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는 이가 건강해서, 미국에서 치과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 이분 글을 읽고서 생각했다. 무슨일이 있어도 치과는 한국에서 가야지.

(image source: wikipedia)
아직까지는 이가 건강해서, 미국에서 치과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 이분 글을 읽고서 생각했다. 무슨일이 있어도 치과는 한국에서 가야지.

(image source: wikipedia)
어제 일자 뉴욕타임스 기사
기사에 따르면, 최근 미국내에서 흑인의 기대수명과 백인의 기대수명의 차이가 줄고 있다고 한다. 한가지 요인은, 약물 중독과 자살로 백인의 기대수명이 주는 추세 (관련해서 이전 포스팅, NYT 관련 기사) 때문이다. 그러나, 흑인의 기대수명이 느는 것도 확실한 추세라고.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것은 단순히 몇가지 이유로 설명하기엔 복잡한 측면이 있겠지만, 기사에서는 1) 메디케어, 메디캐이드로 인해 흑인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늘었고, 2) 흑인의 흡연인구 감소로 인한 폐암 사망률 감소, 3) 흑인 사회에서의 폭력 범죄 감소, 4) 영아 사망률의 감소 등을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다.
물론 폭력 범죄의 감소는 흑인 남성 수감자의 증가 (관련해서 이전 포스팅, NYT 기사) 때문인지 핑커교수의 지적처럼 인류의 폭력 성향의 감소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좋은 소식.
단견이긴 하지만, 기사에서 든 네가지 원인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 국가의 기대수명을 늘리는 것은 의학의 발전도 있지만, 사회의 공중보건, 치안, 교육 수준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싶다.
관련 NYT 기사
블로그 Santacroce의 세상이야기의 쥔장께서 애틀란타 아시아 갱단 범죄에 관련한 기사를 공유했다. 관심있는 이야기라서 덧글을 달았는데, 이곳에도 저장해 둔다.
Santacroce님의 포스트: 아시아계 미국 이민의 이면: 너드가 되지 못한 애틀랜타 아시아 10대의 운명
economist 원문 기사: Fighting back (2015년 6월 13일자)

(image source: economist 원문 기사)
내가 쓴 댓글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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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에 사는 사람으로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기사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틀란타에 한인인구가 늘어난 것은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을 전후해서입니다. 물론 2000년 이후 부터 현기차 공장이 들어서면서 조지아에 한국 기업이 들어오고는 있지만, 공장들은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자동차 업계가 현지 인력 고용이 많아서인지 인구 구성상에 영향은 크지 않았습니다.
애틀란타 올림픽 이후 이곳으로 유입된 한인들은 뉴욕이나 LA 쪽에서 힘들게 사시다가 이리로 밀려난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남부는 물가가 싸서 뉴욕/LA 쪽에서 집한채를 판 돈이면 여기서 집을 사고 개인 사업체를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올림픽 특수 이후 몇번의 불경기를 거치며 자영업 기반의 한인들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한국 교민들은 특별한 기술이 없이 성실함을 무기로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 주유소/유통업/식당/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하는데, 아무래도 불경기에서는 자영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올림픽 특수를 보고 몰려들었던 한인들끼리의 경쟁마저 심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치킨집을 차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 거죠.
한인 교민 사회의 문제와 더불어 애틀란타 자체의 어두운 도시화의 일면도 애틀란타 아시아 갱단의 문제를 더 크게 한 것 같습니다. 애틀란타가 미국에서도 범죄율이 높은 도시인데다가 남부 물류의 중심지인 동시에, 코카인 등 마약 유통의 허브이기도 하니까요. 아무래도 부모가 자식을 돌볼 여력이 없고, 하루하루의 희망이 없는 저소득 계층은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습니다. 한인 교민들은 대부분 영어가 안되기 때문에 자식들과 단절되기 쉽고 자영업의 특성상 쉬는 날없이 밤낮으로 일에만 매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 데 그렇게 방치된 청소년은 범죄조직의 인력풀이 되기 좋은 타겟입니다. 다만 애틀란타가 대규모 조직범죄가 있는 곳은 아니다보니 기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소규모 갱단 정도로 자생하는 것 같네요.
