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멕시코 관계, 그리고 나프타

어제 있었던 멕시코 제품 20% 관세 계획 발표는 해프닝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전쟁 선포 같은 그런 말이 설마 진짜 일리가… (하지만 그 해프닝이 벌어지는 사이에 페소는 엄청 떨어졌다.)

관련 뉴스

Trump mulls 20% border tax on Mexico; aides later call it just an option (USA Today, 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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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미국/멕시코 관계는 최악인데 정황을 요약하자면,

수요일 트럼프가 11조원의 멕시코 장벽 건설 계획 발표. 멕시코에게 돈 내놓으라고 으름장. 이에 멕시코 대통령이 다음주 예정된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어제 멕시코산 물품 20% 관세 부과 계획 전격 발표했다.

이 20% 관세 계획의 발표 과정을 살펴보면, 백악관 대변인 숀 스파이서가 멕시코에 20% 관세를 매겨 멕시코 장벽의 비용을 충당할 계획이라고 말했고 몇시간 뒤에 비서실장 프리버스가 그건 트럼프 정부가 고려 중인 여러가지 계획 중에 하나이라고 발뺌을 했다.

나는 트럼프가 한 20% 관세 이야기가 진심이라고 보긴 하지만, 비서실장이 발뺌을 하니 일단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그치만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멕시코와 나프타에 대해 좀더 수다를 떨어볼까 한다. 아참 그리고 세금도…

사실 트럼프의 20% 관세 발언은 (언제나처럼) 구체적인 플랜이 없었기에 정확히 무엇을 염두에 두고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 인지 알기 힘들다. (어쩌면 트럼프 자신이 무슨 이야기 인지 이해를 잘 못하고 한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난 주부터 미국은 법인세 개편 논쟁이 한참인데, 그 법인세를 목적지 기준으로 매기겠다는 게 골자이다. (Border adjustment라고도 한다.) 미국에는 부가가치세가 없는데, 법인세를 부가 가치세처럼 바꾼다는 안이다. 좀 복잡한 이야기이고 트럼프는 이 세제 개편안에 ‘너무 복잡하다’ 며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의견을 냈었다. 뉴스를 보건데, 트럼프가 말한 멕시코 20% 관세는 그 새로운 법인세를 이야기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20% 라고만 말해서 뭘 지칭하는지도 불분명 하다.)

이 세금에 대한 이야기는 권남훈 교수님께서 잘 정리해 주신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

어쨌든 이래저래 혼선과 발뺌이 오가는 걸보면 아직 트럼프 내각도 혼돈 그 자체인 것 같다. 사실 트럼프 내각은 경제 쪽 인준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이라 구체적인 안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워낙 뉴스가 많이 쏟아져 나와 오래된 것 같지만 아직 취임한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

세금이나 커뮤니케이션 채널 문제는 그렇다치고, 사실 내가 관심있는 건 미국의 무역 정책이 정말 어떻게 흘러갈까 하는 거다.

지금 이슈가 되는 나프타는 어떻게 될까? 미국이 나프타에서 탈퇴하는 일 같이 황당한 일이 벌어질까?

뭐 브렉시트도 벌어진 마당이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프타 관련 조항을 찾아봤는데, 실제 6개월전에 통보한다면 나프타 탈퇴가 가능하다고 한다. 나프타 조약 22조에 있는 2205 항목에 따르면 그렇다. 관련 규정 링크는 아래 링크 참조.

http://www.sice.oas.org/trade/nafta/chap-22.asp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미국에 자동차 공장들을 보면, 정말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이 무의미할 만큼 통합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미시간에 있는 포드 공장에서 최종 생산되는 차량의 계기판은 멕시코에서, 변속기는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이런 식이다. 나프타가 해체되면 미국 회사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게 그냥 공허한 소리는 아니다. 아마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엄청나게 위협을 해서 캐나다와 멕시코를 재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미국에 유리한 협정을 맺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전 포스트에서도 수차례 피터 나바로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그가 무역을 보는 관점이 트럼프의 관점을 대변한다. 그가 보는 바에 따르면 미국의 무역 적자를 가져오는 주적은 여섯 나라인데, 그 나라가 바로 중국, 멕시코, 캐나다, 일본, 독일, 그리고 한국이다.

