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배송에 대해

lead_large

(image source: the Atlantic 해당 기사)

일단 미국부터.

National Retail Federation 의 리포트에 따르면 (링크) 85%의 온라인 구매자가 무료 배송을 구매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고 한다. 나만 생각해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 유료 배송인 경우 사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경영이나 미시 경제를 배운 사람에게는 공짜는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면 기업은 어떤 식으로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할까.

우선 드는 생각은 서비스 차원에서 무료 배송을 제공한다는 논리이다. 온라인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뭐라도 하나 더 얹어주어야 한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온라인 유통사가 무료 배송을 제공하는 시장에서는 무료 배송이 별다른 비교 우위를 주지 못한다.

다음은 제품 가격에 배송비가 포함 되어 있다는 논리이다. 이 또한 합리적인 가정이다. 그러나 역시 비교 우위의 관점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온라인 시장은 가격 비교가 쉬운 곳이다.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무료배송 최소 금액 기준이다. 소비자는 무료 배송 기준을 채우기 위해 좀더 많이 살 용의가 있다. 이는 게임 이론으로 명쾌하게 설명이 된다. leader-follower game으로 모델을 설정하고 기업을 leader로 소비자를 follower로 보면 된다. 이에 관련한 페이퍼는 링크를 참조하시길.

게임이론까지 가지 않아도 누구나 무료 배송을 위해 하나쯤 더 사본 경험은 있지 않은가? 사는 사람은 필요해서 더 산다고 생각하지만, 기업 마케팅 쪽에서 보면 잠재 수요를 끌어내는 전략이다. 맥도날드에서 세트 메뉴 할인을 해주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금액 할인이 아니라 무료 배송을 해줄 뿐이다.

최근 미국회사들은 이 무료 배송 기준액을 올리는 추세이다. (관련 기사: Free Shipping Is Going to Cost You More, WSJ 2014년 10월 22일자) 기업입장에서 배송 비용은 공짜가 아니지만, 소비자는 유료배송을 기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략을 선호할 수 밖에.

물론 배송 관련 전략은 기업마다 달라서 하나의 추세로 개별 기업의 전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아마존 같은 경우는 아주 정교한 모델을 가지고 있는데, 100불 짜리 아마존 프라임 회원을 모집하여 코스트코 식으로 회원 가입을 유도한다. 아마존 프라임은 빠른 배송이 무료이고, 그외 다른 여러가지 혜택(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VOD 서비스라던지…)과 이미 지불한 가입비 때문에 회원들의 충성도는 더 높아진다.

(수요/공급 곡선을 그려보면 코스트코식 회원제 모델에서는 제품의 마진을 최소화하고 회원을 늘이고, consumer surplus를 줄이는 게 기업에게 이득이다. 이렇게 되면 개별 상품의 마진 대신 회원가입비가 기업의 주된 이윤이 된다. 설명이 복잡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한발 더 나아가서 프라임 회원이 느린 배송을 선택하면 (기업은 배송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고객에게 크레딧/포인트를 주어서 영화 스트리밍을 보는 데에 쓸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는 조금 복잡하다. 미국에 비해 무료 배송 기준이 현저히 낮다. 이게 가능한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배송료가 워낙 싸기 때문이다.

배송료가 왜 싼가에 까지 깊이 들어가면 너무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일단 미국은 나라가 크기에 택배 산업에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총알 배송을 하려면 비행기가 필요하고 (UPS와 페덱스는 심지어 자체 물류 전용 공항을 운영한다.) 복잡한 물류 시스템이 하드웨어, 소프트 웨어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거칠게 말해서 택배업 = 인건비이다. 그리고 그 인건비가 (선진국 중에서) 가장 싼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 물좀 먹어봤던) 소비자들이 싸고 편리하다고 느끼는 대다수 서비스의 기반이 이 싼 인건비 때문에 가능하다. (대중교통, 택배, 이미용, 배달 서비스 등등등…)

참고 자료: There’s No Such Thing as Free Shipping (The Atlantic 2014년 11월 30일자)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다큐멘터리)

mezzanine_312.jpg.crop.480x270

(image: PBS 해당 다큐멘터리)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TV 다큐멘터리 (2015년 3월 방영작).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이다. 동명의 책을 토대로 제작 되었다. <Civil War>의 다큐멘터리 감독 켄 번즈의 작품이다.

