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테일러리즘 (Digital Taylorism)

이코노미스트가 테크 기업들의 직장 문화에 대해 간단한 논평남겼다.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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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Taylorism 2015년 9월 12일자

지난달 뉴욕 타임즈에서 아마존의 직장 문화를 1면에 다룬 적이 있는데 (NYT 기사 링크), 이게 꽤 이슈가 되었고 (관련 포스트), 이코노미스트도 한마디 보태는 모양이다.

기사는 테일러리즘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아마존과 같은 테크 기업들이 성과를 바탕으로 직원들을 ‘번아웃’시키는 모습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주제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아마존 사례를 Digital Taylorism과 바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기자가 정리한 Taylorism은 세가지 정도이다.  a) break complex jobs down into simple ones (복잡한 일을 단위로 쪼개기); b) measure everything that workers do (모든 작업을 측정하기) ; and c) link pay to performance, giving bonuses to high-achievers and sacking sluggards (성과와 보상을 연동하기). 기사는 주로 세번째, 즉 성과와 보상 측면에 집중한다.

내가 알기로 Taylorism은 성과와 보상이 핵심은 아니었는데, 나의 이해와 기사의 내용이 핀트가 조금 안맞는다. 시간이 나면 주말에 Taylorism 관련 자료를 좀더 찾아보고 확인해봐야 겠다.

작년에 (Digital Taylor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주제로 포스팅을 했었다. 뭐 결론이 나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기승전’딸램’으로 끝나는 포스트 였다.

메르켈의 강단

아내가 메르켈 총리의 연설을 듣고서 감동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독일어를 모르는 내게 아내가 설명을 해주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 때문에,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면, 이건 내 나라 독일이 아니다.”

난민 문제에 대해 메르켈은 일관적으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에 대해 독일 안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예전에 포스팅했지만, 나는 아무리 메르켈이라도 난민 문제를 부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정치적인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강단이 존경스럽다. 독일에 대한 자부심, 글로벌 리더십,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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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http://www.br.de)

동영상 링크 (페이스북)

참나무를 훑고 가는 바람소리

‘핑 핑 피르르’ 누군가의 집에서 풍경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창밖 참나무를 훑고 지난다. 쏴아 소리가 난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올 겨울에 5층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파트는 20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참나무로 둘러쌓여있다. 아내는 나무가 햇볕을 가리는게 아닐까 걱정을 했다. 나는 어차피 남향집이 아닌 다음에야 큰 상관이 없다고 했다.

봄이 되자 나무가지에 잎이 돋기 시작했다. 거실의 창은 동북쪽을 향하고 있는 데,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잠깐 볕이 든다. 해가 뜰 무렵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에는 듬성듬성 그늘이 우려있다.

여름 내내 더위가 지긋지긋해 창문을 닫고 지냈다. 남부의 여름 햇살은 환영할 만한 손님이 아니다. 햇볕을 가리는 일만 생각했다. 나뭇잎은 짙은 초록색으로 변했지만, 나에게 외향의 변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햇볕을 가려주는 기능이 반가울 뿐이였다.

며칠 비가 오더니 낮에도 창을 열만해졌다. 창문을 활짝 열자 밖에서 쏴아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빗소리인 줄 알았는데, 바람 소리다.

한참 잊고 있었는데, 2000년 5월 남도 여행이 생각났다. 땅끝 마을도 가고 청해진도 갔었는데,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기억도 없다. 오늘 기억을 하나 건져 내었다.

5월에 강진 산등성이에 올라가면 보리물결을 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보리밭에 초록 물결이 인다. 보리 물결은 소리도 내는데, 그 소리가 참나무에서도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나무)

한편 민주당에서는… : 샌더스와 바이든

요즘 미국 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이야기로 가득하다. 반면 민주당은 큰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민주적 사회주의자 democratic socialist 라고 불리는 샌더스의 약진이 눈에 띈다.