피터 나바로: 트럼프 내각의 유일한 경제학자 (1월 25일자 포스트)

그는 트럼프 유세 기간 트럼프의 경제 공약을 짰는데, 그때 그가 쓴 페이퍼에 의하면, 미국은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거래 때문에 엄청난 무역 적자를 보고 있고, 원인을 환율조작, 그리고 (미국에는 없는 상대국의) 부가가치세를 꼽았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무역협정 재협상과 보복 관세를 내세웠다.

해당 페이퍼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된다.

Click to access Trump_Economic_Plan.pdf

페이퍼에서 한국을 수차례 언급하는데, 읽다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 페이퍼를 쓴 교수가 지금 미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나바로가 페이퍼에서 주장하기로는 트럼프가 무역전쟁을 시작한게 아니라고 한다. 원래 다른 나라들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고 트럼프는 그 전쟁을 끝낼 사람이라고. 그리고 미국이 보복 관세를 매겨도 상대국가가 찍소리 못할 거라고 한다. 이유는 미국 시장이 워낙 커서 그 시장을 놓칠 수가 없을 거라고. 평소 트럼프의 지론과 일치한다.

게다가 지금 멕시코와 설전을 벌이는 트럼프를 보면 안보 문제, 이민 문제 기타 다른 골치꺼리를 같이 엮어서 위협반, 설득반으로 협상을 진행할 모양이다.

요즘 같아선 트럼프에게 찍히면 거덜나는 분위기인데, 어쩌다가 미국이 동네에 힘좀쓰면서 애들 삥뜯고 다니는 깡패 같은 나라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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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멕시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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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역별 선호 티비프로그램

뉴욕타임스 기사를 하나 공유한다.

정치를 떠나서 문화적으로도 미국이 얼마나 양극화 되어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 도시화 비율 높은 동부와 서부, 흑인 비율이 높은 남부, 시골이 많은 나머지 지역에서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다르다.

동부와 서부에서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모던패밀리, 빅뱅이론, 왕좌의 게임 같은 쇼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미드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프로그램들. 한국인들에게 미국 사람들의 이미지는 동부와 서부의 모습이 전부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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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시골이 많은 나머지 지역은 ‘덕 다이너스티’ 나 ‘댄싱 위드 더 스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다. 예전 보스가 전형적인 오하이오 러스트 벨트 출신 50대 백인 아저씨 였는데, 덕 다이너스티의 팬이였다.

궁금해서 몇번 봤었다. 무슨 재미로 보나 싶더라. 루이지애나의 시골 백인 남성들이 주인공인 리얼리티 쇼인데, 사냥을 가거나 아니면 하루 종일 총기 이야기나 수꼴 스런 잡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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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 구분되는 지역은 흑인들이 많이 사는 남부 지역. 이쪽은 흑인 취향의 쇼들이 인기인데, 이를 테면 힙합 음악드라마 ‘엠파이어’나 아님 킴 카다시안의 리얼리티쇼가 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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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즐겨보는 티비 프로그램과 정치 선호도가 거의 일치한다. (예전 보스는 ‘덕 다이너스티’의 팬이기도 하고 트럼프 지지자 이기도 했다.)

세계화는 어디로?

이번 주말 페루에서 APEC 정상회담이 있을 예정이다. 트럼프 당선 이전에는 아무래도 TPP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은 알다시피…

오바마가 꽤나 공들였던 TPP와 기후협약이 물건너간(?) 지금 정상들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궁금하다.

물론 TPP 말고도 중국을 중심으로 진행중인 FTAAP (free trade area of the asian pacific) 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이 따라주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긴 매한가지. (내가 알기로 TPP에서 빠진 중국이 FTAAP를 강하게 밀었다고 들었다.)

미국이 빠져있는 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지만, 이마저도 보호무역이 힘받는 지금 분위기에서는 그닥.

정상들이 모여서 반지성주의 성토하고, 보호무역 안된다고 말하고, 기후협약 지속해야한다고 말해봐야 트럼프 대신 오바마가 참석하는데 큰 영향이 있을리가…

지금은 전세계가 트럼프의 본심이 어떤건지 그저 숨죽여서 지켜볼 따름이다.

참고로 첨부 기사는 현재 아태지역 진행중인 무역협정을 잘 요약해주는 기사라서 링크를 걸어둔다. 그래프도 유익한데, 이는 아래에 따로 떼어서.

