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넘치는 딸과의 대화

저녁 8시 반 경, 딸아이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아빠는 양치하러 갈께. 잘자~

몇 분이 지난 뒤, 딸아이가 옆방에서 부스럭 거리는 아빠 소리를 듣는다. 궁금한 아이는 방문을 빼꼼히 열고서 나긋이 묻는다.

“아빠, 양치 안해?” “아~ 하고 왔어.” “벌써?” “응, 아빠 양치 빨리 하는 거 알잖아.” “그렇지만 그렇게 양치를 빨리하면 이가 썩을 걸.” “그러게, 네 말이 맞다. 다음부터는 꼼꼼하게 천천히 양치할께.”

“괜찮아.” 딸은 쿨하게 덧붙인다. “내 이가 아니니까.”

66655622_f2a87757b8_z

(image source: flicker)

아메리칸 드림과 사회 이동성

아메리칸 드림. 미국에 온 이민자들에게는 꿈이 있다. 그들에게 미국은 약속의 땅이다.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미국인들은 자유와 경쟁의 가치를 신봉한다.

최근에는 미국 안에서도 아메리칸 드림이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다.

아메리칸 드림과 Social Mobility에 대한 연구 자료를 하나 공유한다.

INTERNATIONAL COMPARISONS OF ECONOMIC MOBILITY
BY JULIA B. ISAACS, The Brookings Institution

자료에 의하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 노력은 보상 받는다고 믿고,
  • 능력있는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확신하며,
  • 부모의 재산은 성공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 계층간 소득의 차이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 계층간 소득 차이를 줄이는 데에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캡처

(image source: 해당 자료)

그러나 미국의 사회 이동성 (Social mobility)을 수치로 보면 정반대의 결과를 보인다. 이 자료에 따르면 아버지 재산과 아들 재산 크기의 연관성은 0.47에 달한다. 조사 대상 국가 중 상위권이다.

캡처

(image source: 해당 자료)

KDI 김희삼 교수의 자료를 참고하여도 미국은 확실히 불평등의 정도가 높은 나라이다.  X축, 즉 지니계수를 비교하면 미국은 소득의 불평등의 정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확실히 높다. (Y축은 위의 자료와 숫자가 같다. 같은 출처의 자료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캡처

(image source: 권남훈 교수 포스트 재인용)

이러한 괴리가 어디서 오는 걸까?

인용한 Julia Isaacs 팀의 자료를 통해 몇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long term social mobility가 아니고, 5-10년에 걸치는 short term mobility를 보면 미국도 다른 나라와 소득 증가세가 유사하다.
  2. 또한, 중산층만을 놓고 보았을 때에는 미국의 social mobility가 유럽의 social mobility보다 높다. (미국 저소득층은 노답이라는 것은 함정.)

흥미롭게 읽은 자료여서 정리해 둔다.

미국 사망원인 통계

어제 캘리포니아에서 총기 난사가 있었다.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5일 전에도 콜로라도 사건이 있었는데, 이제 총기 난사는 매주 이벤트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캡처

(image source: USA Today 해당기사)

참고로 미국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공유한다. 이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총기사고 사망률(자살+타살) 은 교통사고 사망률에 근접한다. (22페이지)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public data

누군가 정리해둔 외신 추천글에 필받아서

누군가 정리해둔 외신 추천글에 필받아서… (링크 글이 정리가 잘 되있다. 내 글은 그냥 수다.)

내가 외신을 주로 보는 조합은 주간지(Economist 또는 New Yorker) + 일간지(NYT 또는 USA Today)이다. 주로 시간이 있을 때는 New Yorker + NYT 조합을,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반대 조합을 선택하는 편.

정기 구독은 하지 않고 내킬 때 마다 사서 본다. 읽지 않고 쌓여있는 잡지/신문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돈이 좀더 들더라도 사서 보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서점에 정기적으로 가서 책을 둘러 볼 수 있는 덤도 있다.

