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캡처

이번주 목요일에 회사에서 ‘Take your child to work day’ 행사가 있었다. 행사는 오전과 오후 순서로 되어있었는데, 오전에는 아이들에게 회사소개를 하고 회사 투어를 했고 오후는 카니발이 있었다. 카니발에서는 각 부서별로 부스를 마련해서 솜사탕을 팔거나 물풍선 던지기, 링던지기 같은 가벼운 게임을 했는데 수익금은 donation한다. 딸아이는 어려서 오전순서는 참여하지 않고 오후의 카니발만 참석했다. 카니발이 끝나고 내 책상도 잠깐 들렸는데 딸애는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동료들에게 인사도 시켰다. 아이도 즐거워 했고 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식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아이가 위험할까봐 뾰죽한 물건을 치우기도 하고, 몸에 좋거나 맛있는 음식을 아이를 위해 따로 챙겨두기도 한다. 아이가 교양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태교도 하고, 커서는 책도 읽히며 음악회나 미술관도 데려가고 박물관에 따라가기도 한다. 아이가 사는 세상이 좀더 좋았으면 하는 마음에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환경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도덕이니 규범이니 하는 것도 아이가 없는 사람의 마음과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천양지차이다.

한 블로거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르쳐 주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격암님의 블로그: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 우리는 지켜야할 소중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행동한다. 최소한 걱정한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무신경하게 지나쳤던 술집들이나 위험한 환경은 부모가 된 사람들의 눈에는 걱정꺼리이다. 아무리 악한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이 보고 있는 앞에서 떳떳하게 범죄를 저지르지는 못하는 법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때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버이날이 되면 몇몇 부모들은 카네이션을 달고 회사에 출근한다. 대부분 부장/차장님들이다. 평소에는 ‘쪼으는 데’에 숙달된 분들이시다. 내 기분탓인지 그분들도 카네이션을 달고 있는 그 순간 만은 조금더 너그럽고 유한 모습을 보이셨던 것 같다. 아이들은 우리가 한숨 돌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주는 존재이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내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성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던 시절에는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때 나를 지켜주었던 것은 아이에게 매일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하기로 한 약속이다. 매일 지키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이와 한 약속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사실 그 시간은 내가 가르키는 시간이라기 보다는 배우는 시간이었다. (예전글: 페르시아의 유대인 말살 정책과 에스더) 아이는 진정 어른의 선생이다.

저출산은 우리나라의 서글픈 현실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부담이나 짐이 아니다. 아이와 함께 울고 웃고 그리고 우리는 배운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친구가 있다. 그의 다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인줄 알기에 또 아니라고 하기에는 별다르게 설득할 말이 없기에 더욱 서글프다. 부모만을 의지하며 연명해가는 갓난아이들,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면서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의식하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모들이 있는 한 세상은 희망이 있다.

이쯤에서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미국에서 그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발 떨어진 입장이었다. 대다수 나의 친구들이 이미 부모가 되었기 때문인지 그들에게 충격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형참사 자체의 참혹함도 있지만 그 대상이 아이들이 었다는 데에서 더욱 큰 슬픔이 있지 않았나 싶다. 계속되는 뉴스와 소식들에서 대한민국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부모의 심정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이 부모인 것을 자각하는 것 그 자체로도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행동한다. 그것이 아이들이 어른들의 희망인 이유이다.

한국사람들은 왜 외국에서 서로 피할까?

미국 몇년 살면서 외국에 체류하는 한국 사람에 대한 특이한 점 하나를 알게 된게 있다.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을 일부러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한국 사람만큼 정이 넘치고 끈끈한 사람들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인사 나누고 고향이나 학교 등등의 호구조사를 하고서 공통분모를 찾는다. 하나라도 유사점이 있으면 바로 형/아우를 규정하고서 절친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다니는 건 어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는 그런게 이상하게만 여겨졌는데, 조금 지내다보니 나도 어떨때는 한국사람들하고 만나는게 불편할 때가 있다. 금새 친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엮이게 되는게 부담스러운 거다. 사람사이의 관계가 좋게 되기만 한다면야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 만큼 좋은 일이 없겠지만, 꼭 모든 사람이 나와 맞을 수는 없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특히나 이민사회는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한번 알게 된 사람은 계속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야한다.

