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16 첫 미국 대선토론이 있었다. 토론의 승패와 경우의 수 계산은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셨기에 굳이 덧붙일 말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갖고 들었던 것은 두 후보자의 정책이었다. 어제 토론에서는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는데, 그나마 초반 20 여분 트럼프가 보호무역 이야기를 하면서 공세를 보일 때 경제 정책 부분에 대한 토론이 조금 있었다.
버니 샌더스의 돌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힐러리의 정책이 좌측으로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경제 정책.
다음은 어제 토론에서 사회자가 일자리 창출 정책에 대해서 물었을 때 힐러리의 대답이다.
“First, we have to build an economy that works for everyone, not just those at the top. That means we need new jobs, good jobs, with rising incomes. I want us to invest in you. I want us to invest in your future. That means jobs in infrastructure, in advanced manufacturing, innovation and technology, clean, renewable energy, and small business, because most of the new jobs will come from small business. We also have to make the economy fairer. That starts with raising the national minimum wage and also guarantee, finally, equal pay for women’s work. (…) How are we going to do it? We’re going to do it by having the wealthy pay their fair share and close the corporate loopholes.”
이번 토론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다소 낮았지만, 예전에도 힐러리는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불공정한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고, 상품가격을 올리며, 근로자의 임금을 낮추고 있다고 말한적이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미국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사회주의자라고 비난받는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렌 의원이 할 법한 이야기를 힐러리에게서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일차적으로는 샌더스와 워렌의원의 지지자들을 끌어 안으려는 힐러리 캠프의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인의 반대기업정서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데에 더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에 대한 반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아래 도표1 참조) 또한 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1999년 73%에 이르렀던 친기업 정서가 현재는 40%로 급감했다.

도표1. 대기업 정서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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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의 변화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대기업을 규제하는 정책들을 추진한다. 예를 들자면, 최근 미국은 독과점 이슈에 엄격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오바마 정권 들어서 39건의 인수합병 딜이 독과점 규제에 걸려 무산되었다. (참고로 부시 때는 16건이었다.) 유럽도 반기업정서는 마찬가지다. 영국의 새로운 총리 테레사 메이는 CEO의 임금 상한선을 설정하고 이사회에 노동자를 포함시키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최근 미국기업 애플에 16조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과연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데로 대기업이 불공정한 게임을 하는 것이 사실일까?
전혀 터무니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올해 3월 이코노미스트지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기업의 독과점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래 도표2 참조) 또한 미국 기업들은 올해들어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음에도 투자는 GDP 대비 4%로 정체 되고 있으며, 실업률은 감소하지만 임금은 크게 상승하지 않는 딜레마에 빠졌다. (아래 도표 3 참조) 당시 기사에서는 이에 대한 원인 중 하나로 무분별한 M&A를 지적했었다. (아래 도표4 참조)

도표 2. 미국 기업 독과점화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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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3. 미국 기업 이익률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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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4. 미국 M&A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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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Too much of a good thing, 이코노미스트 3월 26일자
올 4월 크루그먼 또한 미국 기업에서 경쟁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이를 Robber Barron Recession이라고 칭하고 실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Robber Barron은 셔먼 독점 금지법을 제정하던 20세기 초반, 독과점 기업의 탐욕을 비난하던 이들이 쓰던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도 이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미국 기업의 record-high profit과 독과점 이슈, 5월 31일자 포스트
자, 여기까지가 현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석에는 사람에 따라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팩트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사실 대기업을 주제로 이야기하다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사람들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어떤분들은 대기업을 필요악으로 보기도 하니 그런 관점에서 이 현상을 보면 결국 탐욕스러운 대기업이 다 망해야 된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을런지 모른다. 현상은 그렇다 하고 그러나 결국 모두의 관심은 ‘How?’에 있지 않겠는가.
마침 지난주에 이코노미스트지가 대기업을 superstar company로 칭하면서 14페이지 짜리 스페셜 리포트를 낸 바 있다.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으면 읽어볼 만 하다.
스페셜 리포트를 마무리 지으면서 이코노미스트지는 대기업 규제 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섬세한 균형 delicate balance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세가지 유의 사항을 덧붙인다.
첫째, 21세기의 대기업들은 혁신을 주도하는 테크 기업이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적절하지 못하면 오히려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셋째, 스타트업의 감소는 대기업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 때문일 수 있다.
관련 기사
The Economist | Future policy: A delicate balance, 9월 17일자
나도 나름대로 내 생각을 몇개만 덧붙어 본다. 너무 선명하게 의견을 드러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무리수를 떠앉게 되지만, 논쟁적인 주제를 던져만 두고 두리뭉실하게 마무리 짓자니 그것도 왠지 찝찝해서 이다. (그래봐야 경알못인 내게는 원론적인 이야기 밖에 덧붙일 말이 없다.)
역사적으로 독과점 이슈 논쟁이 가장 뜨거웠던 시기는 20세기 초반 시어도어 루즈벨트 시절일 것이다. 정부가 개입하여 철도회사, 정유회사, 철강회사를 나누었던 당시의 해법이 지금도 동일하게 통하리라 보기 힘들다. 게다가 지금의 슈퍼스타 회사들은 테크 기업이다. 전통적인 독과점의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세계화가 상당히 진행된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이코노미스트지가 말한 대로 섬세한 규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인정하는 내 시각으로는 이 이슈를 단순하게 불평등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남는다. 독과점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독과점으로 인해 기업간의 정당한 경쟁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쟁을 최소화하고 해자moat를 구축하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이다. 그래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다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개입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균형감각을 가지고 개입하는가, 공정한 룰을 만들어가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덧: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경제를 전공하지 않은 1인이 뭘 알겠습니까. 그저 좀더 배우고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포스팅을 해갈 뿐입니다. 훌륭한 페친님들께 오류는 바로 지적해주시고 이견은 부담없이 댓글로 남겨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단 인격적인 공격은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