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3 –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Monkey Business, 소설가의 일, 먼 북소리, Essays of Montai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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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첫번째, 두번째)에 이어서…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10편, 너에게로 가는 길 (30% 완독)

(작가: 김훈, 박민규, 윤성희, 편혜영, 정이현, 천명관, 이기호, 김중혁, 박형서, 황정은, 김애란)

후배한테 요즘 한국 소설 중에 읽을 만한 책을 물어봤더니 이 책을 권해 주었다. 한국 문단에서 잘나가는 소설가들이 다 있으니까 읽어보고서 마음에 드는 작가 책을 더 사보면 된다면서.

감사하게 잘 읽고 있다. 재미도 있는데, 속도는 안난다. 아무래도 선집이다보니 작품마다 흐름이 끊어져서 그렇다. 김훈의 ‘화장’은 따로 메모를 남길 생각도 있는데, 언제 하게 될런지…

Monkey Business – John Rolfe and Peter Troob (10% 완독)

MBA 시절, 금융권에 가면 어떤 일을 하나 궁금해져서 집어들었던 책. 투자은행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둔 두명이 썼다. IB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Banker들이 바닥에서 박박 기어가며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금융권 커리어에 대한 생각을 일찍이 접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레 책을 방치해뒀다. 다시 읽어볼까 싶어서 목록에 올려봤다. 금융위기 이전에 쓰여진 책이라 지금 읽어보면 오히려 재미있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가의 일 – 김연수 (완독)

재미있었다. 나는 책을 상당히 늦게 읽는 편임에도 이틀만에 읽었다. 공감하며 읽은 구절이 많은데, 몇달 전에 읽어서인지 벌써 많이 잊어버렸다. 빨리 읽혀서 그만큼 빨리 잊힌 것 같다. 역시 메모를 해두어야 한다.

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30% 완독)

하루키가 3년간 유럽에 체류하면서 쓴 책이다. 체류한 국가 중에 하나가 요즈음 뉴스에 자주 나오는 그리스이다. 그리스에 관심이 생겨서 읽기 시작했다.

체류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 딱 그정도의 깊이다. 여행 보다는 좀더 사는 이야기에 가깝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외부인의 시각에 가깝다.

유럽에 체류했던 이 3년 동안 ‘상실의 시대’와 ‘댄스댄스댄스’를 썼다고 한다. 해외에 체류하면서 책을 쓰는 삶이라니… 따져보니 이 시기의 하루끼는 지금의 내 나이다.

어쨌든, 아내와의 일화에 박수를 치며 공감하면서 읽는 중.

Essays – Montaigne (시작 안함)

무려!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내가 롤 모델로 삼은 사람이 몇 있지만 으뜸은 몽테뉴이다. 그런데 막상 몽테뉴를 이야기 하려고 하니까 그가 쓴 수상록을 제대로 읽어본 일이 없다. 가오가 안산다. ㅎ

최근에 반스&노블스에 갔다가 발견하고서 고민 끝에 사고 말았다. ‘완역본’ 에다가 ‘현대 영어’로 번역을 했다는 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가 있을까. 순서대로 읽을 생각은 없고, 그냥 모셔두고서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읽을 생각이다.

<앞서서…>

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1 – Black Swan, Maus, Salt

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2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인생수업,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2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인생수업,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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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 마스다 미리 (완독)

요즘 30대 여성들에게 가장 공감을 주는 작가라고 해서 읽었다. 역시나 만화라서 술술 읽힌다. 밀도 있는 책이 아니라서 머리 식히기 좋았다. 미혼 (또는 비혼) 여자로 사는게 무엇인가 잠깐 생각해 보았다.

이를 테면, 결혼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혼자서 늙는 것 같아 울적해지기도 하고, 결혼한 친구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정말로 행복할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런 걸까.

인생수업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완독)

올 봄 한국에 갔을 때, 책장에 꼽혀 있길래 들고 온 책. 나이가 들었는지 ‘잘 죽는 것’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일 적에는 눈길도 가지 않았는데 말이다.