한국인의 다른 특징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존댓말의 문화이다. 존댓말에 관련한 내 생각은 이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미국사람들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존댓말이다.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면 무의식중에 손위/손아래를 따지게 되고 손위사람에게는 존중을 손아래사람에게는 복종을 요구한다. 나는 한국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문화가 존댓말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경험과 연륜이 있는 사람에게 존경과 존중을 표시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단순히 숫자적으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사람이 옳다거나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복잡한 관계 속에 얽혀서 살고 있다. 우리는 나이, 학번, 입사동기, 사돈, 선배, 후배 이 모든게 얽혀서 서열을 정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images

예전에 임수정의 ‘내아내의 모든것’을 재미있게 본적이 있다. 거기서 임수정은 눈치안보고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지만 밉상은 아닌 캐릭터로 나온다. 그중에서 인상깊었던 한 장면이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와이프들끼리의 모임 장면이다. 이러한 모임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거기서 와이프들끼리의 관계는 남편의 직급으로 규정된다. 한 아주머니가 임수정에게 말을 한다. “와이프가, 눈치가 아주 많이 없네!” 이때 임수정은 그 사모님들에게 말을 한다. “눈치를 안 보고 살아서 그래요. 예의만 지키면 눈치는 안봐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영화의 큰 맥락과 관련이 없는 장면이었지만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미국와서 한국 아이들과 미국아이들의 차이점을 하나 발견한게 있다. 한국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형이고 언니인지 먼저 따진다. 그런데 아이들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한가지가 있다. 미국은 학기가 가을에 시작하기 때문에 보통 9월이나 10월 생들이 학교를 빨리 간다. 거기서 바로 복잡한 호칭 문제가 발생한다. 나이가 같은데 학교를 먼저 갔기 때문에 형이라 해야 할지 언니라 해야할지 애매해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빠른 xx년생이랑 비슷한 상황이다. 이게 미국아이들에게는 별로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학년이 높다고 해서 존댓말을 쓰는 것도 아니고 호칭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학교를 먼저 갔을 뿐이다.

미국 아이들도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보통 리더십이 더 있기는 하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논 이야기를 들어봐도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놀이를 주도할 때가 많다. 선생님/학생 역할 놀이를 할때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선생님 역할을 맡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건 또래에 비해 성숙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리더십이지 존댓말이나 호칭으로 인위적으로 생기는 리더십은 아니다.

한국인은 나이를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몇살에는 취직을 해야하고, 몇살에는 결혼을 해야하며 아이를 나아야하고 등등 모든것이 나이에 맞춰져서 되어질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문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문화라는 것은 각자 모두 이유가 있고 옳고 그르다기 보다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러한 부분은 정말 아쉽다.

John Oliver – net neutrality

It is such a boring topic. But worth watching.

지난번에 월드컵 얘기하면서 소개한 HBO의 존 올리버 되시겠다.

비속어나 영국식 억양 때문에 알아듯기 힘들긴 하지만, 내용은 참고 들어볼 만하다.

가끔 미국 코미디 보면서 부러운 게, 미국은 상당히 보수적인 나라이지만 코메디에서 상당히 정치적인 주제를 거리낌 없이 시원하게 쏟아 낸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코메디는 정치 풍자가 중요한 한 축이다.

주제는 참으로 어렵게도 ‘망중립성(net neutrality)’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신사들이 보이스톡을 제한하면서 몇번 언론에 소개된 말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인터넷 망 인프라 회사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모든 컨텐츠를 동일하게 취급해야한다는 원칙이다. 보이스톡은 통신회사들의 음성통신 매출과 연관이 깊기 때문에 망중립성 논란이 불거지는 거다.