암과 인류의 사투를 그린 수작. 2시간씩 3부작으로 구성되어있다. 다큐멘터리임에도 2시간이 어떻게 지나는 줄 모를 만큼 흥미 진진하다. 보다보면 의학의 발전에 대한 경의를 느끼게 되고,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 산다면 PBS라서 무료로 볼 수 있고,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저작권 때문에 미국 밖에서는 볼 수 없고, DVD로는 구할 수 있다.

PBS 링크: http://www.pbs.org/show/story-cancer-emperor-all-maladies/

책은 이미 한국에 번역되어 있으니 쉽게 구할 수 있다. (링크) 참고로 책은 2011년 퓰리쳐상 논픽션 부분 수상작이고,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DVD 링크: http://www.amazon.com/Ken-Burns-Cancer-Emperor-Blu-ray/dp/B00R041FIA

남수단 내전과 이산가족 이야기

2015 남북 이산가족 상봉

올 가을, 한국에서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새색시로 헤어져 65년 만에 신랑을 만난 이순규 할머니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의 하얀 머리를 쓰다듬는 신랑의 손길을 보고서 ‘부부가 무엇인가’를 한참 생각했더랬다.

영상 링크: https://www.facebook.com/yonhapvideo/videos/1514656305513232/

(출처: 연합뉴스 통통영상 페북 페이지)

남수단의 이산가족 이야기

어제 NPR에서 남수단 내전과 이산가족 뉴스를 들었다.

They Haven’t Spoken To Family In Years. Now They Get A 3-Minute Call (NPR, 12월 1일자)

남수단은 2013년 12월 내전이 발발했고, 올해 8월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내전이 으레 그러하듯 잔인함이 극에 달한 전쟁이었고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전쟁 중에 황망하게 헤어진 사람들은 연락할 길이 없다.

적십자사가 그들을 위성 전화로 연결해 주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분이다.

Nyakureht Banang Tier, 40 years old from Akobo Nyakureht was calling his son, who was in Juba when the Civil War started. “I just wanted to tell him we are ok

Nyakureht Banang Tier, 40 years old from Akobo Nyakureht was calling his son, who was in Juba when the Civil War started. “I just wanted to tell him we are ok”

(image source: 해당 기사)

한 가족 이야기를 옮긴다. Chan Majok(32세)씨는 2년 간 12살난 딸과 연락을 못했다. 적십자사 책자에서 그녀는 남동생의 사진을 발견한다. 남동생은 현재 딸의 보호자이다. 한달여간 조율을 거쳐 그녀는 남동생과 통화에 성공한다. 두번에 걸친 연결 시도. 간신히 연결된 통화는 아쉽게도 잡음이 심하다. 게다가 3분의 제한시간. 그 3분을 잘 관리 하지 못하여 시간을 넘긴 Majok씨는 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남수단 내전 이야기

원래 수단은 이집트와 에디오피아 사이에 위치한 국가였다. 이 지역은 종교/부족/원유로 인해 분쟁이 계속 되었는데, 결국 2013년 북수단(이슬람)과 남수단(기독교)으로 갈라서게 된다.

캡처

(image source: google map)

이어서 남수단은 부족 갈등으로 인한 내전에 돌입한다. 누에르족 출신인 부통령이 둥카족 출신 대통령에게 쿠테타를 시도한 것이다. 이 쿠테타가 내전이 되었다. 여기에 기존의 군벌/종교/자원 문제가 얽혔다. 기독교는 또 캐톨릭/성공회/개신교로 갈린다. 남수단 내전에서는 식인 행위에 이르는 잔혹한 보복까지 있었다.