2190600496_02a5e024f2_b

(image source: flicker)

Economist: 유학 준비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어도 짧고 국제 뉴스에 무지해서 버거웠다. 지금은 국제 뉴스 중 가장 신뢰하는 소스이다. 간략하고 통찰력 있게 한주 뉴스를 정리해준다. 기사가 짧아서 부담도 적다.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경제/경영지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경영/금융 쪽은 그다지 볼만한 기사가 없다. 정론 보수의 정수.

download

USA Today: 이코노미스트와 반대로 이쪽은 아주 가볍고 쉽다. average American이 관심 가질 만한 스포츠, 미국 연예 소식이 많다. 영어도 쉬워서 부담없이 눈으로 주욱 훑기 좋다. 듣기로는 (미국)중고등학생이면 읽을 수 있는 단어 수준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미국 처음가서 영어도 어려운데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신문보려고 힘쓰기보다는 USA Today로 미국사람과 대화소재 찾고 꾸준히 읽는 버릇을 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인터넷에서도 전부 볼 수 있다. 다만 기사가 미국인 관심사 위주라 한국에서 읽기는 오히려 버거울 수 있다.

2000px-USA_Today_2012logo.svg

New Yorker: 영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뉴요커를 추천한다. 뉴요커의 필자는 그 시대에 가장 글빨이 좋은 작가들이다. 이를테면 현재 의학분야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Being Mortal’의 저자 아툴 가완디 Atul Gwande가 주된 필자이다. 단편소설, 문학/미술 비평, 시도 실리지만, 각종기사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은 한나 아렌트가 뉴요커에 실은 르포이다. 40-50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존 치버, 블라디미르 나보코브, E. B. 화이트, 트루먼 카포티, 로날드 달, 존 업다이크 같은 작가도 뉴요커에 작품을 기고하거나 필자로 활약했다.

다만 글이 정말 길다. 분량 제약을 하지 않는 편집원칙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인지 여백에는 생뚱 맞은 카툰과 시가 군대군대 들어차 있다. 또 인문학 배경 지식이 없이 따라가기 힘든 내용이 많다. 나는 뉴요커를 읽을 때 사전 뿐 아니라, 위키피디아 까지 찾아가며 읽는다.

CoverStory-Fall-Library-Tom-Gauld-879-1200

NYT (뉴욕타임즈):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성향은 굳이 말하자면 리버럴하지만, 워낙 다양한 기사를 싣기에 딱히 성향을 분류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주로 정치/경제 기사를 보고, 아내는 문화면을 읽는다. 문화면은 다양하고 재미난 기사가 많아서 아내가 좋아한다. 정기 구독을 할까 고민 중.

download

The Atlantic: 사회 면에 볼만한 기사가 많다. 뉴요커가 워낙 깊이 있고 길게 썰을 푼다면, 아틀란틱은 짧고 재미있고 쉽게 쓴다. 부담없으면서 시사를 따라 잡기 좋은 잡지. 게다가 인터넷에 공짜로 풀린다.

default-thumbnail

NPR: 출퇴근길에 라디오 뉴스로 듣는다. 공영방송이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를 표방한다. 나는 자극적이지 않은 스타일이 좋아서 즐겨 듣는다.

photo

Last Week Tonight with John Oliver

외신은 아니고 정치풍자 코메디쇼이다. 일주일간 뉴스를 정리하고,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뉴스를 선정하여 이야기 한다. 유료채널인 HBO에서 방송을 하지만 Youtube에서도 대부분 볼 수 있다. (링크) 미국 정치 코메디에서 흔히 보이는 smart ass 스러운 면모나, 오버하는 모습이 없어서 좋아한다. 그의 nerd스러움과 영국식 액센트가 거부감을 줄여주는 것 같다.