기대보다는 못했다. (책이 별로 였다기 보다는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처음 두세 챕터는 신선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분명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 있다. 다만 비슷한 느낌의 교훈적인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은 마무리 지을 생각으로 기계적으로 읽었다.

그래도 좋았던 한구절 옮겨본다.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이 배움들은 무엇일까요?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 비난, 화,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또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배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들도 있습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일러스트가 과해서 거부감이 든다. 양적으로 과하다는 것이 아니라 삽화가 메세지를 주고 있어서 그렇다. 원서에는 없는 삽화인 것 같은데, 이야기의 맥락을 끊는다. 역자가 인도문화와 명상에 관심이 있는 분이어서인지 표지와 삽화만 보면 영락없이 명상에 관한 책이다. 책 내용은 인도와 전혀 관련이 없다. 백번 양보해서 명상과는 약간 관련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래도 삽화가 없었으면 더 좋을 뻔 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 김중혁  (완독)

팟캐스트 ‘빨간 책방’을 몇번 들었다. 김중혁이라는 작가가 궁금해져서 신작을 사봤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반할 만하지도 않았다. 탐정 소설이라는 장르의 형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탐정 소설을 읽는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는 따뜻한 느낌까지 받았다.

‘빨간 책방’을 듣다보면 김중혁과 이동진이 농담 따먹기를 할 때가 많은 데, 그 농담따먹기를 소설로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가의 성격이 소설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듯.

도입부와 마지막 부분이 좋았다. 도입부는 잘 짜여진 단편 같았는데, 후각과 공간감을 동시에 사용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 박완서 (시작 안함)

박완서의 수필을 읽어본 일이 있다. 세대 차이 때문인지 고루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항상 진실되려는 태도, 그러한 글쓰기의 자세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 졌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고루한 글이기 때문에 그 시절 내 할머니들의 시선을 이해하게 해준다. 만약 이른 살 노인이 되어서까지 블로그를 한다면 박완서처럼 글을 쓰고 싶다.

아참, 일곱편의 박완서 산문집 중에서 마지막 편을 구매한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이어서…>

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3 –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Monkey Business, 소설가의 일, 먼 북소리, Essays of Montaigne

<앞서서…>

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1 – Black Swan, Maus, Salt

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1 – Black Swan, Maus, Salt

원래는 하나씩 리뷰를 올릴 생각이었는데, 꽤 귀찮다. 뭐라도 끄적여 두지 않으면 나중에 읽었다는 사실도 잊을 것 같아 기록을 남겨둔다.

The Black Swan – Nassim Nicholas Taleb (80% 완독)

이 책은 올해 초부터 들고 있는데, 아직 끝내지 못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고, 감탄하면서 읽고 있음에도 중간부터 속도가 늘어진다. 주제가 명료한데, 워낙 다양한 분야를 토대로 주제를 풀어내기 때문에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런 것 같다. 한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책이다.

Maus – Art Spiegelman (30% 완독)

블랙스완을 읽다가 프랙탈, 망델로브 집합 이야기가 나올 쯤에 머리가 너무 아파졌다. 나같은 공돌이 한테는 차라리 수식이 더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 말로 개념을 설명하는 게 더 헤깔린다. 어쨌든 쉬어갈 겸 만화를 집어들었다.

만화책이라서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Maus는 만화로는 처음 퓰리처상(1992년)을 받았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아버지를 아들의 입장에서 그렸다. 이 책에서 가장 아이러니 한 부분은 인종 차별의 피해자인 아버지가 흑인에 대해 차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 아들에게 아버지는 피해자도 아니고, 괴팍한 노인네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의 도입부. 아들이 친구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Friends? Your friends? If you lock them together in a room with no food for a week, then you could see what it is, friends.”

만화는 (당시 기준으로는) 새로운 표현도 몇가지 시도한다. 그 자체 만으로도 볼만하다.