공유한 영상클립은 인터넷 케이블회사와 (컴캐스트, 타임워너) 정보통신 분야 로비스트, 대통령의 이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일반인의 시각으로 쉽게(?)풀어서 설명해준다. 우리로 따지면 SKT와 KT 그리고 정통부, 대통령의 의혹을 jtbc의 토크쇼에서 김구라가 시원하게 까대는 건데 이런게 우리나라는 언제 가능해질까 싶다. 딱히 좋아한 적은 없었지만 나꼼수 같은 프로그램이 그런 걸 표방 했던 것 같기도 하고…

1st work anniversary!

오늘은 UPS에서 일한지 딱 일년이 되는 날.

미국에 아무 연고도 없고 영어도 어설펐던 내가 운좋게도 (또는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회사에서 일년을 버텼다.

순수 토종 된장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남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외국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한 가장으로 사는 것이 유학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닥쳐보니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3년전 미국 처음 올때 몇가지 가능성을 보고서 인생을 계획하고 승부를 걸어봤지만, 인생이라는게 계획했던 대로만 풀리는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레버를 쥐고서 누르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었던 듯…

경제적으로도 불확실함이 컸고 기약없는 시간도 많았는데, 지금까지 지켜봐주고 물심양면으로 써포트해준 울 마나님의 내조가 없었다면 이또한 불가능 했으리라.

어쨌든, 취업하는 것 또는 미국 주류사회(?)에서 살아남기가 거의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여지껏 버텨온 내자신이 신기방기.

미국사람들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To have a second language is to have a second soul.” – Charlemagne

언어가 단순히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일까? 아니면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까?

스탠포드 대학의 Caitlin Fausey의 실험에 따르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사람을 비난하는 경향이 커진다고 한다. (출처: Lost in Translation, WSJ) 이는 영어가 수동태보다 능동태를 좋아해서 그렇다. 예를 들어 꽃병이 깨진 사건을 표현할 때, 영어로는 “John broke the vase.”라고 말하고 스페인/일본어로는 “The vase was broken.”라고 말한다. 다른 예로 같은 내용의 비디오를 보여주고 각기 다른 언어 사용자에게 그 사건을 묘사하라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때 영어권 사람들은 ‘누가’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위주로 묘사했다고 한다. 반면에 비영어권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가 더욱 중요했다고 한다.

한국어의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는 존댓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람이 나보다 손위 사람이냐 손아래 사람이냐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 차이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만나면 민증부터 깐다. 잠시 호구조사가 끝나면 (어느 지역출신이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 등등..) 바로 말을 놓거나 아니면 두번째 만날 즈음에는 슬쩍 말을 놔야겠다는 판단을 한다.

한국사람들끼리는 나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손위사람하고 영어로 대화를 하면 종종 어색해진다. 분명히 형이거나 누나인데 ‘You’라고 해야하고, 존칭인 ‘sir’ 같은 말은 왠지 사이가 먼사람 같이 느껴진다. 말끝마다 ‘please’를 붙일 수도 있지만 ‘please’는 존댓말이라기 보다는 공손한 말의 느낌이다.

이러한 어색함은 한국사람끼리 대화하다가 미국사람이 대화에 끼면 두배가 된다. 미국사람들한테는 손위사람에게도 친해지면 격식없이 casual English를 사용하는데 미국 할아버지에게 격식없이 영어를 하다가 옆에 있는 1살 위의 형에게 격식없이 영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어색하다. 설명하기 애매한 시츄에이션인데, 아마 겪어본 사람은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에게 나이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직장 상사가 나보다 젊은 사람일 경우도 있고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이 아래사람이 되기도 한다. 지금 회사에서 전의 보스는 50대 중반 백인 아저씨였는데 그의 보스는 30대 중반인 한국계 미국인이다. 처음에 나는 이런 상황이 좀 어색했다. 근데 둘의 관계는 직장 서열로 규정되기 때문에 나이가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 제일 적응이 안된건, 나이어린 보스가 스무살 정도 위의 부하직원의 어깨를 툭치면서 ‘Hey, man! What’s up?’ 하면서 썰렁한 농담을 주고 받는 거였다. 근데 내보스는 ‘어린 녀석이…’ 라고 불끈하는 게 아니라 격없이 대한다고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더라.