Capture

그외: 경영/테크 쪽은 진득이 앉아서 읽은 적이 없다. (나 공대출신 MBA 맞나?) WSJ(월스트리트저널)은 지루해서 몇번 보다 말았고, HBR(하바드 비즈니스 리뷰)은 자기 개발서 보는 것 같아서 꾸준히 보는 데 실패했다. Tech crunch는 단신 위주라서 재미가 없었음. 모두 좋은 잡지/신문들이다. 내 취향이 그렇다는 이야기.

미운 일곱살

딸내미가 장난꾸러기 스누피를 보고서 공감하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나? 딸램이 반항하는 영혼이 되었다. 원래 말잘듣고 순종적인 아이라 좀 당황스럽다.

방치우기 싫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옷자락으로 카페트 청소를 하지않나, 아침에 바쁜 와중에 양치를 25분 걸려서 하면서 싫은 소리 했다고 하루종일 투닥투닥, 숙제 시켜 놓으면 준비물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가 빠져버린 독서 삼매경. 에라 모르겠다 딸램 옆에 같이 누워 책이나 보자.

물론 잔소리와 신경전의 고달픔은 순전히 엄마의 몫이다. 나야 옆에 같이 드러누워서 화를 돋구는 왕베짱이 같은 존재이고.

어떤 날은 나도 잔소리 대열에 끼어들어 심하게 소리지르고 나서는 일곱살난 딸램과 하루종일 감정싸움 하기도 한다. 아~ 아직도 덜된 인격이여.

그러다가 옛말이 생각난다. 미운 일곱살. 그러고 보니 딸아이가 일곱살이 되었더라.

이 시기도 지나가겠구나. 옛말의 효용은 이럴때 있나보다.

c_2_000620140205140521464345

(image source: 에이블 뉴스)

읽어볼만한 기사: 미운 일곱살 이해하기 (에이블 뉴스, 2014년 2월 6일자)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귀족체험

이제 마지막 날이다. 아직 하루의 로드트립이 남았다. 아침은 호텔에서 든든히 먹기로 했다. 부시시한 얼굴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서 1층으로 향했다. 서버는 쿠바계 미국인. 생긴 것이 체게바라 비슷하다. 체게바라가 수염을 깍고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다음, 서버 유니폼을 입은 것 같다. ‘체게바라’ 서버는 말수가 적었지만 필요한 것을 제때에 챙겨주는 센스가 있었다. 그의 빠릿빠릿함에 나는 만족했다.

둘러보니 손님은 대부분 백인이다. 반면에 종업원은 히스패닉과 흑인. 호텔이나 식당에 오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서비스업의 본질은 유럽의 귀족 체험이 아닐까. (블로거 격암님의 포스트에 빚진 생각이다.)

DowntonAbbeySeason5-640

영드 ‘다운튼 애비’ 첫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견습 과정인 한 하인에게 전임자가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아침에 주인에게 신문을 가져다 줄때, 주인 어른은 새로나온 신문지 느낌을 좋아하니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리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다.

영국 귀족 한 가문을 챙기기 위해서 저택에는 수십명의 하인들이 같이 산다. 어떤 하인들은 주방을 전담하고, 어떤 하인들은 정원을 가꾸며, 어떤 하인들은 청소를 한다. 그리고 집사가 이들을 총괄한다.

우리가 호텔에서 받는 서비스의 원형은 귀족 저택의 삶이다. 귀족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는 엄청난 부가 필요하다. 현대인은 그런 호사를 매일 누리지는 못하지만 비용을 지불하고서 잠깐 경험해 볼 수는 있다.

Capture

돌아오는 길, 그리고 콜롬버스

돌아가는 길은 루트를 다르게 잡아봤다. Dothan을 거쳐 Columbus를 지나는 일정이다. 아이가 Columbus라는 지명을 반가워 한다. 학교에서 Columbus day의 유래를 배우면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대해 들었다고. 역사가 짧은 미국은 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그 날이 일종의 개천절인 셈이다. 내게는 별 의미가 있는 날은 아니지만, 노는 날이니 어쨌든 환영이다. 그 콜럼버스 덕분에 우리가 데스틴을 다녀올 수 있지 않았던가.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돌아가는 길이다. 가는 동안은 설래는 마음이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 반대로 집에 가는 길에는 그간 피로도 쌓인데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종종 마음이 무겁다.

