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망원인 통계

어제 캘리포니아에서 총기 난사가 있었다.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5일 전에도 콜로라도 사건이 있었는데, 이제 총기 난사는 매주 이벤트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캡처

(image source: USA Today 해당기사)

참고로 미국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공유한다. 이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총기사고 사망률(자살+타살) 은 교통사고 사망률에 근접한다. (22페이지)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public data

남수단 내전과 이산가족 이야기

2015 남북 이산가족 상봉

올 가을, 한국에서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새색시로 헤어져 65년 만에 신랑을 만난 이순규 할머니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의 하얀 머리를 쓰다듬는 신랑의 손길을 보고서 ‘부부가 무엇인가’를 한참 생각했더랬다.

영상 링크: https://www.facebook.com/yonhapvideo/videos/1514656305513232/

(출처: 연합뉴스 통통영상 페북 페이지)

남수단의 이산가족 이야기

어제 NPR에서 남수단 내전과 이산가족 뉴스를 들었다.

They Haven’t Spoken To Family In Years. Now They Get A 3-Minute Call (NPR, 12월 1일자)

남수단은 2013년 12월 내전이 발발했고, 올해 8월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내전이 으레 그러하듯 잔인함이 극에 달한 전쟁이었고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전쟁 중에 황망하게 헤어진 사람들은 연락할 길이 없다.

적십자사가 그들을 위성 전화로 연결해 주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분이다.

Nyakureht Banang Tier, 40 years old from Akobo Nyakureht was calling his son, who was in Juba when the Civil War started. “I just wanted to tell him we are ok

Nyakureht Banang Tier, 40 years old from Akobo Nyakureht was calling his son, who was in Juba when the Civil War started. “I just wanted to tell him we are ok”

(image source: 해당 기사)

한 가족 이야기를 옮긴다. Chan Majok(32세)씨는 2년 간 12살난 딸과 연락을 못했다. 적십자사 책자에서 그녀는 남동생의 사진을 발견한다. 남동생은 현재 딸의 보호자이다. 한달여간 조율을 거쳐 그녀는 남동생과 통화에 성공한다. 두번에 걸친 연결 시도. 간신히 연결된 통화는 아쉽게도 잡음이 심하다. 게다가 3분의 제한시간. 그 3분을 잘 관리 하지 못하여 시간을 넘긴 Majok씨는 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남수단 내전 이야기

원래 수단은 이집트와 에디오피아 사이에 위치한 국가였다. 이 지역은 종교/부족/원유로 인해 분쟁이 계속 되었는데, 결국 2013년 북수단(이슬람)과 남수단(기독교)으로 갈라서게 된다.

캡처

(image source: google map)

이어서 남수단은 부족 갈등으로 인한 내전에 돌입한다. 누에르족 출신인 부통령이 둥카족 출신 대통령에게 쿠테타를 시도한 것이다. 이 쿠테타가 내전이 되었다. 여기에 기존의 군벌/종교/자원 문제가 얽혔다. 기독교는 또 캐톨릭/성공회/개신교로 갈린다. 남수단 내전에서는 식인 행위에 이르는 잔혹한 보복까지 있었다.

South Sudan map

(image source: Madote)

고작 60여년 전에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유사하게 겪고 있는 남수단의 이산가족 이야기를 듣고서 마음이 동해 정리해 둔다.

누군가 정리해둔 외신 추천글에 필받아서

누군가 정리해둔 외신 추천글에 필받아서… (링크 글이 정리가 잘 되있다. 내 글은 그냥 수다.)

내가 외신을 주로 보는 조합은 주간지(Economist 또는 New Yorker) + 일간지(NYT 또는 USA Today)이다. 주로 시간이 있을 때는 New Yorker + NYT 조합을,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반대 조합을 선택하는 편.