여기다가 남부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도 한몫을 합니다. 문화/인종/언어적인 다양성이 높은 미국 동부/서부와 달리 남부는 아무래도 전통적인 백인과 노예의 후손인 흑인 이외의 다른 인종이 (미국 타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고, 아시아인은 외국인이라는 느낌으로 타자로 존재하게 됩니다.
기사가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내용이다보니, 제가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 놨네요. 누가 보면 제가 사는 애틀란타가 범죄의 소굴이고 총맞아 죽기 딱 좋은 곳으로 오해하실 듯 합니다. 사실 제가 사는 지역이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닙니다… ㅎㅎ 범죄자들과 일반인들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마주칠 일도 없습니다. 애틀란타는 세상 모든 곳이 그렇듯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는 평범한 도시죠.
결국 이민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외국에 나가 보면 지금까지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리는 혜택/보호막이 사라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습니다. 애틀란타의 아시아 갱단문제는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엮여서 노출된 사회 문제의 단면 입니다. 다만 지역경제가 활력을 잃어 총체적인 난국이 발생한 일부 다른 지역의 예(디트로이트 라던가…)와는 달리, 애틀란타는 도시 자체가 활력을 잃은 것이 아니니 차츰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에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자료를 올린적이 있었다.
이전 글 링크: 아메리칸 드림과 사회 이동성
관련하여서 소득과 만족도, 개인의 노력에 대한 Pew Research Center 연구 자료가 있어 공유한다. 이 자료를 소개해 주신 블로거 Santacroce 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Santacroce님 블로그에 더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링크를 참조바란다.
Pew Research Center: How do Americans stand out from the rest of the world? (Pew Research Center, 3월 12일자)
불평등이 사회 탓일까? 자신의 노력 부족 때문일까? (Santacroce님 블로그 12월 23일자)

첫번째 차트는 성공의 요인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는가 사회의 구조에 따르는 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이다. 오른쪽으로 갈 수록 개인의 노력을 중요시 본다고 답을 한 것이고, 왼쪽은 그 반대이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과 영국이 도드라지게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번째 차트는 소득과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도의 상관관계 그래프이다. X축은 일인당 국내 총생산을 나타내고, Y축은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를 나타낸다.
흥미롭게도 소득수준이 높을 수록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눈에 띄는 나라가 둘 있다. 미국과 한국이다. 미국인들은 현재 삶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고 한국은 그 반대이다.
문화적인 요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유교권의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는 현재 삶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일본, 한국, 중국,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교육열이 높고 즐거움을 표현하는데에 인색한 나라들이다. 반면 남미 국가들은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언제나 즐겁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미국인들은 언제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다. 개개인과 이야기를 해보아도 부정적인 이야기는 피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만을 한다. 그래서 어쩔 때는 아이와 같이 순진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어쩔 때는 속을 안내보인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설문조사의 결과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과 설문조사로 나오는 결과는 차이가 있다. 이과정에서도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표현을 터부시 하는 나라,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설문조사에 마저 긍정적으로 답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전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은 실제로는 불평등이 큰 나라이다.
(image source: New York Times)
2007년 부터 미국 대선 후보들의 거짓말과 참말을 통계로 만든 차트이다. 예측 가능한 일이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거짓말을 해왔다. 트럼프나 벤 카슨 같이 뻔뻔하게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통계를 만든 웹사이트 운영자가 말한 것처럼 fact check가 만병 통치약은 아니다. 정치인은 엄밀함을 목숨처럼 여기는 학자가 아니다. 가끔 눙치면서 능글 맞게 정책을 밀어 붙여야 할 때도 있고, 대중에게 어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치인의 말을 들을 때, 한번은 걸러 듣고 근거를 찾아보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이다.
근데, 문득 우리나라도 이런 통계를 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해졌다.