탁트인 평야와 지평선을 보면서 잠깐 좋아했다가 금방 지루해졌다. 뒷자리에 앉은 딸아이는 하루 더 머물었으면 좋겠다고 칭얼대다가 잠이 든다.

아틀란타에 도착할 즈음에는 어둑어둑해졌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내리고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오니 침대가 참 반갑다.

<목차>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목화와 야자수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석양의 결혼식

Beignet

셋째날 점심은 seafood로 결정했다. 휴양지에서 먹는 외식은 비싸고 맛이 없기가 쉽지만 바닷가에서 seafood를 포기하자니 왠지 아쉬웠다. 가기로 한 곳은 이름만 들어도 냄새가 날 것 같은 Stinky’s라는 곳이었다.

다행히 냄새가 나는 곳은 아니었지만 서빙을 하는 금발의 여자가 피로에 찌들어 보였다. crab cake, grilled grouper, fried shrimp를 주문하는 동안 한번도 웃음을 짓지 않는다. 무표정한 그녀가 딱 한번 웃음을 지었는데, 우리가 beignet을 주문할 때였다. 그녀의 웃음은 ‘그래 촌놈들. 이제야 제대로 메뉴를 골랐군.’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images

(image source: flickr)

beignet은 New Orleans 음식인데, 쉽게 말하면 밀가루 덩어리를 도너츠 처럼 튀기고서 파우더 슈거를 입힌 디져트이다. 프랑스 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New Orleans가 프랑스 이주민과 관련이 깊은 도시라서 그렇다. 내가 느끼기에는 뭐든지 튀기고 달게 만들어서 몸에 나쁘게 하는 미국 스타일 음식일 뿐이었다. 뭐 경험삼아 먹어볼 만은 하다.

석양의 결혼식

숙소로 돌아오니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다. 오늘 이 호텔에서 7개의 결혼식이 있다고 한다. 호텔이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있는 것은 백사장 때문이다. 정확히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서 결혼식이 진행된다. 백사장에서 치루는 석양의 결혼식이라. 로맨틱하게 여겨질 법하긴 하다.

옆에서 힐끔 본 바로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결혼식이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모래 덩어리가 되기 쉽상이다. 하객들의 의자에도 모래가 가득하다. 그래서 인가 보다. 서약을 마친 후에 사진 몇장 찍고서 모두들 성급히 자리를 뜬다. 사진으로는 몹시 낭만적이다. 나중에 신랑신부가 앨범을 들춰보면 석양이 기억에 남을까 아니면 어설픔이 기억에 남을까.


  
(직찍)

아이폰 지문인증

해가 지고서 숙소로 들어왔다. 사흘째이니 그만큼 추억도 쌓였다. 아내와 나는 핸드폰에 모인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딴일을 하는 사이에 딸아이가 나의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삐죽거린다.

아이의 불만은 아이폰의 지문인식 잠금기능이었다. “불공평해. 엄마 핸드폰은 잠금 설정이 되어 있지 않은데, 아빠 핸드폰은 잠겨 있어. 그러면 엄마는 아빠 핸드폰을 볼 수 없고 아빠만 엄마 핸드폰을 쓸 수 있잖아.”

전형적인 딸내미 화법이다. 자기가 아빠 핸드폰을 쓸 수 없다는 불만을 돌려서 말하고 있다. 아이는 말을 트기 시작한 네다섯 살 때도 돌려 말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내가 초콜렛을 먹는데,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잊었다고 하자. 아이는 살며시 옆에 와서 귀에다가 입을 대고서 속삭인다. “나도 초콜렛 좋아하는데.”

나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특히 여자 사람 말의 미묘한 뉘앙스는 절대 알아채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딸아이가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 그래서 딸이 구사하는 여자 나라 언어를 독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여자나라 말 입문과정이라고 할까.