South Sudan map

(image source: Madote)

고작 60여년 전에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유사하게 겪고 있는 남수단의 이산가족 이야기를 듣고서 마음이 동해 정리해 둔다.

지난주 뉴스에 대한 생각 정리 – 프란치스코 교황 방미, 폭스바겐 파문

프란치스코 교황 방미

지난주 미국 언론은 교황의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했다. 시진핑의 방미, 아이폰 6S 출시도 묻혔다. 교황의 모자 (주케토)를 받고서 이베이에 경매를 내놓은 사람, 교황의 의전차 피아트, 교황의 식사 메뉴 소식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마치 인기 절정의 아이돌을 보는 듯 했다.

12억 카톨릭 인구의 심장인 바티칸 시티. 그중에서도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거처와 집무실은 20평 남짓하다. Domus Sanctae Marthae (Santa Martha guesthouse).  게스트 하우스였던 이 곳은 프란치스코에 의해 집무실로 개조되었다. (링크)

Papa_Francesco_entra_nella_Domus_Sanctae_Marthae

(Pope Francis enters Domus Sanctae Marthae: Source wikipedia)

이 조그마한 공간에서 교황은 교회의 개혁에 대부분의 시간을 들이는 듯 하다. 아마도 교황의 주된 관심사는 전임 베네딕토 때부터 불거져 나온 교회 내부의 스캔들이 아닐까. 공교롭게도 베네딕토는 섹스 스캔들이 불거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임을 발표했다. 재정적인 잡음도 안팎으로 들리는 바이다.

실천가의 면모를 풍기는 프란체스코와 달리 베네딕토는 신학자의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근엄하고 엄숙한 독일인 신학자. 어거스틴 신학을 전공했던 독일인 요제프(베네딕토의 세속명)는 공부말고 다른 면으로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고. 그다지 인기는 없었지만, 조용히 개혁의 토대를 만드는 사람 같은 느낌이다.

이번주 미국 뉴스를 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쩌면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 같은 분이 아닐까 싶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손가락만 보고 있다.

관련 해서 볼만한 기사: Holy Order (New Yorker 9월 14일자)

폭스바겐 파문

폭스바겐 파문은 조금 충격이었다. 독일회사는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오염물질 배기량을 속이는 프로그램을 설치했다니. 이에 관련해 뉴욕타임즈에 읽어볼만한 기사가 있어서 공유한다.

As Volkswagen Pushed to Be No. 1, Ambitions Fueled a Scandal (NYT 9월 26일자)

이 기사에 따르면, 첫째, 폭스바겐은 과도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10년 내에 미국 판매를 3배로 늘려 도요타를 추월한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둘째,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폭스바겐의 전략은 디젤차에 사활을 거는 것이었다.

도요타는 이미 프리우스를 통해 하이브리드 차 시장에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엔진의 성능. 폭스바겐이 선택한 디젤은 성능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연비를 보여준다. 다만 오염 물질 배출이 문제였는데, 폭스바겐은 클린 디젤이라는 기술로 이를 극복했다고 공언해 왔었다.

스캔들로 폭스바겐은 모든 신뢰를 잃었다.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폭스바겐 뿐 아니라 디젤엔진 자체에 대한 신뢰도 사라진 것 같다.

메르켈의 강단

아내가 메르켈 총리의 연설을 듣고서 감동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독일어를 모르는 내게 아내가 설명을 해주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 때문에,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면, 이건 내 나라 독일이 아니다.”

난민 문제에 대해 메르켈은 일관적으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에 대해 독일 안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예전에 포스팅했지만, 나는 아무리 메르켈이라도 난민 문제를 부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정치적인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강단이 존경스럽다. 독일에 대한 자부심, 글로벌 리더십,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merkel-faymann-fluechtlinge-oesterreich-100-_v-img__16__9__m_-4423061158a17f4152aef84861ed0243214ae6e7

(image source: http://www.br.de)

동영상 링크 (페이스북)

유럽 난민 이슈와 나

유럽 난민 이슈를 정리해봤다. 오류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 부탁한다.