정기 구독은 하지 않고 내킬 때 마다 사서 본다. 읽지 않고 쌓여있는 잡지/신문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돈이 좀더 들더라도 사서 보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서점에 정기적으로 가서 책을 둘러 볼 수 있는 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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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er)

Economist: 유학 준비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어도 짧고 국제 뉴스에 무지해서 버거웠다. 지금은 국제 뉴스 중 가장 신뢰하는 소스이다. 간략하고 통찰력 있게 한주 뉴스를 정리해준다. 기사가 짧아서 부담도 적다.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경제/경영지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경영/금융 쪽은 그다지 볼만한 기사가 없다. 정론 보수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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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Today: 이코노미스트와 반대로 이쪽은 아주 가볍고 쉽다. average American이 관심 가질 만한 스포츠, 미국 연예 소식이 많다. 영어도 쉬워서 부담없이 눈으로 주욱 훑기 좋다. 듣기로는 (미국)중고등학생이면 읽을 수 있는 단어 수준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미국 처음가서 영어도 어려운데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신문보려고 힘쓰기보다는 USA Today로 미국사람과 대화소재 찾고 꾸준히 읽는 버릇을 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인터넷에서도 전부 볼 수 있다. 다만 기사가 미국인 관심사 위주라 한국에서 읽기는 오히려 버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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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er: 영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뉴요커를 추천한다. 뉴요커의 필자는 그 시대에 가장 글빨이 좋은 작가들이다. 이를테면 현재 의학분야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Being Mortal’의 저자 아툴 가완디 Atul Gwande가 주된 필자이다. 단편소설, 문학/미술 비평, 시도 실리지만, 각종기사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은 한나 아렌트가 뉴요커에 실은 르포이다. 40-50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존 치버, 블라디미르 나보코브, E. B. 화이트, 트루먼 카포티, 로날드 달, 존 업다이크 같은 작가도 뉴요커에 작품을 기고하거나 필자로 활약했다.

다만 글이 정말 길다. 분량 제약을 하지 않는 편집원칙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인지 여백에는 생뚱 맞은 카툰과 시가 군대군대 들어차 있다. 또 인문학 배경 지식이 없이 따라가기 힘든 내용이 많다. 나는 뉴요커를 읽을 때 사전 뿐 아니라, 위키피디아 까지 찾아가며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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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뉴욕타임즈):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성향은 굳이 말하자면 리버럴하지만, 워낙 다양한 기사를 싣기에 딱히 성향을 분류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주로 정치/경제 기사를 보고, 아내는 문화면을 읽는다. 문화면은 다양하고 재미난 기사가 많아서 아내가 좋아한다. 정기 구독을 할까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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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tlantic: 사회 면에 볼만한 기사가 많다. 뉴요커가 워낙 깊이 있고 길게 썰을 푼다면, 아틀란틱은 짧고 재미있고 쉽게 쓴다. 부담없으면서 시사를 따라 잡기 좋은 잡지. 게다가 인터넷에 공짜로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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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R: 출퇴근길에 라디오 뉴스로 듣는다. 공영방송이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를 표방한다. 나는 자극적이지 않은 스타일이 좋아서 즐겨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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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Week Tonight with John Oliver

외신은 아니고 정치풍자 코메디쇼이다. 일주일간 뉴스를 정리하고,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뉴스를 선정하여 이야기 한다. 유료채널인 HBO에서 방송을 하지만 Youtube에서도 대부분 볼 수 있다. (링크) 미국 정치 코메디에서 흔히 보이는 smart ass 스러운 면모나, 오버하는 모습이 없어서 좋아한다. 그의 nerd스러움과 영국식 액센트가 거부감을 줄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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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경영/테크 쪽은 진득이 앉아서 읽은 적이 없다. (나 공대출신 MBA 맞나?) WSJ(월스트리트저널)은 지루해서 몇번 보다 말았고, HBR(하바드 비즈니스 리뷰)은 자기 개발서 보는 것 같아서 꾸준히 보는 데 실패했다. Tech crunch는 단신 위주라서 재미가 없었음. 모두 좋은 잡지/신문들이다. 내 취향이 그렇다는 이야기.

미운 일곱살

딸내미가 장난꾸러기 스누피를 보고서 공감하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나? 딸램이 반항하는 영혼이 되었다. 원래 말잘듣고 순종적인 아이라 좀 당황스럽다.

방치우기 싫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옷자락으로 카페트 청소를 하지않나, 아침에 바쁜 와중에 양치를 25분 걸려서 하면서 싫은 소리 했다고 하루종일 투닥투닥, 숙제 시켜 놓으면 준비물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가 빠져버린 독서 삼매경. 에라 모르겠다 딸램 옆에 같이 누워 책이나 보자.

물론 잔소리와 신경전의 고달픔은 순전히 엄마의 몫이다. 나야 옆에 같이 드러누워서 화를 돋구는 왕베짱이 같은 존재이고.

