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역별 부동산 경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

며칠전 별 생각 없이 주요국가 부동산 가격 추세 그래프 포스팅을 올렸다. 아주 반응이 뜨거웠다. 사람들이 부동산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느꼈다.

포스팅 이후에, 페친이신 이조훈님과 임일섭님께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셔서 또 배웠다. 내 허접한 포스팅 보다 전문가인 그분들의 댓글을 공유하는게 더 배울게 많을 것 같아서 그대로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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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훈: 우리 나라도 2008년이 정점이고 이후로 작년까지 계속 빠졌을텐데…

나:  그렇네요. 2008년에 bump가 있네요. 근데, data 상으로는 그 이후도 오르긴 하는데, 값이 물가를 고려 안한 nominal value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구요. 뭐 어쨌든 참고로는 재미있는 자료이긴 하네요.

정성태: 전국 기준이라 그렇습니다.

나: 넵. 그렇군요. 그렇게 보니 말이 되네요.

이조훈: 역시 주변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느낌과 현실은 다르네요.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의 가격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줄 알았는데, 그건 수도권 이야기군요. 임대료 대비 집 값(house price to rent ratio) 또는 소득 대비 집 값(house price to income)에 대한 OECD 통계 등을 찾아보시면 더욱 재미 있을 겁니다. 서울 아파트만 머리에 있다면 믿기 싫은 진실.

나: 그렇네요. 한국도 서울 밖으로 눈을 돌리면 집값이 그렇게 비싼편은 아니군요. 문제는 서울/강남이긴 합니다만. 최근 부산 부동산 경기에 대해서도 말이 많더군요. 재미있는 통계들이 많네요.

이조훈: 우리 나라 주거의 절반 가까운 건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고 (빌라, 하숙집) 수도권 인구도 절반이 안되니… 결국 서울의 아파트는 중산층 이상의 거주 공간이지요. 서울 강남은 그냥 맨하탄이나 런던의 첼시, 일본의 록뽄기, 홍콩/싱가포르의 핵심지역 같은 개념이라 그에 비하면 또 과도한지도 의문이지요.

임일섭: 관련된 졸고 두 편 소개합니다.^^ 글을 쓴 이후에 생각이 조금 달라진 부분도 있고, 스스로 보기에도 치열함이 부족하여 클리셰로 끝내버린 느낌도 있긴 합니다만…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통해 본 주택시장 현황 그리고 이건 며칠전 이조훈님 포스팅과도 관련있는 글… 주택시장의 구조 변화가 주택금융에 미치는 영향

이조훈: 네. 링크하신 글처럼 저도 제가 링크한 그래프에서 바로 우리 부동산이 저평가 되어 있다는 결론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숫자가 일반의 인식과는 많이 다르긴 해서 첨부해봤습니다. 그보다, 어제 다른 분의 댓글에 대답한 내용이긴 합니만, 두번째 링크하신 글의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합니다. 전세라는 사적 금융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공시가 안 되다보니 데이타도 안 쌓이고 따라서, 부채의 가시성(visibility)이 떨어져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점 같습니다. 험험.

임일섭: 예 어제 쓰신 글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다들 스스로 부동산에 대해서는 좀 안다…라고 “착각하고”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ㅠㅠ

이조훈: ㅠ 박사님 보다 제가 오하려 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부끄럽습니다. 사실 그 표현은 월세로 전환해서 수백조 깔려 있는 전세금 수백조를 생산에 투입면 한국 성장률을 높이자는 노무라 리포트 정도를 염두에 두고… 아니면 술자리에서 인구 절벽 하나를 가지고 폭락론을 펼치는.. 그런 분들이나 불패론을 펼치는 투기꾼 아줌마를 염두에 둔 이야기였습니다.

임일섭: 엇 뭔가 오해하신듯. 저도 그런 뜻으로 읽었습니다.^^ 집값의 역사적 추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사실과 다른) 통념, 집값이 안정되면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 등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인장이 따로 계신 담벼락에서 수다를 떤 듯하여 죄송합니다.)