The collapse of TPP – Trading down (the Economist, 11월 19일자)

링크: 기독교와 교회의 번안 – 네이버캐스트

한국 기독교사를 문화사와 정교분리의 관점에서 정리한 흥미로운 글.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미국/독재정권과 분리해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한국 기독교의 역사 또한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몇몇 분들에게는 읽기가 불편할 수도…

기독교와 교회의 번안 – 백욱인 (네이버 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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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장대현 교회

(image source: http://kmc1.kr/kmc1/wp-content/uploads/2012/11/e7181a8c2430d9d65ee89dc49e1a7fbf%EC%9E%A5%EB%8C%80%ED%98%84%EA%B5%90%ED%9A%8C.jpg)

유럽인의 긴휴가에 대한 수다

산타크로체님이 프랑스의 긴 휴가에 대한 좋은 글을 올려주셨다.

프랑스의 긴 여름휴가와 우울증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 (산타크로체 포스트)

산타님 포스트 만큼 영양가는 없지만, 프랑스 휴가하니까 생각나는 얘기들이 있어서 그냥 잡담.

미국 항공사 델타에 다니는 친구 얘긴데, 그친구가 프랑스의 국적기 ‘에어프랑스’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더랬다. 프로젝트가 한참 바쁘게 돌아가던 즈음에 그쪽 회사 중요 담당자가 자기 다음주 부터 휴가라고 신나서 말하더랜다. 그냥 상식적으로 휴가라면 길어야 열흘 갔다 오는 건가보다 하고 흘려 들었는데, 갑자기 10주 짜리 휴가를 가버린 것. 담당자하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두절. 다행히 그친구가 워낙 회사에서 초짜 시절에 벌어진 일이라 중요한 프로젝트가 아니어서 일정을 조정하면서 적당히 넘어갔지만, 프랑스 긴 휴가의 위력을 새삼 느낀 사건이었다고.

프랑스가 대표적으로 휴가가 긴 것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유럽도 대체로 휴가가 길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직장생활을 하는 목적이 멋진 휴가를 가기 위해서 라고 생각 하더라.

친한 친구 중에 독일인이 있는데, 그 쪽 분들은 휴가 계획을 일년 전부터 세워두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미리부터 치밀한 준비를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독일인이다. 어쨌든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유럽인은 일년에 한번 뿐인 휴가를 최대한 멋지게 누리기 위해 돈을 벌고 일을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여담이지만, 유럽인은 생겐조약으로 유럽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혜택을 누린다. 생겐조약의 경제적인 효익을 떠나서 유럽인들은 국경을 초월한 자유로운 이동을 정말 중요한 문제로 본다.

그에 비하면 미국사람의 휴가란 우울하기 짝이 없어서 (so pathetic ㅠㅠ) 길이가 짧은 건 둘째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휴가중에도 업무를 놓지 못한다. 이메일 체크는 기본이고, 아예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서 업무를 하는 분도 있다. 성과중심의 업무 평가가 일상화 되어 일이 빵꾸라도 나면 순전히 그사람 책임. 성과가 안나거나 회사가 어려우면 바로 자르는게 상식이라, 내가 아는 어떤 분도 휴가에서 돌아와보니 책상이 치워져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하지만, 유럽도 호시절은 이제 지난 듯 하다. 사실 프랑스의 긴휴가도 ‘에어 프랑스’ 같은 준 공기업 같은 회사나 가능한 일이고, 그것도 베이비부머가 주역이 되어 일하던 시절에나 통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예전 휴가지에서 만난 한 프랑스인과의 대화에 따르면 그렇다…) 산타님이 포스팅 한 내용처럼 이제 긴 휴가 혜택은 유럽인에게도 호사스런 일인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유럽인과 미국인의 일에 대한 자세는 다르다. 예전에 이 주제로 유럽사람들과 이야기한 일이 있었는데, 한 프랑스인이 항변하기로는, 유럽의 근로 시간당 생산성은 오히려 미국을 능가한다고 했다. (숫자를 보여주면서…) 유럽인은 효율성 대신에 삶의 여유를 택했다나 뭐래나.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유럽가서 살아야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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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h. It’s Naptime at Ikea in China. (NYT)

미국인의 눈에는 공공장소에서 수면을 취하는 행동이 신기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한국인이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도 이상하게 본다. 나는 잠이 많은 편인데, 이상한 한국인 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아무리 피곤해도 쉬는 시간에 눈을 부릅뜨고 잠을 쫓았던 기억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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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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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나도 예전에 한국있을 때 백화점 소파에 앉아서 주무시는 불쌍한(?) 아재들을 보면서 신기했었다. 어떤 분은 코까지 고시고. 나중에 나도 자리 차지하고서 살짝 눈을 감았다는 것은 함정. 쇼핑은 왜 그리 피곤한 건지…