생겐 조약 (Schengen Agreement)과 entry countries

-1x-1

(image source: Bloomberg)

한국사람이 처음 유럽여행을 하면 신기한게 하나있다. 국경을 넘을때 아무도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95년 발효된 생겐 조약 때문이다. 생겐 조약 이후 26개의 유럽 국가들은 국경을 걷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유럽과 비유럽의 경계선에 있는 나라들의 국경이 실질적인 국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헝가리가 이에 해당한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계속 심각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기에 유럽의 정부들은 오랜 시간 묵살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그리스와 이태리를 통했던 해로가 주요 루트였다면, 최근에 헝가리를 통하는 육로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Capture

Capture

Capture

(image source: FT)

문제는 헝가리의 경우는 난민을 받아들인 역사도 없고 (서유럽에 비하면)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난민들도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또는 영국으로 가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또한 EU는 처음 난민 신청을 한 나라의 난민을 인정하기 때문에 헝가리 같은 경우는 난민을 방치하고 그대로 독일로 실어보내는 일이 최근에 발생했다. (역사 때문인지 독일은 난민에 전향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난민들은 심지어 독일 총리를 mama Merkel 이라고 부른다고.) 이 뉴스는 현재 진행형인데, 9월 4일 오늘자 뉴스에 의하면 열차 이용이 어려워진 시리아 난민들이 독일까지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Capture

(image source: france24)

이런 와중에 숨진 세살 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경제/정치 공동체 유럽

사진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잠깐 EU의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생겐 조약은 EU에서 단일 시장을 구현하기 위한 합의의 일부분이다. 같은 화폐를 쓰는 단일 시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네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1. 재화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goods)
  2. 자본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capital)
  3. 서비스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services)
  4. 거주이전 (또는 노동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persons)

생겐 조약이 발효된 근간에는 네번째 자유 즉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난민 사태는 EU의 근간을 흔드는 커다란 위협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리스 사태 보다 더 시급한 위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참고로 네가지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사태는 두번째 자유, 즉 자본 이동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다.

EU가 출범 했을 당시 유럽은 일단 화폐 부터 통합하고, 나머지는 차례로 통합해 가는 방향을 선택 했다. 그런데, 이 나머지 통합이라는게 갈길이 아직 멀어보인다. 그나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게, 재화이동의 자유 정도이다. 이는 지금도 Euro의 근본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유럽의 변방 그리스

어찌 보면 유럽 통합은 도달하기 너무 어려운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올해의 큰 이슈였던 그리스 사태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금융으로 드러난 문제와 별개로 그리스가 (서)유럽과 얼마나 이질감이 있는 국가 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스는 우리에게 서양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반짝이는 문화를 꽃피웠을 뿐이다. 비잔틴 제국의 한 지역으로 1000년을 존재했고, 이후는 오스만 제국의 일원으로 400년을 살았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망해갈 때서야 자신들의 조상의 찬란한 문명을 기억해 내었고, 발칸반도의 다른 나라와 함께, 민족주의의 바람을 타고서, 열강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스 정교 기반에다가 오스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리스는 어찌 보면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유럽의 경계로 존재하고 있다.

현대의 그리스는 EU에서 쫓겨 날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중동/아프리카/아시아의 난민들이 들어오는 entry country이니 그 역사가 참 애처럽게 느껴진다. 그리스에 더 관심 있는 분들은 블로거 Santacroce님의 포스트를 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스 비극1: 그리스인은 유럽인일까?)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그리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는 유럽 난민 사태가 유럽인의 정체성의 위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이 어디까지 유럽이라고 선을 그을 것인가,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함께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물론 이전에도 프랑스가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받아 들이거나, 핀란드가 소말리아전쟁 난민을 받아들인 예가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생겐 조약과 EU의 통합 덕택(?)에 지금의 난민들은 유럽 안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유럽의 정체성에 위협을 주고 있다.