나: 아닙니다. 두분의 논의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나: 그리고 임일섭 박사님께서 링크 걸어주신 보고서 잘 읽었습니다. 두분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전국적으로 보면 2008년 이후 큰 변화가 없지만 서울 특히 강남은 큰폭의 하락이 있었네요. (PIR을 기준으로 해도 이는 명확해 보입니다.) 전문가께서 댓글을 달아주시니 제 담벼락의 격조가 올라갑니다. ㅎㅎ 두 번째 보고서도 잘 읽었습니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현국면에 딱 필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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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앞의 임일섭 박사님의 보고서에서 PIR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 추이를 보면 2000년대까지는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동일하게 가다가 2008년 즈음 차이가 많이 벌어진 게 보인다. (지역별 소득격차가 8년 사이에 저렇게 줄어 들었을 리가 없으니 가격이 벌어진게 맞다.) 차트를 보면 강남이 아닌 전국을 기준으로는 2000년 이후 크게 오른 내용이 없다. 이전 포스팅에서 내가 IMF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전국을 기준으로는) 별로 오르지 않은 사실을 발견한 것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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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금융 연구소)

뭐.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나. 그치만 Data를 바탕으로 과거의 일을 추적해보니 재미있긴 했다. 나는 부동산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인데, 너무 많이 떠든 것 같다. 그럼 이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공줄타기와 서편제)

출퇴근 길에는 주로 NPR 라디오를 듣는다. 지난 주에는 고공 줄타기 (서커스)를 업으로 살아온 한 가족 이야기를 들었는데 재미나게 들었기에 공유한다.

1. Jenny Wallendar 이야기

링크: Jenny Wallenda, Matriarch Of ‘Flying Wallendas’ Circus Family, Dies (NPR)

4분짜리 짧은 이야기니까 영어공부 하는 셈치고 들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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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Chicago Tribune)

인터뷰는 Jenny Wallendar라는 할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잠깐을 들었는데도 순탄지 않았던 그녀의 삶이 쉽게 그려진다. 그녀는 2차 세계 대전 중 히틀러 유겐트 (Hitler Youth)에 fitness instructor로 착출된다. 거기서 강간을 당하기도 하는 등 고단한 시간을 보내다가 미국으로 이주한다. 서커스단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1962년 그녀는 인간 피라미드 묘기 도중 사고로 남편을 잃는다. 그리고 1978년 아버지가 줄타기 묘기 중에 사망한다.

1962년 남편을 잃었을 때, 그녀는 6개월 간 무대에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손자인 Nick Walledar의 말이 인상적이다.

It is hard to describe to somebody that wasn’t raised and literally born into the industry. You know, my mom was six months pregnant with me and walking the wire still. So I was walking the wire longer than I’ve been alive and my grandmother had walked the wire since she was a small child. And it is not a career. It’s not an occupation, but it’s life. My great-grandfather Karl Wallenda said life is on the wire, and everything else is just waiting.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또다른 세계이다. 왜 죽음을 직면하며 매일을 살아갈까. 그것도 강요가 아닌 자기의 의지로. 그는 무대에 서는 것이 직업이 아니고 삶이라고 한다.

2. 영화 ‘서편제’

인터뷰를 들으면서 ‘서편제’가 생각이 났다. 영화를 볼 때 나는 내내 먹먹했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살까. 떠돌이 소리꾼 유봉(김명곤)은 수양딸 송화(오정해)에게서 한이 서린 소리가 나오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녀에게 눈이 멀게 하는 약을 먹인다. 그녀는 그것을 알게 되지만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리꾼의 삶을 받아들인다. 영화에서 소리꾼들은 그저 소리를 위해 살아간다. 도대체 소리가 뭐길래.

한국 영상 자료원에서 영화를 유튜브에 공개 했다. 지금 봐도 원테이크로 가는 진도아리랑 장면이 참 좋다. (44분 경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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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Nick Wallendar 이야기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 손자 Nick Wallendar에 대해서. 이 친구도 고공 줄타기 계에서는 유명인사이다. 그는 2014년에 시카고 고층 빌딩 사이를 외줄타기로 횡단했다. 심지어는 안대를 하고서 말이다. 보고 있으면 아찔해 진다.