아래는 이케아 매장에서 자는 중국인에 대한 NYT 기사와 사진들.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미국은 다문화국가이다. 처음 미국 왔을 때 미국이 다문화국가임을 시각적으로 느낀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히잡과 터번을 쓴 아랍계를 봤을 때이다. 미국에서 히잡을 쓴 아랍계, 터번을 쓴 시크교도, 키파를 쓴 유대계, 육식을 금하는 인도계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 미국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시각이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복장이 주변인에게 위화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해서 (실제로 히잡이나 터번을 쓴 사람은 경계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복장을 금지시키지는 않는다. 미국인들은 자유에 대한 믿음이 강한지라,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을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내가 느끼기에 소위 melting pot이라고 불리는 미국식 다문화주의는 다른 문화를 용인하며 (또는 무관심하거나 참아내며) 지내는 dynamic한 잡탕찌개 상태이다.

그런 미국인의 시각으로 프랑스의 전신 수영복 부르키니 burkini 금지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미국 문화에 어느 정도 젖어들은 나도 마찬가지이고…) 요즘 프랑스 내에서도 이슈가 되는 burkini는 이슬람 스타일 수영복으로 전신을 가리는 형태의 수영복이다. 최근 프랑스의 15개 도시가 이를 금지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프랑스 경찰이 한 여성의 전신 수영복 burkini를 강제로 벗기는 사진이 온라인에 공유되며 논란이 더욱 커졌다. (아래 NYT 동영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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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랑스는 여성의 복장을 금지하는 이해하기 힘든 조치를 취하는 것일까. (더 이상한 건 프랑스인의 64%가 burkini 금지를 찬성한다는 것이다.)

우선 프랑스와 미국은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해 그다지 간섭하지 않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는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이다. 프랑스는 1905년 카톨릭과의 갈등 이후 세속주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를 프랑스어로 laïcité라고 한다. 원칙적으로 종교적 행위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금지된다. 이 원칙에 근거해서 프랑스에서는 유대인의 키파와 아랍계의 히잡 착용이 공립학교에서 금지 되었다. (2004년) 2010년에는 공공장소에서 니캅(눈만 남기고 모든 부위를 가리는 아랍 여성 의상) 착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세속주의 뿐만 아니다. 프랑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또다른 가치는 ‘여성의 평등’이다.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가리는 아랍계 의상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일이다. 히잡/니캅/burkini를 금지하는 일을 남성중심주의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것의 연장선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프랑스인에게 ‘여성의 평등’이라는 가치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우선한다. 2014년 유럽인권재판소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올라온 SAS v. France 건 판결은 이러한 프랑스의 논리에 손을 들었다. 판결은 공공장소에서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법을 인정해주었다.

최근 burkini 논란은 또한 프랑스의 안보위협과도 연결되어 있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프랑스 정치인들은 전신 수영복 burkini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말한다. 아랍복장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하는 행위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임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이를 순수하게 표현의 자유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를 프랑스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적인 행동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쉬운일이 아니다. 연이은 테러 사건으로 프랑스에는 극도의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부 이슬람 전문가들은 burkini가 이슬람 극단주의를 구분하는 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통 이슬람에서는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수영을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며칠전 대선출마를 선언한 사르코지도 학교에서 무슬림 복장을 금지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정체성 논란은 내년 프랑스 대선에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의상에 대한 논란은 그 중에 하나이다.

관련 포스트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여성의 의복과 종교에 대한 단상들
이슬람 여성 복장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면서…
일상이 된 테러의 위협

참고자료
이슬람 세계와 ISIS의 단절을 위한 과제 – 여성 인권, 산타크로체님 블로그
Burkini bans in France have sales of full-body swimsuit soaring, says designer, the guardian, 8월 23일자
Why the French keep trying to ban Islamic body wear, the Economist, 8월 23일자
When a Swimsuit Is a Security Threat, NYT, 8월 24일자

브렉시트 연재: 2. 브렉시트와 EU의 정체성 – Eurosc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Vox기자 Amanda Taub의 NYT 기고문을 공유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간략하게 정리하고 내 생각을 덧붙이려 한다.

지난주 영국에 초점을 맞추던 외신들이 이제 EU 내부의 문제를 조명하는 분위기이다.