고민 끝에 아이도 아이폰 잠금해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설정 메뉴로 가서 지문 추가 등록 버튼을 눌렀다. 아이가 핸드폰에 엄지 손가락을 수차례 붙였다가 띠었다가를 반복했다.

‘Registered.’ 아이가 아이폰을 접수하는 순간이다. 딸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딸램은 테스트까지 해본다. 아이폰을 옆에 두었다가 자동으로 잠길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서 엄지를 척 올려 놓는다. 마지막으로 자기 지문이 통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깔깔 웃는다.

<목차>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목화와 야자수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해변

오전에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런 해수욕 이야기 이다. 햇살은 피부를 파고 들어 찌르는 듯 했다. 플로리다는 sunshine state가 아니던가. 더위에 약한 나는 파라솔 밑에서 숨어있어야 했다. 돗자리에 올라온 모래의 감각을 익숙하게 만드는데에는 적지 않는 무뎌짐이 필요했다. 무뎌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책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해변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적합하지 않은 사치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직찍)

불평을 많이 했는데, 사실 나쁘지는 않았다. 이를 테면 딸아이가 파도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이가 파도를 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해변에 앉아있다가 파도가 올때마다 깔깔 웃으며 파도에 몸을 맡긴다.

나 역시 조금씩 즐기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바닷물에 몸을 적시면 불편한 감각이 사라진다. 역시 몸을 담구어야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얀 모래사장과 바다를 보고서 불평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직찍)

Gator beach

플로리다 하면 주로 해변이 연상된다. 영화나 미드에 자주 나오는 마이애미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플로리다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대부분 늪이다. 플로리다의 반은 늪이라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늪은 악어의 공간이다. 현대인이 설마 야생악어와 마주칠 일이야 있을까 싶지만 미국처럼 땅이 넓다보면 별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플로리다서만 연평균 10회 가량의 악어 사고가 있다고 한다.

캡처

(Source: Statewide Nuisance Alligator Program)

야생에서 악어를 만나는 일을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데스틴에서는 유쾌하게 악어와 만나는 방법도 있다. 악어를 사육하는 곳에 가면 된다. 우리는 오후에 악어 농장을 찾아갔다.


(직찍)

보다시피 성인 악어는 아니고 아이 악어이다. 이곳에서는 악어에게 먹이도 줄 수 있고, 아기 악어를 들고서 사진도 찍을 수도 있다. 원한다면 만져볼 수도 있다. 나는 겁이 많은 딸아이가 무서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본인이 직접(!) 악어와 사진을 찍기를 청했다. 나중에는 새끼 악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진정으로 즐거워 하더라.

    
(직찍)

<목차>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

미국식 네거티브 선거

이번달 초 민주당 후보 1차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샌더스가 힐러리의 이메일 논란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I know it may not be good politics, but the American people are sick and tired of hearing about your damn emails.”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각오를 하고 말하건대, 미국인들은 그 놈의 이메일 얘기는 이제 지겨워한다.)

당시 나는 토론을 귀로 흘려 들으면서 딴 짓을 하고 있었는데 (페북, 트위터, 블로그 등등의 잉여질…) 깜짝 놀라서 아이폰을 떨어뜨렸다.

151013215526-bernie-sanders-democratic-debate-sick-of-hearing-about-hillary-clinton-emails-19-00005521-large-169

(image source: CNN)

멋있는 것 인정한다. 네거티브 전략을 쓰지 않겠다는 뚝심이 샌더스 답다. 그러나 본인도 말했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쫓아가는 입장에서는 네거티브 전략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게다가 샌더스는 지지율 상승이 정체되는 추세다. 물론 세상일이 계산 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 (바이든이 돌연 출마 선언을 한다거나…)

Capture

(source: Huffpost Pollster)

혹자는 (네거티브를 안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부러워하더라.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이런 일은 미국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2012년 미국대선. 당시 나는 미국 현지에서 롬니와 오바마 선거전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선거는 막판으로 갈 수록 치열해 졌다. 그런데 막판에 롬니에게 터진 치명적인 스캔들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47% 발언이다.

