을 묘사하면서 편지를 읽는 사람들에게도 기뻐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기쁨이라는 것은 편한 상황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고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그의 이런 인생의 자세는 흡사 달관한 도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빌립보 편지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의 모습에서 ‘자기 비움’을 발견한다.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그는 예수에 대해 ‘자기를 비웠다고(개역개정)’고 말한다. (영어로는 made himself nothing (NIV)’ 그리스어로는 케노시스(kenosis)라고 한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바울은 케노시스로 이해를 한 것이다.

빌립보서 전체는 바울의 ‘자기 비움’ 또는 ‘달관’의 삶의 자세가 가득차있다. 바울은 다른 예수 전도자들 사이에서도 시기를 받았는데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기와 다툼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릇된 동기에서든 참된 동기에서든 어쨌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므로 내가 기뻐하고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또 바울은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참되고 정결한 삶, 기뻐하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사는 법도 알고 부유하게 사는 법도 압니다. 배가 부르건 고프건 부유하게 살건 가난하게 살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장자 인간세편에서 질문을 던졌고, 바울의 빌립보 편지로 답을 했다. 안회의 이야기를 보면서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람은 옛날에도 많았구나 싶다. 젊은 혈기에 시시비비를 가리려 했다가는 잘난척한다는 소리 듣기 쉽상이다. 모른척 지나가자니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족/사회/국가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한때 사회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은 배신감으로 가득찬 염세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장자의 답변은 ‘심재’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심재’는 빌립보 편지에서 바울이 말하는 ‘자기 비움’이다. 바울은 평생 예수를 전하고 따르는 삶을 살았는데, 그가 전한 예수는 ‘케노시스’였고 그렇게 살다보니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한 것이다.

오늘 여러가지 뉴스들을 보면서 갑갑해진, 젊은 혈기로 가득차 있는 나를 위해 글을 써보았다. 조금 지루한 이야기 일 수도 있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콘테 드로잉과 펜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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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pen and ink drawing

지난주와 지지난주는 펜 드로잉과 콘테 드로잉을 했다.

워낙 다른 두가지 medium이지만 나름의 장단점이 있었다. 지난주 했던건 pen and ink drawing. 각 object마다 다른 표현 방법을 시도해봤다. 호박은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케치를 수채화용 짧은 붓으로 했고 피망은 펜만을 사용해서 그렸다. 그림자의 경우는 호박은 붓으로 그렸고 피망은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좀더 퍼지게 해봤고… 처음 시도해 본 펜화인지라 medium에 익숙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미숙한 부분들이 있는데 첫시도이므로 기록에 남긴다.

마눌님은 펜화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다른 소재에 비해 깊은 느낌이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흑연화나 목탄화와 달리 stroke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임은 분명한 듯. 다른 medium과 같이 써보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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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conte drawing

콘테는 맘에 들지는 않았다. powdery해서 다루기가 쉽지도 않을 뿐더러 표현력에 한계가 있다. 사과를 그리는데 좀 실패했는데, 윗부분에 highlight와 번들거리는 texture에 집중한 나머지 전체적인 밸런스가 망가졌다.

콘테 드로잉을 할 때, 처음에 목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같은 방식으로 그려 보려고 했는데 그만큼의 풍부함이 없어서 다소 실망했다. 밋밋하다고 해야하나? 콘테는 목탄과 같이 사용하는 보조 medium정도의 위치가 적당할 듯. 콘테가 파스텔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언젠가 파스텔화를 한번 도전해봐야할 것 같다. 다양한 색채 표현을 해보면 이런류의 medium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일이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캡처

이번주 목요일에 회사에서 ‘Take your child to work day’ 행사가 있었다. 행사는 오전과 오후 순서로 되어있었는데, 오전에는 아이들에게 회사소개를 하고 회사 투어를 했고 오후는 카니발이 있었다. 카니발에서는 각 부서별로 부스를 마련해서 솜사탕을 팔거나 물풍선 던지기, 링던지기 같은 가벼운 게임을 했는데 수익금은 donation한다. 딸아이는 어려서 오전순서는 참여하지 않고 오후의 카니발만 참석했다. 카니발이 끝나고 내 책상도 잠깐 들렸는데 딸애는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동료들에게 인사도 시켰다. 아이도 즐거워 했고 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식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아이가 위험할까봐 뾰죽한 물건을 치우기도 하고, 몸에 좋거나 맛있는 음식을 아이를 위해 따로 챙겨두기도 한다. 아이가 교양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태교도 하고, 커서는 책도 읽히며 음악회나 미술관도 데려가고 박물관에 따라가기도 한다. 아이가 사는 세상이 좀더 좋았으면 하는 마음에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환경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도덕이니 규범이니 하는 것도 아이가 없는 사람의 마음과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천양지차이다.