미국에서 오래 지낸 교포 어르신들과 대할 때도 이런 부분은 참 애매하다. 중요한건 이사람이 한국 스타일에 가까운가 아니면 미국 스타일에 가까운가를 먼저 파악하는 건데, 미국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손으로 악수를 하는게 좋고 한국사람에 가깝다고 판단되면 허리를 약간 숙이고 두손으로 공손하게 악수를 해야 한다.

존댓말과 어른 공경의 태도가 우리나라를 우리나라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조금은 경직된 조직 문화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문화적인 부분데서 오지 않았나 싶다.

샤를마뉴(카를루스 대제)의 말을 인용해서 거창하게 글을 시작했는데, 잡설만 길어졌다. 외국에 살다보면 처음에는 한국과 비교해서 외국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 싫어지기도 하고, 다른점이 좋아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몇년후 나조차도 그러한 외국 문화에 적응되어 변해버린다. 반대로 한국을 보면서 좋은게 생기고 싫은게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어권 밖에서 살면서 하나 좋은 점은 우리나라 사회와 문화를 보는 다른 시각이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인들도 회사에서 안정될 때까지 자녀 계획을 늦춘다고…

700

Report Finds More Americans Putting Off Children Until Companies Are Ready

Originally posted 6/25 on facebook

직장이 자녀계획의 걸림돌이 되는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듯. 정치인들이 복지를 이야기 할 때 북유럽을 예로 드는 건 이유가 있다고 봄.

미국 오기 전에는 미국에는 아이 때문에 여자가 직장을 포기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환상이 있었는데, 내가 사는 남부 한정해서는 꼭 그렇지도 않은 듯…. 대부분의 청춘들은 직장이 잡히고 안정이 되는 시기까지 출산/결혼을 늦춘다. (결혼을 늦춘다는 의미가 실제적인 결혼인 동거를 늦춘다는 의미는 아님) 그치만 경제적으로 일찍 안정된 가정은 부인이 일을 그만두고 세명이상 자녀 양육에 전념하는게 유행도 있음. 좀더 여유가 있는 집은 동유럽출신 보모를 두는 럭셔리를 보이기도…

어쨌든 자녀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인듯

미국사람들은 뭐 먹고 살까?

Originally posted 06/20/2013

오늘은 그냥 미국사람들이 뭐먹고 사나 그런 얘기. 맨날 머리아픈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오늘은 상식 수준의 이야기만 하련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커서 그 사이즈를 실감하기가 쉽지가 않다. 시장규모로 한번 설명해볼까? 내가 익숙한 택배 시장부터 얘기해보자.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는 택배시장 규모가 4조원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 회사의 주력 시장인 미국 택배시장은 약 50조원 정도 규모이다. (참고로 우리 회사가 56% 정도 마켓쉐어를 가지고 있음.) 이건 미국내의 물류 이동만을 따진 거고, 미국과 외국을 넘나드는 국제 특송까지 따지면 훨씬 더 커진다. 이 숫자들은 대부분 그냥 내 머리속에 있는 거니까 확실치 않다. 딴지걸지 마시길…^^ 택배 산업이 단순해 보이지만 미국정도 규모가 커지면 택배운송용 비행기를 위한 전용 공항을 운영해야 할 정도가 된다. 우리회사 년 매출액이 60조 정도 되니까 매출액 기준으로 비슷한 규모의 한국 회사는 포스코 정도 될 것 같다. 택배 회사만 따져도 이정도지만, 내수산업 대표주자인 유통업 같은 경우는 비교가 불가능 하다. 월마트가 포춘 1위/2위를 왔다갔다 할 정도다.