관련 기사: 닉 왈렌다, 시카고 빌딩 사이를 외줄로 횡단 (중앙일보)

번역가, 편집자, 그리고 지적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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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세심함이 요구되는 고도의 지적인 노동이다. 노동이라고 굳이 쓴 것은 번역가에게는 원저자의 창작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번역가 이상으로 숨겨져 있는 지적 노동가는 아마 편집자가 아닐까 한다. (이말이 무슨 이야기인지는 링크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듯.)

과학책 번역가가 실제로 하는 일

하긴 세상에 어떤 재화/서비스가 숭고한 땀과 노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이른바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의 생산과정은 많이 숨겨져 있는지라, 책을 읽을 때 마다 관계자들의 노고에 직접적인 찬사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불평을 하긴 쉽겠지.) 유치원다닐 적을 돌이켜 보면, 밥을 먹을 때 농부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지만, 책읽기 전에 출판 관계자에 감사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도 안다. 사람들에게 재화/서비스를 구매하고, 이용할 때마다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과하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브라질의 농부에게 감사하고, 신발을 신을 때마다 중국/베트남의 이름없는 노동자에게 감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당한 가치를 치루고 소비를 하고 보상을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 ‘정당한’ 가치라는 게 언제나 논쟁이다. 극단적인 시장 만능 주의자를 제외하고서는 시장이 조정하는게 언제나 옳다고 하지만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출판 시장 상황에서 (나는 다른 나라는 잘 모르니까 미국/일본에 비교해서) 시장이 결정하는 계약금/월급이 번역/편집자 분들의 기회비용과 노력을 온전히 보상해준다고 믿기 힘들다.

그럼 어쩌라구. 너는 답이 있냐? 묻는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내가 그걸 알면 투철한 사상가가 되어서 혁명을 일으켰겠지.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는 거다. 아직까지는 그럴듯한 대안을 들어본 적이 없다.

불완전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딱 돈받은 만큼만 일하고, 보이는 데서만 잘하는 사람들 만 있어서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답일런지 모른다. 제도가 중요하랴, 그 안에서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지.

애구, 사설이 너무 길었다. 내 개똥철학 한마디 듣는 것 보다 링크걸은 글 읽는게 더 좋다. 번역/편집의 과정이 이렇게 이뤄지는구나 소상히 알려주는 좋은 글이다.

주요국가 부동산 가격 추세 그래프

IMF의 자료를 토대로 주요국가별 부동산 가격 추세 그래프를 그려봤다. (할일이 없으니 별짓을 다하는군…^^) 사이트에 접속해보면 국가별 엑셀 데이타를 다운 받을 수 있다.

자세한 경로는 블로거 ‘채훈아빠’님의 포스팅을 참조하시길…

링크: 세계 부동산 시장 상황을 일목 요연하게 볼 수 있는 곳 –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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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래프는 1995년을 100으로 놓고 상대 비교한 값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 일본은 1990년 이후 부동산 장기 불황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 미국은 2006년 과열로 피크를 찍은후 2011년까지 정신 못차리다가 다시 회복중이고,
– 스페인은 미국보다 더 심한 피크를 2007년에 찍고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 독일은 부동산 경기 사이클이 거의 없고, 프랑스는 큰 불황이 없었다.

우리나라가 좀 의외인데,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이 호시절이었고, 97년에 휘청, 2000년 대 초반이 아주 좋았던 것 같다. 근대 이렇게 그려놓고 보니 ‘겨우??’ 하는 느낌이다.

뭐, 그냥 그랬다는 이야기. 나름 재미있는 비교였음.

참고로 내가 작업해봤던 Excel 파일도 같이 공유한다. (pp_long.xlsx)

+덧(04/17/2015): 이후에 경제 전문가이신 폐친 두분께서 좋은 댓글을 많이 달아 주셨기에 공유한다. 링크: 우리나라 지역별 부동산 경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 내 허접한 블로그 내용보다 두분의 커맨트에서 배울게 더 많다.

한국인의 스팸 사랑에 관한 NPR 기사를 보고

최근 스팸을 먹을 일이 많았다. 혼자 밥먹을 상황에서 스팸만큼 요리하기 편한 음식이 없더라.