관련 기사: All Politicians Lie. Some Lie More Than Others. (NYT 12월 11일자)
며칠전, 한 단편 소설을 리뷰하면서 미국의 교정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링크)한 적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skid row 길거리 인생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교도소에서의 삶도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정반대의 이야기이다. 밑바닥 인생의 굴레, 삶의 관성을 거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인터뷰이지만 픽션보다 더 극적이고 아름답다. Reginald Betts는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n ‘Bastard Of The Regan Era’ A Poet Says His Generation Was ‘Just Lost’ (NPR Fresh Air 12월 8일자)
(image source: NPR 해당 인터뷰)
1996년 Reginald Betts는 차량절도를 한다. 16살 소년은 중범죄자 수용소에서 8년을 복역한다. 24세에 출소한 Betts는 몇년 후에 예일대 법대생이 되었다. 그는 자서전과 시집을 출판한 작가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에서 인상적인 몇 부분을 발췌/정리해서 한글로 옮겨봤다. 링크에 스크립트가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전체를 직접 들을 것을 추천한다.
질문: 작가님께서 쓰신 책의 제목 ‘레이건 시대의 서자들’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는 두가지 의미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첫째는 말그대로 아버지의 부재입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부재만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시대적인 맥락에서 레이건 시대의 젊은이들은 아비 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저 자신 그리고 저와 유사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생각해볼 때 저는 우리가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잊혀졌다고 느낍니다.
질문: 작가님은 어떤 점에서 레이건 시대가 버림받은, 그리고 잊혀진 시대라고 규정하시는지요?
레이건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그러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1980년에 태어났고 마약과의 전쟁은 제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레이건 시대의 Mandatory Minimum Sentences 관련 형법은 우리 사회, 특히 중독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언젠가 시카고에서 아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털복숭이 맘모스 동영상을 봤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트라우마와 비극의 사건 현장에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어머니 맘모스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레이건 시대에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크게 볼때, 우리는 사회에서 버림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조망할 때, 우리는 그의 삶을 둘러싼 사랑과 관심을 같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인생을 가정과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저는 책에서, 레이건 시대의 부산물인 우리 세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흑인들의 삶에서 시스템 적인 한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습니다.
질문: 범죄를 저지를 때, 무슨 생각을 했나요? 차량절도를 사전에 계획했나요?
아뇨. 우발적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한 교육자로서, 저는 그날의 사건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공개석상에서도 여러차례 이야기 해왔지만, 저는 범죄를 계획하지는 않았습니다. 차량 절도는 제가 자란 지역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죠. 제가 아는 사람중에도 차량 절도범이 있었습니다. 차를 훔치자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고 정신을 차려보니 총을 들고서 차주인과 함께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와 15살 짜리 공범은 그 차를 훔쳤습니다. 그날은 잘못된 결정을 내린 하루였고, 그 결정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질문: 그럼 이제 교도소 이야기를 할까요? 제 생각에 감옥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두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경우에는, 책과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법전을 공부했습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읽었고, 감옥 안에서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옥에서 범죄를 배웁니다. 또 그들은 전과기록 때문에 정상적인 직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되지 않습니까?
중요한 점을 지적하셨네요. 제 생각엔, 죄의 경중에 고려하지 않고 모든 범죄자들을 감옥에 보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정책이 수많은 죄수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감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망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저는 감옥에서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었어요. 구타도 거의 없었고, 망가지지 않았어요. 물론 저는 일년을 독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저는 교도소에 수감된 첫해를 독방에서 지냈죠.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일년 동안 저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질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작가님께서는 독서를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독방에서 독서를 하면서 또다른 세계가 열렸다고 하셨는데요. 감옥에서의 독서 체험은 감옥 이전과 비교해서 어떻게 달랐나요?
감옥에 가기 전에는 저에게 독서는 그저 재미였습니다. 의무감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옥에 갇히고서 독서는 마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길로 향하는 수단이 되었지요. 독서는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되는 법과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꿈꾸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질문: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책을 구하셨나요? 그것도 독방에서요.