며칠전에 샌더스가 클린턴을 앞섰다는 뉴스를 듣고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뉴햄프셔 한정이고 전국적으로는 아직 추격하는 단계이다. (뉴햄프셔가 중요한 곳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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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허핑턴 포스트, 링크)

아직까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은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포지션을 불안해 한다. 내 주변의 미국인들은 (지지여부를 떠나) 당선가능성에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하나 지켜볼만한 포인트는 부통령 바이든의 출마 여부이다. 클린턴 대세론이 힘을 잃자 바이든의 출마 여부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바이든은 72년에 아내와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올해 5월에 아들을 먼저 떠나 보냈다. 최근 인터뷰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에 (지금까지는) 심리적인 에너지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그제 (9월 12일) 영국 노동당 당수로 제레미 코빈이 당선 되었다. 그는 왼쪽 색깔이 뚜렷한 인물이라고 들었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전세계적인 불평등 이슈로 인해서 영미권 사람들도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Beautiful stories about Oliver Sacks by Atul Gawande

이번 주 뉴요커에 실린 글을 공유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가 얼마 전 작고한 올리버 색스에 대해 썼다. 최근에 읽은 글 중 가장 따뜻한 글이다.

Oliver Sacks by Atul Gawande (The New Yorker 2015년 9월 14일자)

캡처

(image source: the New Yorker)

느낀점 1.
의사라는 직업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어쩔 수 없이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의 직업과 작가의 마음을 동시에 가진 색스는 끊임없이 환자의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특히 문학의 경우)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공감하는 능력이 없이 쓸 수 없다. 말하자면, 드라마에서 아무리 악역이라 하더라도 배경 스토리가 들어가게 되면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간이 되는 원리랄까. 그런 점에서 가완디나 색스 같은 분들의 시선은 참 아름답다.

느낀점 2.
생의 마지막까지도 쓰기와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노학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구를 놓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손편지를 보냈으며, 책을 읽었다. 이보다 아름답게 삶을 마칠 수 있을까.

느낀점 3.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을 사두기만 하고 아직 시작을 못했다. 가완디는 이 책을 쓰는 중에 색스와 서신을 교환했다고 한다. 당시 색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자서전을 저술하고 있었다. 책을 빨리 읽고 싶어졌다.

덧.
색스가 임종 전에 읽고 있었다는 책이 E.M.Forster의 ‘The Machine Stops’라고 한다. 다음에 서점에 갈 일이 있으면 한번 들춰봐야겠다.

참고로 올리버 색스가 임종을 앞두고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을 같이 올려둔다.

원문: My Own Life (뉴욕타임즈 2015년 2월 19일자)

한글번역: 나의 생애 (뉴스 페퍼민트)

미국의 학자금 대출 이슈와 영리(for-profit) 대학

어제 일자 (2015년 9월 10일) 뉴욕타임즈 기사를 읽고 느낀점을 간단하게 정리해봤다.

기사 링크: New Data Gives Clearer Picture of Student D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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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선 학자금 대출 이슈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내년 대선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될 모양이다.
  • 기사는 스탠포드 Yannelis팀의 연구결과를 요약한다. NYU를 비롯한 4년제 사립대학의 등록금 인상이 학자금 대출 증가를 이끌었을 것이라는 선입관과는 달리, 영리 대학(for-profit)과 커뮤니티 컬리지가 주범이었다는 내용.
  • 영리 대학(for-profit)은 우리나라에 없는 교육 형태이다. 일종의 직업교육 학원을 확장시켜서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으로 인정했다.
  • 영리대학의 문제점은 자주 지적되어 왔다. 아무래도 상장기업에 이익추구가 목적이다 보니 과도한 마케팅으로 인한 폐해가 있다.
  • 영리 대학도 맞춤형 교육, 유연성, 현장성 등 나름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 문제는 정부가 보조금 제도 (Pell grant)로 등록금을 대주면서 영리 대학의 규모를 무리하게 키웠다는데에 있다. 등록금 부담이 없어서 저소득층과 일반적으로 대학에 오지 않을 사람들까지 끌어 들였다. 그리고 (보조금이 지원되지 않는) 나머지 학비가 대출로 되어 버린 것이다.
  • 미국의 사례이긴 하지만, 대학 교육의 미래나 학자금 대출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읽어볼 만한 기사이다. 아울러 디테일한 자료 조사와 그에 기반한 정책들로 이슈를 만들어가는 미국식 언론/정책/정치를 느껴볼 수 있는 보너스도 있다.

아마존 직장문화와 저널리즘의 역할

지난달에 아마존 직장문화를 1면에 실은 뉴욕타임즈 기사에 대해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기사는 사례 위주(anecdotal)인데다가, 퇴사자의 입을 빌은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아 (내 기준으로는) 좋은 기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가 회사 이름을 거론하며 돌직구를 날리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타임즈는 이슈를 만들줄 안다. 그 점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모두가 마녀사냥을 하는데, 같이 돌던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건 황색 저널리즘이다.)