그뿐인가? IT 산업에는 정말 많은 돈이 굴러다닌다. 최근에 미국에서 핫한 it회사는 우버라는 회사인데, 앱을 통해서 일반 운전자를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대체 택시 같은 아이디어로 18조의 회사로 가치 평가 받으면서 소위 대박을 냈다. 우리나라도 최근 카카오가 다음과 합병하면서 2조 정도 가치를 평가 받았는데, 이런일이 우리나라는 드물지만 미국은 일년에도 몇번씩 대박 인수건이 터져 나온다. 요새 내가 진행한다는 a/b/c 프로젝트중에 하나가 Private equity firm에 대한 리서치인데, 이동네가 정말 재미있더라. 엄청난 돈이 실리콘 밸리로 흘러 들어오고 그러다보니 똑똑한 사람들은 프로그래밍만 해도 편하게 잘 먹고 산다.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들의 처우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습한 일이다. 또 다른 돈이 굴러 다니는 분야는 석유/화학, 의료 분야인데 이걸 일일이 다 말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으니 이정도로 마무리 짓자.

이렇게 엄청난 부가 창출되는 나라이다 보니 미국사람들은 딱히 수출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구조이다. 우리나라 회사들은 어느정도 성장을 하면 해외 시장을 생각해야만 하는 시점이 오는데, 미국 회사들은 해외에 큰 관심이 없다. 사람들의 마인드도 마찮가지 이다. 딱히 외국 안나가도 별 상관이 없고 자기네 위주로 생각해도 그냥 잘 돌아가는 나라이다.

그렇게 큰 나라이다 보니 오히려 작은 나라에 대한 감이 떨어진다. 이를테면 그들이 유럽을 바라보는 방식인데, EU라는 울타리로 쳐있는 유럽 시장을 볼때 자꾸 하나의 시장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유럽 각 나라마다 민족과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데 도저히 균일할 수 없는 데 말이다. 미국에 익숙해지면 유럽가서 몇시간 운전하면 국경을 넘는 상황도 어색해지는 상황까지 생긴다.

주마다 법이 조금씩 다르고 기후도 다르고 시간대도 다르고, 인종구성도 조금씩 다르다. 우리가 미워하는 또는 사랑하는 미국은 실체가 모호한데, 미국 정부, 주 정부, 그리고 기업, 군대 정말 다른 가치를 가지고 따로 따로 움직이는 개체들이다.

아 이제 졸리나보다. 횡설수설하고 있다…. 이시간까지 나는 안자고 뭘하고 있단 말인가? 하여튼 그렇다. 오늘도 길게써서 아까우니까 그냥 포스팅~ 점점 포스팅하는 글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초창기에는 글 하나 써도 상당히 고심해서 썼는데…. 굿나잇 페친님들….

미국회사와 조직생활

오늘은 토론 같은거 하려고 쓴글 아니고 그냥 머리 비울라고 쓴글입니다. 참고하세요…ㅎㅎ

한국에서 6년, 미국에서 1년 도합 7년 정도 보수적인 대기업의 일원으로 박박 기면서 살고 있다. 만약 군대까지 합치면 9년이려나? 조직생활 하면서 느끼는 게 한가지 있는데, 큰조직일 수록 위로 올라가면 실제 밑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모른다는 거다. 그나마 한국에서 덜 주먹구구식이라는 하는 삼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회사를 경험하기 전에는 나름 미국사람들은 합리적이지 않을까 환상도 조금 있었는데, 3달안에 깨져버렸다.

내 조직생활 경험에 의하면,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듣고싶은 이야기 만 골라 듣고, 복잡한 이야기 싫어하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얘기 해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조직에서 잘 나가려면 윗사람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건지…. 운만 띄워도 바로 알아 듣고 최대한 단순하고 명쾌하게 보고하는게 아주 중요한 스킬이다. (이건 내 조직 생활 경험이 피라미드 구조의 보수적인 조직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수평적인 조직으로 유명한 구글 같은 회사는 좀 다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치만 구글은 나의 경험밖의 이야기니까 논외.)