어떤 점에서 독방에서의 경험은 제가 시인이 되고 지적인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방에서는 원하는 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독서를 하게 되죠. 독방에서는 책을 구하기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은 책을 구해냅니다. 어떤 사람은 감방안에 책을 두고 가는데, 이게 돌고 돕니다. 보통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책들입니다.
한번은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날 오후, 나는 옆방에다 ‘누구 책 좀 보내줄수 있어?’ 하고 물었죠. 누군가가 감방 문틈으로 책을 던지더군요. 지금도 누가 그 책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책은 Dudley Randall의 시집이었습니다. 바로 그 책이 제 인생을 바꿨지요. 그 책을 접하고 저는 Etheridge Knight, Robert Hayden, Lucille Clifton, Sonia Sanchez 같은 흑인 작가들을 알게되었고 문학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고른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적인 영역이 넓어 질 수 있었죠. 톨킨을 배웠고, 판타지 문학을 접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접하기도 했죠. 제가 책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책이 마법이 되었던 셈이죠. 저는 책을 통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고 삶이 변했습니다.
질문: 교도소 이후에 대해 얘기해 보죠. 감옥에서 출소할 당시 작가님은 24살 이었죠? 8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후에 어디로 갔나요?
네, 집에 있는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다른 출소자들과는 달리 저는 갈 곳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차를 줬기 때문에 차도 있었죠. 어머니는 제게 바위 같은 존재였어요.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의 도움이 컸지요. 어머니는 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질문: 작가님의 책을 보면 신에게 올리는 감사의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작가님이 말하는 신은 누구인가요? 자서전에 따르면 작가님은 감옥에서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신앙을 가지지는 않기로 했다는 대목이 있는데요.
특정 종교의 신을 지칭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하나의 신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가족은 침례교이고, 저는 교회와 조금 미묘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일한 하나의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감옥에서 살아남고, 이후에 제가 이룬 모든 일들이 스스로 해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감옥에서 살아남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일대 법대에 진학할 자격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저보다 똑똑한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만약에 제가 감옥에서 한두가지 결정만 다르게 했더라도 지금 이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신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질문: 어머니께서는 작가님을 잘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감옥에 가게 되었죠. 작가님께서는 아드님을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은 어떻게 아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들과 피할 수 없는 종류의 대화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좋은 이야기죠. 제 아내는 상담치료사이고,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죠. 저는 시인이자, 작가이며, 예일대 법대생입니다. 우리는 아들과 대학생이 의미하는 것, 석사학위가 의미하는 것, 고등교육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들은 그 의미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피할 수 없는 대화가 있죠. 아들이 5살일 때 일입니다. 아들의 유치원 친구가 너희 아버지는 차를 훔쳐서 감옥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상처받고 울기 시작했죠. 선생님이 저를 불렀고 저는 제가 아이에게 설명하겠다고 했죠. 저는 5살 아이에게 내가 차를 훔쳤으며 그때문에 감옥에 가야만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5살 짜리에게는 나쁜 사람이 가는 곳이 감옥입니다. 여러번 설명을 해야했죠.
제가 아들을 보호했던 방식은 불편한 진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안에는 수많은 흑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또 그것이 우리 사회가 폭력과 범죄를 다루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자식을 보호하려면 아이에게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매일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 것을 보죠. 또 제가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매일 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그를 통해서 배우고, 그 배움이 아이를 사회에서 보호합니다.
어머니가 저를 잘 보호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제가 감옥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셨죠. 책에 대한 애정과 감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독립심을 키워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가르친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랑과 관심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제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맘모스는 그러한 공동체에 속해 있었죠. 지금 저에게 공동체는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들입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아이들이 감옥과 같은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지요.
저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대다수 평범한 백인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흑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순간순간 맞닥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환경에 맞서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요. 저는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아이들이 좀더 나은 세상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주에 읽은 단편. 역시 뉴요커에 전문이 공개되어 있다.
