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트럼프와 르펜의 유사점과 차이점

네덜란드 선거는 이번주이고, 프랑스 대선은 다음달이다. 몇 주전부터 정리해보려고 맘먹었는데, 도무지 짬이 안났다. 한국 뉴스 따라잡기도 버거웠던 지난 주였기도 하고. 그래서 어설프지만 너무 늦어지기 전에 끄적이기로 결심.

우선 배경 설명으로 프랑스 대선에 관련 지난 포스트는 아래 링크 참조.

다가오는 프랑스 대선, 3월 3일자 포스트

관련기사 : The Economist | French politics: Fractured

Nationalism 또는 소위 ‘포퓰리즘’으로 분류되는 브렉시트/트럼프와 르펜은 여러가지 유사점이 있다.

세계화에 뒤쳐진 ‘잊혀진’ 사람들의 반란, 반이민정서/반이슬람정서에 기반, 기성정치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아웃사이더에 대한 선호,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선거 운동.

지난주 이코노미스트지는 르펜의 국민전선 지지도와 실업률 지도를 같이 보여주는데, 직업전선에서 소외 당한 사람들이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모양새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래 도표 참조)

런던과 타지역의 투표 양상이 상이했던 브렉시트에서 처럼, 파리와 타지역의 투표 양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래 도표는 파리에서 멀어질 수록 국민전선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국민전선의 지지자는 트럼프/브렉시트 지지자와 유사하게도 저학력층이 다수이며, 남성지지자가 월등히 많다.

이제 차이점을 몇가지 꼽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프랑스에서 nationalism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다는 것. 좀 의외이긴 한데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노동법이 강하고,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최근 유럽경기가 살아나는 추세라고는 하나, 새로생긴 일자리의 80%가 비정규 단기 (심지어는 한달 미만) 직업이기에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크다.

관련 포스트: 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젊은이들, 3월 1일자 포스트

둘째는 옆나라 독일과 비교되는 프랑스의 위상 추락이다. 유럽을 이끄는 독일에 비해 프랑스의 각종 경제 지표는 지난 15년간 제자리 걸음이다. 이를 프랑스인들은 décrochage, 즉 decoupling이라고 한다.

또 Euroseptic의 관점으로 이를 볼 수 있다. 민주주의를 자신의 나라에서 이뤄지는 일들에 대해 국민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EU는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체이다. 마린 르펜은 줄곧 유럽통합은 이뤄질 수 없는 망상일 뿐이고, 각 나라의 sovereignty 주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브렉시트 때에 올린 글로 설명을 대신한다.

관련 포스트: Euros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2016년 7월 2일자

이래서는 프랑스가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프랑스는 누가 뭐래도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나라이다. 프랑스의 정신은 어디로 간것인가. 바로 르펜이 강조하는 내용이 이것이다. 르펜은 프랑스의 정신과 국민전선의 정체성을 연결시킨다. 르펜은 남부에서는 반 이슬람을 말하고, 소위 프랑스의 러스트 벨트인 북동쪽에서는 반세계화를 그리고 위대한 프랑스 재건을 말한다.

이는 마린 르펜이 아버지 장 마리 르펜에게서 당을 물려 받으면서 리브랜딩(?)을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마린 르펜은 나치를 찬양하고 유대인을 혐오했던 아버지의 색을 빼는데에 주력해왔는데, 심지어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당에서 제명시키는 강수를 둔다.

르펜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결선투표를 하는 프랑스 특유의 선거제가 아니라면, 지지율 기준으로 국민전선은 제1 당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르펜이 없던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니라, 이전의 프랑스의 정신을 끌어다가 자신의 당의 정체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소위 laïcité 라이시테라는 프랑스 특유의 세속주의는 반이슬람 정서와 맞물려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관련해서 이전 포스트: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2016년 8월 30일 포스트

르펜의 반무슬림 정책이 네덜란드의 반 무슬림 정당 PVV의 Geert Wilders의 정책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 세속주의의 강한 전통을 가진 프랑스와 달리 네덜란드는 기독교 기반의 정치 전통이 최근까지 있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르펜은 RNW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RNW는 네덜란드 언론이고 해당 인터뷰는 2011년에 이뤄졌다.

