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육상선수의 비밀

자메이카 출신 하버드대 사회학자 Orlando Patterson 교수의 NYT 기고문을 공유한다.

우선 감상부터. 특정 국가/민족이 특정 스포츠 종목에 강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런 설명에는 선입관이 개입되기가 쉽상이다. 그럼에도 기사는 재미있게 읽었다. 자메이카의 공중보건이나 사회체육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Patterson은 자메이카가 육상에 강한 이유가 인종에 있지 않다고 한다. 자메이카의 조상은 서아프리카 출신이 많다. 동일한 조상을 가진 서아프리카가 딱히 육상에 강한 지역은 아니다. 또한 자메이카처럼 서아프리카 출신이 많은 미국/브라질 보다 자메이카는 육상에서 월등한 성적을 보인다.

자메이카는 특이하게도 육상이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나라이다. 중고교 전국체전의 인기는 대단해서 매년 3만 명의 관중이 모인다고 한다. 국가적으로도 육상에 대한 지원이 (캐리비안 국가임을 감안하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고. 자메이카에서는 육상이 야구 만큼이나 인기 종목이라고 한다.

Patterson 교수는 또한 자메이카의 지리적 환경(산악지대)이 육체적으로 탁월한 선수들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대신 공중보건을 이유로 든다. 1920년대 록펠러 재단의 캠페인은 개인위생, 깨끗한 물, 모기 박멸에 힘을 쏟았고, 자메이카는 가난한 나라임에도 평균수명이 거의 선진국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다가 사회체육 장려도 더해졌는데, 가난한 나라 자메이카는 돈이 안드는 달리기를 장려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메이카인의 호전성과 경쟁적인 국민성을 이유로 든다. 물론 자메이카인은 호전성 때문에 열악한 치안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육상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그럼 왜 이렇게 육상에서 성공적인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을까. Patterson 교수는 리더십의 부재를 이유로 든다. 정치/경제적인 발전은 리더십이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메이카의 인적자원과 사회기반은 약하지 않다. 공중보건에서의 성공이 우선 그렇고, 육상과 음악산업 (레게 음악) 에서의 성공도 자메이카인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

관련 포스트: 자메이카 공중보건 이야기

Shaking Up Italy’s Most Popular Museum (NYT)

이태리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이태리는 문화 유산과 볼거리도 많지만 그만큼 정신없고 무질서한 동네라는 것을.

내게 피렌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우피치 미술관이었다. 하지만 관람 경험 그 자체는 아주 쾌적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우선은 더웠고, 징징거리는 딸을 안고서 줄선 다음 새치기 하는 사람들하고 실갱이를 해야 했으며, 암표상이 득실 거렸고, 소매치기에 신경을 쓰느라 주위를 살펴야 했다.

이태리는 오랜 역사 만큼 잘못된 관행과 관료주의가 뿌리가 깊은 나라이다. 관광산업이라고 별 다를게 없다.

작년 우피치 미술관은 독일인 Eike Schmidt를 관장으로 임명한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공유한다.

일화를 하나만 옮긴다. 그가 처음 부임하고서 한 일 중에 하나는 매표소에 경고 스피커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소매치기와 암표상을 주의하라는 스피커를 설치하고서 몇일 뒤, 경찰이 Schmidt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공공장소에서 비인가 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329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Schmidt는 다소 화가 났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자기 돈으로 벌금을 낸다. 그리고 기자들은 이를 기사로 썼다고. 그는 순진한 독일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대중의 지지도 얻었다.

기사를 읽어 보면, 그의 개혁에 매번 이렇게 즐거운(?) 해프닝만 있었던 것 같진 않다. 대부분은 지루한 관료들과의 싸움이고, 타협하는 과정이었다.

+ 덧: 마눌님께서 우리가 피렌체에 간건 겨울이었다고 알려주시네요. 하마트면 페북 구라쟁이가 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제 기억속의 피렌체는 여름일까요. 꿈 속에서 피렌체를 한 번 더 갔던 걸까요. 이놈의 건망증이란… 아직 40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큰일입니다. ㅋㅋ 뭐 우피치 앞이 혼잡하고 정신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만…

FRACTURED LANDS: HOW THE ARAB WORLD CAME APART (NYT)

오늘은 아침 일찍 스타벅스를 들렸다. 일요일판 뉴욕타임스를 사려고.