높은 위치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 뭐 그런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워낙 신경써야 할 게 많고 보고하는 입장에서는 그 일이 전부이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보고 중에 하나일 뿐이다. 또 관료조직에서는 자기 윗사람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밑에 있는 사람들의 보고를 일일히 성의껏 들을 여유가 없고, 어느 정도는 밑에 있는 사람의 권한도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믿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 내공이 깊은 사람은 잠깐 듣고서도 보고자료의 허실을 단칼에 꽤뚫기도 하지만, 그런사람이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조직이 아주 커지면… 그런게 불가능해 진다.

미국/유럽은 합법적인 로비스트가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지금까지 나는 세명의 로비스트를 만나봤다. 한명은 스위스계 제약회사 로쉐 출신의 EU 본부 로비스트 였고, 한명은 지금 우리회사 로비스트, 그리고 또 한명은 MBA 동기다. 그들을 만나 보기전에는 나는 로비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로비스트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돈으로 정치인들을 매수하는 장면이나 미국 총기협회 같은 단체를 떠올리게 된다.

그 친구들은 로비스트의 모습이 그게 다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친구들이 피력하는 로비스트의 역할은 이렇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입법과정이나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기업이나 이익단체에서 관련 자료 정리해서 알려주고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자료가 로비스트들의 후원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정치가들도 그것을 감안하고 자료를 검토하고 또 반대 입장의 자료도 같이 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로비라는게 순기능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한때 나는 일잘하는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잘 굴러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한적도 있었고,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으로 최고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어떤 대통령이 되던지 큰 차이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정말로 규모가 큰 조직의 최고 위에 있는 사람인데, 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싶다. 규모가 조그마한 회사이거나, 아니면 심지어 서울시 정도의 규모도 쉽지 않을 텐데, 한 국가라니… 또 한 국가라는 건 워낙 크고 작은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대통령이 바꿀 수 있는게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또 잘해보려는 의도에서 어떤 일을 추진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의도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게 다른분야에는 규제가 되어서 부작용이 되는 경우도 꽤 된다.

예전에 아는 공무원 형하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주제하는 회의는 첫 일년은 장관들의 발언권이 세다고 한다. 그치만 우리나라 장관들의 수명은 보통 일년이 넘지 않기 때문에 몇년후에는 거의 대통령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몇년 되면 정책들을 좀 실행할만 한데, 이번에는 장관들이 입을 다물때가 많아서 실상하고 거리가 먼 정책이 될 가능성도 크다고. 그렇다고 외교는 더더욱 대통령이 할 입지가 적지 않나 싶다.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그동네에서 우리나라 자체가 할일이 별로 없다. 물론 대통령에 아무나 앉혀도 되는건 아니겠지. 이왕 얼굴마담의 역할이 크다면 기존 정치권하고 관련이 적은 신선한 사람이 나오면 좀 다를까 싶은 생각은 좀 든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물론 선거할 여건이 된다면 굳이 투표를 포기 하지는 않겠지만, 딱히 큰 기대를 가지 지는 않는다. 그리고 외국에 있으면 투표할 여건이 잘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들 투표를 독려하고 축제처럼 즐기는데, 나처럼 생각하면 안되는 건가? 인증샷 찍는 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먹방도 재미나게 하니까. 살좀 빼고 인증샷찍으로 투표장에 한번 가야겠다. ㅎㅎ

오늘 회사라는 조직사회에서 치이고 나서 그냥 뻘 생각이 많아져서 이런저런 글 써본다. 쓰고 보니 너무 씨니컬하다. 이 글보고 맘불편해 질 것 같은 몇몇 페친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렇다고 이렇게 길게 쓰고 포스팅 안하자니 아깝네… 용감하게 포스팅.