Fifty-Seven by Rachel Kushner 11월 30일자 New Yorker

(image source: 뉴요커 해당 소설)
소설의 문체가 낯설었다. 주인공이 되내이는 생각과 단어들이 파편이 되어 튀어나온다. 랩, 아니면 하드락을 듣는 것 같다.
도입부를 옮겨본다.
They dropped him from I.R.C. so early the sky was black. He walked until he found himself stranded on the median of a freeway entrance, cars streaming toward him with their blinding lights, like a video game where the enemies come right at you, motherfuckers just keep coming straight at you one after the other, bam bam bam.
나는 소설의 도입부를 읽을 때 조금 긴장한다. 그건 소개팅에 나가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전까지의 긴장감 같은 거다. 그런데 Rachel Kushner (소설의 저자)는 처음부터 나에게 총을 쏘아 댄다. Bam bam bam.
소설은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당일 skid row 밑바닥 인생인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 후반부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주인공의 교도소 생활 이다.
감옥 이야기는 인기있는 소재임이 틀림없다. 감옥 관련 영상물이 연상된다. 친절한 금자씨, Orange is the new black, Oz 등등…
창작의 세계 보다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다음은 인구 10만명당 교도소 수감자 수 비교 차트이다.

(image source: Santacroce님 포스트 재인용)
미국의 형법은 강력한 처벌을 원칙으로 한다. 그만큼 감옥 수용자의 숫자도 어마마 하다. 경범죄로 잡혀들어간 이들이 그안에서 돌다가 중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삶에는 관성 같은 것이 있어서 잘못 굴러가다 한번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또한, 미국 교도소는 죄수들의 문제에 대해 방임이 원칙이다. 방임 아래서 새로운 범죄 사회가 탄생 한다. 감옥 내 갱단이 있고, 인종 갈등이 있으며, 성폭행과 잔혹행위가 만연한다. 주정부 예산 문제로 교정 시스템의 정상화는 답이 없어 보인다.
가끔 한국에도 미국식의 강력한 처벌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나는 죄를 지은 만큼만 벌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죄를 지은 만큼의 벌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Three-strike law나 Mandatory Minimum Sentence (주로 마약 사범들) 같은 가혹한 형법 규정들은 논란이 되곤 한다. 이를 테면 20불을 훔친 범죄자가 삼진룰 (Three-strike law)에 걸리면 종신형이 선고될 수 있다. 21세기 장발장이다.
어쨌든 단편 이야기를 다시 하자. 주인공은 무자비한 범죄자이다. 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서 사제 무기를 만들어 또 사람을 ‘조진다’. IQ 57의 길거리 인생 주인공의 삶에는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를 방치하고 격리한 세상도 그에게 무심하다. 다만 펠리칸 pelicans 만이 교도소에 입소하는 그를 반길 뿐이다.
어제 캘리포니아에서 총기 난사가 있었다.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5일 전에도 콜로라도 사건이 있었는데, 이제 총기 난사는 매주 이벤트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image source: USA Today 해당기사)
참고로 미국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공유한다. 이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총기사고 사망률(자살+타살) 은 교통사고 사망률에 근접한다. (22페이지)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public data
어제 아마존이야기를 하면서 대부분 미국 회사에서는 (남녀 모두) 육아휴직/출산휴가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동영상을 봐도 좋을 듯하다.
대충 요약하자면, mother’s day라며 모성을 찬양하는 광고를 해대지만, 직원들에게는 출산 직후 출근을 강요하는 미국회사의 현실을 꼬집는 개그이다. (미국은 시장경제에 맡기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비판의 화살은 주로 정부보다는 개별 주체인 기업을 향한다.)
나도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출산/육아 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나라는, 파푸아 뉴기니를 제외하면 미국밖에 없다. 위키피디아에 잘 정리 되어 있다. (링크: Parental leave) 비교대상이 OECD가 아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구글의 공짜 점심은 식상하리만큼 보도하면서, 이런 이야기는 왜 하지 않는걸까.
(image source: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