외국 사람들에게는 한국 사람들의 스팸사랑이 신기한가부다. 작년에 BBC와 WSJ에서 한국사람의 스팸사랑을 뉴스로 다루더니 (BBC 기사 링크, WSJ 기사 링크) 어제는 NPR에서 다뤄주신다. 기사에 의하면 한국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스팸을 많이 사먹는 나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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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NPR)

In Korea, Spam Isn’t Junk Meat – It’s A Treat.

뭐, 먹는 거 가지고 저급하네, 세련되네 하는 건 무지의 소치이다. (제목과 달리 기사는 중립적인 톤을 유지한다.) 그치만 spam이라는 단어 자체가 spam mail의 어원이 될 정도로 싸구려 음식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는 단어이다. Luxury까지는 아니어도 아직도 우리는 스팸을 선물로 주고 받는 것도 사실이고.

어찌 됐든, 기사보니까 갑자기 한국가서 부대찌개 먹고 싶네…ㅎㅎ

琉璃窓(유리창) – 정지용

琉璃窓(유리창)

流璃(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流璃(유리)를 닥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肺血管(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정지용-가족

+ 덧: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시. 정지용이 아들을 폐결핵으로 잃고서 썼다는 시이다. 시인 이상이 애송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잊히지 않는 게 먼저 죽은 자식인가부다.

정지용 가족사진을 첨부한다. 결핵으로 죽은 아들은 차남 구익씨고 사진의 아들은 장남 구관씨라고 한다.

미국 기업과 feeder school

M.B.A. Programs That Get You Where You Want to Go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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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feeder school이라 하여 회사 (또는 학위) 마다 선호하는 학교가 있고 선후배 커넥션이 있다. 우리나라도 암암리에 그러한 것이 있지만, 이 동네는 그걸 대 놓고 한다. 문화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에 Y대 경영학과 출신, SK에 K대 경영학과 출신, 서울대 xx과 박사과정에 P 공대 출신… 뭐 이런 식이다. (예시는 그냥 예시이다.) 우리나라처럼 줄세우기 라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다. (그런면이 아예 없다고 하긴 좀… 미국도 snob은 많다.) 학교마다 학풍이라는 게 있으니.

몇년 전까지 치열하게 구직활동을 했던 경험에 의하면 기사의 내용은 상당히 정확하다. 사실 아마존에 U of M MBA 출신이 몇명 취직했다는 정도의 디테일까지 나온 것을 보고서 놀랐다. (아마 학교에서 자료를 받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블로그에 내 구직활동 경험을 올려 놓을 까 한적이 있었다. 좀 논란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접었는데, 메이저 언론에서 친절하게 정리해서 기사로 올려주셨다.

기사 내용에 개인적인 경험 몇가지 덧붙이자면, P&G 랑 아마존은 MBA top school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리쿠르팅을 하지만, 애플은 Duke에만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 (역시 동문이 잘나가야되. 팀쿡이 CEO가 될 줄이야…) 듁이 옆에 있어서 몇차례 두들겨 봤지만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는 출신회사가 좀 문제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당시 애플과 삼성이 워낙 상극이었던 지라…)

기사 보고서 옛날 생각이 들어 몇자 적어봤다.

+ 덧: 참고로 Duke과 우리학교는 지역 라이벌이다. 사립명문과 주립명문의 미묘한 자존심 뭐 이런 거에다가, 대학농구 강자들인지라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이다. 어제 NCAA basketball에서 Duke이 우승을 차지해서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 Boo~~~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0. 들어가며

곧 세월호 참사 1주년이다. 추모의 의미로 글을 적기 시작했다가 길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생각해보고, 읽어보고, 공부한 다음에, 글을 쓰는 정도 일 것 같다. 주제가 워낙 무거우니 만큼 글도 길다. 이렇게 긴 글임에도 나의 이야기는 일반론적인 또는 근본적인 이야기에만 머무를 예정이다.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쓴 글이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 부탁한다.