미국회사 흉보기

Originally posted 06/18/2014 on facebook

미국회사 다니면서 한국말 할줄 알아서 좋은 한가지는 페북에다 맘놓고 회사 흉봐도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요샌 주로 한국말로 수다떠는게 주된 용도로 변했지만, 원래 페북을 시작한 동기는 미국친구들과의 네트워크였다. 학교 가보니까 친구들이 다 페북계정이 있더라. 어찌됐든, 지금 내 페친중에는 직장동료도 있고, 심지어 예전 보스도 있는데 그들은 한국말을 모르기 때문에 여기다 회사 흉봐도 아무도 모를꺼다… ㅎㅎ

어제 CMO (Chief Marketing officer)가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갑자기 관심을 가져서 불길하다는 포스팅을 했는데, 역시나 생각보다 불길이 크다. 그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잘되고 있는데…. (이건 내가 잘해서라기 보단 그냥 운이 맞은 거다.) 그 결과를 정리해서 리포트를 냈더니 그게 CMO 한테까지 간 것 같다. CMO 말한마디에 CMO 밑에 있는 VP(vice president)들이 갑자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정말 다양한 각도에서 심층적인…ㅎㅎ 보고 자료를 요구한다. 역시 회사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다를 바 없다. 단 하나 차이는 일이 많다고 회사에서 야근하지 않는다는 건데, 그게 반드시 좋은게 아닌게 보통은 일거리를 집에 싸가지고 온다. 요새 지인의 페북 포스팅 보고서 나두 독서를 해볼까 이것저것 e북 다운 받아뒀는데 몇주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흠…지금은 배부터 채우고 일시작 해야 겠다.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IT계열 그리고 서부회사에 많이 취직하다 보니, 그분들의 포스팅을 보고 미국회사들이 대부분 구글 같은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그런것 만은 아니다. 대기업은 역시나 수직적이고… 권위적이다. 우리회사는 그중에서 탑을 달려주심. 그리고 직속상관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당장 짐싸고 나가라 그러면 그날로 나가야함…) 그 안에서의 정치와 아부는 엄청나다. 우리나라 사람은 체면이라도 있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런거 없기 때문에 대놓고 그렇다.

오늘은 미국 회사에서 다니는 거에 대해 환상을 깨주려고 포스팅 했다.. ㅎㅎ 뭐 좋은 점도 있고 나쁜점도 있으니 나중에 회사 얘기도 생각 정리해서 포스팅 해봐야 겠다.

미국사람과 한국사람의 정서 차이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가능한지 모르겠으나, 내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미국사람들은 겉으로는 매우 나이스 한 사람들인데, 나중에 평가나 뭐 이런면에서는 정말 매정하다. 반면에 한국사람들은 결혼 왜 안하냐는 둥, 옷이 왜 그모양이냐는둥, 간섭하고 사생활 침해를 당연한 듯 해대고 잔소리 작열이지만 정이 많아서 막상 평가에는 박하지 못한 편이다.

한국사람들이 미국오면 적응된후에는 허니문 피리어드가 온다. 이때는 미국사람들의 나이스함과 쿨함이 좋아보인다. 그치만 그건 잠깐, 오래 지나다보면 꼭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걸 발견한다. 이사람들은 그냥 다른 사람에 무관심할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미국사람들이 무슨 피도눈물도 없는 사람들인것 같지만, 미국사람들 개개인은 착하다. 그냥 다를뿐이다. 개인 사정 이야기하면서 징징거리면 그런 사정 다 봐주고 또 도와주려고 선뜻 나서는게 미국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 감정 상하게 하는 걸 될수있으려면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절대로 단점을 대놓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오면, 우리 박대통령님의 요지부동한 지지도 우리의 국민성에서 온 측면이 없잖아 있다고 본다.

흠… 최근 대통령 지지율 관련 기사 보고서 든 생각을 짧게 남기려다 또 길어졌다. 오늘의 짧은(?) 잡설 한마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