아일란과 유럽의 대응

다시 유럽 난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아이란의 사진은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을 테이블로 불러 들였다. 지금까지 난민문제에 상당히 열려 있던 독일을 포함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영국도 모른척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Final_decisions_on_(non-EU)_asylum_applications,_2014_(number,_rounded_figures)_YB15_IV

Final decisions on asylum applications, 2014 (source: eurostat)

사실 유럽이 얼마만큼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조금 의문이다.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이런 문제가 진작에 일어나지 않았을 테다. 예를 들어 독일 망명 신청자는 30만에 달하는 데 이는 독일 인구의 0.4%에 해당한다. 민족주의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와중에 유럽이 이를 소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제아무리 마마 메르켈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인 (시인 김종삼)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나와 관련된 주제가 아니면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정보전달이 내가 블로그를 하는 주된 목적은 아니다. 몇번 그런 포스트를 한일이 있지만, 나중에는 쓸데 없는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능력도 부족하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섣불리 아는 척 하는 일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좋아하는 시 때문이다. 아래 시는 읽을 때에 천천히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읽어야 하는 시이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인은 47년 자신이 월남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기교 없이 쓰여진 이 시가 읽고나면 큰 파장을 남긴다.

어찌보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리아/아프간/이라크/파키스탄의 사람들이지만, 나의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파하는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보면서 내 생각도 정리해보았다. (아참 이 포스팅의 많은 부분은 Santacroce님께 빚져 있는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복면가왕과 편견 그리고 직관에 대하여

딸아이랑 복면가왕을 즐겨본다.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가치는 ‘편견을 깬다.’이다. 평범한 막귀인 내가 찍는 승자는 판정단과 다를 때도 많다. 가면을 벗은 탈락자들은 내게 의외의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사실 가수의 이름값을 인지하고서 노래를 즐기는 것도 노래를 감상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영화 평론의 평점 같은 것을 사람들이 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편견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빠른 판단을 필요로 할 때, 이성보다 더 빨리 움직여서 생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직감은 편견의 (긍정적인 방향의) 동의어이다. 사자가 나타났을 때는 생각하기 전에 움직여서 자리를 피해야 한다. 사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진다거나, 사자가 배고픈지 여부를 관찰하는 것은 어리섟은 일이다.

재미있는 article이 있어서 공유한다. Article에서는 몇가지 사례가 나온다. 포도주 블라인드 테스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클래식 음악 오디션 실험도 나온다.

클래식 음악 오디션 실험 사례가 상당히 재미있다. 복면가왕과 비슷한 컨셉의 실험이다. 실제 클래식 오디션의 최종 3명의 비디오를 보여주고 평가를 내리게 한다. 첫번째 그룹은 소리만 들려주었고, 두번째 그룹은 소리를 포함한 비디오를, 세번째 그룹은 소리를 제거하고 비디오 만 보여주었다.

어떤 그룹이 실제의 오디션 결과와 일치하는 판단을 보여주었을까? 흥미롭게도 소리를 제거한 비디오 만 보여준 그룹이다. 이 실험은 전문가 집단과 일반인에게 같이 실시 되었는데, 둘다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캡처

캡처1

기사 전문: The Science of Snobbery: How We’re Duped Into Thinking Fancy Things Are Better (The Atlantic, 2013년 9월 11일자)

캡처

+ 덧: 기사의 많은 부분은 노벨상 수상자 다니엘 카네만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 기초한 것 같다. 아무래도 이 분야의 선구자인 카네만을 벗어나기는 힘든 것 같다.