목차

0. 들어가며
1. 헴펠의 역설 – 귀납적 지식의 한계
2. 귀납적 지식과 인과론 – 회의주의자의 세상 보기
3. 자신의 법칙으로 살아가기
4. 신정론 (Theodicity) – 신은 왜 악을 허용하는가
5. 볼테르와 루소 – 신을 믿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6. 시스템적인 접근 – 루소의 답장
7. 힐스버러 참사 – 20세기의 참사
8.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개인적인 접근
9. 미시적 해체의 오류 – 개인적인 접근 vs. 구조적인 접근
10. 마치면서

1. 헴펠의 역설- 귀납적 지식의 한계

헴펠의 역설(Hempel’s raven paradox) 이라는 것이 있다. 독일의 논리학자 헴펠(1905-1997)이 귀납적 추론과 직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예이다. 설명을 위해 고등학교 때 수학시간에 배운 명제에 대해 복습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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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선은 역(conversion), 녹색선은 이(inversion), 파란색선이 대우(contraposition)이다. 대우관계는 논리적으로 동치이다. 예를 들자면, ‘1) 전기가 나가면(P)는 불이 꺼진다(Q).’ 와 ‘2) 불이 켜져 있으면 (~Q) 전기가 들어온 것이다. (~P)’는 대우관계이고 1)이 참이면 2) 역시 논리적으로 참이다.

헴펠의 역설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까마귀는 검다. (All ravens are black.)

(2)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 (대우) (Everything that is not black is not a raven.)

(3) 내 애완용 까마귀는 검다. (My pet raven is black.) : 1번을 지지하는 예시

(4) 이 녹색 물건 (검은색이 아닌)은 사과 (까마귀가 아닌)이다. (This green (and thus not black) thing is an apple (and thus not a raven).): 3번을 지지하는 예시

직관적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사과를 보면서 까마귀가 검다는 것을 증명하다니.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맞다. 헴펠의 역설은 귀납적 접근의 한계를 드러낸다. 헴펠의 역설에 의하면, 까마귀가 검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세상의 모든 검지 않은 것을 모아서 까마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헴펠의 역설에다 시간의 개념을 더해 볼까. 우리는 까마귀가 검다라고 말하기 위해 과거에 존재했던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모든 까마귀를 가져다가 검다라는 것을 확인해야 까마귀가 검다라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다. 만약 3년 뒤에 파란 새를 한번 찾아봤는데, 알고보니 까마귀였다면 이 역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2. 귀납적 지식과 인과론 – 회의주의자의 세상 보기

헴펠의 역설은 존재한다. 그러면 귀납적 지식이 무의미 할까. 감히 내가 어찌 인류가 쌓아올린 방대한 지식의 대부분을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은 수천년에 걸친 관찰과 경험의 축적으로 발견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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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볼까. 케플러(1571-1630)의 법칙(Kepler’s laws of planetary motion) 같이 귀납적인 관찰로 발견된 법칙은 뉴턴(1643-1727)의 만유인력의 법칙 (Newton’s laws of motion)의 토대가 되었다. 실험과 관찰, 확증이라는 과학의 방법론은 지식의 근간이고 인류의 지식은 그렇게 발전해 왔다. 사족으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귀납적인 지식이 아니다. 모든 물체는 질점(부피는 zero이면서 무게를 가지고 있는 가상의 점)으로 환원된다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형이상학적인 법칙이다.

귀납적 지식이 무의미하지 않다면, 나는 헴펠의 역설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굳이 말하자면 인류의 지식에 경외감을 가지되 틀릴 수도 있다는 겸허함을 가지자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학문을 하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어떤 법칙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말하는 진리/법칙/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법칙이라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자연의 법칙은 인간의 의지가 들어갈 여지가 적은 편이어서 비교적 보편타당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인간의 일을 다루는 학문 (이를테면 사회과학, 경제학, 경영학 등등….)은 되먹임 (feedback)이 클 수 밖에 없다. 학자들이 석유자원의 고갈을 경고할 때, 인류는 셰일혁명으로 예측을 뒤집었다. 멜서스의 비관적인 인구론은 농업혁명으로 가뿐히 무시되었다.

너무 학문적인 이야기인가. 그렇지만도 않다. 누구나 인생관, 지혜 같은 것을 가지고 살고 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순간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최선이다.’ ‘세상에 믿을 것은 돈 밖에 없다.’ ‘가족과의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같은 철학/법칙들은 누구나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러한 지혜들은 개개인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확증되어진 것이고, 부모님이나 인생의 선배들을 통해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의 법칙과 마찮가지로 삶의 지혜 또한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자신의 법칙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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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열심히 살았어. 다시 산다고 해도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할 꺼야.”