지난 목요일 인터넷판 NYT에 아래 기사가 실렸는데, 앞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라크 전쟁부터 지금까지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리비아의 6명의 인물의 삶을 18개월 간 심층 취재한 특집기사이다.

뉴욕타임스가 이례적으로 4000단어가 넘는 기사를 통째로 특집으로 실었다. 종이신문으로는 일요일판으로 나온다고 하여 오늘 스타벅스를 들려 한부 집어들었다.

딱히 종이신문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잠깐 NYT 종이 신문을 구독한 적이 있었는데, 쌓여가는 신문지만큼 마눌님의 구박도 쌓였었다.

그래도 종이 신문은 평소 관심없던 분야도 제목이라도 눈으로 훑게 되는 장점이 있다. 주말판에 실리는 북리뷰, 여행, 문화면도 소소한 재미가 있다.

문제는 원래 읽으려했던, 중동 심층 취재 기사. 막상 신문을 사고나니 기사를 읽고 싶은 마음이 급격히 약해져 버렸다. 이건 책을 산 다음에 목차와 머리말을 읽고나면, 자꾸 다른 책에 눈길이 가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최근에 깨닫게 된 사실인데, 책을 읽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책을 확 사버리는 것이라고나 할까.

Reblog: First day of school

작년 오늘. 페북이 친절하게 알려주길래 생각이 났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일년이 지났다.

isaacinseoul's avatarIsaac의 생각저장 창고

초등학교 입학식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꽤나 추웠고, 교장선생님 훈화가 길었던 것 같은데 그 기억은 입학식이 맞는지 아니면 매주 있었던 야외 조회시간 중에 하나였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학교에 가려면 가파르고 길다란 언덕을 지나야 했다. 왜 그시절 초등학교들은 하나같이 언덕위에 있었던 것일까. 오른손에 신발주머니를 앞뒤로 흔들며 왼손에 도시락 가방을 들고서 내 몸만큼이나 큰 책가방을 매고 헐레벌떡 학교에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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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e-영상 역사관)

학교 이름은 신명국민학교였다. 나의 성과 똑같이 ‘신’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놀렸다.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건데, 아이들은 말장난을 참 좋아한다. 겨울이면 학교 뒷편에 논바닥을 얼린 스케이트장이 열린다. 아마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논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논바닥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비닐하우스에 설치된 간이매점 떡볶이를 먹다보면 겨울 방학이 지나고 개학을 했다.

아내는 어린시절을 독일에서 지냈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름은 커녕 얼굴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내는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 이름은 Frau Ruppel. 반에는 스무명의 친구들이 있었어. Silke, Ida, Boris, Natascha, Carmen, Sascha, Sonja. 잠깐 그 나타샤가 내가 아는 그 나타샤야? 맞아. 유치원을 같이 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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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3.세계화와 보호무역 –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

나를 포함한 경알못들이 경제학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분야가 어디일까.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무역이 아닐까 한다. 경제학자들은 무역에서는 적자(!)도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보호무역에 있어서도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한목소리를 낸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무역이 국가 경제를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부를 창출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참고로 무역 적자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자본수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는 글의 주제를 넘어서기에 생략한다.)

경알못의 직관으로는 (또는 트럼프와 샌더스가 주장하기로는) 미국이 중국산 싸구려 물건을 수입하면서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경제가 망가진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들린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니 이건 또 어찌 된 일인가.

오늘의 주제는 바로 보호무역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이다.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유무역을 하면 개발도상국의 저가품 공세 때문에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타격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은 한계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글의 말미에 언급하도록 하겠다.

Tariffs and wages – An inconvenient iota of truth (the Economist, 8월 6일자)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1) 리카도 Daivd Ricardo 의 비교우위론 comparative advantage과 2) 헥셔-올린 모델 Heckscher-Ohlin model을 이야기 하자. 본론으로 바로 가고 싶지만, 어차피 공부하기로 한것 순서대로 제대로 공부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수식은 쓰지 않을 예정이고, a) 희소자원의 값이 비싸다. b) 생산의 3요소가 토지 land, 노동 labor, 자본 capital 이다 라는 기본 경제학 지식만 알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선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부터.