어떤 날은 나도 잔소리 대열에 끼어들어 심하게 소리지르고 나서는 일곱살난 딸램과 하루종일 감정싸움 하기도 한다. 아~ 아직도 덜된 인격이여.

그러다가 옛말이 생각난다. 미운 일곱살. 그러고 보니 딸아이가 일곱살이 되었더라.

이 시기도 지나가겠구나. 옛말의 효용은 이럴때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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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에이블 뉴스)

읽어볼만한 기사: 미운 일곱살 이해하기 (에이블 뉴스, 2014년 2월 6일자)

The Gospel According to Garcia by Ariel Dorfman

이번 주 읽은 단편. 잊기 전에 남기는 메모.

뉴요커에 전문이 실려 있다.

The Gospel According to Garcia by Ariel Dorf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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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뉴요커 수록 소설 이미지)

짧은 단편이지만, 다양한 은유로 읽힐 여지를 남긴다. 예전에 고현정이 나왔던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칠레 출신 망명자인 작가의 배경 때문인지 파시즘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이 었던 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가르시아’에 대한 궁금증이다. 끝까지 왜 그가 사라졌는지 밝히지 않는다. 미스터리는 이야기를 읽게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시편 121편 :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들어가며

오늘은 성경 이야기.

전에도 언급했지만, 내가 포스팅하는 목적은 지나가는 생각을 활자에 붙잡아두고 정리하기 위함이다. 이 글도 그런 이유로 썼다.

(내 생각엔) 비교적 객관적으로 성경을 기술 했으나, 기독교에 앨러지 반응이 있는 분들이 굳이 참아가며 읽을 필요는 없다. (재미없고 길어서 읽을 것 같지 않지만.)

시편을 시로 읽기

시편은 성경의 다른 책과는 달리 시로 쓰여졌다. 시의 형식을 갖추고 있고 시적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번역시가 으레 그러하듯 원어의 형식미는 옮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시편을 읽으면서 이게 원래 시라는 것을 떠올리지 못할 때가 많다.

시편 121편은 꽤 유명하다. 노래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한번도 121편을 시로 읽어본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라면 당연히 있어야할 음율, 절제된 형식, 응축된 사고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내가 읽어본 중에는 NIV 버전 번역이 시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NIV 번역 전문을 옮긴다.

A song of as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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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ift up my eyes to the mountains—
where does my help come from?
My help comes from the Lord,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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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ill not let your foot slip—
he who watches over you will not slumber;
indeed, he who watches over Israel
will neither slumber nor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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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rd watches over you—
the Lord is your shade at your right hand;
the sun will not harm you by day,
nor the moon b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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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rd will keep you from all harm—
he will watch over your life;
the Lord will watch over your coming and going
both now and forever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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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옮기고 보면 121편이 4연으로 된 시라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일정한 형식 또한 갖추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각 연의 1행과 2행이 한쌍이고, 3행과 4행이 또다른 한쌍이다. 한 연에서 1,2행과 3,4행은 대조의 관계일 때도 있고 (1연 같은 경우), 보충해주는 관계이기도 하다 (4연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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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된 시의 양식은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잘은 모르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읽는 다면 읽는 맛이 더욱 강하리라 추측한다. 시편은 원래 낭독을 위한 글이고 선율이 붙은 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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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시를 분석해 본 사람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시편의 시들을 분석해도 재미있다. 121편에는 대조적 심상,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 서로 대구하는 구절, 반복되는 이미지 같은 분석거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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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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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에는 시편 121편의 제목이 ‘a song of ascents’으로 되어 있다. 한글로는 ‘올라가는 노래(?)’ 쯤 될 것 같다. (한글) 새번역에는 좀더 친절하게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KJV나 다른 번역본을 보아도 성전과 순례자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새번역이 좀더 친절하게 의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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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로 치자면 추석, 설날 같은 것이다. 유대인들은 대신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이 있다. 어떤 면에서 무슬림이 메카를 순례하는 일과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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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성전에 올라가는, 즉 예루살렘을 걸어서 올라가는 유대인의 입장이 되어 시를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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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시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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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저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산을 본다. 한글로는 단수인 산이지만 영어로는 복수인 mountains이다. 예루살렘 성을 둘러보면 동쪽에 감람산(Olive Mountain), 서쪽에는 시온산 (Zion Mountain)이 있다. 성 자체도 모리아 산(Moriah Mountain) 위에 위치한다.  예루살렘은 산으로 둘러쌓인 천혜의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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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s
(이미지 출처: http://www.returntogod.com/jerusalem/mountains.htm)
1)감람산, 2)모리아산, 3)시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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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 때문일까? 예루살렘 언덕길을 올라가는 사람들은 요새를 보면서 웅장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비슷한 소재의 노래가 또 있다. 시편 125편이다. 125편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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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시온 산과 같아서, 흔들리는 일이 없이 영원히 서 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듯이, 주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감싸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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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래는 순례자가 산을 올려다 보는 지점까지 동일하다. 그러나 그 이후는 다르다. 125편은 산에서 하나님을 연상하여 그 속성을 찬양한다. 반면에 121편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산을 창조한 하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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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125편에서는 (산의 속성)=(하나님의 속성)이고, 121편에서는 (산)<(하나님)이다. 121편에서 묘사하는 하나님은 우주적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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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1편과 감정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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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문학은 화자의 경험(또는 상상)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것을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능동적으로 연결지을 때에 문학이 힘을 가진다. 이 과정을 다른 말로 하면 감정이입이다. 121편에서 감정이입을 일으키는 후크(hook)는 1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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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시편 121편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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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일차 독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둘러싼 산들과 예루살렘 요새를 보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현대의 독자가 시를 읽는다면 산 대신에 나를 둘러싼 보호막을 떠올리는 것이 시를 읽는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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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인간과 불확실성의 문제를 블로그에 쓴 적이 있었다. 불확실성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가장 세속적이면서 현대적인 방법은 물질적인 해법이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이것은 합리적인 해법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예측이 가능한 리스크를 최소화 하며 대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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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우리는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매일 끼니를 챙겨 먹는다. 교통사고를 피하고자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산다. 추위를 막기 위해 옷을 입고,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집을 짓는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열심히 수능을 준비한다. 인간은 존재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불확실성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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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truction of Jerusalem by the Romans in 70AD -- a painting by David Roberts (1796-1849).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by the Romans in 70AD —
a painting by David Roberts (1796-1849).