어쩌면 저널리즘의 역할은 이슈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사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진실은 복잡다단하고, 딱잘라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반면에 힘있는 글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사가 나간 후에 꽤 말이 많았나보다. NYT 역사 상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였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NYT 편집장은 그게 저널리즘이 해야할 일이라며, 아마존 같은 사례를 계속 발굴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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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re/code)

링크: New York Times Editor Dean Baquet Says It’s His Job to Publish More ‘Amazon’ Stories

유럽 난민 이슈와 나

유럽 난민 이슈를 정리해봤다. 오류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 부탁한다.

생겐 조약 (Schengen Agreement)과 entry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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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Bloomberg)

한국사람이 처음 유럽여행을 하면 신기한게 하나있다. 국경을 넘을때 아무도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95년 발효된 생겐 조약 때문이다. 생겐 조약 이후 26개의 유럽 국가들은 국경을 걷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유럽과 비유럽의 경계선에 있는 나라들의 국경이 실질적인 국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헝가리가 이에 해당한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계속 심각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기에 유럽의 정부들은 오랜 시간 묵살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그리스와 이태리를 통했던 해로가 주요 루트였다면, 최근에 헝가리를 통하는 육로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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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T)

문제는 헝가리의 경우는 난민을 받아들인 역사도 없고 (서유럽에 비하면)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난민들도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또는 영국으로 가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또한 EU는 처음 난민 신청을 한 나라의 난민을 인정하기 때문에 헝가리 같은 경우는 난민을 방치하고 그대로 독일로 실어보내는 일이 최근에 발생했다. (역사 때문인지 독일은 난민에 전향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난민들은 심지어 독일 총리를 mama Merkel 이라고 부른다고.) 이 뉴스는 현재 진행형인데, 9월 4일 오늘자 뉴스에 의하면 열차 이용이 어려워진 시리아 난민들이 독일까지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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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rance24)

이런 와중에 숨진 세살 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경제/정치 공동체 유럽

사진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잠깐 EU의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생겐 조약은 EU에서 단일 시장을 구현하기 위한 합의의 일부분이다. 같은 화폐를 쓰는 단일 시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네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1. 재화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goods)
  2. 자본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capital)
  3. 서비스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services)
  4. 거주이전 (또는 노동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persons)

생겐 조약이 발효된 근간에는 네번째 자유 즉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난민 사태는 EU의 근간을 흔드는 커다란 위협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리스 사태 보다 더 시급한 위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참고로 네가지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사태는 두번째 자유, 즉 자본 이동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다.

EU가 출범 했을 당시 유럽은 일단 화폐 부터 통합하고, 나머지는 차례로 통합해 가는 방향을 선택 했다. 그런데, 이 나머지 통합이라는게 갈길이 아직 멀어보인다. 그나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게, 재화이동의 자유 정도이다. 이는 지금도 Euro의 근본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유럽의 변방 그리스

어찌 보면 유럽 통합은 도달하기 너무 어려운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올해의 큰 이슈였던 그리스 사태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금융으로 드러난 문제와 별개로 그리스가 (서)유럽과 얼마나 이질감이 있는 국가 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스는 우리에게 서양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반짝이는 문화를 꽃피웠을 뿐이다. 비잔틴 제국의 한 지역으로 1000년을 존재했고, 이후는 오스만 제국의 일원으로 400년을 살았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망해갈 때서야 자신들의 조상의 찬란한 문명을 기억해 내었고, 발칸반도의 다른 나라와 함께, 민족주의의 바람을 타고서, 열강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스 정교 기반에다가 오스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리스는 어찌 보면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유럽의 경계로 존재하고 있다.

현대의 그리스는 EU에서 쫓겨 날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중동/아프리카/아시아의 난민들이 들어오는 entry country이니 그 역사가 참 애처럽게 느껴진다. 그리스에 더 관심 있는 분들은 블로거 Santacroce님의 포스트를 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스 비극1: 그리스인은 유럽인일까?)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그리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는 유럽 난민 사태가 유럽인의 정체성의 위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이 어디까지 유럽이라고 선을 그을 것인가,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함께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물론 이전에도 프랑스가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받아 들이거나, 핀란드가 소말리아전쟁 난민을 받아들인 예가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생겐 조약과 EU의 통합 덕택(?)에 지금의 난민들은 유럽 안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유럽의 정체성에 위협을 주고 있다.