리카도는 무역을 하는 것이 모든 국가에게 이익이라는것을 1817년에 비교우위론으로 증명했다. 그의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물건을 더 잘만드는 경우에도 수입하는게 모든 물건을 직접 생산하는 것보다는 이득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동네에 한 변호사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변호사는 변호사 일도 잘하지만, 워드도 동네에서 제일 잘한다. 이 변호사에게 비서가 하나 있는데, 비서가 20분 걸릴 워드작업을 그는 10분 안에 끝낼 수 있다. 그럼 변호사가 워드도 하고 변호사 일도 하는게 이득일까, 아니면 워드는 비서에게 맡기고 그 시간에 변호에 집중하는 게 이득일까.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변호사는 변호사일에 집중하고 워드작업은 다른나라에서 ‘수입’하는게 이득이라고 말한다.

David Ricardo (1772-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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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데에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생산에는 토지, 노동, 자본의 3요소가 있는데, 리카도는 이중에서 노동 만을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이론은 노동의 공급이 무한정이라고 가정했고, 무역은 노동의 숙련도 차이 때문에 생긴다고 보았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1930년대에 Eli Heckscher 와 Bertil Ohlin는 생산의 3요소를 고려한 무역 모델을 만든다.

Eli Heckscher (1879-1952)

 

Bertil Ohlin (1899-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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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셔-올린 모델에 따르면, 미국 같이 상대적으로 자본 capital이 풍부한 나라는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 집중을 하고, 중국 같이 노동력 labor이 풍부한 나라는 노동 집약적인 산업에 집중을 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무역을 통해서 중국 노동자들이 보충하게 되는 것이다.

OK. 무역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과연 노동자들에게도 그러한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경제학의 기본 원리중 하나는 ‘희소 자원은 비싸다.’ 이다. 그런데, 중국 노동자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일을 대신하면 미국에 노동 labor 자원 공급이 풍부해진다. 그럼 당연히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지 않을까.

여기서 다시 경제학자들을 3가지 이유로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우선 가장 간단한 설명은 국가의 소득의 총량이 증가하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도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가정이다. 물론 이는 여전히 논쟁이 많은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여기서는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자. 두번째는 물가다. 경제학자들도 무역을 통해서 노동자의 명목상nominal 임금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수입품이 들어오면서 물가가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적은 명목 nominal 임금으로 많은 물건을 살수 있게 되니 (구매력 증가) 노동자가 손해보는 일은 없다고 이야기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들은 노동 labor의 특성 때문에 노동자는 손해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Gottfried Haberler는 1936년 논문을 하나 발표하는데 그에 따르면, 노동력은 다른 자원과 달리 유연하기 때문에 경제 환경이 달라지면 적응을 한다. 단기적으로야 충격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미싱공장에서 일하던분들이 결국 반도체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는다든지…)

그런데, 1930년대 말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던 Stolper는 Haberler의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스톨퍼 Stolper가 생각하기에 Haberler의 설명은 헥셔-올린 모델과 모순이 되었다. 헥셔-올린 모델은 ‘자유 무역’에서 각 나라 마다 풍부한 요소를 가진 물건을 생산하는데에 특화 된다고 말하는데, Haberler는 생산의 3요소 중에서 특별히 노동은 유연하기에 (versatile)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의문점을 3년 후배 사무엘슨 Samuelson과 공유를 한다. 이에 둘은 연구를 시작하고 1941년 Stolper-Samuelson theorem을 발표한다. (여담이지만, 사무엘슨은 밀턴 프리드먼 이전까지 미국 경제학계를 이끌었던 학자이다. 역시 후배를 잘 만나야 인생이 피고, 이름도 남는다.)

Wolfgang Stolper (1912-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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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가 시계 (노동집약산업)와 밀(토지가 중요한 산업)을 생산한다고 하자. 또 이 나라는 생산의 3요소 중에서 토지와 자본이 풍부하고 노동이 부족한 나라라고 하자. 이 나라는 원래 시계 산업 보호를 위해서 시계에 10%의 관세를 부가하고 있다. 그런데, 무역압력 때문에 이제 10%의 관세를 철폐한다고 하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 같은 평범한 경알못이 생각하기에도 관세가 없으면 수입품이 10% 만큼 싸질 것이고, 이에 국내 시계 가격도 10%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면 시계 공장은 수지를 맞추기 위해 근로자를 해고하고 공장을 팔테니, 임금은 그 10% 만큼 하락하고, 렌트도 그 10% 만큼 하락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시계 산업은 임금도 싸지고 렌트도 싸졌으니, 손익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난다.