“오바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 같은 발언을 한 동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이런 호재를 놓칠 이유가 있을까. 티비에서는 네거티브 광고가 지겹도록 반복되었다. 47% 동영상이 계속 나왔고, 롬니 측에서는 질세라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면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다’라는 광고를 했다. 상당히 원색적이다. 물론 이런 광고를 선거 캠프에서 직접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각 후보 지지 단체의 이름으로 이뤄진다.

2000px-2012_Presidential_Election_by_County.svg

(2012 final presidential election results: source wikipedia)

단 특이한 점이 있다. 네거티브 광고는 주로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서 방영된다. 당시 내가 살았던 노스캐롤라이나*는 스윙스테이트로 들어갔기에 네거티브 광고가 주구장창 나왔던 것이다. 네거티브 전략은 확고한 지지층에는 별 영향이 없겠지만, 애매하게 관전하는 사람에게는 조금씩 효과를 보이는 확실한 전략이다.

승리가 확실한 지역의 광고는 다르다. 선거기간 중에 뉴저지를 갈일이 있었는데 (뉴저지는 민주당 텃밭이다.), 대부분의 광고는 점잖았다. 차분하게 정책을 선전하는 정도로 만족한다. 굳이 네거티브를 하면서 손을 더럽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의 특이한 대통령 선거 제도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대선은 알다시피 간접선거이다. 50개 주에서 각 주의 선거인단을 뽑고 그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다. 주마다 (2개주를 제외하고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인 선거제도이기 때문에 압승이냐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 이를테면 플로리다는 27명의 선거인단이 있는데, 10:17로 이기던지 1:26으로 이기던지 관계 없이 이기는 당이 27표를 획득한다.

어쨌든, 이번 선거도 여러모로 볼거리는 풍성하다. 선거권이 없는 나는 그저 남의 집안 싸움 구경하는 기분이다. 아참, 싸움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싸움이기도 하다.

*주: 당시 노스캐롤라이나는 크게 봐서 경합주에 들어 갔다. 그러나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서 오바마는 노스캐롤라이나를 포기하고 오하이오, 버지니아, 플로리다에 집중했다. 결론은 알다시피 압승 이었다.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몽고메리와 목화밭

2시간 반 정도 달렸나. 이제 제법 큰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몽고메리에 온 것이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나는 몽고메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Rosa Park가 떠오른다. 버스 보이콧 운동을 이끌었던 여성이다. 마틴 루터킹도 이곳에서 목회를 했었다지. 남부는 많은 지명이 흑인 민권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사는 조지아도 그러하고 알라바마도 흑인의 인구 비중이 많다. 알라바마와 조지아인구 30%는 흑인이다.

(직찍. 길위에 펼쳐진 알라바마의 목화밭)

고속도로에서 85번 국도로 접어 들자 간간히 목화밭이 보인다. 아직도 미국에서 목화를 키우는 구나. 10월 초까지는 목화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남부는 예로 부터 목화 농사의 중심지였다. 햇살이 강하고 땅이 비옥해서 목화가 좋아하는 환경이다. 나는 목화밭을 보면 일렬로 서서 목화를 따는 노예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헐리우드 영화가 만들어준 이미지일 것이다. (참고로 아래 사진은 노예가 아니고, 죄수들이다.)

Parchman_prison_convict_labor_1911

(image source: wikipedia)

지금은 당연히 목화를 손으로 재배하지 않는다. 경비행기로 농약을 주고 (돌아 오는 길에는 경비행기가 하늘에서 농약을 뿌리는 것도 보았다.), 트랙터로 추수하고서, 방직기로 솜을 뽑아낸다. 모든 과정은 기계화되어 있고, 규모의 경제가 있지 않고서는 이윤을 남기기 힘들다. 여전히 미국은 목화를 생산하고 있지만, 인건비 때문인지, 지금에 와서 목화의 가장 큰 생산국가는 중국과 인도이다.