아일란과 유럽의 대응

다시 유럽 난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아이란의 사진은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을 테이블로 불러 들였다. 지금까지 난민문제에 상당히 열려 있던 독일을 포함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영국도 모른척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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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 decisions on asylum applications, 2014 (source: eurostat)

사실 유럽이 얼마만큼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조금 의문이다.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이런 문제가 진작에 일어나지 않았을 테다. 예를 들어 독일 망명 신청자는 30만에 달하는 데 이는 독일 인구의 0.4%에 해당한다. 민족주의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와중에 유럽이 이를 소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제아무리 마마 메르켈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인 (시인 김종삼)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나와 관련된 주제가 아니면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정보전달이 내가 블로그를 하는 주된 목적은 아니다. 몇번 그런 포스트를 한일이 있지만, 나중에는 쓸데 없는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능력도 부족하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섣불리 아는 척 하는 일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좋아하는 시 때문이다. 아래 시는 읽을 때에 천천히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읽어야 하는 시이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인은 47년 자신이 월남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기교 없이 쓰여진 이 시가 읽고나면 큰 파장을 남긴다.

어찌보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리아/아프간/이라크/파키스탄의 사람들이지만, 나의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파하는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보면서 내 생각도 정리해보았다. (아참 이 포스팅의 많은 부분은 Santacroce님께 빚져 있는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회사 창립 기념일

Happy 108th birthday! Free coffee and cookies.

108년이라. 운이던 실력이던, 한 회사가 한세기를 넘어 살아남았다는 것은 박수칠 만한 일이다. 시총 90조원에 매출 60조이니 작은 규모도 아니다. (미국 시가총액을 한국 시총과 비교하는게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어쨌든 현대자동차 시총이 30조이다.)

삼성에 있을 적엔 창립기념일 행사가 딱히 반갑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일년에 한번쯤 기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짜 커피와 쿠키 때문이다.

      

+ 덧: 8월 28일 페북에 올렸던 포스트 저장

살만 루슈디의 글쓰기

뉴욕에서 발행되는 ‘파리리뷰 the Paris Review’. 이 잡지는 작가들을 반세기 넘게 인터뷰 해왔다. 헤밍웨이, 포크너 부터 하루키, 쿤데라 등 대가라고 불릴 수 있는 작가들이다. 이 인터뷰 들은 최근 한국에도 ‘작가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되었다.

원문은 온라인에 공개되어있다. (한국기준으로) 유명한 작가 인터뷰는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부분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고, 또 영어 원문이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링크를 걸어둔다.

링크: Paris Review interview

최근 살만 루슈디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어서 옮겨둔다. 그가 글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시나 글은 엉덩이로 쓰는구나 싶었다. 귀찮아서 번역은 안했다. 궁금한 분은 책을 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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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commons.wikimedia.org)

INTERVIEWER

Can you talk about your procedure when you sit down at the desk?

RUSHDIE

If you read the press you might get the impression that all I ever do is go to parties. Actually, what I do for hours, every day of my life, is sit in a room by myself. When I stop for the day I always try to have some notion of where I want to pick up. If I’ve done that, then it’s a little easier to start because I know the first sentence or phrase. At least I know where in my head to go and look for it. Early on, it’s very slow and there are a lot of false starts. I’ll write a paragraph, and then the next day I’ll think, Nah, I don’t like that at all, or, I don’t know where it belongs, but it doesn’t belong here. Quite often it will take me months to get underway. When I was younger, I would write with a lot more ease than I do now, but what I wrote would require a great deal more rewriting. Now I write much more slowly and I revise a lot as I go. I find that when I’ve got a bit done, it seems to require less revision than it used to. So it’s changed. I’m just looking for something that gives me a little rush, and if I can get that, get a few hundred words down, then that’s got me through the day.

INTERVIEWER

Do you get up in the morning and start writing first thing?

RUSHDIE

Yes, absolutely. I don’t have any strange, occult practices. I just get up, go downstairs, and write. I’ve learned that I need to give it the first energy of the day, so before I read the newspaper, before I open the mail, before I phone anyone, often before I have a shower, I sit in my pajamas at the desk. I do not let myself get up until I’ve done something that I think qualifies as working. If I go out to dinner with friends, when I come home I go back to the desk before going to bed and read through what I did that day. When I wake up in the morning, the first thing I do is to read through what I did the day before. No matter how well you think you’ve done on a given day, there will always be something that is underimagined, some little thing that you need to add or subtract—and I must say, thank God for laptops, because it makes it a lot easier. This process of critically rereading what I did the day before is a way of getting back inside the skin of the book. But sometimes I know exactly what I want to do and I sit down and start on it. So there’s no ru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