“그게 바로 제가 Geert Wilders와 다른 점입니다. 그는 꾸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이슬람을 반대합니다. 문자 그대로 꾸란이나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프랑스 정신을 벗어나는) 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반대합니다. 샤리아법은 프랑스의 원칙, 가치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That’s the difference between Geert Wilders and me. He reads the Qur’an literally: you can’t interpret the Qur’an – or indeed the Bible – literally. I resist fundamentalists who want to impose their will and law on France. Sharia Law is not compatible with our principles, our values or democracy,”

source: https://www.rnw.org/archive/le-pen-says-shes-no-wilders

르펜의 정치관 동의 여부와 별개로 르펜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가 참 명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느낌까지 주는 몇몇 (사실상 대다수의) nationalist들과 달리 르펜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확히 알고 말을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리고 트럼프 등장 훨씬 전부터도 반이슬람, nationalism의 기수 역할을 해왔던 르펜의 존재감으로 나타난다.

르펜은 어린 시절부터 (극우 정치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왕따로 커왔고, 두차례 이혼을 겪으면서 생활 정치인으로 홀로 섰다. 우는 아이들을 보며 화장실에서 라디오 인터뷰를 했던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그는 테러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권력에의 의지를 놓은 적이 한번도 없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든 르펜의 도전에 이제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르펜 개인사에 관한 취재 기사 : MARINE LE PEN, L’ETRANGERE, Magazine 1843

취향은 돌고 돈다 – 쌀을 먹는 아프리카인, 밀을 먹는 아시안, 그리고 미국인

영어로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있다. 본래는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물을 먹어야한다는 뜻인데, 문맥에 따라 먹는 음식에 따른 문화 정체성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정말 사람들은 다양한 식재료를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조리하는 구나 싶어서 감탄하게 된다.

무엇을 먹는가는 각 사람의 욕구, 건강 상태, 재정 상황이 총망라된 총체이다. 그리고 시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20세기 후반 미국에는 저 콜레스테롤 열풍이 세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밀가루 음식 먹기가 유행이었다. 지금은 알다시피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인기라서 밀소비량은 감소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당 밀 소비가 67kg에서 60kg으로 줄었다. (97년에서 2015년 사이에)

반면 서아프리카 지역은 쌀 소비가 는다고 한다. 2000년에서 2014년 사이 서아프리카의 쌀 생산량은 710만톤에서 1680만 톤으로 증가했다. (아래 도표 참조) 그 전까지 수수와 기장이 주식이었던 이지역은 이제 쌀밥이 인기다. 서아프리카 지역이 도시화되면서 아무래도 (수수와 기장에 비교해) 요리가 간편하고 배도 든든한 쌀이 인기를 끈다.

아시아는 밀이 인기이다. (아래 참조) 한국은 이미 쌀이 주식인가 싶을 정도로 밀소비가 상당한 나라 중에 하나이고, 베트남, 타이 같은 나라에서는 유럽스타일 베이커리가 성황이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는 쌀보다는 과일/야채/유제품/생선류/고기류로 칼로리를 채운다. 전통적인 밀 수출국인 인도도 최근 밀 수입국이 되었다.

그럼 미국 같은 경우는 뭐가 인기일까. 건강에 안좋은 걸 많이 먹기로 유명한 미국인들이지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살기에 트랜드가 있다. 건강식이나 채식주의에 관심있는 분들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작물을 먹는다. 일부이지만, 수수나 조를 추천하기도 하고, 특히나 퀴노아는 건강식으로 떴다.

안데스 산맥의 일부 가난한 농부들이 즐겨먹던 퀴노아는 이제 힙한(?) 곡물이 되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작년기준 9%의 일반 식당과 18%의 고급 식당에 퀴노아 메뉴가 있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하나의 유행 수준이긴 하지만, 몇년 사이에 전세계 퀴노아 생산량은 세배가 되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제 쌀을 아시아는 이제 밀을, 그리고 서구 사회는 다시 희귀 곡물을 찾아 먹는 걸 보면 전통이라는게 영원하지도 않고 먹는 것마저 (길게보면) 참 많이 바뀌는 구나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한국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김치 (특히 매운 김치)도 고작 조선 후기에 유행한 음식이다. 고추도 그때쯤 전래 되어 온 것이고…

관련기사
The Economist | Grain consumption: Of rice and men (3월 9일자)

관세와 부가가치세, 무역전쟁, 그리고 차트

관세와 무역장벽관련해서 깔끔한 도표들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렸기에 공유한다. 나는 역시 차트성애자다. 잘정리된 이쁜 그림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차트들을 세심히 보다보면 미국과 (대미무역 흑자를 보는) 상대국가들이 숫자를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가가 잘 보여서 재미도 있다.