최대치가 여옥을 보고서 죽기전에 한 마지막 대사이다. 학도병이었던 최대치는 세월의 풍파에 마적단, 남파 간첩, 인민군 장교, 빨치산으로 살아간다. 그는 도덕을 무시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다. 그는 강해지고  싶어서, 또 나중엔 무력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한 길을 고집한다.

예전에는 박상원 같은 반듯한 사람이 좋았다. 이제 나이가 든 걸까. 최대치 같이 살아보자고 발버둥 치는 그런 사람들이 더 안스럽다. 누구나 열심히 산다.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킬 정의이던지, 자신과 가족을 먹여살릴 돈이 던지, 아니면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던지, 도저히 내려 놓을 수 없는 자존심이던지… 인간은 무언가를 위해서 달려가고 있다.

열심히 살아온 누군가에게 당신은 존재 자체가 틀렸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나 삶의 법칙/관점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그것이 남을 해하는 것이던, 자연을 해하는 것이던 간에 말이다. 누군가에게 옳은 것은 자신에게 그른 것이기도 하다. 모순된 세상에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한 철학자들은 세상에 대해 여러 관점을 내 놓는다.

17세기. 세상의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고 우주는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과 세계에는 기계적인 인과 관계만이 있을 뿐이라는 데카르트 적인 세계관이 부딪쳤다.

당시 두가지 세계관을 조화롭게 이해해보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라이프니치(1646-1716)이다. 그는 우주가 겉으로 볼 때 기계론적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데카르트적인 방식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기계를 창조한 신이라는 존재를 잊지 않고 언급한다. 그는 세계를 통해서 신의 목적과 의도를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

4. 신정론 (Theodicity) – 신은 왜 악을 허용하는가

근대의 과학자들에게 과학을 한다는 것은 진리를 찾는 것을 의미했다. 가장 성공에 근접했던 과학자는 뉴턴이 아니었을까 한다. 뉴턴이 엄청난 양의 신학서적을 저술 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뉴턴은 자신을 과학자가 아닌 신학자로 여겼다. 뉴턴은 과학 보다 신학에 관련된 책을 더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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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과 동시대의 과학자 중에 라이프니치(1646-1716)가 있다. (앞의 라이프니치와 동일인이다.) 미분을 발명하기도 한 그는 신정론(Theodicity)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유신론자였던 그는 전지(omniscience), 전능(omnipotence)하며 선한 존재 (omnibenevolence)인 신이 창조한 세계는 완벽하다고 보았다.

I form the light, and create darkness: I make peace, and create evil: I the LORD do all these things. (Isaiah 45:7)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한다. (이사야 45장 7절)

*덧: 라이프니치는 아마도 이사야서의 이 구절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1710년에 신정론(Theodicy: Essays on the Goodness of God, the Freedom of Man and the Origin of Evil)이라는 책을 쓴다. 신정론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신은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라이프니츠는 <신정론>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첫 번째 악은 모든 피조물의 불완전한 성질에서 비롯된다. 완벽하다면 그것은 신이고, 악할 수가 없다. 두 번째 악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악이다. 신은 자연의 악을 꼭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죄에 대한 벌로서, 또 때로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더 큰 악을 저지하거나 보다 더 큰 선을 실현하기 위해 자연의 악을 원할 수 있다. 세 번째 인간이 저지르는 도덕적 악은 인간의 자유의 결과이다. 신은 가장 선한 것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고, 이에 따라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선’ 뿐만 아니라 ‘악’을 선택할 수 있다. 신은 ‘악’을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악을 허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용: 철학여행까페[41]다양성과 조화를 추구한 철학자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는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론 또는 어떠한 다양한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 배후에는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신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최선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5. 볼테르와 루소 – 신을 믿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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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신에게 정의가 있고 신도들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죄 없는 사람들을 이토록 비참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모든 불행의 시작이 신의 권위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이라면 나는 신을 믿지 않겠다. 볼테르