나보다 조금더 똑똑한 경알못은 거기에 더 보태서 시계 산업이 노동집약 산업이라는 전제조건을 기억해 낼 것이다. 그러면 임금은 10% 보다 더 떨어지고, 렌트는 10% 보다는 덜 떨어지지 않을까 예측 할 수 있다.

둘다 틀렸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는 시계 산업만 있는게 아니고 밀 농장이 있기 때문이다. 시계에 관세를 없앤다고 해서 밀의 가격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밀 농장은 렌트도 떨어지고 임금도 떨어진 시장환경의 변화때문에 이익을 보게 되고, 사업을 확장하게 된다. 그러면 밀농장의 확장 때문에 다시 임금도 올라가고 렌트비도 올라간다. 그런데 밀농장은 노동력보다 땅이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임금의 상승보다 렌트의 상승이 더 크다. 따져보면 결과적으로 시계 산업의 관세를 10% 낮춘 것이 렌트비는 약간 오르게 하고, 임금은 10% 이상 더 떨어지게 만든다. (이 설명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길. 수식과 함께 더 자세한 설명이 있다. Protection and Real Wages: The Stolper-Samuelson Theorem – Rachel McCulloch April 2005)

그래서 Stolper-Samuelson theorem의 결론은 뭔가. 관세를 없애면 자본이 풍부한 선진국의 경우에는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낮아지고, 개발도상국은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Stolper-Samuelson theorem은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논문도 거절당했다. 당시 American Economic Review 가 거절한 사유는 다음과 같다. “a very narrow study in formal theory” 다시 말하자면,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성립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라는 이야기다.

훗날 이 이론의 공저자인 사무엘슨도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한다. 사무엘슨의 말을 옮긴다. “이론적으로는 이것이 가능할지 모르나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손해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고려를 하자면 말이다. Although admitting this as a slight theoretical possibility, most economists are still inclined to think that its grain of truth is outweighed by other, more realistic considerations”

Paul Samuelson (1915-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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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저자인 스톨퍼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역시 ‘현실적인 고려’의 측면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사무엘슨과 같이 제도권 안의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를 완성하는 후속 이론을 세우려고 연구를 계속 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그가 죽은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 덧1: 경제 이론을 소개 차원에서 정리하다 보니 쉬운 설명을 위해 생략하고 간략하게 언급만 하고 넘어간 이야기가 많습니다. 경알못의 부족한 설명을 훌륭한 페친들께서 보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덧2: 며칠전 마침 김두얼 교수님께서도 립진스키 정리 Rybczynski theorem에 대한 글을 페북에 올려주셨습니다. (링크 ) 1955년 발표된 립진스키 정리와 1941년 발표된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는 둘다 헥셔-올린 모델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가 생산의 3요소의 공급량과 구성비가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가격의 변화를 분석하였기 때문에 소득분배에 집중하는 이론인 반면에, 립진스키 정리는 가격이 일정하다는 가정하에서 생산 3요소의 공급량 변화에 비치는 영향을 분석했기 때문에 산업 성장에 더 집중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 덧3: 앞으로는 케인즈 승수, 내쉬 평형, 먼델 플레밍 모형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갈수록 경알못의 수준을 넘어선다는 느낌이 들지만, 공부 차원에서 시작했으니 할 수 있을 만큼 해볼 생각입니다.

경제학 관련 연재 이전 포스트 :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이론

목차
정보 비대칭: 레몬시장 문제
–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민스키 모멘트
세계화와 보호 무역: 스톨퍼-사무엘슨 정리
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 내쉬 균형
세마리 토끼 잡기 – 먼델 플레밍 모형

시위와 폭력에 대하여

NYT에 실린 Nicholas Mirzoeff 교수 (NYU media학과) 의 대담을 공유한다. 요약과 함께 내 생각이 섞여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원문을 참조할 것을 부탁드린다.