처음 두개의 지도는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무역 장벽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잘 보여준다. 첫째 지도는 관세율을 음영으로 나타내었고, 두번째는 거기다가 부가가치세 VAT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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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율 차이로 본 무역 개방정도는 WTO가 보는 세상과 큰 차이가 없지만, 최근들어 논란이 되는게 두번째 지도이다.

VAT가 무역 장벽이 된다는 주장은 트럼프정부 국가무역위원회 피터 나바로 위원장이 시작했다.

참고: 트럼프 경제 공약집

이 주장은 관점에 따라 논란이 된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수출품에 부과되는 VAT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미국에 없는) VAT와 (미국에 있는) 판매세가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좀 헤깔린다. 그런데 기업입장에서 VAT는 중간에 부가가치가 생기는 단계마다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수출품은 세금 환급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수출품 VAT 환급은 국내 수출기업에 부과되는 불공정한 세금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어차피 국내 제품에 부과되는 세금은 수입품이나 국산이나 동일하다.

반면 나바로 측은 이렇게 부과되는 세금이 미국 기업의 아웃소싱에 인센티브를 준다는 입장이다. 아예 말이 안되는 건 아닌데, 나는 백프로 공감하는 편은 아니다. 어쨌든 국경세 border adjustment tax (or DBCFT) 도입이나 무역장벽 논란에 큰 주축이 되는 논리적 토대인 것은 사실.

관련 기사
Trump’s ‘incredibly misleading’ claim on Mexico (CNN Money, 2016년 9월 28일)

(아참, 혹시 인용이 트럼프에 부정적인 CNN 기사라 문제가 있지 않는가 라고 묻는 분이 있을까 싶어서 보태자면, 제목만 보면 정파적인 논조가 있을지 모르나 내용은 그렇게 정파적이지만도 않다.)

어쨌든 원래 도표로 돌아와서, 관세에다 (논란은 있지만) VAT를 더하면 확연하게 미국에 비해 타국의 무역장벽이 높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보기에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열린 경제를 가졌고. 그렇게 보면 미국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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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세번째, 네번째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관계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러니까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할 때, 개도국이었기에 높은 관세를 유지하는 걸 허용해 주었는데, 지금도 그런가라는 질문에 대한 힌트들이다. 이제는 중국을 개도국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입장과 여전히 중국은 인구대비 숫자로 보면 갈길이 멀다는 입장의 차이이다. 이 역시 미국이 보는 관점과 중국이 보는 관점의 상대적인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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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참 무역이라는게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숫자를 보는 관점이 이렇게 달라진다.

트럼프 등장 이전부터 미국에서는 무역 시스템이 미국에 불공정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 대선에서 샌더스도 동일한 입장이었고.

나는 트럼프가 어젠다를 잡고서 방향을 이끄는 사람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데, 이를테면 트럼프 이전에도 무역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었고, 트럼프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을 뿐이다. (나는 트럼프 정권에서 보이는 nationalism 경향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마지막 도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지금의 중국은 (여전히 많은 무역장벽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 시장을 개방하는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베일아웃이나 보조금 등의 혜택을 늘리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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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세상은 이렇게나 변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관련한 이전 포스트
미국/멕시코 관계, 그리고 나프타 (1월 27일 포스트)

아래는 국경세 DBCFT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신 권남훈 교수님 포스트
상편

하편

미래의 무인자동차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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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회사에서는 매년 Ted talk을 한다. 올해는 세번째 할 예정.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강당에 올라가서 talk을 하는 걸 보면 원래 저렇게 말을 잘했었나 싶어서 깜짝 놀라곤 한다. 꽤 준비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작년에 했던 Ted talk 중에 하나가 마침 한글 번역이 되었길래 공유한다. 무인자동차에 관심있는 분은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그러고 보니까 나도 벌써 운송업계 밥을 4년째 먹고 있다. 근데, 왜 밥먹고 사는 주제에는 항상 어설픈 거지.