1755년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한다. 이 지진으로 리스본 사람의 1/10이 죽는다. 볼테르는 이를 두고서 시를 쓴다. 그는 이 시로 당시 대세였던 라이프니치의 신정론을 비판한다. (영어 번역본 링크) 이 시는 왜 무고한 사람이 죽는가? 왜 하나님은 재난을 허용하는가? 재난을 만든 신은 왜 존재하는가? 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루소이다. 이 시를 편지로 받은 루소는 볼테르를 반박하는 답장을 쓴다. 루소는 ‘리스본의 지진은 신의 섭리가 아니다. 리스본 시내에 밀집 지역을 만들고, 다층 주택을 지은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재난에 대비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했다면 피해는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답변한다. (영어 번역본 링크)

루소와 볼테르/라이프니츠를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루소는 재난에서 신의 존재를 고려 대상에서 빼버렸다. 말하자면 재난은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기를 멈추었다는 것이다.

18세기의 유럽은 철저하게 신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곳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대형 사고가 나면, 누구나 신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현대인은 모든 인과를 신과 연결짓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분노를 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리이다. 나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분노와 답답함이 가득했다. 선장/회사/해경/정부를 파고 드는 하나하나 기사에 반응하고 우울해 했었다. 아마 리스본 대지진 때, 유럽인들은 비슷하게 신에게 의문을 제기했던 것 같다.

6. 시스템적인 접근 – 루소의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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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볼테르에게 답장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I do not see how one can search for the source of moral evil anywhere but in man…. Moreover … the majority of our physical misfortunes are also our work. Without leaving your Lisbon subject, concede, for example, that it was hardly nature that there brought together twenty-thousand houses of six or seven stories. If the residents of this large city had been more evenly dispersed and less densely housed, the losses would have been fewer or perhaps none at all. Everyone would have fled at the first shock. But many obstinately remained . . . to expose themselves to additional earth tremors because what they would have had to leave behind was worth more than what they could carry away. How many unfortunates perished in this disaster through the desire to fetch their clothing, papers, or money?

내가 이해한 루소의 관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이러하다. 사고가 났을 때,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 가에 집중하면 (당시 기준으로는 신),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사고는 누군가 (또는 신)의 잘못으로 발생하지만, 동시에 사회 시스템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 (물론 루소는 시스템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조직 문화, 정부의 시책, 법령, 관련 산업의 인센티브 시스템 등등이 하나하나 맞물려서 사고가 발생하고 더 커진다. 사고에서 잘못한 사람과 조직을 찾기에 급급하면 시간이 흐르고 다른 이슈에 묻혀버리게 된다.

7. 힐스버러 참사 – 20세기의 참사

현대에 일어난 대형 참사 중에 힐스버러 사고가 있다. 1989년 FA 결승전에서 96명이 압사 사고를 당했다. 이 사건은 영국인 모두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캡처
(image source: Hillsborough was real living hell, The Munster Express)

위의 사진은 힐스보로 참사 당시 데일리 미러 표지이다.

이 사건이 일어 났을 당시 경찰은 무질서한 팬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유족들은 희생자의 오명을 씻기 위해 Hillsborough Family Support Group (HFSG)와 Hillsborough justice Campaign (HJC)을 구성한다. 이 사건 이후에는 영국 축구계는 매해 사고를 기억하는 추모를 한다. 또한 영국의 스포츠, 공연 안전 시스템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 과정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끈질 겼다. 결국에는 사고의 백서라고 할 수 있는 보고서를 내기에 이른다. 이 보고서는 45만 페이지에 이른다. 다만 이 ‘제대로 된’ 보고서는 사고가 일어난 지 23년 만인 2012년이 되어서야 나왔다.

8.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개인적인 접근

돌아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아마 나는 이쯤에서 루소의 관점이나, 시스템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끝내도 될 듯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러한 접근이 이상적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 교훈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개인의 문제는 남는다. 시스템적으로 개선이 이뤄지고 난 이후에도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위험 천만한 곳이며 불행은 나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다. 진정한 위험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위험에 닥쳤을 때 인간은 참 무력하다.