시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시위가 폭력적으로 돌변했다.’ 라는 보도를 자주 듣는다. 그 경우, 시위가 폭력적이다, 아니다의 기준은 시위과정에서 기물 파손이 있었는가, 시위대와 경찰 간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는가,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했는가에 있다.

그러나 시위에 있어서 폭력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주위에서 같은 뉴스 보도를 보고서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매일 보지 않는가.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시민은 정부의 폭력에 대해서 관대하거나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은 타당하다. 사회 계약의 관점에서 시민은 ‘보호’, ‘안전’, ‘치안’을 대가로 정부에게 폭력의 독점권을 양도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치안’유지를 위해 사회의 ‘안정’을 위해 규제를 하고 공권력을 행사한다.

시민들이 정부의 폭력 독점을 인지하는 시점은 정부의 정당성이 약화되었을 때이다. 대표적인 예로 ‘독재 정권’에 대한 시위와 ‘식민 정권’에 대한 항거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도시락 폭탄 투척 사건을 보자. 일본 제국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입장의 사람들에게 이는 명백한 폭력이고 테러 행위이다. 당시 대다수의 일본 시민이나 일본의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조선사람들은 이를 테러 행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정당성을 지지하지 않는 (나를 포함한) 현대의 한국인들은 윤봉길의 행위를 의거로 본다.

동일한 관점을 ‘민주화 운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정부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시위대는 폭도들이고, 이를 진압하는 정부의 공권력은 정당한 질서 유지 활동으로 읽힌다. 그 반대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이미지가 이러한 상반된 시각의 대립과 균형(?)을 한번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를 테면 역사를 바꾼 보도 사진들이다. 대표적으로는 최근 시리아 난민을 주목하게 만든 Aylan Kurdi의 사진이 그러하고, 한국의 예로는 김주열의 주검사진 (또는 소문)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도 사진은 정치적이다. (여기서 나는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가치 중립적으로 사용했다.) 사진은 시선과 메세지를 담기 마련인데, 폭력의 독점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피해자의 사진은 약자의 시선을 보여주고, 폭력을 독점하는 정부의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정부의 폭력 독점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정부의 폭력 독점을 견제하는 대표적인 예는 미국 수정헌법 2조이다. 그리고 수정헌법 2조는 미국에서 총기를 소유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석이 되고 있다.

나는 수정헌법을 둘러싼 논쟁의 옳고 그름과 이론적인 배경을 떠나서, 폭력의 극단적인 형태인 총기 소유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단 heresy의 정의

간만에 딸램 얘기.

그저께는 registration day라 새로운 담임과 인사했고, 다음주면 초등학교 2학년이다. 벌써.

아이라 궁금한게 많다. 잘못된 상식을 심어주지 않으면서 수준에 맞추어 대답하는 것은 여전히 숙제이다.

“아빠 이단이 뭐야?”
“글쎄~ 이름은 교회인데, 가짜 교회?”
“그런데 돈은 받고?”

모두 빵 터졌다. 어쩌면 아이가 더 정확하게 세상을 보고 있는 건지도.

산타크로체 성당 – Immaculate Virgin Victorious over the Serpent of Her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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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2.금융시장의 불안정성 – 민스키 모멘트

나는 ‘비주류’라는 말이 싫다.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비주류는 ‘주류’, ‘비주류’를 구분지으면서 미디어에서 검증된 기초 과학지식을 흔들 때 사용하는 오염된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계에는 비주류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학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하이먼 민스키 Hyman Minsky (1919-1996)이다.

Financial stability – Minsky’s moment (the Economist, 7월 30일자)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경제학자 민스키는 평생을 무명으로 지냈다.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그는 후기 케인즈학파의 학자로 분류되는데, 말년에 그는 한물간 케인지언으로 취급되었다. 학계에서도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잊혀진 그의 이름을 사후에 발굴해낸 건 금융업계 투자자들이다. 미국 펀드 운영사 PIMCO의 Paul McCulley는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민스키를 인용해 민스키 모멘트 Minsky Moment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리고서도 민스키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서 재조명되었고, 지금은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가 경제/금융권에서는 유행어가 되었다. 심지어 폴 크루그먼은 ‘이제 우리는 모두 민스키 주의자 들이다. We are all Minskyites now.’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프리드만이 말한 ‘We are all Keynesians now.’의 인용이다.)

