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펜이 극우세력?

어제 르펜 이야기를 꺼낸김에 하나만 더.

르펜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국민전선을 단순히 극우 정치세력이라고 보는게 맞는지 헤깔린다. 이제 좌/우 라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게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나 싶다.

관련기사
I read the French far-right party’s platform, and it gets one big thing absolutely right, VOX, 2015년 1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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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민전선의 핵심 아젠다는 반이민이다. 마린 르펜이 아버지 르펜을 제명하면서 나치 찬양에서 거리를 두고 있지만, 르펜의 주장은 여전히 위험수위이다. 프랑스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무슬림을 2등시민으로 보는 관점은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이민 문제를 제외하고 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국민전선은 국방비 지출을 늘여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GDP의 2%, 즉 NATO의 권고 수준을 충족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감옥을 증설하고, 낙태를 반대하고, 동성혼과 소수자 우대 정책을 반대하는 이야기는 미국 우파 기준으로 보면 새로운 주장도 아니다.

복지와 금융 쪽으로 가면 더 헤깔리기 시작한다. 르펜은 투자은행과 commercial bank를 분리해야한다고 주장하고 금융거래세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이부분은 심지어 (미국 우파에게 빨갱이라고 불리는) 앨리자베스 워랜과 비슷한 주장이다.

복지 부분에서는 (우파 관점에서) 퍼주기 식이다. 내가 보기에도 재원조달에 의문이 들 정도다. 불법 체류 여하를 막론하고, 아이를 세명 이상 낳은 어머니는 복지혜택을 다 누릴 수 있다. 자녀세금 공제 증가, 유치원 관련 정부기금 확대가 주요 공약이다. 관세를 매기고 프랑스 공장을 다시 살릴 것 이기에 공약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국민전선의 입장이다.

(르펜은 예전에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민전선이 미국 민주당보다 진보적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경제 쪽에서 가장 큰 공약은 유로를 더이상 쓰지 않고 프랑을 다시 쓴다는 약속이다. 국민전선은 무려(!) Milton Friedman을 인용하면서 이 이야기를 한다. 잘 알려진 대로 프리드먼은 유로존이 단일 화폐 지역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사실 좌/우 논쟁에 별 관심이 없기에 그런가 보다 한다. 내게 가장 걸리는 부분은 nationalism의 부활과 EU의 미래다.

기원을 따지자면 EU는 정치적으로 기획된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경제적 통합은 유럽의 결합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추가적인 끈 같은 거였다. 양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이데올로기로 끊임없이 싸운 유럽을 평화롭게 만들자고 로마에 모여서 결의한것이 출발이었다. 그런 배경으로 인해 EU는 경제 공동체 임에도 상당수의 의사 결정이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진다.

이번 프랑스 대선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만약 르펜이 승리한다면, EU 그리고 크게보면 세계화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 르펜이 당선에 실패한다고 하여도 브렉시트 때도 계속되온 EU의 한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제는 불가피해보인다.

브렉시트/트럼프와 르펜의 유사점과 차이점

네덜란드 선거는 이번주이고, 프랑스 대선은 다음달이다. 몇 주전부터 정리해보려고 맘먹었는데, 도무지 짬이 안났다. 한국 뉴스 따라잡기도 버거웠던 지난 주였기도 하고. 그래서 어설프지만 너무 늦어지기 전에 끄적이기로 결심.

우선 배경 설명으로 프랑스 대선에 관련 지난 포스트는 아래 링크 참조.

다가오는 프랑스 대선, 3월 3일자 포스트

관련기사 : The Economist | French politics: Fractured

Nationalism 또는 소위 ‘포퓰리즘’으로 분류되는 브렉시트/트럼프와 르펜은 여러가지 유사점이 있다.

세계화에 뒤쳐진 ‘잊혀진’ 사람들의 반란, 반이민정서/반이슬람정서에 기반, 기성정치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아웃사이더에 대한 선호,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선거 운동.

지난주 이코노미스트지는 르펜의 국민전선 지지도와 실업률 지도를 같이 보여주는데, 직업전선에서 소외 당한 사람들이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모양새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래 도표 참조)

런던과 타지역의 투표 양상이 상이했던 브렉시트에서 처럼, 파리와 타지역의 투표 양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래 도표는 파리에서 멀어질 수록 국민전선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국민전선의 지지자는 트럼프/브렉시트 지지자와 유사하게도 저학력층이 다수이며, 남성지지자가 월등히 많다.