멕시코시티 부패 투어

‘Corruptour’ in Mexico City. It sounds convincing that shame is one of the most effective weapons against corruption.

‘부패 투어’란다. 멕시코 시내를 관광버스로 다니면서, 그 지역에 연관된 부패 스캔들을 소개해 준다고.
며칠전에 이코노미스트지에서 관련 기사를 읽고서 ‘부패투어’는 실제로 어떤 식일까 궁금했다. 마침 AP에서 360도 비디오로 투어 모습을 촬영했다.

참고로 이코노미스트지 기사 링크는 아래.
The Economist | Corruption in Mexico: The backhander bus (3월 2일자)

이탈리아 출신 누군가의 인터뷰에서 들은 것 같다. 그는 ‘부패’와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수치심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대결해서 승리했던 렌치 총리는 네가티브 하는 대신에 정책으로 승부했고, 인격적인 공격보다는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부각시켰다던가 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근데 서울도 ‘부패 투어’를 기획하면 코스를 어떻게 짜면 될까?

폭력과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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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이슈 관련 책들이 핫하다. 피케티, 앳킨슨, 밀라노비치의 책들이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관련한 책이 하나 더 나왔길래 이코노미스트지 북리뷰를 옮겨둔다. 따끈따근한 신간이지만 이분야가 요새 뜨거우니 한국에도 곧 소개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The Economist | Violence and inequality: Apocalypse then (3월 2일자)

저자는 스탠포드대 고전학과 월터 샤이델 교수. 로마사 쪽 권위자라고. 책제목은 The Great Leveller 이다.

불평등 이슈에 대한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 진다. ‘그래서 결국 해결책은?’ 이라는 질문에 답이 없다. 맬서스의 인구론을 접한 19세기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코끼리 곡선으로 유명한 밀라노비치의 책도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종국에 해결책은 혁명이나 전쟁 같은 폭력 밖에 없다는 논리적 귀결을 품고 있다.

리뷰에 따르면, 이책은 아주 대놓고 인류 역사에서 평등을 가져왔던 사건은 대참사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샤이델은 책에서 역사상 의미있는 평등을 가져왔던 사건을 네가지 종류로 나눈다. 바로 전쟁, 혁명, 국가의 붕괴, 전염병이다.

따져보면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1960년대 미국 황금기는 이차대전 이후 중산층의 탄생과 시점을 같이한다. 한국의 경우도 (동일한 관점으로 보자면) 한국전쟁 이후 완전한 폐허에서 한반도 역사상 본적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이룩했다. (아, 21세기 지금까지 그러한가는 역시나 관점의 문제이다.)

말이 되는 것과 별개로 너무나도 불편하다. 불평등 이슈는 팩트와 관점의 경계가 너무나도 희미해서 개개인이 가진 정치적, 역사적 시야를 온전히 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해보면 ‘세계는 불평등한가’ 라는 질문이 이미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불평등 이슈의 무게에 너무 눌린 나머지, 질문 자체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 질문이 현대인들에게 큰 공감을 가져온다는 것 또한 현실.

오늘의 금언 – 고르바초프

“If what you have done yesterday still looks big to you, you haven’t done much today.” Mikhail Gorbachev

고르바초프 금언이라고.

오늘따라 공감이 가길래 퍼왔다. 이전에 이루었던 일들이 자꾸만 크게 여겨지면,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신호로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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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hail Gorbachev (1931 – )

콜베어의 고도를 기다리며

아~ 재미있다. 예전에 대학로에서 안석환씨가 연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 본 생각나네.

고도를 기다리며, 스타트랙을 봤었던, 그리고 오바마케어, 트럼프 관련 뉴스를 follow하는 사람이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다가오는 프랑스 대선

이번주 이코노미스트지 메인 사설을 공유한다. 그리고 요즘 하는 생각도 덧붙인다.

France’s next revolution: The vote that could wreck the European Union (the Economist, 3월 4일자)

두달 앞둔 프랑스 대선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제 좌/우 대결이 아닌 열린사회/닫힌사회의 대결로 세상이 바뀐다고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 해왔는데 그 축소판이 이번 프랑스 대선이다.