도대체 민스키가 제시한 이론이 뭐길래?

민스키는 금융불안정 가설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을 통해서 호황이 길어질 수록 그 호황이 종국에는 불황을 가져온다는 주장을 했다. 민스키는 주로 금융시장과 그 불안정성에 연구를 집중했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투자는 오늘의 돈을 내일의 돈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공장을 짓는다고 하자. 회사가 공장을 짓는 이유는 이윤을 남겨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함이고, 장기적으로는 이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 창출을 하기 위함이다. 회사가 공장을 짓기 위해 돈을 조달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회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을 쓰던지 아니면 남에게 빌려야 한다.

여기서 민스키는 돈을 빌리는 financing의 방법을 세가지로 분류한다. 그게 바로 헷지 금융 Hedge financing, 투기 금융 speculative financing, 폰지 금융 Ponzi financing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hedge financing은 공장의 현금 창출이 원활하여서 이자 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상환이 가능한 자금조달을 말한다. 가장 안전한 금융인 셈이다.

반면 speculative financing은 hedge financing에 비해 다소 위험하다. Speculative financing에서 회사의 현금 흐름은 이자를 갚을 정도는 되지만 원금상환을 하기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는 원금상환을 연장하고 (roll over) 계속해서 빚을 진다. 단, 회사가 계속 성장할 것이 확실하다면 speculative financing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이 오를게 확실하다면 원금상환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원리와 같다.)

마지막은 Ponzi financing이다. 이는 가장 위험한 형태의 financing인데, 회사가 원금 뿐만이 아니라 이자를 갚을 능력도 되지 않는 financing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회사는 공장 설비의 일부를 팔거나, 다른 곳에서 빚을 더 끌어와 돌려막기를 해야된다. 민스키의 가설은 경기가 안좋아지면, hedge financing을 하던 회사들이 speculative financing 그룹이 되고, speculative financing을 하던 그룹은 Ponzi financing을 하는 그룹이 된다고 말한다.

왜 기업들은 무리하게 돈을 빌릴까?

민스키의 설명은 바로 장기간 지속된 호황에 있다. 모든 기업이 처음부터 투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인 호황이 계속되고 돈을 빌려서 판을 크게 벌이면 크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자명한 상황이라면,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은 손해보는 행위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은행도 이 대열에 합류한다. 돈을 빌려주면 그만큼의 이자가 들어올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굳이 엄격한 신용 관리를 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민스키가 금융불완전 가설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장기적인 호황이 결과적으로는 경제 기반을 허약하게 fragile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민스키는 평생 비주류로 살았을까?

이코노미스트 지에 따르면,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은 합리적 시장efficient market에 대한 믿음이 강한 시기였다. 대표적으로 유진 파머나 로버트 루커스 같은 학자가 이에 속한다. 그들의 이론은 모든 정보가 시장에 완전히 공개되면, 시장은 평형 equilibrium 상태가 된다고 이야기 했다. (거칠게 옮기자면, 호황이 지속되는 상태)

또 민스키의 입장은 정통 케인지언과도 달랐는데, 이를테면 그는 힉스와 한센의 IS-LM 모형이 케인즈의 이론을 오해해서 너무 나아갔다고 말한다. (IS-LM 모형에 대해 좀더 설명하면 좋으련만, IS-LM은 좀 수학적인 이야기고 포스트로 소화할 내용은 아닌듯 하다. 궁금한 분은 주위에 거시 경제 전문가에게 개인지도를 받는게 더 좋을 듯.) 민스키는 IS-LM model이 금융부분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여담이지만, 학부에서 거시경제를 배울 때 IS-LM을 케인즈와 묶어서 배우기 때문에 IS-LM을 케인즈가 만든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IS-LM 모형은 힉스와 한센의 작품이다.