Salt – Mark Kurlansky (시작 안 함)

지난 주에 딸아이랑 서점에 갔다가 집어든 책. 책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지만, 펭귄문고라 일단 신뢰할 만하고, 훑어 보았을 때 느낌이 좋았다. 집에 와서 책에 대한 정보를 좀 검색해봤는데, 마크 쿨란스키는 <대구 cod>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고. 미세사 쪽에서는 알려진 저자라고 한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책인데, 지금은 절판 되었다고 한다. 최근 음식 관련 글들이 유행인데 재출간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이어서…>

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2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인생수업,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요즘에 읽은, 읽고 있는, 읽을 책들 3 –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Monkey Business, 소설가의 일, 먼 북소리, Essays of Montaigne

살만 루슈디 신작 관련 NPR 인터뷰

살만 루슈디 신작이 발표되었다. 제목이 Two Years Eight Months and Twenty-Eight Nights이다. 책 소개에 의하면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한다. 루슈디 책은 배경지식이 없이는 읽기 힘든데, 화려한 문체, 블랙유머와 비유들, 다양한 인용구들이 꽤나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새 책에 도전해 볼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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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루슈디가 NPR 인터뷰를 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서 퍼온다. 인터넷 월드에서 증오가 가득한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인가 보다.

“It’s an age in which everyone is upset all the time. All you have to do is look at the Internet. It’s full of people screaming at other people for saying things they don’t like.”

“I think we have to just turn that sound off and turn away from that unpleasant noise and just get on with doing what we do,”

원문 링크: Salman Rushdie: These Days, ‘Everyone Is Upset All The Time’(NPR 2015년 9월 5일자)

Beautiful stories about Oliver Sacks by Atul Gawande

이번 주 뉴요커에 실린 글을 공유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가 얼마 전 작고한 올리버 색스에 대해 썼다. 최근에 읽은 글 중 가장 따뜻한 글이다.

Oliver Sacks by Atul Gawande (The New Yorker 2015년 9월 14일자)

캡처

(image source: the New Yorker)

느낀점 1.
의사라는 직업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어쩔 수 없이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의 직업과 작가의 마음을 동시에 가진 색스는 끊임없이 환자의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특히 문학의 경우)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공감하는 능력이 없이 쓸 수 없다. 말하자면, 드라마에서 아무리 악역이라 하더라도 배경 스토리가 들어가게 되면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간이 되는 원리랄까. 그런 점에서 가완디나 색스 같은 분들의 시선은 참 아름답다.

느낀점 2.
생의 마지막까지도 쓰기와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노학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구를 놓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손편지를 보냈으며, 책을 읽었다. 이보다 아름답게 삶을 마칠 수 있을까.

느낀점 3.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을 사두기만 하고 아직 시작을 못했다. 가완디는 이 책을 쓰는 중에 색스와 서신을 교환했다고 한다. 당시 색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자서전을 저술하고 있었다. 책을 빨리 읽고 싶어졌다.

덧.
색스가 임종 전에 읽고 있었다는 책이 E.M.Forster의 ‘The Machine Stops’라고 한다. 다음에 서점에 갈 일이 있으면 한번 들춰봐야겠다.

참고로 올리버 색스가 임종을 앞두고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을 같이 올려둔다.

원문: My Own Life (뉴욕타임즈 2015년 2월 19일자)

한글번역: 나의 생애 (뉴스 페퍼민트)

살만 루슈디의 글쓰기

뉴욕에서 발행되는 ‘파리리뷰 the Paris Review’. 이 잡지는 작가들을 반세기 넘게 인터뷰 해왔다. 헤밍웨이, 포크너 부터 하루키, 쿤데라 등 대가라고 불릴 수 있는 작가들이다. 이 인터뷰 들은 최근 한국에도 ‘작가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되었다.

원문은 온라인에 공개되어있다. (한국기준으로) 유명한 작가 인터뷰는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부분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고, 또 영어 원문이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링크를 걸어둔다.

링크: Paris Review interview

최근 살만 루슈디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어서 옮겨둔다. 그가 글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시나 글은 엉덩이로 쓰는구나 싶었다. 귀찮아서 번역은 안했다. 궁금한 분은 책을 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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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commons.wikimedia.org)

INTERVIEWER

Can you talk about your procedure when you sit down at the desk?