나의 질문은 도돌이표 처럼 돌아온다. ‘신은 잔인한 존재인가?’ ‘왜 삶에는 고통과 위험이 있는가?’ 하는 것은 아무래도 해결 되지 않는다. 신에 대해 변론하고자 여러 신학자들은 답을 내놓는다. 역사적으로 라이프니츠 뿐 아니라 정말 많은 논쟁과 이야기 들이 있어왔다. 나는 누구의 손도 못들어 줄 것 같다.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직관적으로, 느낄 뿐이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볼테르도 루소의 답장을 받고서도 그다지 속이 시원하지 않았던가보다. 그는 아예 책을 한권 쓴다. 그게 바로 풍자소설로 유명한 ‘캉디드’이다. 소설 속에서 캉디드는 처음에는 ‘All is well’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낙관주의자 였다. 그는 정말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생고생을 한다.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군대에 납치되었다가, 사기도 당하고, 노예선에 팔렸다가, 결국은 결혼을 해서 안정되는가 싶었지만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결국 그는 낙관주의를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캉디드는 이런 말을 남긴다. ‘그러나 우리는 밭을 갈아야 한다.’ 캉디드는 거대 담론에 파묻히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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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시적 해체의 오류 – 개인적인 접근 vs. 구조적인 접근

미시적 해체의 오류

문제를 끊임없이 미시적으로 나눈다. 결국은 아무 문제도 없고 책임자도 없다. 그저 끊임없이 나눌 뿐이다. 거시적 태도는 도식적 틀 속에 갇히곤 하지만, 미시적 태도는 폭력의 문제를 무화시키고 본질을 해체시켜 버린다. 분석이 아니라 핑계거리를 나열할 뿐이지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세세히 나누다 보면 아유슈비츠의 학살도, 용산 철거민 사건에도, 세월호에도 책임자는 없다. 지젝이 사이비 들뢰즈 아류들에게 지적한 대목이다. 게다가 나누다가 이득이 생기면, 나눈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계속 나누며 이득을 감춘다. (출처: 김응교 교수 페이스북)

균형잡힌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뜨거운 사안을 다룰 때는 더욱이나. 누군가는 내 글을 보면서 미시적 해체의 오류를 지적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럴지도. 나는 거시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폭력을 더 못견디는 사람이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

10. 마치면서

이제 정말 1년이 지났다. 끝으로, 누군가의 친구이고, 자식이었던 고인에게 삼가 명복을, 그리고 유가족에게도 위로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서독 광부/간호사와 ‘니나 가라, 중동’

독일에 가면 지금도 60년대 간호사로 왔었던 교포를 만날 수 있다. 그분들의 전형적인 모습은 독일인과 결혼해서 정착한, 한국말이 어눌한 할머니다.

스위스에서도 그런 몇분들과 교제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 같이 사연이 길다.

60년대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다. 실업률도 엄청나서 농촌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달려들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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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에 국내 임금의 7~8배를 준다는 정부의 선전은 엄청났다. 대학생들이 신분을 속이고 가짜 광부 경력을 만들어서 서독에 가려고 했다. 이들의 외화 송금은 당시 절박했던 정부의 외화부족을 해소 시키는 데에 일조하였다. 뭐 실업란에도 쬐끔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 당시는 청년이고 중년이고 노년이고 할 거 없이 총체적인 실업난이었으니 말이다.

서독 이야기는 지난 일이긴 한데, 최근 ‘니가 가라, 중동’ 이슈를 보면서 그다지 지나간 일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이건 농담인데, 혹시 그분 딸께서는 그분께서 밀어 부치셨던 경제 해결책이 아직도 통한다고 믿고 계신건 아닌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덧: 재미있는 포스팅을 발견해서 링크를 건다. 이견이 있을 수 있는 핫토픽이고, 내 의견을 덧붙이는 건 안하련다. 참고로 파견근로자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했다는 이야기는 정설은 아니다.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 : 경제성장은 과연 누구의 공인가?

뒷마당이 있으면 나무를 심어볼 텐데

회사에서 전체 메일이 하나 날라왔다. 로비에서 묘목을 나눠준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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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Oak, Kousa Dogwood, Shumard Oak, Swamp White Oak, Red Maple, Flowering Dogwood. 종류도 다양하다. 하나 가져다 심고 싶은데, 아쉽게도 우리는 뒷마당이 없네.

묘목 분배는 회사 차원에서 하는 green initiative 중에 하나이다. 봄이 오긴 왔나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