‘Frexit’를 내걸고 ‘프랑스 우선주의’를 말하는 르펜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이고, 그에 대응하여 유럽연합을 지켜낼 사람으로 떠오른 인물은 39세 마크롱이다. 마크롱 역시 고작 작년에 En Marche! 당을 창당한 아웃사이더.

좌파 사회당과 우파 공화당이 바꾸어가며 집권하던 프랑스 정치지형을 생각하면 참 생경한 선거가 될 것 같다. 기존의 프레임으로 보면 르펜을 극우, 마크롱을 중도좌파 정도로 봐야 할 텐데, 그런 식의 프레임이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극우로 분류되는 르펜은 여성 인권과 히잡 금지를 동일 선상에 놓고 말하고, (일부) 동성애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중도좌파 마크롱은 친기업적인 정책을 이야기 하고 노동법 완화를 말한다. 좌/우파 (또는 보수/진보)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잘 이해도 가지 않고, 어쩌면 표를 얻기 위한 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논리적인 방향성과 토대가 있다.

히잡관련 이전 포스트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2016년 8월 30일 포스트

선거 결과는 어찌될까?

이코노미스트지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르펜의 당선이 어렵다고 본다. 그런데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을 겪고 나니, 과연 그럴까 싶다. 게다가 양자대결 여론 조사에서도 르펜은 꾸준한 상승세. 물론 르펜 당선, 아직 갈길이 멀다. 그치만 동시에 가시권에 들어왔다.

정치에 별다른 스탠스가 없다. 특히 보수/진보 논쟁에는 별로 개입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러나 소위 nationalism으로 분류되는, 애국심을 말하는 분들은 좀 무섭다. 파시즘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하면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까.

내가 이해하기로 파시즘은 nationalism과 궁합이 잘 맞는다. 그리고 전체주의와 맞닿아 있다. 파시즘의 뿌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희생자라는 태도, 자신의 집단에게 피해를 가져다준 (또는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상정한) 적을 만드는 일, 그 적을 법률/도덕의 적용범위 안에 두지않는 자세, 이성이나 지식보다는 자신이 신뢰하는 지도자의 직감을 우월하게 보는 믿음, 힘에 대한 과도한 숭상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참 무력함을 느끼는데, 아무래도 내가 먹물 끄나풀 정도 되는 사람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이데올로기 광풍을 겪었던 20세기 초반 지식인들은 지나치게 무력했다.

예전에 내게 파시즘과 홀로코스트는 너무나 초현실적이었다. 아우슈비츠 옆에 산처럼 쌓인 신발/머리칼/안경/이빨 같은 풍경들. 그런게 어찌 공감이 될 수가 있겠는가.

다시 한번 옛날 책이나 뒤적여 볼 생각이다. 관심갖고 읽으려고 모아둔 책은 아트 슈피겔만 ‘Maus,’ 한나 아렌트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커트 보네거트 ‘Slaughterhouse 5’

언제나 그렇듯이 책 만 사두고서 장식품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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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젊은이들

마린 르펜과 그의 국민 전선을 지지하는 젊은 층에 대한 심층 취재 기사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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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Le Pen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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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rench millenials marching behind Marine Le Pen (New Stateman, 2월 21일자)

미국과 유럽의 nationalist들에게 애국심이라는 키워드는 만능이다. 이들은 프랑스를 다시금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르펜의 연설에 열광한다. 트럼프와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그러했듯이 그들은 위대한 과거로의 회귀를 꿈꾼다. 기존의 정치가들에 대한 환멸과 새로운 정치에의 희망이 그들에게 동일하게 비치는 건 우연일까.

한 20대 젊은 여성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프랑스 접경지역에 사는 이 여자는 룩셈부르크에서 일하고, 가끔 독일에 쇼핑하러 간다. 그녀는 ‘Frexit’를 지지하지만, 지금처럼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We’ve never had problems to work in Luxembourg. Why would that change?” (정말 거기서 끝날까?)

설명을 덧붙이자면, 르펜은 공약집에서 생겐 조약을 없애고 대체하는 다른 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름만 바꾼 생겐으로 밖에 읽히지 않긴 하다만… (르펜의 155 공약집 링크)

핵심 지지층이 정책 실현의 가능성이나 디테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애국심’, ‘정체성’에 집중하고 ‘이민문제’를 화두로 삼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