이제 차이점을 몇가지 꼽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프랑스에서 nationalism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다는 것. 좀 의외이긴 한데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노동법이 강하고,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최근 유럽경기가 살아나는 추세라고는 하나, 새로생긴 일자리의 80%가 비정규 단기 (심지어는 한달 미만) 직업이기에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크다.

관련 포스트: 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젊은이들, 3월 1일자 포스트

둘째는 옆나라 독일과 비교되는 프랑스의 위상 추락이다. 유럽을 이끄는 독일에 비해 프랑스의 각종 경제 지표는 지난 15년간 제자리 걸음이다. 이를 프랑스인들은 décrochage, 즉 decoupling이라고 한다.

또 Euroseptic의 관점으로 이를 볼 수 있다. 민주주의를 자신의 나라에서 이뤄지는 일들에 대해 국민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EU는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체이다. 마린 르펜은 줄곧 유럽통합은 이뤄질 수 없는 망상일 뿐이고, 각 나라의 sovereignty 주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브렉시트 때에 올린 글로 설명을 대신한다.

관련 포스트: Euros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2016년 7월 2일자

이래서는 프랑스가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프랑스는 누가 뭐래도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나라이다. 프랑스의 정신은 어디로 간것인가. 바로 르펜이 강조하는 내용이 이것이다. 르펜은 프랑스의 정신과 국민전선의 정체성을 연결시킨다. 르펜은 남부에서는 반 이슬람을 말하고, 소위 프랑스의 러스트 벨트인 북동쪽에서는 반세계화를 그리고 위대한 프랑스 재건을 말한다.

이는 마린 르펜이 아버지 장 마리 르펜에게서 당을 물려 받으면서 리브랜딩(?)을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마린 르펜은 나치를 찬양하고 유대인을 혐오했던 아버지의 색을 빼는데에 주력해왔는데, 심지어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당에서 제명시키는 강수를 둔다.

르펜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결선투표를 하는 프랑스 특유의 선거제가 아니라면, 지지율 기준으로 국민전선은 제1 당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르펜이 없던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니라, 이전의 프랑스의 정신을 끌어다가 자신의 당의 정체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소위 laïcité 라이시테라는 프랑스 특유의 세속주의는 반이슬람 정서와 맞물려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관련해서 이전 포스트: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2016년 8월 30일 포스트

르펜의 반무슬림 정책이 네덜란드의 반 무슬림 정당 PVV의 Geert Wilders의 정책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 세속주의의 강한 전통을 가진 프랑스와 달리 네덜란드는 기독교 기반의 정치 전통이 최근까지 있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르펜은 RNW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RNW는 네덜란드 언론이고 해당 인터뷰는 2011년에 이뤄졌다.

“그게 바로 제가 Geert Wilders와 다른 점입니다. 그는 꾸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이슬람을 반대합니다. 문자 그대로 꾸란이나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프랑스 정신을 벗어나는) 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반대합니다. 샤리아법은 프랑스의 원칙, 가치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That’s the difference between Geert Wilders and me. He reads the Qur’an literally: you can’t interpret the Qur’an – or indeed the Bible – literally. I resist fundamentalists who want to impose their will and law on France. Sharia Law is not compatible with our principles, our values or democracy,”

source: https://www.rnw.org/archive/le-pen-says-shes-no-wilders

르펜의 정치관 동의 여부와 별개로 르펜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가 참 명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느낌까지 주는 몇몇 (사실상 대다수의) nationalist들과 달리 르펜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확히 알고 말을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리고 트럼프 등장 훨씬 전부터도 반이슬람, nationalism의 기수 역할을 해왔던 르펜의 존재감으로 나타난다.

르펜은 어린 시절부터 (극우 정치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왕따로 커왔고, 두차례 이혼을 겪으면서 생활 정치인으로 홀로 섰다. 우는 아이들을 보며 화장실에서 라디오 인터뷰를 했던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그는 테러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권력에의 의지를 놓은 적이 한번도 없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든 르펜의 도전에 이제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르펜 개인사에 관한 취재 기사 : MARINE LE PEN, L’ETRANGERE, Magazine 1843

다가오는 프랑스 대선

이번주 이코노미스트지 메인 사설을 공유한다. 그리고 요즘 하는 생각도 덧붙인다.

France’s next revolution: The vote that could wreck the European Union (the Economist, 3월 4일자)

두달 앞둔 프랑스 대선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제 좌/우 대결이 아닌 열린사회/닫힌사회의 대결로 세상이 바뀐다고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 해왔는데 그 축소판이 이번 프랑스 대선이다.