(image source: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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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요새는 AD 70년에 로마 티투스장군에게 함락된다. 결사 항전을 선택했던 유대인은 대다수 굶어 죽었고 그들이 의지하던 요새는 완전히 무너진다. 로마의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270만의 예루살렘 사람중에서 110만명이 죽고, 9만 7천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하니, 초토화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멸망의 이야기를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책이름은 The War of the Jews이고 영역본은 전문이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다. (링크) 이후 티투스는 개선 장군이 되고, 칠년 후에 황제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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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당시 고대인의 숫자 개념은 조금 달랐다는 것은 감안해서, 270만/110만 이라는 숫자는 조금 과장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참고2. 요세푸스의 책에서 예루살렘 함락에 대한 이야기는 Book 5, Book 6에 나온다. 참고3.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8권에 예루살렘 몰락이 기술되어 있다. 로마인 이야기는 널리 읽히는 책이지만, 그녀가 유대/기독교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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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121편을 읽다 보면 창조자인 하나님에게까지 시선이 올라가게 된다. 내가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1연에서 였다. 개인적인 삶의 경험과 실패의 기록들, 인간적인 보호막이 때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깨달음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보면 시편의 저자와 동일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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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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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에서 감정이입에 성공한 독자들은 2연, 3연, 4연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이후는 창조자이며 우주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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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은 졸지 않는 하나님께서 낙상을 막아준다는 이야기이고,
3연은 그가 그늘이 되어서 낮의 햇빛과 밤의 달빛에서 지켜준다는 이야기,
4연은 영원의 존재가 언제나 순례자들을 지켜준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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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스라엘의 사막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는 순례자가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우주적인 존재가 그들을 지켜준다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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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이 노래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 시가 어떻게 낭독되고 불려졌을 지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2연/3연/4연을 같이 부르면서 감정을 고양시키고 기뻐했을 것이다. 이는 현대의 교회에서 시편으로 만든 찬양을 부르면서 교인들이 같이 기뻐하는 장면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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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 때 이 시를 읽으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이 과정은 문학이 주는 치유의 효과와 유사하다. 그 위로의 감정은 순례자의 처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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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족 하나 만 더. 나는 읽으면서 하나님이 그늘이 되어서 순례자를 밤의 달빛에서 지켜 주신다는 이야기가 이상했다. 달빛이 무슨 해를 끼친단 말인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은 달빛을 오래 쐬면 정신병이 온다고 믿었다. 생각해보니, 미치광이라는 뜻의 lunatic이라는 단어는 달(lunar)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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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캐릭터가 당신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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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찰리 브라운 이야기를 한 김에 하나더.