독일 경제와 미니잡

일전에 주요국가 부동산 가격 추세 그래프를 올린 적이 있었더랬다. (한국을 제외하고) 인상적이 었던것은 독일이었다. 독일의 부동산은 몹시 안정되어 있었다. 그 후에 몇가지 자료를 찾아보고서 독일인은 전통적으로 집을 소유하기 보다는 임대를 하고, 저축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Capture

(그림: 예전에 올렸던 각국 부동산 가격 추세 그래프)

독일 경제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존경하는 블로거 Santacroce 님께서 독일 관련 자료들을 잘 정리해 주셔서 공유한다.

고통을 견딘 독일인들과 ‘미니잡’ 그리고 독일 경제

개인적으로 되새기는 의미에서 정리하자면

  • 전통적으로 독일인은 주택을 임대하며 안정된 사회보장제도 하에서 저축을 했고, 정부는 이 돈으로 재투자를 해왔음.
  • 그러나 이 과정에서 평범한 독일인은 경제적인 혜택을 못받았는데 이유는 1) 부동산 자산이 적어 집값상승의 혜택을 못봤음. 2) 임금 상승률은 유럽 국가 중에 가장 낮은 수준
  • 독일이 유럽의 환자로 불리던 시절 독일 경제는 동독재건으로 역량을 다 쏟아 부었고, 독일인들은 큰 부담을 지고 버텨왔음.
  • 예를 들자면, 당시 암시장에서 1:4의 비율로 거래되던 동독마르크를 1:1로 교환을 해주었는데, 이렇게 되니까 당장 동독 사람들은 거져 돈을 벌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서독 사람들의 돈을 공짜로 준셈이고, 높아진 임금으로 인해 동독 기업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 당시 노동 시장 유연화를 위해 도입된 조치 중에 하나가 미니 잡이라는 것이다. 이는 쉽게 말하면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인데, 현재 독일의 일자리의 20%가 미니잡이다.
  • 반면, 기업들은 유로화와 (실질적인) 임금하락으로 호황을 누림.
  • 의외로 독일의 학력별 임금차는 높은 편. 거의 무상에 가까운 대학 등록금을 생각하면 중산층에 세금을 몰아주는 역진성을 보이기도.
  • 최근 독일도 점차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

아참 글고 보니 작년에 내가 독일 경제에 대해 끄적여둔 글도 있다. 독일 경제에 대한 내 의견은 그때와 동일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깨진 유리창의 오류)

오늘은 쓰다 보니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다. 생각해보니 페친 중에 경제학자와 박사님까지 계신다. 경제학이라곤 교양 수준 밖에 아는 바가 없는데, 몹시 부끄럽다. 그래도 메모 차원에서 포스팅한다.

영화 제5원소

1997년 여름. 영화 제5원소가 개봉했다. 릭베송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영화감독이었고, 밀라 요보비치의 가슴붕대 복장은 97년 여름 최고 이슈 중에 하나였다.

MV5BMTkzOTkwNTI4N15BMl5BanBnXkFtZTYwMDIzNzI5._V1_SX640_SY720_

오~ 브루스 윌리스. 저때만해도 젊었구나.

영화에서 게리 올드만은 매력적인 악역을 연기한다. 극중에 자신이 왜 파괴, 즉범죄를 일으키는가에 대해 궤변을 늘어 놓는 장면이 있다.

한글 자막 버전 영상을 못구했다. 영문 자막을 올리고 내가 간단하게 번역해 봤다.

Oh, Father, you’re so wrong. Let me explain. Life, which you so nobly serve, comes from destruction, disorder and chaos. Take this empty glass. Here it is, peaceful, serene and boring. But if it is destroyed… Look at all these little things. So busy now. Notice how each one is useful. What a lovely ballet ensues, so full of form and color. Now, think about all those people that created them. Technicians, engineers, hundreds of people who’ll be able to feed their children tonight so those children can grow up big and strong and have little teeny weeny children of their own, and so on and so forth. Thus, adding to the great chain… of life. You see, Father, by creating a little destruction, I’m actually encouraging life. In reality, you and I are in the same business. Cheers.