RUSHDIE

If you read the press you might get the impression that all I ever do is go to parties. Actually, what I do for hours, every day of my life, is sit in a room by myself. When I stop for the day I always try to have some notion of where I want to pick up. If I’ve done that, then it’s a little easier to start because I know the first sentence or phrase. At least I know where in my head to go and look for it. Early on, it’s very slow and there are a lot of false starts. I’ll write a paragraph, and then the next day I’ll think, Nah, I don’t like that at all, or, I don’t know where it belongs, but it doesn’t belong here. Quite often it will take me months to get underway. When I was younger, I would write with a lot more ease than I do now, but what I wrote would require a great deal more rewriting. Now I write much more slowly and I revise a lot as I go. I find that when I’ve got a bit done, it seems to require less revision than it used to. So it’s changed. I’m just looking for something that gives me a little rush, and if I can get that, get a few hundred words down, then that’s got me through the day.

INTERVIEWER

Do you get up in the morning and start writing first thing?

RUSHDIE

Yes, absolutely. I don’t have any strange, occult practices. I just get up, go downstairs, and write. I’ve learned that I need to give it the first energy of the day, so before I read the newspaper, before I open the mail, before I phone anyone, often before I have a shower, I sit in my pajamas at the desk. I do not let myself get up until I’ve done something that I think qualifies as working. If I go out to dinner with friends, when I come home I go back to the desk before going to bed and read through what I did that day. When I wake up in the morning, the first thing I do is to read through what I did the day before. No matter how well you think you’ve done on a given day, there will always be something that is underimagined, some little thing that you need to add or subtract—and I must say, thank God for laptops, because it makes it a lot easier. This process of critically rereading what I did the day before is a way of getting back inside the skin of the book. But sometimes I know exactly what I want to do and I sit down and start on it. So there’s no rule.

Muriel Spark의 소설 ‘The Finishing School’ 첫 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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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영국 작가 뮤리엘 스파크의 소설 ‘The Finishing School’. 이야기는 소설을 쓸 때 배경을 어떻게 잡는가를 말하며 시작한다.

“You begin,” he said, ” by setting your scene.” You have to set your scene, either in reality or in imagination. For instance, from here you can see across the lake. But on a day like this you can’t see across the lake, it’s too misty. You can’t see the other side.” Rowland took off his reading glasses to stare at his creative writing class whose parents’ money was being thus spent: two boys and three girls around sixteen to seventeen years of age, some more, some a little less. “So,” he said, “you must just write, when you set your scene, ‘ the other side of the lake was hidden in mist.’ Or if you want to exercise imagination, on a day like today, you can write, ‘ The other side of the lake was just visible.’ But as you are setting the scene, don’t make any emphasis as yet. It’s too soon, for instance, for you to write, ‘The other side of the lake was hidden in the fucking mist.’ That will come later. You are setting your scene. You don’t want to make a point as yet.”

(내맘대로 번역)

“장면(Scene)을 설정하면서 시작을 하지. 현실을 그리던 상상을 그리던, 장면을 설정해야되. 예를 들자면, 여기서 건너편 호수를 볼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 날인가, 오늘 같이 안개 때문에 호수를 볼 수 없는거야. 건너편이 보이지 않게 된 거지.” 롤랜드는 작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보려고 안경을 벗었다. 열여섯나 열일곱 살 쯤 되는 두 소년과 세 소녀가 있었다. “그래서, 너희는 장면을 설정할 때 반드시 이렇게 써야되, ‘반대편 호수가 안개에 가려졌다.’ 아니면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으면, 오늘 같은 날에는 이렇게 쓸 수 있겠지. ‘반대편 호수가 간신히 보였다.’ 그러나 장면을 설정할 적에는 강조를 아직 하면 안되. 예를 들자면, ‘반대편 호수는 X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라고 쓰는 것은 너무 일러. 강조는 나중에 하는거야. 지금은 장면을 설정하는 거야.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면 안돼.”

+덧: 뮤리엘 스파크는 20세기의 영미권 작가 중에 한사람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가 쓰는 소설 작법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도 본인의 소설의 도입 부분에서) 흥미로워서 번역해봤다.