민스키는 하바드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처음 지도교수가 슘페터였다. 그런데 중간에 슘페터가 죽고서 민스키는 IS-LM을 만든 한센을 지도교수로 택하지 않고, 레온티예프에게서 사사를 받는다. 레온티예프도 노벨상 수상자이고 훌륭한 학자이지만 민스키가 케인즈를 숭배했다는 걸 생각하면 한센을 지도교수로 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 의외이다. (개인적인 망상이지만, 민스키가 한센과 사이가 나빴던 게 아닐까? IS-LM을 비판했던 것도 그렇고…)

어쨌든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지금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기에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가 자명하게 들리지만 20세기 후반에는 별로 그렇지도 않았던가보다. 게다가 당시 학계에서 금융위기는 인기있는 주제도 아니었다. 민스키가 금융위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1919년 생으로 대공황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

민스키가 비주류였던 두번째 이유는 (개인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이론이 수학적quantitative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민스키는 이론을 전개하면서 수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주류경제학이 수식과 모델의 정교함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와 상반된다. 민스키가 수학을 못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학부때 시카고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뻘소리지만, 어쩌면 민스키는 수학이 싫어서 경제학과로 진로를 바꿨는지 모른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도 수학은 역시 중요했던 것이다… ㅋ)

사실 그가 이론을 전개할 때 수학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학문에 대한 관점 때문이다. 그는 이론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했다. 그리고 그의 학문적인 관심사는 특정한 상황 (특히 불황에서의 금융시장)이었지 일반화된 경제 전반이 아니었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인 태도는 지금에 와서도 그의 이론을 주류의 반열에 올려놓기 힘들게 만든다.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그의 이론이 특정 주제를 설명하기에는 좋지만, 역시나 모델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 된다.

예를 들자면, 최근 중국 경제의 침체를 두고서 혹자는 ‘민스키 모멘트’라는 말을 끌어다가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민스키의 이론은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후기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단면을 묘사한 이론이기에,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화하고 있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민스키가 무덤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 땅을 치며 안타까워할 지 모른다. (물론 민스키는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를 만들지도 않았다.)

+ 덧: 앞으로 연재에 대하여

지난번 정보경제학 information economics 페북 포스트에도 댓글을 달았지만, 내가 가진 경제학 지식이라는게 원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 연재도 그저 이코노미스트지의 연재를 읽고서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정리하는 정도이다. 딱히 번역도 아니고 내가 소화한 만큼 정리하기 때문에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시고, 또 연구하시는 훌륭한 페친분들께 주저없는 지적을 부탁드린다. 그게 내 공부에도 더 도움이 된다.

어쨌든 오늘은 민스키의 금융불안정 가설 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을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는 이코노미스트 지의 연재 순서를 따라서 스톨퍼 사무엘슨 정리, 케인즈 승수, 내쉬 평형, 먼델 플레밍 모형을 정리할 예정이다.

경제학 관련 연재 이전 포스트 :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이론

목차
정보 비대칭: 레몬시장 문제
–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민스키 모멘트
세계화와 보호 무역: 스톨퍼-사무엘슨 정리
끝나지 않는 논쟁 – 케인즈 승수
– 내쉬 균형
세마리 토끼 잡기 – 먼델 플레밍 모형

브렉시트 연재: 3. 브렉시트와 불평등의 문제 – 경제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오늘 포스트에서는 브렉시트를 통해 불평등 이슈를 생각해보려한다. 말하자면, 대중은 왜 엘리트 정치인(또는 기성정치인)을 불신하고 트럼프나 보리스 같은 사람들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지금까지 브렉시트에 대한 생각정리를 하면서 주로 EU의 꿈 vs. 대영제국의 꿈이라는 관점에서 포스팅을 해왔다.

나는 브렉시트를 Eurosceptic의 성과라는 관점에서 읽는다. 그러나 Eurosceptic이 (경제적으로는) 불평등 이슈와 (사회적으로는) 반이민정서에 기대고 있다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지역적인 EU 이슈와 달리 불평등 이슈는 전세계가 다같이 겪는 문제이기에 우리에게는 오히려 가깝게 다가온다.

생각을 이어가기 위해, 어제 읽은 기사 중에서 하나를 인용 한다.