‘Frexit’를 내걸고 ‘프랑스 우선주의’를 말하는 르펜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이고, 그에 대응하여 유럽연합을 지켜낼 사람으로 떠오른 인물은 39세 마크롱이다. 마크롱 역시 고작 작년에 En Marche! 당을 창당한 아웃사이더.

좌파 사회당과 우파 공화당이 바꾸어가며 집권하던 프랑스 정치지형을 생각하면 참 생경한 선거가 될 것 같다. 기존의 프레임으로 보면 르펜을 극우, 마크롱을 중도좌파 정도로 봐야 할 텐데, 그런 식의 프레임이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극우로 분류되는 르펜은 여성 인권과 히잡 금지를 동일 선상에 놓고 말하고, (일부) 동성애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중도좌파 마크롱은 친기업적인 정책을 이야기 하고 노동법 완화를 말한다. 좌/우파 (또는 보수/진보)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잘 이해도 가지 않고, 어쩌면 표를 얻기 위한 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논리적인 방향성과 토대가 있다.

히잡관련 이전 포스트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2016년 8월 30일 포스트

선거 결과는 어찌될까?

이코노미스트지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르펜의 당선이 어렵다고 본다. 그런데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을 겪고 나니, 과연 그럴까 싶다. 게다가 양자대결 여론 조사에서도 르펜은 꾸준한 상승세. 물론 르펜 당선, 아직 갈길이 멀다. 그치만 동시에 가시권에 들어왔다.

정치에 별다른 스탠스가 없다. 특히 보수/진보 논쟁에는 별로 개입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러나 소위 nationalism으로 분류되는, 애국심을 말하는 분들은 좀 무섭다. 파시즘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하면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까.

내가 이해하기로 파시즘은 nationalism과 궁합이 잘 맞는다. 그리고 전체주의와 맞닿아 있다. 파시즘의 뿌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희생자라는 태도, 자신의 집단에게 피해를 가져다준 (또는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상정한) 적을 만드는 일, 그 적을 법률/도덕의 적용범위 안에 두지않는 자세, 이성이나 지식보다는 자신이 신뢰하는 지도자의 직감을 우월하게 보는 믿음, 힘에 대한 과도한 숭상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참 무력함을 느끼는데, 아무래도 내가 먹물 끄나풀 정도 되는 사람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이데올로기 광풍을 겪었던 20세기 초반 지식인들은 지나치게 무력했다.

예전에 내게 파시즘과 홀로코스트는 너무나 초현실적이었다. 아우슈비츠 옆에 산처럼 쌓인 신발/머리칼/안경/이빨 같은 풍경들. 그런게 어찌 공감이 될 수가 있겠는가.

다시 한번 옛날 책이나 뒤적여 볼 생각이다. 관심갖고 읽으려고 모아둔 책은 아트 슈피겔만 ‘Maus,’ 한나 아렌트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커트 보네거트 ‘Slaughterhouse 5’

언제나 그렇듯이 책 만 사두고서 장식품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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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연재: 4. 브렉시트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 사회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이번 달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글을 공유한다. The American Interest에 실린 조너선 하이트 교수의 기고문. 조너선 하이트는 NYU의 사회 심리학자이고, 한국에도 소개된 책 ‘바른마음’의 저자이기도 하다.

When and Why Nationalism Beats Globalism, JONATHAN HAIDT, 2016년 7월 10일자

Jonathan Hai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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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내 포스트는 요약이나 번역이 아니고, 잊기전에 감상을 기록해 두기 위한 메모에 불과하니 내용에 관심있는 분은 본문을 읽을 것을 부탁드린다.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기고문에서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커지고 있는 반이민정서를 민족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는 반이민정서를 단순히 무지나 혐오의 결과가 아니라 다른 가치관의 표현으로 읽는다. 즉 ‘cosmopolitanism 세계시민주의’와 ‘nationalism 민족주의’의 대립으로 읽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남수단에서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는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과 우리동네 앞 수영장 안전수칙에 더 마음을 쓰는 사람과의 가치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사회가 부유해지면 새로운 가치관이 부상한다. Young urban elite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전통주의 traditional values’ 보다는 ‘세속주의 secular rational’를 ‘생존을 위한 삶 survival values’보다는 ‘자기 표현 self-expression’과 ‘해방 emancipative values’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신뢰가 굳건하고, 범죄율이 낮으며,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 사람들이 그러한 안정을 default로 여기기 시작하면, 상호존중과 자유, 그리고 신뢰에서 오는 낮은 거래 비용과 그에 따르는 경제적 풍요가 소중해진다. 그리고 이를 보장하는 ‘cosmopolitanism’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가치일 수 밖에 없다. (하이트 교수의 이 이야기는 잉글하트의 이론에 근거한다.)