뮤리엘 스파크에 관심있는 분들은 뉴요커에 실린 소개글을 참조하시길. (What Muriel Spark Saw, The New Yorker, 2014년 4월 8일자)

19세기의 여성과 제인에어

어제 제인에어 포스팅을 했는데, 마침 페북에 19세기 여성에 대한 글이 있길래 공유한다.

링크 (이미혜 작가의 페북 포스트)

  • 아쉽게도 위의 링크는 2016 3월 23일 현재 기준으로 깨져있네요. 참고하세요.

The Proposal. John Pettie, R.A. (1839-1893). Oil On Canvas, 1869.

(image source: wikimedia)

이 그림은 19세기의 스코틀랜드 화가 John Pettie가 그렸다. 그림에서 여성은 청혼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여성의 반응은 기쁨이나 놀라움이 아니다. 죄지은 사람의 표정이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왜 그런지 이해가 간다. 19세기 영국의 여성들은 남자와 눈을 마주치거나 감정을 표현한다거나 하면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취급받았다.

지난번에 포스팅 했듯이 제인에어는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이었다. (링크: 영화 ‘Jane Eyre(2011)’를 보고서) 제인은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한다.

고전을 읽을 때, 20세기 이전 사람들에게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개념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권/여권의 신장은 20세기에서야 이뤄졌다. 물론 고전이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인류에게 호소하는 보편적인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적/시대적 배경까지 생각한다면 좀더 폭넓게 고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번역가, 편집자, 그리고 지적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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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세심함이 요구되는 고도의 지적인 노동이다. 노동이라고 굳이 쓴 것은 번역가에게는 원저자의 창작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번역가 이상으로 숨겨져 있는 지적 노동가는 아마 편집자가 아닐까 한다. (이말이 무슨 이야기인지는 링크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듯.)

과학책 번역가가 실제로 하는 일

하긴 세상에 어떤 재화/서비스가 숭고한 땀과 노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이른바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의 생산과정은 많이 숨겨져 있는지라, 책을 읽을 때 마다 관계자들의 노고에 직접적인 찬사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불평을 하긴 쉽겠지.) 유치원다닐 적을 돌이켜 보면, 밥을 먹을 때 농부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지만, 책읽기 전에 출판 관계자에 감사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도 안다. 사람들에게 재화/서비스를 구매하고, 이용할 때마다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과하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브라질의 농부에게 감사하고, 신발을 신을 때마다 중국/베트남의 이름없는 노동자에게 감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당한 가치를 치루고 소비를 하고 보상을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 ‘정당한’ 가치라는 게 언제나 논쟁이다. 극단적인 시장 만능 주의자를 제외하고서는 시장이 조정하는게 언제나 옳다고 하지만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출판 시장 상황에서 (나는 다른 나라는 잘 모르니까 미국/일본에 비교해서) 시장이 결정하는 계약금/월급이 번역/편집자 분들의 기회비용과 노력을 온전히 보상해준다고 믿기 힘들다.

그럼 어쩌라구. 너는 답이 있냐? 묻는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내가 그걸 알면 투철한 사상가가 되어서 혁명을 일으켰겠지.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는 거다. 아직까지는 그럴듯한 대안을 들어본 적이 없다.

불완전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딱 돈받은 만큼만 일하고, 보이는 데서만 잘하는 사람들 만 있어서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답일런지 모른다. 제도가 중요하랴, 그 안에서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지.

애구, 사설이 너무 길었다. 내 개똥철학 한마디 듣는 것 보다 링크걸은 글 읽는게 더 좋다. 번역/편집의 과정이 이렇게 이뤄지는구나 소상히 알려주는 좋은 글이다.

琉璃窓(유리창) – 정지용

琉璃窓(유리창)

流璃(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流璃(유리)를 닥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肺血管(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정지용-가족

+ 덧: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시. 정지용이 아들을 폐결핵으로 잃고서 썼다는 시이다. 시인 이상이 애송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잊히지 않는 게 먼저 죽은 자식인가부다.

정지용 가족사진을 첨부한다. 결핵으로 죽은 아들은 차남 구익씨고 사진의 아들은 장남 구관씨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