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샤워를 하며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시작은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을 떠올리면서 였다. 넷플릭스는 정액제로 과금을 한다. 회원들은 무제한으로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얼핏 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무제한 이라고 여겨지는 컨텐츠는 시간이라는 제약조건 때문에 실상은 무제한이 될 수 없다. 누구에게나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크게 보면 레져시간은) 정해져있다. 부페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게다가 음식과 달리 컨텐츠는 한계비용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좋은 컨텐츠만 확보해 두면 그다음은 회원수를 늘릴 수록 그만큼 이익이다.
젊어서는 간과하기 쉽지만 시간은 유한한 재생불가능한 자원이다. 다양한 공부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별반 차이가 없다. 돌이켜보면 전공을 바꿔서 가방끈도 늘려보고, 사는 나라도 한차례 바꾸어 보았지만, 흰머리만 생겼을 뿐 그다지 현명해 지지도 않았다. 아무리 부유한들, 아무리 성취를 이룬들,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마침 시간에 대한 the Economist 기사를 보았는데 공유한다. 2014년 크리스마스 특집기사라 the Economist 기사 치고는 좀 긴편인데, 그래도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 하다.
In search of lost time: Why is everyone so busy? (the Economist, 2014년 12월 20일자)
1930년대에 케인즈는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예측한 적이 있다. 자신의 손자 시대 쯤 가면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일하면서 여유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천재 케인즈도 시간에 대한 예측은 전혀 헛방을 짚었다.
물론 (미국 기준으로) 주당 근무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40년 전에 비해 미국인들은 주당 12시간을 덜 일하고, (세탁기, 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의 도움으로) 여성들은 요리와 청소에 시간을 덜 소비한다. 남편들도 60년대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서 가사활동에 보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더 시간이 없다고 느끼게 된 것 일까.
the Economist 지는 두가지 정도로 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첫번째는 시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고, 두번째는 시간 자원 배분의 양극화이다.
18세기에 시계가 발명된 이후 사람들은 점차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을 돈으로 생각하게 될 수록 점점더 시간을 쓰는데 인색해진다. 토론토 대학의 한 심리학자는 실험을 했는데, 두 그룹에 똑같이 86초 짜리 오페라 도입부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그룹에는 실험 전에 시급 hourly wage에 대한 질문을 했고, 이 그룹은 오페라를 들으면서 더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시간이 적다는 불만을 단순히 심리적인 요인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UT Austin과 서강대학교 교수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시간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일 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니까 항상 바쁘게 살면 좀더 부유한 삶을 살게될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동시에 더욱더 바쁘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바쁘다고 불평을 하는 현대인은 좀더 시간을 쪼개서 ‘멀티태스킹’에 몰입한다. 나는 1970년대 한 경제학자가 말한 성공한(?) 사람의 레져 시간 묘사를 보고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그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은 브라질 산 커피를 마시면서, 네덜란드산 시가를 피우고, 동시에 프랑스 꼬냑을 마시면서 뉴욕타임스를 읽고, 브란덴브르크 협주곡을 들으며 스웨덴 출신의 와이프와 여가시간을 갖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다.
지금와서는 다소 우습게 읽히지만, 현대인의 욕망이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다. 그러니까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살고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꿈은 여가시간에 그 시간을 다시 쪼개어 동시에 여러가지를 멀티로 즐기는 것이다.
19세기에는 레저가 특권층의 상징이었다면, 현대인에게는 바쁨 그 자체가 부유함과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페북/인스타를 둘러봐도 놀러가는 자체가 자랑할 꺼리는 아니다. 휴가를 얼마나 꽉채워서 즐겼는가 그와중에도 나는 얼마나 빡세게 사는 가를 보여주는게 관건이지.
인터넷 문화는 멀티 태스킹과 성급함을 일반화 시켰다. 현대인의 시간 감각에서 250 밀리세컨드는 의미가 있는 차이이다. 구글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250밀리 세컨드 느린 웹사이트를 덜 방문한다고 한다.
시간을 쪼개서 사는 삶과 세속적인 성공에의 욕망 추구는 다분히 미국적이다. 한국인들이 미국의 삶을 상상할 때 미국인들은 휴가를 마음대로 쓰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글래스도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의 반이상이 주어진 휴가의 반정도를 쓰고 있고, 15% 정도는 휴가를 전혀 쓰지 못한다고 한다. 글래스도어 자료의 신뢰성은 둘째 치더라도 미국이 한국 사람들 생각하는 것 만큼 널널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유럽사람들은 이러한 미국적인 기업문화를 속물적이라고 말하지만 유럽도 휴가 문화가 예전만 못하다.
시간을 쪼개쓰는 현대인의 문화가 보편적이 되면서 가장 도전을 받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아닐까 한다. 여성의 직장활동이 늘어나는 동시에 좋은 엄마의 기준은 높아졌다. 시간 소비의 절대치 기준으로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미국기준) 그러나 아무리 가사분담이 잘 되어있는 가정이라고 하여도 여성의 가사 노동은 요리나 청소, 빨래 그러니까 아무리 해도 티도 안나고 끝도 없는 일인 경우가 많고 남성의 경우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또는 (미국의 경우) 잔디 깍기 아니면 집 수선, 가구조립 같은 좀더 티나는 또는 재미있는 일인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가구 조립 같은 일들을 즐기지는 않는다만 미국에서는 피할 수 없다.)
하나만 더 보태자면, 그러니까 이것도 미국 중산층 (또는 상류층) 부모의 느낌이겠지만, 중산층 가정은 대부분 계획을 해서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느정도는 준비된 상태로 아이를 갖는다. 노산이 늘었고, 교육받은 사람들일 수록 자녀와 보내는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면서 예전보다 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도 최소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그들의 부모님과 비교했을 때 훨씬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시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이정도로 마무리 지을까 한다. 이런 글을 올리는 나도 최근에 블로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생각해 볼 수록 참 묘하다. 그러니까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면 시간을 좀더 잘 쓰고 많은 것을 얻을 것 같지만, 실상은 시간이 부족한다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되고 더 불행해 진다.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시간이다.
the Economist지 기사는 레져에 대한 1962년 Sebastian de Grazia의 고전 ‘Of Time, Work and Leisure’의 한구절을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나도 여기에 옮겨두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Lean back under a tree, put your arms behind your head, wonder at the pass we’ve come to, smile and remember that the beginnings and ends of man’s every great enterprise are untidy.”
덧. 관련 이전 포스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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