기사는 작년 9월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실험에 주목한다. 이 실험은 최근 행동경제학쪽에서 주목받고 있는 레이먼드 피스먼 교수가 주도했다. (자세한 내용은 논문 참조: 링크) 실험은 dictator game을 살짝 바꾼 형태이다. (Dictator game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한글 블로그, 영문 위키피디아)

Dictator game은 경제활동이 개개인의 논리적인 이윤추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피스먼 교수의 실험은 이를 조금 바꾸어서, 경제활동을 할 때 사람들이 효율성과 공평함 둘중에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이 파이를 키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효율성의 관점) 아니면 파이가 작아지더라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경제적 평등의 관점) 에 대한 질문이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실제 돈을 주어주고서 (정확하게는 현금등가물) 나누면 나눌 수록 전체 금액이 줄어드는 상황을 제시한다. 그리고 전혀 나누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일정부분의 돈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결과가 흥미롭다. average American의 경우는 절반 정도가 효율성보다는 공평함을 선택했다. 그러나 예일대 법대 생의 경우는 80% 정도가 효율성을 더 중요시 여겼다. 그리고 UC버클리 학부생은 그 중간 정도이다.

피스먼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엘리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 수록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시스템이 그 사람에게 호의적일 수록 배분의 문제에 덜 걱정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자유무역’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미국 정치권은 큰정부 vs. 작은 정부에 대한 논쟁 보다는 ‘자유무역’ 논쟁이 더 치열하다. 심지어 데이비드 브룩스는 자유무역 찬반을 기준으로 향후 정치권이 재편될 것을 예상할 정도이다. 대표적으로 트럼프와 샌더스는 경제 공약으로 ‘보호무역’을 들고 나왔다.

여론조사를 봐도 ‘보호무역’ 선호가 뚜렷하다. 최근 Brooking Institution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52%의 미국인이 무역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답변을 했다.

캡처

영국의 경우를 보면 브렉시트파는 엘리트가 말하는 무역이익, 즉 EU와의 무역으로 생기는 이익은 믿지 못하겠으며, 그보다는 EU 분담금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유무역’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관점은 분명하다. 경제학에서 ‘자유무역’이 상호간에 이익이라는 것은 기본 지식에 속하며 이론적으로도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효율성을 기본 원리로 두고 있는 경제학에서 이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TPP를 예로 들어보자.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의 보고서에 따르면, TPP는 2030년까지 미국의 소득을 $131B을 늘일 것이라고 한다. 미국 GDP의 0.5%이다. 경제에서 0.5%는 엄청난 숫자다. 협정하나로 가져올 수 있는 이득으로 보자면 말이다. 그리고 53,700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그만큼의 일자리가 더 생길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니까 순증가량으로 보면 일자리가 오히려 늘어난다.)

매해 6천만명의 사람들이 이직을 하는 미국에서 5만명은 정말 작은 숫자다. 그러나 그 5만명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이다. 그리고 TPP가 진행되면 그들과 그 가족/친척들은 가장 강력한 트럼프 지지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소수의 사람을 위해서 경제발전을 포기하란 말인가. 현실적으로 정책결정자 누구도 그러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게다가 포기의 결정이 옳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을 진지하게 보다보면, 과연 그러한 견고한 모델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제 글을 마무리 지어보자. 내가 이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생각을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에 대해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공학/경영학의 세례를 받은 나는 효율성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익숙하다. 물론 내가 엘리트라고 느낀 적은 없지만, 최소한 시스템에 어느정도 적응을 하며 살아왔다. 돌이켜 보건데 내가 지금까지 시스템에 우호적인 생각만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 덧: 미국을 기준으로 많은 예를 들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브렉시트와 ‘자유무역’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다. 오히려 영국은 항상 자유무역을 옹호해왔다.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일부 (특히 지식인 층에서) 영국인들은 영국이 EU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비EU 국가와 더 많이 교류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브렉시트를 선택한 대다수의 저소득 영국인들은 영국과 EU와의 무역으로 얻는 이득을 믿지않았다. 나는 브렉시트가 영국을 더 적극적인 ‘자유무역’ 국가로 만들 것이라는 전망에는 회의적이다.

브렉시트 관련글 모음

1편: European Union과 United of States of America
2편: 브렉시트와 EU의 정체성 – Eurosc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3편: 브렉시트와 불평등의 문제 – 경제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4편: 브렉시트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 사회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