Euroseptic, 즉 EU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은 EU가 비민주적이며, 각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르펜이나, UKIP의 패라지, 그리고 이번 브렉시트를 이끈 보리스 존슨이 대표적인 Eurosepti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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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극우 포퓰리스트로 보는 것은 일리가 있는 평가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Euroseptic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놓치는 듯한 찜찜함이 남는다.

개별국가의 시각에서 EU를 바라보면 EU는 대단히 비민주적으로 작동한다. 영국을 예를 들자면,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들 (이를테면, 그리스를 구제하는 문제에 있어서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문제들…)에 대해 정작 영국사람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영국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의사결정을 영국사람이 하겠다는 요구는 정당하며 지극히 근본적인 문제제기인 것이다.

정치는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이익단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미디어와 공론장, 그리고 국회에서 논의를 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경우에는 청원서를 접수하거나, 헌법소원을 하거나, 아니면 시위에 참가하거나, 이런 행위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EU는 그런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심지어는 영국민 자신에게 중요한 큰 결정에 마저 그러하다.

European Parli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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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첨부한 기사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왜 EU는 비민주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것일까?

첫째, EU는 원래 그렇게 작동하도록 고안되었다. 유럽의회의 구성원들은 선거로 선출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technocrat, 즉 전문가 집단이다. 그들은 개별 국가의 이익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EU 관점에서 최적의 결정을 할 것을 요구 받는다.

EU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럽의 평화와 공존, 그리고 하나된 유럽이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이상과 개별국가의 이익은 상충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나 유럽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파시즘이나 민족주의자들의 봉기는 더더욱 그러하다. EU의 전문가 중심의 의사결정은 이러한 목적에 잘 부합한다.

기사는 두번째로 EU의 지나치게 약한 권력을 지적한다. (헤깔리기 쉽지만, 강한 권력이 아니다.) 유럽 난민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EU는 각 나라에 난민 수용을 강제로 배정할 수 없다. 유럽의회에서 협의를 거친 이후, 각 나라와 다시 협상하고, 부탁하며, 양해를 구해왔다. 유럽 각국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자기 나라가 떠안기는 거부하고 서로 모른척해왔다. 그리고 그 협상의 결과에 대해 개별 국가들은 모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과 각국의 힘의 균형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포스팅한 바 있다. European Union을 United States of America를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유럽연합과 각국 정부는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관계와 유사하다.

미합중국도 건국초기에는 연방정부의 힘이 약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서로 견제하면서 성장해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로간의 대립이 가장 치열했을 때가 남북전쟁이다.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은 연방정부의 권한이 극대화된다. 연방을 탈퇴하면 전쟁을 불사한다는 것보다 더 강력한 메세지가 어디있겠는가.

Webster's_Reply_to_Hayne

Nullification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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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의 연방주의자들이 강한 연방정부를 주장했던 것처럼 하나된 유럽, 그리고 강력한 유럽 연합이 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브렉시트 이후, EU는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좀더 강력한 EU를 추구하던지 (강력한 EU는 우선은 UK에 대한 강경대응의 모습으로 표현될 것이다.) 아니면 어떠한 식으로든 민주적인 의사 결정 절차를 추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사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그리고 엘리트 정치인들과 대중의 괴리이다. 브렉시트 과정에서 영국의 양당은 모두 EU 잔류를 내걸었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엘리트 정치인을 불신했다. 사실, 카메룬의 협박(?)은 결론만 보면 틀린말은 아니였다. 그가 말했듯이 Exit을 선택하는 것은 영국민의 선택이지만, 그 와중에서 생기는 사회/정치적인 혼란, 경제적인 부담은 온전히 국민의 몫으로 남게되었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기성정치에 불만 표시로 브렉시트를 선택하였다.

EU가 태생적으로 민주적이지 않은 것 또한 EU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듯이, 엘리트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우려를 표하는 것 또한 나름의 당위성이 있다. 사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은 영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트럼프와 샌더스의 부상 또한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브렉시트 관련글 모음

1편: European Union과 United of States of America
2편: 브렉시트와 EU의 정체성 – Eurosc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3편: 브렉시트와 불평등의 문제 – 경제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4편: 브렉시트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 사회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힐러리, 트럼프 공격의 포문을 열다

목요일 샌디에고에서 힐러리가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그리고 저녁 미국뉴스는 힐러리 연설을 복기하느라 바빴다.