영화를 보고서 딸아이에게 뭐가 가장 재미있었는가 물었다. “스누피!” 주저함이 없다.

생각해보면 찰리 브라운에서 주인공인 찰리의 인기가 스누피를 넘어선 적이 한번도 없다. 재미난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리는 강아지가 인기의 중심이다.

하지만… 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찰리에게 시선이 가 있었다. 불운은 언제나 그녀석만 따라 다니더라. 그리고 풋내기 짝사랑 하던 소녀. 해도해도 안되는 일들. (학창시절 나는 운동에 젬병이었기에 공감도 쉬웠다.)

같은 영화를 봐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점이나 공감하는 캐릭터는 다르게 마련이다. 주로는 그 공감하는 캐릭터가 자신을 말해준다. 이를테면 요즘 딸아이는 스누피다. 가끔 스누피 처럼 말썽을 부리는 딸아이가 버겁다.

누가 둘리를 보고서 공감이 느껴지면 아이, 고길동에 공감이 느껴지면 어른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Peanuts Movie

어제 Peanuts Movie를 봤다. 2015년 버전 찰리브라운이다.

그 김에 오늘은 딸램이랑 같이 찰리브라운, 스누피 그림을 그려보았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부모팬들의 추억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 게다가 1960년대 미국문화코드가 있어서, (다이얼 전화기, 타자기 등등…) 미국판 만화버전 ‘응답하라 60년대’ 같은 느낌이다. 찰리브라운이 팬시 캐릭터로만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흥행할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

미국 만화는 전통적으로 히어로물이 많다. 반면 여기서는 주인공이 실패를 거듭하는 찰리이다. 그렇다고 실패를 조롱의 요소로 사용하는 부류의 미드 루저 코믹물은 아니고, 아주 착한 영화이다.

잔잔해서 몰입하는데에 시간이 좀 걸린다. 잠이 들 정도는 아니다. 나는 심지어 마지막에 찰리가 실패(?)하고 뒷모습을 보이는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래도 나는 쓸쓸한 뒷모습에 약한가 싶다.

유가가 곡물가격에 미치는 영향

어제일자 WSJ에 따르면, 농산물 대기업중 하나인 신젠타가 듀폰의 agriculture division을 인수하려고 한다고.

알다시피 국제 곡물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2011년 피크를 친 후에 41%가 빠졌다.) 곡물업계의 채산성이 떨어지고, 이에 M&A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이다.

DuPont Exploring Agricultural Deals With Syngenta, Dow Chemical (WSJ, 11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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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국제 경기가 (특히 중국) 둔화되고, 각종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는 건 알겠는데, 왜 곡물가격이 하락하는 것일까? 돈이 없어서 사람들이 굶는 것일까? 아니면 농부들 생산성이 하락하나? 둘다 딱히 들어 맞는 이야기 같지는 않다.

찾아본 바에 따르면, 곡물가격은 크게 두가지 요소에 반응한다. 첫번째는 유가이고, 둘째는 각국 정부의 규제이다.

유가는 크게 두가지 이유로 곡물가격에 영향을 끼친다. 첫째는 원가부분이다. 곡물 가격의 20%는 석유와 관련되어 있다. 원유가 원재료인 비료와 각종 농기구의 연료, 운송비가 바로 그것이다. 둘째는 바이오 연료이다. 유가의 하락은 바이오 연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이는 옥수수 같은 에탄올의 연료가 되는 작물의 수요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두번째는 정부의 규제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농업을 안보와 연관짓는다. 정부들은 국제의 농산물 가격 변화로 인해 자국의 농업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농부들은 1)정부의 보조금을 받는다. 그리고 정부는 농산물을 사고 팔면서 2)가격을 조절한다. 정부미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3)수출입을 통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는 2007년 쌀값 폭등이다. 중국과 인도는 당시 쌀 수출을 제한했는데, 이로 인해 자국의 쌀값은 안정되었으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는 쌀값이 두배로 뛰었다.

물론 이외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 가격 변동 또한 무시 못할 원인일 것이다.

참고 자료: Oily food (economist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