(내맘대로 번역)

신부님. 오해가 있으십니다. 제가 설명해 드리죠. 당신은 생명을 섬기지요. 그런데 당신이 섬기는 그 생명이라는 것은 파괴와 혼돈에서 생겨납니다. 여기 빈 유리잔을 볼까요? 평온하고, 고요하면서, 지겹지요. 그런데 만약에 이게 깨어진다면… [유리잔을 깨뜨리고, 로봇들이 청소를 한다.] 오  ~ 이 작은 로봇들을 보시지요. 바쁘게 움직이죠. 그럼, 요 이쁜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생각해 볼까요? 기술자와 엔지니어들… 오늘밤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아이들을 먹이겠죠. 그래서 그 아이들은 자라고 건강해지고, 또 요만한 새끼들을 낳겠죠. 걔들은 또 아이를 낳고 낳고 또 낳고… 그래서 생명이 계속되어 가는 겁니다. 신부님. 제가 아주 작은 파괴를 했는데, 그로인해 생명이 계속되어 갑니다. 사실은 신부님과 저는 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 겁니다. 건배.

(잡설: 차승원은 한동안 한국의 게리 올드먼이라고 불리웠는데, 대사를 번역해보니 차승원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 (Broken window fallacy)

어이가 없다. 그런데 게리 올드만의 궤변은 릭베송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다.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로 간다. 프랑스의 사상가 프레드릭 바스티아(1801-1850)가 그의 에세이 ‘what is seen and what is not seen (Ce qu’on voit et ce qu’on ne voit pas)’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책의 한 챕터에 나와 있다.)

images

어느 동네, 한 아이가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이 깨진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유리창이 깨진 게 잘된 일이라고 말한다. 가게의 주인은 그로 인해서 유리창을 새로 사게 될 것이고, 유리 장사는 돈을 벌게된다. 그리고 유리 가게 주인은 그 돈으로 구두나 옷을 산다. 그러면 그렇게 창출된 부를 통해 마을 경제는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게 타당한 이야기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그 가게 주인은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유리를 사는 대신에 구두나 옷을 샀을 것이다. 그 마을 전체를 본다면 유리창이 부서졌을 뿐이다. 유리가게 아저씨만 돈을 벌었다. 바스티아는 이러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담 1: 깨진 유리창의 오류 적용

바스티아는 19세기의 자유주의자 중에 하나이다. 오스트리아 학파에 영향을 끼친 사람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자유주의 자체에는 가끔 공감할 때가 있지만, 자유주의자를 인용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 그런지 깨진 유리창 오류를 예로 들어 보자.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정책의 긍정적인 부분만 집중하고 홍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손실을 무시하게 되면 사회는 이 비용을 결국 떠앉게 된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의 핵심은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스티아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보는 것을 상대방이 보지 못한다며 의견이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사안에서 진보적인 면만 보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보수적인 면만을 본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편향된 것을 보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를 예를 들어 상대방을 비판 하는 일은 마치 소크라테스의 ‘너의 무지를 알라’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아니지만…)를 들어서 상대가 무지하다고 공격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게 얼마나 넌센스인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여담2: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떠한 면에서 상극이다. 바스티아와 사회주의자인 프루동의 설전은 나름 유명한데, 프루동은 바스티아의 사상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나보다. 문자 그대로 이성을 잃고 그를 비판한다. 프루동이 적은 바스티아에 대한 평을 그대로 옮긴다.

Portrait_of_Pierre_Joseph_Proudhon_1865

(사진: 프로동 초상화, 출처 위키피디아)

“Your intelligence is asleep, or rather it has never been awake…You are a man for whom logic does not exist…You do not hear anything, you do not understand anything…Your are without philosophy, without science, without humanity…Your ability to reason, like your ability to pay attention and make comparisons is zero…Scientifically, Mr. Bastiat, you are a dead man.”