계산되고 정돈된 연설만을 하던 힐러리가 어제는 street fighter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그게 제대로 먹혔던 듯. 심지어 폴 라이언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뉴스가 있었는 데도 묻힐 정도 였다. (폴라이언의 지지 선언은 중도보수의 트럼프에 대한 항복을 의미한다.)

NYT 기사에 따르면, 힐러리 측에서 미디어 전략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스피치는 즉흥적인 것으로 보이나, 실은 힐러리 캠프에서 몇주간 고심한 결과이다. 언론사에서 인용하기 좋은 떡밥(catnip)을 반복하고, 중간중간 적당한 sarcasm을 섟어 준다.

그런 점에서 목요일 스피치는 힐러리 캠프의 작품이다. 작성과정에도 여러명의 전문가가 합류했다. (스피치 라이터: Dan Schwerin과 Megan Rooney, 정책자문: Jake Sullivan, 외부 컨설팅: John Favreau) Ms. Rooney가 열흘에 걸쳐 초안을 작성하고, 수요일밤 힐러리가 샌디에고로 비행하는 옆에서 John Favreau가 동행하여, 유머를 추가해주고, 교정을 해주었다고. (Favreau는 오바마의 연설문 작성 전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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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설 내용 자체도 흥미로운 커맨트들이 많다. 주된 논지는 힐러리 본인의 외교 경험 강점을 부각하면서, 트럼프의 위험한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도 짧게 언급한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기사에 동영상으로 제공되니 생략한다. 몇가지만 인용하자면,

“Imagine Donald Trump sitting in the Situation Room, making life-or-death devisions on behalf of the United States.”

“He believes we can treat the US economy like one of his casinos.”

“He says he has foreign policy experience because he ran the Miss Universe pegeant in Russia.”

“I’ll leave it to psychiatrists to explain his affection for tyrants. I just wonder how anyone could be so wrong about who America’s real friends are.”

“He also said, ‘I know more about ISIS than the generals do, believe me.’ You know what? I don’t believe him.”

사실 미국 대통령은 핵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제 스피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잘 짚어준 효과적인 스피치였다.

이라크 내전 업데이트 – 반복되는 2004년의 악몽

작년 하반기부터 대(對)ISIS 이라크/시리아 전황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세에 몰린 ISIS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현대전은 전투에서 이기고 깃발 꼽는다고 해서 상황종료가 아니다. 현재 상황을 복기해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 해봤다.

밀리터리나 중동 전문가는 아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공부 차원에서 정리해 본 내용이므로, 오류는 바로 지적해주시길 부탁한다.

순서

  • ISIS는 밀리고 있는가?
  • 현재 이라크 상황 – 팔루자 함락전
  • 2004년 팔루자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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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S는 밀리고 있는가?

점유지역 기준으로 ISIS는 확실히 밀리고 있다. 2015년 1월과 12월을 비교하면 점유 지역이 14%가 줄었다. (아래 지도 참조) 또 올해 3월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팔미라 Palmyra 수복에도 성공했으니, 지금은 더욱 줄었을 것이다. 참고로 팔미라는 시리아 남부 지역이고, 지도상에 짙은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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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적으로 보자면, 시리아 쪽은 쿠르드 전선에서 진전이 있었다. 시리아 북부지역을 탈환했다. 2016년에는 ISIS 자칭 수도인 락까 Raqqa 지역에 근접한 상태이고, 미군 특수부대원이 유프라테스강 동쪽 지역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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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남부의 팔미라 Palmyra 지역. 2015년 5월 ISIS가 점령하여 많은 우려를 낳았었다. 고대 팔미라 제국의 수도였고,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곳이다. 이곳은 올해 3월 시리아 정부군이 러시아의 지원 아래 수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아사드 정부의 입지가 회복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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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쪽을 보면, 작년 하반기에는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Tikrit를 회복하였고, 라마디 Ramadi도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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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라크 상황 – 팔루자 함락전

위의 지도에서 라마디 Ramadi와 바그다드 Baghdad 사이에 위치한 붉은 지역에 팔루자 Fallujah가 있다. 지난주에 바로 이곳에 이라크 군이 진격했고, 2016년 6월 2일 현재 치열한 전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왜 팔루자인가? 미군 측은 팔루자 공격에 반대했었다. 팔루자는 이미 고립된 상태이고, 전략적으로 보았을 때, ISIS의 제 2 도시인 모술 Mosul을 공략하는 편이 우선 순위다. 미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군은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등에 엎고서 팔루자 함락전을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라크 알 아바디 총리 Haider al-Abadi의 약한 지지기반을 이유로 꼽았다. (Fallujah, again Economist, 5월 28일자) 5월 18일 바그다드 자살 폭탄 테러(Deadly Bombing at Baghdad Market (NYT동영상))로 522명이 사망하여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도시 분위기도 뒤숭숭 하다고 하다. 바그다드 코앞에 있는 팔루자는 전략적으로 의미가 작더라도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팔루자 함락전은 여러모로 우려가 되는 점이 많다.