Capture

(wikipedia 재인용)

남부의 문화

남부는 남부만의 색이 있다. 남부는 초기 이민자들의 문화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19세기 남북전쟁 이전까지 남부 부자들은 북부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르며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했다. 청교도, 도덕주의, 가족은 남부의 중심가치이다.

Vivien_Leigh_as_Scarlett_OHara_in_Gone_With_the_Wind_trailer

(image source: wikimedia)

남부 사람들의 시각은 소설 (또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잘 드러나 있다. 한 장면만 예를 들어보자. 스칼렛의 두번째 남편은 프랭크라는 제제소 주인이다. 스칼렛이 흑인들에게 성추행을 당하는데, 프랭크는 도덕적인 응징으로 KKK단과 함께 복수를 한다. 마거렛 미첼이 가진 가치관을 평범한, 그리고 선량한(?) 남부 백인의 세계관으로 본다면 당시 그들은 KKK를 테러집단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문화적 순결함을 지키는 모임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시대는 변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남부는 여전히 도덕적인 가치가 강조되는 곳이다. 때로 도덕적인 순결의식은 인종차별의 모습, 또는 강한 보수성향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남부에서 도덕과 보수 성향이 분리된 가치가 아닌 것이다.

Florida_(Chile)

(image source: wikipedia)

플로리다, 히스패닉, 그리고 쿠바계 미국인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플로리다에 들어왔다. ‘Welcome to Florida’ 표지판 옆에는 야자수가 심겨져 있다. 제일 먼저 풍경의 변화를 느낀다. 목화밭이 야자수로 바뀌고, 활엽수림이 늪지대로 변한다.

플로리다와 알라바마의 차이는 식생만이 아니다. 문화도 다르다. 우선 건물이 그러하다. 붉은색 지붕과 분홍색 벽은 스페인의 영향 때문이다. 플로리다는 원래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발견’해서 정착했던 땅이기도 하다.

인종 구성도 다르다. 조지아와 알라바마가 흑인들의 주라면 이곳은 히스패닉의 주다. 히스패닉 액센트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조지아에서 흑인 액센트 (Ebonics)를 듣는 것과 비슷한 빈도이다. 수치상으로도 드러나는데, 조지아에서 히스패닉은 9%인 반면에 플로리다는 25%를 차지한다.

젭 부시와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에 기반을 둔 정치인이 히스패닉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젭 부시의 부인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다. 공화당의 젊은 신성 마르코 루비오는 쿠바계 미국인이다. 여담이지만, (선거 시즌이니까 덧붙이자면) 마르코 루비오는 젭 부시 똘마니 정도로 여겨졌는데, 요즈음 젭 부시의 인기를 넘어서고 있다. 운이 따라준다면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될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플로리다는 쿠바계 미국인이 가득하다. (미국내 히스패닉의 대다수는 멕시코계인 것과 달리.) 쿠바계를 생각하면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 갈색 머리, 넓은 이마, 넙대대한 얼굴이 떠오른다. 2011년 겨울, 플로리다 팜 비치에 갔을 적에 식당의 서버의 얼굴이 전형적인 쿠바계의 얼굴이었다. 비슷한 느낌의 얼굴을 피델 카스트로가, 그리고 마르코 루비오가 가지고 있다. 체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왠지 모르게 쿠바인 얼굴을 하고 있다. 쿠바에 머무르면서 얼굴도 쿠바 사람처럼 변한 걸까.

Cuban_American_people

(Cuban American: source wikipedia)

Fidel_Castro      download

(카스트로(좌), 체게바라(우): source wikipedia)

<목차>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1) : 로드트립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데스틴 여행기 – 둘째날 : 해변과 악어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

데스틴 여행기 – 마지막날 : 돌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