말하자면 Cosmopolitan들은 존레논의 ‘imagine’이 묘사하는 세상을 천국으로 여긴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one.

멀리갈 필요도 없다. 이것은 내가 20대에, 그리고 30대 초반에 꿈꾸던 세상이었다. 군대를 제대할 무렵, 나는 세상에 나가서 뭐를 해야하나 싶었다. 그때 막연하게 넓은 세상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제대 후에 일년간 어학연수도 갔고 몇달간 유럽배낭여행도 했다. 이후에도 그러한 마음가짐이 이어졌다. 영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지만 미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능력만 있다면 세상 어디에 가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때의 생각과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내가 미국에 살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다.

다시 민족주의로 돌아오자. 어떤 면에서 그들의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단순히 인종주의자의 편견으로만 보는 것은 부당하다. 민족주의자들에게 애국 patriotism은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이다. 그들에게 민족과 문화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민족주의자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에 도덕적으로 결단한 사람들에 가깝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글에서 말하는 Nationalism은 도덕적 근본주의에 가까운데 어쨌든 여기서는 민족주의자로 표기하기로 하자.)

유럽은 지난 몇년 동안 밀려오는 이민자의 물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물에 빠져 죽어서 해안으로 밀려온 시체들과 트럭과 기차에 숨어들어오는 사람들의 비극을 지켜보고 있자면 절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거기에 아파하며, 외부인을 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cosmopolitan’의 시각을 가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메르켈 총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에, 이민자들이 들어와서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이 흐뜨러지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민족주의자의 시선이다. 헝가리에 몇년간 살았던 한 친구는 나에게 난민들이 기차역에 노숙을 하는 모습에 일종의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친구에게 뉴스에 나오는 기차역은 익숙한 일상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만약이지만,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나서 거지꼴을 한 수천명의 외국인들이 서울역에 천막을 치고 눌러 앉은 모양새다. 게다가 그들중에 일부는 잠재적인 테러범으로까지 여겨지는 상황이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아주 극단적이지는 않아서 두가지 모습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 본인의 상황에 따라, 또 민감한 이슈에 따라, 두가지 모습 사이 어디 쯤에 있는게 보통이다.

민족주의자들이 지키고자하는 가치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종교적인 신념일 수 있고, 어떤이에게는 가부장적인 가치일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가치가 ‘인종’이나 ‘민족’ 또는 ‘피부색’과 결합이 된다면 강렬한 인종주의의 모습을 띠게 된다.

민족주의자들이 단순히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르다고 다른이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은 도덕적인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느낌을 받으면 종종 극단적으로 돌변한다. 그 도덕적 가치는 그룹에 따라 다르다. ‘동성연애’, ‘이슬람’, ‘페미니즘’, ‘개방연애’, ‘환경보호’, ‘마약’, ‘술’, ‘성적 방종’ 등등.

여기서 하나 집고넘어 갈 부분이 있다. 민족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이다. 보수주의자는 말하자면 status quo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다수 교육받은 사람들이고, 극단적인 상황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반면 민족주의자는 자신이 믿는 가치의 수호를 위해 극단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마무리를 짓자. 오늘은 반이민정서와 cosmopolitanism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러한 생각의 계기는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상이다. 아무래도 나는 여전히 cosmopolitan에 로망을 가진 사람인지라… 그리고 타국에서 minority의 삶을 사는지라…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유럽 극우민족주의자의 부상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상은 여러가지 결을 가진 이야기이다. (따져보자면 두가지 사건을 하나로 묶어 보는 것도 논리적 비약을 감수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한가지 관점으로만 이해한다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예전에 브렉시트를 Euroseptic의 관점에서 읽기도 하고,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해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EU의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브렉시트를 읽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지만 여러 각도에서 다시금 생각해보는게 내게도 유익했다.

어쨌든 시절이 시절인지라, 내가 믿는 가치가 가치인지라, minority로 또는 경계인으로 살아갈 숙명을 가진 내 아이들에게는 그게 또 겪어가야할 일인지라, 요즘 뉴스를 보는 일은 참 씁쓸하다.

브렉시트 관련글 모음

1편: European Union과 United of States of America
2편: 브렉시트와 EU의 정체성 – Eurosc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3편: 브렉시트와 불평등의 문제 – 경제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4편: 브렉시트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 사회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