미군의 개입 정도를 기준으로 시리아 쪽 ISIS 전선과 이라크 쪽 ISIS 전선은 사뭇 다르다. 시리아 전선에서는 미군은 시리아 정부군 (알 아사드)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고, 시리아 측은 러시아가 뒤를 봐주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과 적대하는 미군은 대신 쿠르드 민병대, 시리아 반군과 동맹을 맺고 있다. 시리아 북부에서는 쿠르드, 시리아 반군, 미군 특수부대 연합군이 ISIS와 싸우고 있고, 남부에서는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연합군이 ISIS와 대치하고 있다.

반면 이라크 전선에서 미군은 이라크 정부군을 훈련하고 물자를 지원하는 수준으로 역할을 제한한다. 미군 대신 이라크 정부군과 공동작전을 펼치는 것은 이란군이다. (미군과 이란군은 적대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시아파가 주축이 되는 이란과 이라크 정부 주도의 작전은 수니 계열의 이라크인에게 종교 탄압으로 읽힌다. 시아 쪽은 상황을 정반대로 본다. 팔루자는 수니파의 도시이고, 시아파 사람들에게 수니 테러리스트들의 근거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ISIS의 모태인 AQI는 팔루자를 근거지로 삼았다.) 전쟁에서 종파 갈등이 연계되면, 시민과 적군의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시가전으로 접어들면, 도시를 쓸어버리는 작전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 자체로도 비극일 뿐 아니라, 또다른 증오의 씨앗이 된다.

군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팔루자는 라마디, 티크리트와는 다르다. 작년 수복된 두 도시는 고립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ISIS가 수세에 몰리면 퇴각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팔루자는 퇴로가 봉쇄된 상황이기 때문에 치열한 함락전이 불가피하다. 이미 팔루자에 있는 5만명의 시민들에게 의약품 보급은 끊겼고, 그들은 심각한 기아에 직면한 상태이다.

2004년 팔루자의 악몽

팔루자는 2004년에 유사한 상황을 맞았었다. 미군이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벌인 다음해 였다. 미군은 2003년 신속하게 작전을 마치고, 단기간에 마무리 지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2004년 즈음 부터 미군은 끌려다니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미군 무능력의 상징이 바로 팔루자였다. 수니파 도시 팔루자는 바그다드 바로 옆에 있다. 팔루자는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 AQI (ISIS의 모태)의 근거지이기도 했기 때문에 결국 미군은 도시를 쓸어버리는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팔루자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팔루자 함락전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메리칸 스나이퍼‘에도 묘사된 바 있다.

‘American Sniper’ Chris Kyle essential in 2004 Fallujah liberation, 워싱턴 포스트 2015년 2월 1일자

이라크의 종교/인종 분포 지도를 살펴보면 팔루자는 수니와 시아의 접경지대에 있다. 어찌보면 팔루자는 이라크가 탄생할 때부터 비극의 씨앗을 앉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이라크는 하나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나라였다. 다른 민족과 종교를 가진 집단들이 후세인이라는 강력한 독재자 아래서 위태위태하게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ISIS가 수세로 돌아선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말하기엔 상황이 너무나 암울하다. ISIS를 몰아내는 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ISIS를 제거하는가, 사후 처리는 누가 어떻게 진행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팔루자 함락전에서 2004년 이라크 상황이 겹쳐져서 보이는 것은 당시 미군이 수렁으로 빠지는 상징과 같은 전투가 팔루자 전투였기 때문이다. 2년 뒤인 2006년 부터는 이라크 내에서 수니-시아 간의 종파 갈등이 본격화 되었고, 2011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렸다. 2016년 지금에 와서는 알다시피 이라크는 셋으로 쪼개져서 내전 중이며, 그 와중에 ISIS라는 절대악이 등장하여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