한 블로거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르쳐 주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격암님의 블로그: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 우리는 지켜야할 소중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행동한다. 최소한 걱정한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무신경하게 지나쳤던 술집들이나 위험한 환경은 부모가 된 사람들의 눈에는 걱정꺼리이다. 아무리 악한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이 보고 있는 앞에서 떳떳하게 범죄를 저지르지는 못하는 법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때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버이날이 되면 몇몇 부모들은 카네이션을 달고 회사에 출근한다. 대부분 부장/차장님들이다. 평소에는 ‘쪼으는 데’에 숙달된 분들이시다. 내 기분탓인지 그분들도 카네이션을 달고 있는 그 순간 만은 조금더 너그럽고 유한 모습을 보이셨던 것 같다. 아이들은 우리가 한숨 돌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주는 존재이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내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성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던 시절에는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때 나를 지켜주었던 것은 아이에게 매일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하기로 한 약속이다. 매일 지키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이와 한 약속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사실 그 시간은 내가 가르키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배우는 시간이었다. (예전글: 페르시아의 유대인 말살 정책과 에스더) 아이는 진정 어른의 선생이다.

저출산은 우리나라의 서글픈 현실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부담이나 짐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울고 웃고 그리고 우리는 배운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친구가 있다. 그의 다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인줄 알기에 또 아니라고 하기에는 별다르게 설득할 말이 없기에 더욱 서글프다. 부모만을 의지하며 연명해가는 갓난아이들,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면서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의식하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모들이 있는 한 세상은 희망이 있다.

이쯤에서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미국에서 그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발 떨어진 입장이었다. 대다수 나의 친구들이 이미 부모가 되었기 때문인지 그들에게 충격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형참사 자체의 참혹함도 있지만 그 대상이 아이들이 었다는 데에서 더욱 큰 슬픔이 있지 않았나 싶다. 계속되는 뉴스와 소식들에서 대한민국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부모의 심정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이 부모인 것을 자각하는 것 그 자체로도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행동한다. 그것이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이다.

딸아이의 질문

어제밤 딸아이와 기도하면서 말미에 짧게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언급을 했다.

아이는 나에게 두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스라엘이 착한편인가?’ ‘왜 서로 죽이는가?’ 아이는 성경의 이스라엘과 지금의 이스라엘의 차이에 혼란스러워 하는 듯 했다. 나도 혼란스럽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어린아이와 질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야기를 해서인지 아이는 무섭다고 30분 정도 잠을 못들었다. 아이에게 전쟁은 우리를 해할수 없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으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아이가 잠이 들때까지 잠시 곁을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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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the Guardian)

백면서생(白面書生): 오직 글만 읽고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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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유행한 유머중에 하나가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 ‘키스를 글로 배웠습니다.’이다. 나는 그러한 유머를 볼 때마다 배꼽을 붙잡고 웃는다. 내가 그 유머에 자지러지는 이유는 왠지 모르게 내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이다.

나는 새로운 경험에 항상 목말라 있었고, 그 갈증을 해결했던 방법은 주로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었다. 어린 시절 나를 매료 시켰던 것은 주로 역사이야기, 세계 전래 동화, 각국의 신화, 성경이야기, 탐정소설, SF 소설 같은 것들이다. 딱히 분야가 정해져 있던 것 같지는 않고 잡식을 했는데 한가지 공통되는 점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소설은 우리의 삶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대부분의 인기 있는 통속소설이라는 것은 인기가 있을 법한 소재와 인물을 사람들의 판타지와 적당히 버무려서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단순히 재미 있는 소재만을 가져온다고 해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허접한 소설이라 하더라도 작가는 소설 속에서 세계를 창조하는데, 이때 작가의 세계관이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 히어로물의 세계관이라고 하면 슈퍼맨/배트맨이 등장하여 초인적인 힘으로 세계를 구하지만 괴로워하거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세계관이라 하면 뉴욕에 사는 매력적인 직장여성들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우정을 나누기도 하면서 즐기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관은 소설속에만 존재하는 법칙 같은 것인데 우리가 대부분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안들거나 싫어지는 이유는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불행하게 생을 마치는 식의 세계관이 탐탁치 않고, 어떤이는 모두가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다며 지루해 한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세계관과 맞아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세계관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야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세상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은 영화와 소설 속의 세상을 실제와 혼동할 때가 있다.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은 소설과 다르다. 만약 뉴욕에 한번도 와보지 못한 사람이 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가 그리는 뉴욕이 정말이라고 생각하고 똑같이 살려고 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행동은 코메디의 소재로 적합하다. 연애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무협소설이나 연애소설에 나오는 것을 현실로 생각하고 연인에게 행동한다면 가장 빵점인 연애를 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영화/소설/공연예술에 목을 메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 특히 그러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이야기라는 것이 별로 의미 없게 여겨지는 순간이 왔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 얄팍하며, 어떤 이야기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어떤 소설은 그저그런 세계관을 독특한 문체만으로 잔뜩 치장했을 뿐이다. 너무 뻔하다. 내가 알고 느끼는 세계와 작가들이 그리는 세계가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나는 소설읽기를 멈추었다. 소설보다는 자기계발서를… 영화보다는 예능프로를… 즐겨보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책은 (저자가 다른 경우에도!) 그저 동어 반복일 경우가 많다.