블로그의 인기글과 추천글

200번째 포스팅을 기념하여, 인기글과 추천글을 정리해봤다. 일년간 글이 쌓이면서 꽤 두서가 없어졌다. 이곳을 효율적으로 산책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Bluff_signpost

(image source: wikimedia)

100번째 포스팅 중간결산 때에 누적조회수가 2,500이었는데 지금은 9,000이 조금 넘는다. 약 2.5배 정도 트래픽이 증가한 셈이다.

조회수 상위 포스트

1위: 주요국가 부동산 가격 추세 그래프

2위: 엑셀 Y축 물결무늬 차트 그리기

3위: 1st work anniversary

4위: 한국사람들은 왜 외국에서 서로 피할까?

5위: 일본의 의리, 한국의 정, 그리고 미국인의 인간관계

6위: 아나키스트: 천황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7위: 미국의 중산층 그리고 맞벌이 부부의 삶

8위: 한국 방문중에 느낀 점들

9위: My top 10 influential books

10위: 페르시아의 유대인 말살 정책과 에스더

주제별 추천글

블로그의 목적과 쓰기/읽기에 관하여: About, 온라인에서 나를 얼마나 드러내는 것이 좋을까백면서생(白面書生): 오직 글만 읽고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말과 글, 고전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가?, 너무 잦은 포스팅에 대해서

기독교 신앙에 관하여: 내가 믿는 기독교 연재, 다름과 틀림 / 같음과 옳음 (로마서 14장 22절),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장자가 말한 심재(心齋) 그리고 바울이 말한 자기 비움과 자족

사회 이슈들: 미국과 한국의 가계부채우리나라 지역별 부동산 경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왜 비행기에서 신분 격차를 새삼 느낄까?대학의 미래 – 오바마 대통령의 커뮤니티 컬리지 무료화 계획에 대한 잡담Don’t Send Your Kid to the Ivy League을 읽고아이 교육에 대해 올바로 질문하는 법That Old-time Economics by Paul Krugman무한경쟁의 삶의 방식은 우리를 어떻게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공부잘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의미일까시대 정신이란?: 딸깍발이와 ‘잘살아보세’ 정신을 생각하며, 단식의 의미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불평등의 문제와 빈곤의 문제볼티모어 폭동에 대해 동료와 수다를 떨다가

영어: 발음/관사/전치사 이야기두가지 언어 사용이 만드는 번역체 말투들 – 우리집 사례영어공부 또는 뭉뚱그려 공부에 대한 이야기 시리즈

딸아이와의 일상: 딸아이와 유치원 잡담(한국식과 미국식??), 딸들의 잔소리, 맥도날드의 기억들, 딸내미한테 한수 배우다,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Taylor Swift와 딸내미, 텍스트의 눈송이로 걸어들어가는 아이, 카풀을 하다가 있었던 일, Collaboration with my daughter, 딸의 걱정 – 사랑에 대한 갈망, 딸과의 대화 모음 (집안일/성경/반대말에 대한 잡담), 집밖 풍경 스케치와 딸애 그림, 생일 즈음에, 일곱살 딸에게 시간이란, 벌레, 그리고 두려움에 대처하는 자세, 딸과의 통화, 딸아이의 눈물

기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번역가, 편집자, 그리고 지적 노동, 치킨이 힐링푸드?, 장거리 비행을 대비하는 자세, 19세기의 여성과 제인에어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공줄타기와 서편제), 회색분자와 에라스무스, B형 남자의 불편함, 기사도와 여인의 마음, 한국에서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고?, 나이들면서 잠이 더 많아진다, 뒷마당이 있으면 나무를 심어볼 텐데, 조언자를 찾고 있는 당신을 위하여, 유대인과 독일의 반성Feedly 사용기 (RSS Reader), 애틀란타 꽃가루 공습

2015년 6월 5일자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