이제 책하고 화해를 할까 싶다. 검증된 고전의 경우에는 조금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지혜 같은 것이 있다. 10대에 읽었던 ‘노인과 바다’는 그저 낚시꾼의 허무한 귀환 정도의 재미없는 글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만나는 헤밍웨이는 자연의 위대함, 인간의 의지를 찬양하는 작가이다. 어린시절 톨스토이의 단편은 그저 재미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였을 뿐이다. 한번 종교/삶과 씨름을 해본 후에 만나는 톨스토이는 소박한 이야기에 닮긴 경건함이다.

여전히 사람과 관계 맺기에 미숙한 한 백면서생의 이야기였다.

그림 습작

올해 시작한 일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블로깅이고 하나는 그림 그리기이다.

그림은 가은이가 어렸을 때 놀아주면서 몇가지 그림을 끌적거려 본 것이 시작이었다. 크레용/볼펜으로 아이 그림 책에 있는 그림 몇개 따라 그렸을 뿐인데, 가은이가 몹시 좋아했다. 여기서 내 덕후 본능이 발동한 것 같다. 꽤 심혈을 그려 몇개를 그려보았다. 그리 나쁘지 않았나 보다. 울 마눌님이 보고서 미술 클래스를 등록할 것을 권했다. 그러게 말이다. 왜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제대로 그려거나 배워볼 생각을 못해봤을까?

처음에는 아크릴화를 그렸고, 그러다가 기초를 다지고 싶어서 드로잉 클래스를 수강 중이다. 글쓰기 못지 않게 재미있는 게 그림 그리기. 페이스북에는 친구공개로 포스팅을 해왔는데, 오늘 블로그에 몇개 정리해서 포스팅.

<드로잉 클래스 전에 수업 들었던 아크릴화>

직접 찍은 사진 중에서 직접 고르고 그려본건 이 그림이 처음이다. 풍경화/초상화도 몇개 시도해 봤는데, 풍경화/초상화는 인물화랑 필요한 기술이 조금씩 다르다. 나는 그리고 싶었던 것을 그린 첫번째 그림이라서 마음에 든다. 그림의 모델은 우리 딸. 가은이는 자기 모습이 아닌 것 같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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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린 연필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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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charcoal drawing. Charcoal is a somewhat messy medium but it was fun.

목탄화를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익숙해지기 쉽지 않더라. 흑연연필화와 확실히 다른 느낌이 있다. 유리는 재미있게 그려볼만한 소재였다. 시간관계상 포도를 제대로 못그렸는데 아쉽지만 첫 목탄화 그려본 기념으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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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charcoal drawing. Drew light, medium, and dark colored fruits on toned paper. Started to like charcoal drawing. Bell pepper was really fun to draw. It is somewhat glossy and has a variety of color to it.

두번째 목탄화. 목탄은 조금 익숙해지니 약간 거친듯 하면서 풍부한 명암이 매력적인 도구더라. 피망을 그리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세가지 과일의 질감을 다르게 표현 해보려 했고 몇가지 다른 시도들을 해보았다. 사진으로 찍고보니 목탄화의 깊이 있는 검은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게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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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수업은 콘테이다. 매번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데, 새로운 재료를 접하는 것은 몹시 즐거운 경험이다. 그려보고 그럴 듯하면 또 포스팅을 해볼 생각….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